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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식의 가르침

[스크랩] 펄펄살아 움직이는 법문(斗菴玄機큰스님)

작성자ㅇ아라한|작성시간15.07.14|조회수36 목록 댓글 1

※두암 현기스님 선 법문 CD 풀이

(斗菴 玄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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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백운,불리불합 (靑山,白雲,不離不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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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은 청산을 떠나 있는 것도 아니고, 청산은 백운을 떠나 있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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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불합!.

지금의 이 자리에 대중은 청산이고 저는 백운이고, 저가 청산이고 이 자리에 대중이 백운인지?

이 청산백운의 불리불합의 이 관계 청산백운의 이 인연(因緣) 연기성(緣起性)은 萬劫만겁에 불매(不昧) 만겁에 여휘(如輝:만겁에 어둡지 않고 만겁에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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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올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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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그 ~~말씀이 있는, 그 ~~우리나라에 염송(선문염송禪門拈頌)이라는 책이 있는데 그 제일 앞에 말씀이 ,세존이 도솔천을~~ “미리도솔이강왕궁(世尊未離兜率 已降王宮 ), 미출모태도인이필(未出母胎 度人已畢)” 도솔천을 여의지 않으시고 왕궁에 내려 오시고, 모태에 나시기 전에 중생을 다 제도해 마치셨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찌해서 도솔천을 여의지 아니하고 왕궁에 내려왔는지?

모태에 나시지 않고 중생을 다 제도해 마쳤는지?

도솔왕궁은 공간적인 거리가 있습니다.도솔과 왕궁은 공간적인 거리가 있습니다, 공간 그리고 모태에서 나기 전엔 중생을 다 제도해 마쳤다고 하면 시간적 간격이 있습니다. 공간? 시간?

우리가 육식(六識)경계로 보면은 공간의 거리도 존재하고 시간의 간격도 있지마는 부처님 법문에 도솔천을 여의지 않고 왕궁에 내려오시고

모태에 나시지 않고 중생을 다 제도해 마쳤다 하는 이런말은 공간간격이 없고 시간간격이 없다는 말입니다.

무시무처 (無時無處)!

공간의 간격도 없고 시간의 간격도 없다. 동시(同時)라는 이야기죠.

동시!

어찌해서 공간의 간격도 없고 시간의 간격도 없느냐?

이 공간 이라카는 것은 전부 이 공간은 나와 너의 자타의 간격이 공간입니다.

자타의 이 간격이 공간인데 자타의 간격이 벌어지는 것은 밖으로 보기 때문에 이 공간, 자타의 간격이 있습니다.

그래서 반야심경에 오온이 공함을 비춰보고 오온이라는 것은 밖으로 있는 겁니다.

밖으로 오온이 공함을 비춰보고 그래서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육근육식 경계 이 밖으로 보는 것을 뒤돌아 가면은 이 공간 간격이 없어집니다. 돌아가는 것이 그렇습니다.

우리의 이 밖으로 보이는 것이 공간인데,

 이 밖으로 보이는 이 공간이 뭐하고 같느냐 하면, 저 하늘에 달이 하나 있고 ,일천강에 물이 있으면 일천강에도 달이 있습니다.

그래 일천이라는 달의 숫자가 공간입니다.

그래서 일천 강물에 있는 그 달이 공간인데 그 달은 그림자 이므로 하늘에 달이 있으면 그림자 달은 나타나고 하늘에 달이 없으면 그림자 달은 사라집니다.

그래서 일천 강물에 그 달은 일천이라는 그 공간은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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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반야심경에

 오온이 공함을 비춰보고 오온이 공하니까,

밖으로 육진경계(六塵), 눈에 보이는 이 산하대지(山河大地)가 산하대지가 없는 겁니다.

우리가 꿈을 꾸다가 깨보면 없는 거 모양으로 관자재보살이

그 반야의 그 조(照)

것을 비추니 오온이 공하다. 오온이 공하니까 우리가 이 육진으로 보이는 이 바깥의 이 육진 경계라 카는 것은 그림자 나타난 것이다, 왜 그림자냐? 그래서 반야심경에 무안이비설신의,

눈도 없고 , 귀도 없는데, 생각함이 없는데 밖으로 산하대지가 이 뭡니까?

