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키노앤블루님의 글에 대한 댓글이었습니다만 문라이트님의 요청에 의해 새글로 올리게 되었습니다. 새글에 맞게끔 몇가지 부분과 부족한 부분을 조금 보완 수정해서 올렸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많은 생각을 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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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사실 예전부터 줄곧 비효율적인 압박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 해왔습니다. 안그래도 이 문제에 대한 글을 다시 한번 쓸까 고민했는데 제 마음속에 있던 생각들을 키노앤블루님께서 명쾌하게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간압박은 반드시 수비에만 해당되는 것 역시 아닙니다. 중원에서도 공을 뺏으려다가 섵불리 달려들다가 제껴지면 뒷공간을 내주기 쉽기 때문에 거리를 두면서 선수간의 간격을 유지 한채 미리 위치선점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죠. 특히 중원에서 쓰는 대인방어는 적절한 순간 순간에만 사용해야 하는데 시종일관 무리하게 달라붙는게 현재 국대의 문제입니다. 적당히 각도만 줄여주면서 상대를 코너로 몰아 선택의 범위만 좁혀줘도 패스 미스를 유도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달려들어 체력은 체력대로 소모하고 효율성은 무척 떨어지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저는 이 문제가 딱히 조광래축구의 문제점이었다기 보단 역대 한국대표팀에게서 이어져온 고질적인 습관에 가깝다고 봅니다. 무모한 압박을 투지로 오해한데서 나오는 오래된 습관에서 비롯된거이라 보는 것이죠. 실례로 허정무 호가 월드컵전 코트디부아르나 스페인전에서 보여준 지역방어는 꽤나 괜찮았는데 막상 월드컵이 시작되고 아르헨티나전에서 어이없는 실점을 하자 갑자기 예전 버릇이 튀어나오듯 대인방어와 달려드는 압박을 하기 시작하면서 수도 없이 뒷공간을 털렸습니다. 반면 상대적으로 일본이 수면축구라고 조롱당했지만 네덜란드를 상대로 보여준 지역방어는 꽤나 훌륭했습니다. 일본은 남아공 이전부터 강팀들을 상대로 지역방어와 공간압박을 연마해왔고 남아공을 거치면서 이제는 원숙한 수준까지 이르러서 언제 어느상황에서든 자동적으로 공간을 미리 선점하면서 방어를 합니다.
어쨓든 저는 이 문제가 유독 활동량이 많은 조광래호에 와서 두드러진것이지, 이것이 조광래호만의 특징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결론은 이전부터 한국축구에 내재되어왔던 문제점이라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조광래호가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을 이야기 한다면 원하는 스위칭플레이와 포어체킹등을 하기 이전에 공간압박과 지역방어에 대한 개념을 지적하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고 보지 패스 플레이 자체에 있다고 보진 않습니다. 즉, 제가 생각하는 조광래호에 대한 비판의 포인트는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라 미완의 모방에 대한 부분입니다. 모방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하는 데 바르샤가 잘하는 공간압박에 대한 부분이 대표팀에 결여되어 있다는게 가장 큰 문제라고 봅니다. (자세한 설명은 키노앤블루님의 글에 이미 다 나와있죠)
무리한 대인방어는 체력을 떨어트려서 정작 중요한 순간에 집중력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체력이 소진되어 정작 크로스를 올려야 할 타이밍에 부정확한 크로스를 남발한다든지, 슈팅을 때려야 하는 순간에 집중력을 일어버린다든지... 여러모로 토너먼트에서 체력안배와 템포조절에 나쁜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 미들진에서 나오는 패스미스는 무리한 대인방어를 위한 체력소모에서 비롯된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수에서 중요한 순간에 순간적인 집중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하루빨리 공간압박과 지역방어에 대한 자동반응 훈련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대표팀 선전을 위해서 키노앤블루님의 구체적인 전술에 관한 지적부분은 반드시 조광래 감독이 읽어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결론부분만은 저는 약간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조광래 감독에 대한 수많은 비판중에 그가 운영했던 기간동안의 나빴던 점만을 생각나는데로 마구 끄집어 내어 반추하는 몇몇 형태의 비판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좋았던 점도 꽤나 있는데 양면을 보지 못한채 단점만을 하나하나 들추어 내어 대안없이 비판만을 하는 모습에는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들이 얘기하는 결론은 결국 일본전에서 부진했고 우리가 일본을 떡주물렀던 과거가 더 나으니 패스축구는 맞지않고 우리의 예전모습을 유지하자는게 요지이죠. 일본전을 제외한 무수히 많은 좋은경기는 모두 외면한채 단지 일본에게 졌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에게 맞지 않느니' 혹은' '전체 방향을바꿔야 한다느니' 등등 ........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에게 맞는 축구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과거 한국축구 스타일을 지칭한다면 과연 그토록 강한 그리움을 줄만큼 그렇게 강했었는지 먼저 물어봐야 할것입니다. 이 질문 부터 해봐야겠네요. 과거 한국식축구가 그토록 우리색깔에 맞는 축구였다면 정말 우리가 2002년을 제외하고 그토록 강했던 적이 있었는지 말이죠. 냉정하게 돌이켜 보았을때 저는 하나도 그립지가 않습니다. 포털에 상주하는 무수한 네티즌들이 주장하는 우리에게 맞는 축구가 과거의 그것이라면 전 매우 싫습니다. 강했다고 말하기엔 꽤나 지혜롭지 못한 경기운영과 미들에서의 수많은 패스미스가 많았으며, 누가 심어놓은건지 모를 실체없는 정신력 등등. 토너먼트운영에 있어서 너무나 실속없는 요소들을 많이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항상 쉽게 골을 먹고 어렵게 겨우 동점골을 만들어 놓고선 "정신력이 빛났다" 로 미화되는 한편, 공간압박과 패스게임의 미숙에서 파생되는 문제점을 '역시 한국축구는 수비가 문제야' 라며 모두 수비의 문제로 돌리곤 했었죠.
