토털사커에 의해 하나의 전술적 개념으로 정립되기 시작한 압박의 발달과정을 살펴보기에 앞서, 우리는 축구에 있어 수비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관해 좀 더 자세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여러 축구 전술과 관련된 서적들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수비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목적이 있으며, 현대축구에서는 경기 흐름 및 상대 팀의 성향에 따라 어느 한 쪽에 비중을 두고 정교하게 수비 전술을 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두 가지 목적이란 첫째는 실점하지 않는 것(수동적 목적)이요, 둘째는 상대로부터 볼을 빼앗아내는 것(능동적 목적)이다.”
토털사커는 철저히 첫 번째 목적에 역점을 둔 카데나치오(빗장수비)와 다르게, 두 번째 목적을 실행으로 옮기기 위해 압박을 그 수단으로 선택했다. 단순히 상대 선수의 움직임을 봉쇄함으로써 수동적으로 페널티 박스 지역을 지켜내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볼을 빼앗아내기 위한 수비를 펼침으로써 압박에 의한 공격축구를 그라운드 위에서 구현해낸 것이다. 전 AC 밀란 감독 아리고 사키(사진)는 이러한 토털사커의 이론으로부터 매우 귀중한 힌트를 얻었다.
사키의 축구는 이른 바 토털사커의 개정판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볼을 빼앗아내기 위해 상대를 적극적으로 압박하는 일련의 행위를 ‘무질서’가 아닌 ‘질서’에 의한 팀 레벨의 전술로 승화시켰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즉, 사키가 완성시킨 압박축구는 토털사커가 끊임없이 던져 온 “어떻게 하면 보다 빠르고 효과적으로 볼 주변의 공간에 수적 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까?” 혹은 “어떻게 하면 팀의 전체적인 밸런스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상대 선수를 더욱 강력하게 압박할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들에 대한 일종의 ‘해답’인 셈이다.
사키는 3-5-2에 비해 공격, 미드필드, 수비 라인에 10명의 필드 플레이어가 고르게 포진되어 있는 4-4-2를 도입함으로써 그라운드 전 지역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시키는 한편, 공격 시에도 수비 시에도 최전방과 최후방 사이의 간격을 3~40m 정도로 유지함으로써 빠르게 수적 우위를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전체적인 대형의 밸런스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상대에 대한 압박을 강화시키기 위해 선수들의 정확한 위치선정을 무엇보다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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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설명: 3-5-2(좌)에 비해 그라운드 전 지역에 고르게 선수들이 포진되어 있는 4-4-2(우)의 모습. *그림출처:nas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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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설명: 지속적으로 좁은 간격이 유지되는 팀(우)은 그렇지 않은 팀(좌)에 비해 각종 국면에서 빠르고 효과적으로 수적 우위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처럼 축구에서 각 선수와 선수 간의 협력관계는 좁은 간격에 의한 밀집된 대형(컴팩트한 대형)을 바탕으로 성립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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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설명: 4-4-2 활용 시 볼의 위치에 따른 압박의 변화를 간략화 시킨 그림. 사키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포지션의 선수가 상대를 압박해야 하는지를 보다 세분화시킴으로써 ‘전체적인 밸런스의 유지’와 ‘압박의 강화’를 양립시키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 그림출처: livedoors.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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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토털사커로 유명한 74년 월드컵 당시의 네덜란드가 상대 팀 아르헨티나를 강력하게 압박하는 모습. 너무나도 적극적으로 볼을 쫓은 나머지 아르헨티나 선수 1과 선수 2가 넓은 공간에서 지나치게 자유로운 상태로 방치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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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반면 아리고 사키 감독이 이끄는 밀란(좌)의 경우 볼을 갖고 있지 않은 상대 선수들을 철저히 경계하며 압박을 시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크라이프 감독의 바르셀로나(우) 역시 두 라인이 질서정연한 상태를 유지하며 상대를 압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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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설명: 전체적으로 대각선 라인을 그리며 4-4-2 대형의 밸런스를 유지한 채 상대를 강력하게 압박하는 사키의 밀란을 나타낸 그림. * 그림출처: cahiersdufootbal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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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설명: 88/89 시즌의 1경기를 선정, 90분 동안 나타난 유벤투스와 밀란의 볼 탈취 지점(X표)을 비교한 그림. 사키는 미헬스와 마찬가지로 압박을 공격축구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고, “볼을 빼앗아낸 지점이 상대 골문과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공격적으로 경기에 임할 수 있다” 는 토털사커의 이론에 매우 충실한 감독이었다. 위 그림은 높은 라인을 유지함으로써 나타나는 밀란의 공격적 성향을 매우 정확하게 대변해주고 있다. *자료출처: 월드사커의 전술 p.125]
이러한 압박전술의 완성은 현대축구가 곧 ‘시간(Time)과 공간(Space)의 싸움’으로 발전해 나갈 것임을 의미했다. 압박은 상대로부터 공간적∙시간적 여유를 박탈하기 위한 수비 방법인 까닭에, 그만큼 짧아진 시간과 좁아진 공간이란 환경 속에서 얼마나 빠른 속도로 플레이를 전개해나갈 수 있는지 여부가 경기의 승패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는 이유에서다.
