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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이야기

현대 축구에서 플레이메이커란?

작성자벌레물린사과|작성시간11.12.14|조회수555 목록 댓글 0

현대 축구에서 플레이메이커란? (The Question: What is a playmaker's role in the modern game?)

 

 Juan Román Riquelme

Despite his age, Boca Juniors have paid $5m to Juan Román Riquelme to play in the revered No10 role Photograph: Tom Jenkins for the Guardian

 

월드컵에서 플레이메이커가 부활했다. 남아공 월드컵의 대세였던 4-2-3-1 포메이션 덕분이다. 4-2-3-1 포메이션의 3자리에는 적어도 한 명의 창조자가 필요하다. 나는 최근에 플레이메이커의 흥망성쇠를 추적해 일종의 계보 도를 그려보고자 했다. 하지만 자료를 찾으면 찾을수록 플레이메이커가 정확히 무엇인지 정의 내리기가 힘들어졌다. 가디언 칼럼리스트 바니 로나이(Barney Ronay)가 최초의 플레이메이커는 누구냐고 물어왔을 때는 대답조차 하기 힘들었다.

 

나는 지금 아르헨티나에 있다. 여기서는 질문에 답하기가 한 결 쉽다. 플레이메이커? 아르헨티나 말로는 엔간체(enganche), 영어로는”the hook”이며, 넘버 텐 이자, 4-3-1-2 3-4-1-2 포메이션의 투 톱 아래에서 뛰는 유형의 선수. 절반이 넘는 아르헨티나 리그 팀들이 이런 우형의 선수를 주전으로 내세웠다. 32살인데다 부상까지 안고 있는 리켈메(Juan Román Riquelme)를 보카 주니어스(Boca Juniors) $5m씩이나 주고 데려와 4년 계약을 맺을 정도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를 벗어나면 프레이메이커에 대한 건 여전히 곤란한 질문이다. 크로아티아에서는 디나모 자그레모(Dinamo Zagreb) 시절 3-4-1-2포메이션에서 1자리 엔간체로 뛰었던 모드리치(Luka Modric)를 플레이메이커라 여길 지도 모른다. 하지만, 토트넘에서 매주 주말 4-4-2 중앙 미드필더로 나오는 모드리치를, 혹은 왼쪽 측면 미드필더로 뛰곤 하는 모드리치를, 3-4-1-2 4-3-1-2처럼 1자리를 두지 않는 포메이션에서 뛰고 있는 모드리치를 플레이메이커라 할 수 있나? 플레이메이커는 중앙이 아닌 데서도 뛸 수 있는건가? 그렇다명, 토트넘에서 허들스톤(Tom Huddlestone)이 볼 배급을 맡고 있으니, (비록 모드리치와는 아주 다른 유형이지만) 그도 플레이메이커라 할 수 있는가?

 

 

플레이메이커의 기원 (Origins)

 

플레이메이커는 팀 내 주된 창조자이며, 미드필더와 공격진을 연계한다. 군중들이 집단 게임이라는 혼돈에서 벗어나, 서서히 포메이션이 나타나기 시작하던 초창기 축구에서 창조자는 인사이드 포워드 몫이다. 인사이드 포워드들은 볼을 건네 받아 센터포워드와 윙 어에게 볼을 전달하곤 했다. 1872년 열린 축구 역사상 최초의 국가 대표팀 경기서 1-2-7포메이션을 들고나온 잉글랜드는 2-2-6 포메이션을 들고나온 스코틀랜드에게 막혀 0-0 무승부를 기록하고 말았다.

 

 

 

당시의 기록지는 잉글랜드가 두 명의 레프트윙을 배치했다고 되어 있어, 잉글랜드 포워드 라인이 정확히 어떠했는지 파악하기 힘들다. 하지만 두 명의 인사이드 포워드를 오타웨이(Cuthbert Ottaway)와 커크 스미스(Arnold Kirke-Smith)가 나왔다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다. 물론 이 당시 잉글랜드는 패싱과 거리가 멀었던 팀이라 이들을 창조자로 보기는 힘들다.