내적으로 보았을땐 국내리그는 중계도 제대로 안해주는 등... K리그를 등한시 한 채 국대에 몰빵하며 실속도 없는 한일정기전이나 만들어 일본이 각성하는 계기나 만들어 주었고,
쪽집게 속성과외로 이룩한 월드컵4강에 도취되어 "우리는 아시아 최강" 이라 자뻑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아시안컵 같은 대회는 모두 놓쳤으며,
그 과정에서 "아시아 최강"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게 빈번히 중동팀에 발목잡히기 일수였으며, '아시아 최강'이라는 타이틀에 어울리지 않게 약팀을 제대로 압살하는 강호다운 모습도 자주 보진 못했죠.(물론 그 사이에도 K리그는 아시아를 휘어잡고 있었지만 찬밥신세는 여전했죠.)
과연 이것이 우리가 떠올리는 우리에게 가장 맞는 축구인가요?
자,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오히려 2002년 축구가 가장 한국적이지 않은 축구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가장 패스게임이 잘되었고 공간압박도 훌륭했으며 집중력도 탁월했었죠. 당시 히딩크호의 축구를 접한 대다수 사람들의 반응과 언론의 반응이 기억나십니까?
그건 바로 "과연 진정 이것이 한국축구란 말인가?" 였습니다.
“원래 하던 식의 한국 축구였으면 이겼을 것이다.” 라고 말이죠. “일본이 하던 걸 우리가 따라하려니 우리가 밀린다” 라구요. 그렇다면 과연 원래 구사하던 한국 축구를 했다면 우세하거나 이겼을까요? 글쎄요...저는 별 차이가 없을 거라고 봅니다. 이 논리의 근본적인 착각중 하나가 바로 우리의 변화만을 생각하고 상대의 변화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습니다. 남아공 월드컵 전 허정무 체재 아래 우리가 농락했던 일본과 현재의 일본이 같은가요? 세르비아 3군에서 3대떡으로 쳐발리던 팀과 아르헨티나를 이기고 파라과이를 이긴 현재의 일본은 전혀 다른 팀입니다. 즉, 우리가 이번일을 설욕하기 위해선 박지성이 ‘너흰 안돼’ 라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운동장을 한바뀌 휘돌며 산책하던 과거에 연연 할 것이 아니라 ‘도대체 월드컵을 전후로 일본팀에 무슨 변화가 생겼느냐?’ 라는 것을 연구해야 하는 겁니다. (이 부분은 과거 게시판에 잘 찾아보시면 명쾌하게 분석을 해놓은 어느 분의 글이 있습니다)
이렇게 한번 간단하게 정의 내리면 모든 것이 쉽게 설명되는데 우리는 이 단순한 결론을 피하고 싶어 그동안 패배의 이유를 자꾸 ‘기존 틀의 변화니 어쩌니’ 하는 전제를 바탕에 깔고 이런 저런 변명을 한건은 아닌지요? 시종일관 이웃나라로 부터 조롱받으면서도 끈덕지게 한가지 길을 고집해온 일본의 인내심에 대한 결과를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기해야 할것은 스페인축구를 하든 독일축구를 하든 현대축구에서는 미드필더를 거쳐가는 유기적인 패스 플레이가 반드시 필요하고 조광래호 이전 한국축구의 최대단점중 하나는 패스였다는것.(2002년제외) 그리고 적어도 그 단점이 크게 개선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한다고 봅니다.