현대축구의 팀들은 제한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더 빠르게 패스하고 더 빠르게 움직임과 동시에, 볼 주변의 공간에 상대 선수들이 밀집됨에 띠라 발생하는 반대편의 ‘자유로운 공간’(Free Space)에 대한 효과적인 공략을 요구받게 되었다. 이는 곧 토털사커의 또 다른 대표적 개념인 패스&무브가 보다 강력해진 압박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현대축구의 가장 보편적인 원칙으로 떠오르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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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브라질과 이탈리아의 94 월드컵 결승전 모습. 브라질 선수를 압박하기 위해 볼 주변으로 많은 숫자의 이탈리아 선수들이 몰려듦에 따라 그 반대편 지역에 비교적 넓은 공간이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현대축구에서 상대의 압박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이 ‘자유로운 공간’을 향해 빠르고 정확하게 볼을 운반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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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압박하는 속도보다 빠르게 볼을 순환시킬 수 있어야 한다. 짧은 패스를 주고받으며 지속적으로 볼을 순환시키면 공간은 필연적으로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처럼 지속적으로 짧은 패스를 주고받으며 볼 소유권을 유지한다는 전술적 행위(볼 포제션)에는 기본적으로 “경기 전체를 능동적으로 컨트롤하고 지배하겠다” 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만, 그와 동시에 상대로부터 볼을 빼앗아내기 위한 체력소모를 최소화시키겠다는 의미 역시 내포되어 있다. 계속해서 크라이프는 말한다.
“지속적으로 높은 라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볼을 빼앗긴 이후 최대한 빠르게 압박을 시도해야 한다. 물론,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사실은 압박에는 필연적으로 일정 수준의 체력소모가 뒤따른다는 점이다.”
“볼 소유권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 그만큼 체력을 아낄 수 있게 된다. 볼은 사람보다 빠르며, 볼은 사람과 달리 지치지 않는다. 반면 볼을 빼앗기 위해 움직이는 상대 선수들은 필연적으로 지치게 된다. 이 점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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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설명: 트라이앵글은 현대축구에서 각 선수와 선수 간의 협력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단위로 간주되고 있다. 요한 크라이프는 트라이앵글을 연속적으로 형성하기에 용이한 4-3-3, 3-4-3(3-3-1-3)과 같은 시스템을 극단적으로 선호했으며, 계속되는 트라이앵글의 형성에 의해 발생하는 두 개 이상의 패스코스를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짧은 패스를 이어나가는 축구’를 드림팀 바르셀로나에 주입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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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과르디올라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드림팀’ 바르셀로나의 연속적인 트라이앵글의 형성 및 다양한 패스코스를 포착한 사진.]
아리고 사키 역시 이에 동의한다.
“볼을 소유하고 있을 때에는 되도록 그것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볼을 소유하고 있지 않을 때에는 되도록 빠르게 그것을 되찾아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지속적으로 높은 라인을 유지할 수 있으며, 상대 진영을 주무대로 삼을 수 있다. 즉, 공격축구를 그라운드 위에서 구현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의문을 품어보지 않을 수 없다. 오랜 시간 동안 볼 소유권을 유지할 수 없는 팀, 즉 기술적 측면에서 열세에 놓여져 있는 팀들은 과연 어떠한 방법으로 상대의 압박에 대처해야 한다는 것일까?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10여년 전에 마르첼로 리피 현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이 품었던 의문점이기도 하다. 리피는 말한다.
“당시 아리고 사키의 축구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고, 나는 세리에A에 갓 승격한 하위권 팀 체제나에서 그러한 스타일을 구현해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체제나에는 마르코 반 바스텐도, 루드 훌리트도, 프랑크 레이카르트도 없었다. 지속적으로 높은 라인을 유지하는 공격축구에는 생각보다 많은 위험성이 존재했으며, 특히 선수 개개인의 뛰어난 테크닉과 전술 이해도 없이는 좀처럼 실행으로 옮기기가 어려웠다.”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내놓은 감독은 ‘위험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 파비오 카펠로였다. 압박축구에 대한 카펠로의 접근방식은 매우 간결하면서도 명확했다. 되도록 높은 라인을 유지하며 상대를 강력하게 압박해야 할 필요성은 분명 존재하지만, 볼 소유권의 유지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팀은 필연적으로 상대의 역습에 위협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카펠로는 체력을 안배하기 위한 볼 포제션에 커다란 비중을 두지 않는 대신, 그만큼 상대보다 많이 움직이고 많이 땀 흘림으로써 강력한 압박을 유지하기 위한 투쟁적 스타일을 표방하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