 

혁명적인 2-2-6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던 스코틀랜드에서는 두 인사이드 포워드 레키(Robert Leckie)와 벡 스미스(James Begg Smith)였음을 좀 더 쉽게 알 수 있다. 스코틀랜드는 패스를 하던 팀이므로 이 들을 최초의 플레이메이커라 볼 수 있다. 물론 인 사이드 포워드가 (윙어나 센터 포워드와 일자로 서지 않고) 아래로 쳐져서 미드필드와 공격을 연계하기 시작한 건, 2-2-6 포메이션이 2-3-5 포메이션으로 진화한 이후, 그것도 주로 남미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1924년과 1928년 올림픽 챔피언이었던 우루과이가 이런 효과적으로 구사한 팀이니 씨(Pedro Cea)와 스카로네(Héctor Scarone)를 최초의 플레이메이커로 봐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명의 플레이메이커는 여전히 어색한 개념이다. (물론 1940년대 라 마퀴나(la Máquina)로 불렸던 리버 플라테처럼 5명 플레이메이커를 배치했다고 회자되는 팀도 있다) 2-3-5 포메이션이 W-M 포메이션으로 (혹은 3-2-2-3)이 진화했을 때, 두 명의 인 사이드 포워드 중 하나가 창조적인 역할을 맡기 시작했다. 일례로 허버트 채프먼 감독이 이끌었던 아스날에서 알렉스 제임스(Alex James)는 수비진에서 볼을 건네 받아 역습의 시초가 되는 길고, 낮은 패스를 윙 어에게 날리곤 했다. 이 점에 있어서 영국 최초의 플레이메이커는 알렉스 제임스라 할 수 있다.

  

 

 

4-2-4 포메이션과 그 이후 (4-2-4 and beyond)

 

한 명의 인 사이드 포워드가 창조자 역할을 맡는 과정이 공식화한 건 1940년대 브라질 대각 포메이션에서다. 브라질 클럽 인 플라멩고는 1937년 헝가리 감독 커슈너(Dori Kruschner)에게서 W-M 포메이션을 받아들였다. 커슈너 경질 후 대신 감독을 맡게 된 프라비우 코스타(Flávio Costa)는 커수너의 전술 혁신에 대해 종종 비판을 가했지만, 그 전술이 가지는 이점에 대해서는 익히 느끼고 있었다. 하여 코스타는 W-M이 가지는 사각형을 수정해 마름모 모양으로 바꾸어 놓았다. 인 사이드 레프트는 전방으로 올라가고, 라이프하프는 아래로 처진 거다.

 

전진한 인 사이드 포워드는 브라질에서ponta da lança’로 불리며 영어로는 point of the lance”라는 뜻이다. 이 포지션은 보다 명확하게 미드필드와 공격을 연계했다.

WM 3-2-2-3이 대각 3-1-2-1-3을 거쳐 4-2-4가 되었을 때 ponta da lança’는 공격진에서 내려와 플레이메이킹을 하는 세컨 스트라이커가 되었다. 1958년 월드컵에서 펠레가 보여준 역할을 생각하면 된다. 

 

 

유럽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4-2-4가 발전했다. 센터포워드가 아래로 처지는 형태는 유고 메이슬(Hugo Meisl's)이 이끌던 오스트리아 분더팀(Wunderteam)의 진델라(Matthias Sindelar가 최초로 선보였다. 당시 진델라는 2-3-5 포메이션의 다섯 포워드 중 하나였는데 아래로 내려와 득점보다 창조자 역할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잉글랜드를 상대한 최초의 플레이메이커는 진델라가 맞을 것이나 그간 큰 주목은 받지 못했다. 대신 1953년 웸븛리에서 잉글랜드를 박살낸 매직 마자르 히데구티(Nandor Hidegkuti)에 이르러서야(잉글랜드를 박살내는) 처진 공격수(deep-lying centre-forward)가 흔한 현상이 되었다. 1947년 스위스 대표팀 비켈(Alfred Bickel이 그러했고, 1953년 아르헨티나 대표팀 라카시아(Jose Lacasia)가 그랬다. 하지만 매직 마자르에서 진짜 플레이메이커가 히데구티였는지, 아니면 인 사이드 레프트였던 푸스카스(Ferenc Puskas)였는지를 정확히 구분하기는 힘들다.

 

 

 

1958년 브라질 4-2-4의 대성공 이후 다른 국가들은 이 포메이션을 따라 전방에 6명을 배치하곤 했다. 1966년 월드컵이 열리자 아르헨티나는 라틴(Antonio Rattín)을 앵커, 아르티메(Luis Artime)를 센터 포워드, 마스(Oscar Más)를 좌측 포워드, 곤잘레스(Alberto Gonzalez)와 솔라리(Jorge Solari)를 중앙 측면 미드필더(shuttling midfielders), 오네가(Ermindo Onega)를 플레이메이커로 놓는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다. 이 형태가 바로 4-3-1-2로 이후 20년 동안 아르헨티나의 기본 포메이션이 되었다.