두번의 월드컵 우승실패를 통해 독일도 이제는 기술축구로 나아가는 마당인데다가 오히려 신체조건상 우리와 더 비슷한 스페인식 축구가 오히려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거기에 대한 가장 큰 증거는 바로 일본입니다. 일본이 패스축구를 한다는 것입니다.. 일본도 되는데 왜 우리는 안된다고 생각할까요? 오히려 우리의 패스축구 정착이 고작 1년밖에 안되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수십년을 이어온 일본보다는 훨씬 나은게 아닐까요? 걔들은 몇십년동안 그짓거리를 해오다가 이제야 빛을 보았지만 우리는 1년 했는데도 이 정도니까요.
사실 저는 스페인 축구니 한국식 축구니 독일 축구니 하는 것을 굳이 구분해야할 필요성을 못느끼겠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점은 '어떤식의 축구를 해야한다' 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히딩크 감독의 토탈싸커 역시 유기적인 패스가 이루어진 축구였고 과거 수비지향적인 이탈리아의 4-2-3-1이나 프랑스의 4-2-3-1 역시 유기적인 패스는 기본이었습니다. 조광래식 축구의 진짜문제는 오히려 공간압박과 지역방어개념의 상실이라는 부분적인 전술에 있지 패스축구라든지 나아가야할 전체 방향설정에 있지 않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하세베(27) ,혼다(25),엔도(31).... 구자철(22),기성용(22),이용래(25),윤빛가람(21)..... 즉, 미들필더의 기량이 만개하고 정점에 다다르는 시기가 20대 중후반이라는 점, 미드필더는 경험치와 노련함의 비중이 높다는 점을 인식했을때 좀 더 너그러이 우리선수들의 성장을 지켜볼필요가 있지 않나 싶네요. 즉, 현재는 결과가 아닌 과정을 지켜볼 단계가 아닐까요? 현재의 일본도 모방을 통해 성장했습니다. 브라질축구를 모방하고 프랑스축구를 모방하고 그렇게 우리에게 놀림받고 조롱받고 했지만 끝내는 좋은결과를 얻었습니다.
저는 현재의 우리가 그런 단계에 있다고 봅니다. 피카소가 스페인의 거장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모방하면서 창조에 이르렀듯이 현재 우리는 그와 같은 모방의 단계에 있고 이 과정을 거치다보면 언젠가 우리만의 색깔이 입혀지겠죠. 다만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작은결과에 부화뇌동하지 않고 오랫동안 참고 지켜보는 자세가 필요한게 아닐까요? 그리고 국대에서 좀 사람들이 벗어나서 축구자체를 즐기고 가까이는 조기축구회 나아가서는 가까운 K리그에서 축구 자체가 문화로 뻗어내리고 사랑받는 상태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색깔이 나중에 어떤식으로 발현될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로써 가장 중요한건 모방입니다. 우리가 언제부터 그리 강했다고 벌써 우리색깔을 찾아야 하는 걸까요? 우리도 세계에서 가장 강한팀을 롤모델로 모방이라는 것을 해봐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만 그위에 똥이든 된장이든 자기색깔이 발라지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에게 패스축구가 맞다고 생각할수도 있고
안 맞다고 생각할 수 도 있습니다.
그 생각이야 어찌되었든 축구의 '축'자도 모르는 아버지가 예전 한국축구를 보면서 시종일관 신경질적으로 반복했던 말 "우리나라는 패스가 안돼" 라는 말이 요즘엔 사라졌습니다. 적어도 우리의 가장 큰 단점중 하나인 패스게임은 그래도 이제 왠만큼 된다는 것입니다.
패스축구가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고 믿는 것 만큼
우리에게 맞는 축구라고 믿어왔던 것들 역시 과연 우리에게 그토록 어울리는 옷이었을까요?
가장 한국축구 답지 않으면서도 가장 한국축구 다웠던 2002 히딩크호의 모습을 떠올려보면서 아이러니를 느낍니다. 결국 정해진 정답은 없구나.
제가 조광래호를 다소 무리를 둬가며 옹호하는 것은 조광래감독님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히딩크 이후 이제껏 국내외 감독중에서 가장 일관된 철학과 고집과 열정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비젼을 가지고 구성원들에게 이상을 제시하며 조직을 이끄는 것이리더의 기본자질이자 덕목이라보는데 이점이 제가 조광래호에 대한 무리수를 던지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비록 실패로 끝나더라도 저는 거시적으로 의미없는 결과가 되진 않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축구문화의 최정점과 트랜드를 이끌어가는 수장이 지향하는 방향에 따라 K리그와 축구 인프라, 유소년정책, 특히 자라나는 꿈나무들이 배우는 기본개념과 출발점과 지향점이 그에 맞게 고정되고 동시에 변화되기 때문입니다.까짓것 국대 좀 부진하면 어떻습니까? (정정: 국대가 부진해도 괜찮다는 말은 아닙니다)
부진좀 해도 그냥 끈덕지게 기다려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