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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이야기

축구영웅 로베르토 바지오..

작성자리오넬메시|작성시간12.05.11|조회수630 목록 댓글 1

내가 축구를 처음 접한 9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본 이탈리아 선수 중 단연 탑은 로베르토 바지오다. 드리블, 슈팅, 패스의 3박자를 고루 갖춘 슈퍼 플레이어였다. 토티도 잘하고, 델 피에로도 멋지지만, '판타지 스타'라는 이탈리아 축구계에 있어서 특별한 이 단어는 오로지 로베르토 바지오의 것이다. 그리고 나에겐 예전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당분간 이탈리아의 No.1은 로베르토 바지오의 영역이다.

 

93년 피파 올해의 선수이자, 발롱 도흐 수상자인 로베르토 바지오는 94년 큰 기대감으로 신대륙을 밟는다. 하지만 예선 3경기 동안 부진했던 그는 결국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나이지리아와의 16강전에서 이탈리아의 공격력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그는 교체 투입되었다. 1-0으로 뒤져있던 이탈리아는 바지오의 연속 2골로 8강에 진출한다. 그 후 분위기를 탄 바지오는 스페인과의 8강전과 불가리아의 4강전에서 잇따라 결승골을 성공시키며 이탈리아를 결승전에 안착시킨다.

 

현재의 제라드 이전에 최고의 클러치 플레이는 단연 바지오였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회자되는 94년 미국 월드컵 결승전은 승부차기로 이어졌고, 이탈리아의 마지막 키커로 나선 그는 실축을 하고 만다. 그리고 그가 실축했을때, 당시 국민학교(그당시엔 초등학교가 아니었다.) 5학년의 어린 꼬마였던 나는 그 일요일 아침 TV앞에 바지오와 함께 몸이 굳어버려 멍하니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이 사건 하나가 후에 그의 축구인생을 그렇게 꼬이게 한 원인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월드컵 종료 후 이어진 그에 쏟아지는 비난들은 당시 국내 언론을 통해서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뉴스였다.

 

한번은 그의 애완견이 팬들의 공격에 죽은채 발견된 적도 있었고, 카톨릭 국가인 이탈리아에서 흔치 않은 불교신자인 그가 종교를 바꾸지 않으면 가족을 공격하겠다는 메시지를 받았던 것도 기억난다. 참 대조적이다. 불과 몇 달전 월드컵에서 펄펄 날라다녔을때는 불교에 대해 관대하다 못해 신성시 되던 분위기였음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그 후 부상과 마르첼로 리피 감독과의 불화가 겹치며 그는 팀을 밀란으로 옮긴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당시 밀란의 감독이었던 아리고 사키 감독도 전술적으로 그를 배제했고, 결국 그는 그라운드에서 뛰지 않는 선수는 존재의 가치가 없다며 빅클럽의 벤치멤버가 아닌 중소 클럽의 주전을 선택했고, 볼로냐라는 강등권에서 싸우는 팀으로 이적했다.

 

그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97년 볼로냐에서 22골을 넣었다. 독이 올랐다고해도 무방할 정도로, 연이은 골폭풍을 일으켰고, 결국 98년 프랑스 월드컵 스쿼드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더이상 아주리 10번의 주인은 자신이 아닌 자신과 너무나도 닮았던 델 피에로의 차지였다. 그렇지만 주전 자리는 델 피에로가 아닌 바지오에게 돌아갔다. 칠레와의 첫 경기부터 그는 주전으로 출장했고, 비에리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하고, 후반전 팀이 2대 1로 뒤지고 있을때 절묘한 킥으로 패널티킥을 얻어낸다. 그리고 킥커로 직접나섰다. 4년 전의 악몽이 아직 지워지지 않은 이탈리아 팬들은 초조했겠지만 그는 당당히 골을 성공시킨다.

 

8강에서 만난 난적 프랑스. 바지오는 후반전 델 피에로와 교체 투입된다. 이탈리아 공격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연장전 바르테즈를 지나쳐 골포스트를 아깝게 스쳐지나간 슈팅은 두고두고 아쉬웠다. 그리고 결국 승부차기로 들어갔고, 4년전 패배의 원흉이 되었던 그는 당당히 팀의 첫번째 키커로 나와 손쉽게 골을 성공시킨다. 그리고 그가 보인 세레머니는 이젠 제발 조용히 해달라는듯 검지를 입에 대는 것이였다. 정말 눈물날 정도로 감동적인 장면이었지만, 팀의 승부차기 패배로 빛이 바랬다. 마지막 키커였던 디 비아조는 크로스바를 강하게 맞췄고, 이탈리아는 다시 승부차기에서 물을 먹은 것이었다. 4년전 자신의 겪은 아픔을 기억한 바지오는 쓰러져 눈물을 흘리고 있는 디 비아조에게 다가가 등을 다독거려주며 격려하는 형님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그것이 메이저 대회에서 바지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월드컵 후 그는 다시금 밀란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로쏘네리가 아닌 네라쭈리로 온 것이다. 호나우도와 화려한 공격진을 구축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호나우도의 부상과 바지오의 부진이 겹치면서 두 슈퍼스타의 조합은 끝내 빛을 내지 못했고, 유로2000을 부진으로 놓친 바지오는 다시금 도전에 나선다.