 

 

 

브라질과 잉글랜드를 포함한 대부분 국가들이 4-2-4에서 윙 어를 아래로 내려 미드필더를 추구하며 (비대칭) 4-3-3으로 전환한 반면, 네델란드, 서독, 소련에서는 센터포워드 하나가 아래로 내려오고 윙 어 둘은 그대로 남아 (대칭형) 4-3-3으로 바뀌곤 했다. 이들 국가에서는 유연성이 핵심이었고, 플레이메이커를 리베로가 맡곤 했다. (처진 포워드였던) 요한 크루이프(Johan Cruyff)는 명백한 예외다. (리베로가 플레이메이커를 맡는 4-3-3포메이션에서) 미드필드 셋은 유연하게 플레이메이커와 연계해야 했는데, 1972년 서독이 웸블리에서 잉글랜드를 3-1로 박살냈을 때 권터 네쳐(Günter Netzer)를 생각하면 된다. 미드필드로 전진을 일삼던 리베로 베켄바우어(Franz Beckenbauer)는 최초의 후방 플레이메이커(deep-lying playmakers)나 마찬가지다. 1982년 브라질 대표팀은 팔카우(Falcao)와 세레소(Cerezo)를 후방 플레이미이커로 놓고, 지코(Zico)와 소크라테스(Socrates)를 전방 플레이메이커로 기용한 팀으로 볼 수 있다.

 

 

 

비야르도 선언 (The Bilardo protocol) 

 

판단하기 정말 힘든 건 1986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감독 비야르도(Carlos Bilardo)가 행한 전술 전환이다. 백쓰리 전환이 중요한 게 아니다. 플레이메이커 입장에서는 뒤에 있는 7명이 수비 셋, 미들 넷으로 배치되거나 수비 넷, 미들 셋으로 배치되거나 큰 의미가 없다. 주목해야 하는 건 8강 잉글랜드 상대로 마라도나(Diego Maradona)를 세컨 스트라이크로 배치했다는 사실이다.

 

 

 

비야르도는 자신의 결정이 순전히 실용적인 이유, 즉 이전 경기 우루과이 전에서 결승골을 넣고 파수쿨리(Pedro Pasculli)가 잉글랜드 수비수들의 피지컬에 대항하기 힘들어 보인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 결정은 향후 10년을 결정지을 중요한 전술 변화였다. 플레이메이커가 세컨 스트라이커로 배치되자 둘의 경계가 흐려진 거다. 베르캄프(Dennis Bergkamp)는 플레이메이커인가 세컨 스트라이크인가? 그럼 바지오(Roberto Baggio)? 졸라(Gianfranco Zola)?

 

프레이메이커이면서 세컨 스트라이커일 수도 있고, 둘 다 아닐 수도 있다. 이러한 애매함은 4-2-3-1의 전파와 함께 공식화 되었다. 4-2-3-1 시스템이 가지는 여러 장점 중 하나는 구 홀딩에서 한 자리를 사비 알론소(Xabi Alonso)와 같은 후방 플레이메이커(deep-lying playmaker)로 기용해 위 아래에서 창의성을 추구하는 동시에 수비적인 견고함도 가질 수 있다는 거다. 게다가 4-2-1-3의 등장은 플레이메이커/세컨 스트라이커유형을 1980년대 프레이메이커처럼 아래로 내려 보내고 있다. 80년대 (4-3-1-2 3-4-1-2)플레이메이커 앞에 투 톱이 있었다면 지금은 세 명이 있다는 게 다를 뿐, 그런 점에서 플레이메이커는 과거로 희귀하고 있다. 1920년대 우루과이의 스카로네(Scarone), 1930년대 아스날의 알렉스 제임스(Alex James), 1958년 월드컵의 펠레(Pele)… 그들은 자기 앞에 중앙 공격수 하나와 윙 어 둘을 두고 플레이를 만들어 나갔다.

 

하지만 이런 논의로는 플레이메이커를 정의 내릴 수 없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플레이메이커의 다양한 범주를 고려하면, 플레이메이커란 특정 포지션이 아니라 선수가 가지는 마음가짐일 것이다. (perhaps the truth is that playmaker is not a position at all but a state of mind.)

 

http://stretford.egloos.com/2584876

자주 방문 하는 사이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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