 

자신의 커리어에 있어서 마지막 메이저 대회가 될 것이 분명했던 2002년 월드컵에 출전하기 위해서 또다시 용의 꼬리가 아닌 뱀의 머리를 선택한 것이다. 인테르에서 브레시아로 적을 옮겼다. 그리고 다시 골폭풍을 몰아쳤다. 하지만 상황은 4년전과는 달랐다. 지오반니 트라파토니 감독은 끝끝내 그의 선발을 거절한다. 모든 이탈리아인들이 원하고 단 한명만 원하지 않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탈리아는 한국땅에서 다소 이른 짐을 꾸리게 되었다.

 

마지막 메이저 대회 출전을 놓친 그는 목표를 리그 200골로 바꾸고, 그 목표가 달성되자 전격적으로 은퇴를 발표했다.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던 그가 연이어 대표팀에서 배제되자 펠레는 이런 말을 했었다.

 

"로베르토 바조의 불운이라고 한다면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것이 가장 불행한 일이었다. 그는 마땅히 브라질에서 태어났어야 했다."

 

그의 축구인생은 불운과 좌절, 그리고 화려한 재기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감독복이 없던 선수, 가장 운이 따르지 않은 선수였지만, 그는 그때마다 오뚜기처럼 일어났다. 아직도 그만한 감동을 주는 선수는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커리어를 들먹이면서 델 피에로를 그보다 위에 두려고 하지만, 스포츠에 있어서 커리어, 혹은 스탯으로만 선수를 평가하는 것은 가장 위험하면서도 어리석은 짓이다. 그는 펠레와 마라도나 이후에 유일하게 혼자만의 힘으로 게임을 좌지우지 할 수 있었던 슈퍼 스타였다. 난 그런 그의 전성기를 볼 수 있을때 태어난 것이 너무나도 자랑스럽고, 후에 나의 아이들에게 내 영웅의 활약상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해줄 것이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고...

 

그립다, 말총머리...

 

"축구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는 미국의 독자들에게 나는 로베르토 바조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장거리 육상 선수들의 무한한 지구력, 단거리 선수들의 스피드, 러닝백의 밸런스와 포인트 가드의 시야를 모두 지닌 선수이다."

- 마크 우즈(USA TODAY 스포츠 기자)-

"다시 태어나더라도 물론 축구선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왕 다시 태어날거면.. 다음번엔 로베르토 바조로 태어나고 싶다."

- 파올로 말디니 -

"바조를 이태리에 그냥 남겨두겠다.. 한마디로 이건 불공평하다. 다른 선수들에겐 주어진 기본적인 기회마저 봉쇄 -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로비를 한 번도 기용하지 않은 점을 두고 - 해 놓았기 때문이다. 바조는 혼자서 모든 것을 바꾸어 버릴 수 있는 선수이다. 나는 트라파토니의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 파올로 디 카니오(로비의 월드컵 대표팀 발탁을 촉구하며) -

"내가 아직 유스팀에 있을 시절, 바조는 나의 영웅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 사실은 변치 않고 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의 플레이의 격은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 라이언 긱스 -

"그와 처음 그라운드에 선 날 나는 흥분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마치 꿈만 같은 시간이었다."
- 지안루카 잠브로타 -

"로베르토 바조를 볼 때마다 한가지 생각나는 말이 있다. '품격과 격조는 시간이 지나도 쇠락하지 않는다.' 그는 몸소 이 것을 증명하고 있다"

- 이탈리아 데이터 스포트 -

"로베르토 바조는 내가 참 좋아하는 현역 선수중 하나이다. 집에 비디오를 몇 개씩이나 소장해서 친구들이 올 때마다 같이 틀어볼 정도이다. 감각적이고 훌륭한 플레이가 뭔지 아는 선수이다. 아직은 몇 년은 더 정상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 지코 -

"로베르토 바조는 지난 35년간의 감독 생활 동안 내가 본 어떤 선수보다 항상 열심히, 더 많은 시간을 훈련에 매진하는 선수였다."

- 카를로 마초네 전 브레시아 감독 –

"로베르토 바조를 나와 비교하지 마라. 그와 같은 선수는 지구상에 유일무이하다."

- 마라도나 -

"어찌보면 로베르토 바조가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것은 불행이었다. 그는 브라질에서 태어났어야 한다."
- 펠레 –

"90년도 이탈리아 월드컵 당시 나는 자원 봉사 볼보이로서 체코전에 참가했었다. 그리고 그 날 나는 미드필더에서 공을 잡아 30미터를 폭풍같이 질주하며 골을 성공시킨 한 선수를 보았다. 나는 그를 보며 커서 꼭 저런 선수가 되리라 다짐했고, 그 꿈을 이룰 기회가 이제 오고 있다."
- 프란체스코 토티 (한일 월드컵 출전을 앞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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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벌레물린사과 | 작성시간 12.05.12 옛날 생각이 나네요...바지오를 참 좋아 했었는데...
    좋은 글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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