그러니까 반야심경은 반야를 설한 경이므로

 무안이비설신의 ,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무의식계 의식도 없다 그래서 불교에서 없다 하는 것은 무엇을 없다 하느냐? 물에 비친 그 달그림자 없다는 것입니다. 물에 비친 달 없다는 것이고 우리가 꿈을 꿀 때에 미해(迷)가지고 나타난 꿈세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환유(幻幽)가 사라짐이 정안(淨眼)입니다.

이 환유사라짐이 반야입니다

정안, 그래서 그 정안이 뭐냐하면 관자재보살의 그 자재 그 관입니다.

관(觀), 비춤!

 이 비춤이라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꿈을 꾸다가 아침에 눈을 뜨는, 눈을 뜨는 겁니다. 깨달음

한 생각 미해서 일어나면 생멸윤회가 생기고 한 생각 미한 마음이 깨달으면 생멸윤회육도는 사라집니다.

생멸육도가 사라지면 어떻게 되느냐,

지금의 이 자리, 지금 이 자리 이 성성한 곳, 바로 보면 있고, 두 눈이 있어서 보이고, 두 귀가 있어서 들리고, 앉고자 하면 앉고. 서고자 하면 서고, 목마르면 물마시고,<飢來喫飯> .......잘 안들림 4자>

다만 이 평상심이 지금 이 평상심이 있는데, 평상심은요 직절(直截)입니다. 바로 돌아서면 끊어지는

 것이 평상심입니다 그래서 이 평상심을 확연허할(確然虛割)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확연허할 바로 돌아서면 끊어지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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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돌아서서 끊어지지 않는 것은 미해(迷) 가지고 있는 생멸, 생멸경계입니다.

우리가 돌아서서 끊어지지 않는 것은 상(相)에 머무르기 때문에 끊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육조스님께서는 땔나무 장사를 하셨는데 하루는 나무를 객점에 져다 주고 돌아오면서 금강경에 있는 말씀,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

머무른 바 없이 마음을 낸다. 머무른 바 없는 마음이라 하는 여기에 6조스님은 마음이 열렸다.

 마음이 열렸다, 마음이 열렸다 이리카는 것은 마음임을 깨달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음임을 깨달았다는 이야기, 머무름이라는 것은 상에 머문다는 이야기입니다. 상에, 상은 꿈을 꾸어서 나타나는 환유 (幻幽) 거든요. 상에 머문다는 이야기거든요.

상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 머무름이 없다. 상이라는 것은 밖으로 있는 산하대지가 상이고 안으로 있는 모든 상념 (想念) 이 두 가지가 모두 상입니다.

안에도 머물지 않고 밖에도 머물지 않고 머무름이 없는 그 마음, 상에 머무름이 없는 마음이 자성 청정심 입니다.자성청정, 자기 본래 마음입니다.

머무름이 없는 마음이 자기의 그 자성 청정심이거든요.

자성청정심!

그러니까 6조스님은 머무름이 없는 그 마음을, 그 이야기를 듣고 자기의 그 자성청정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니까 6조 스님은 그 경전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이게 무슨 경전입니까? 어디서 이 경전을 얻어왔느냐 이렇게 물으니까 황매에 5조 스님으로부터 이 경을 얻어왔으며 이 경 이름은 금강경이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한 생각 바르면, 한 생각 바른 생각은 바로 합니다. 그러니까 6조 스님은 바로 5조 스님을 찾아 갑니다. 그러니까 5조 스님께서 “어디서 왔으며 무슨 일로 왔느냐?” 5조스님께서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6조 스님은 저는 영남 신주 땅의 백성입니다. 제가 여기에 온 것은 부처를 이루고자 함이고 다른 일은 없습니다. 오직 부처를 이루고자 함이고 다른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니 인자 오조스님께서 영남의 신주 백성이라면 갈료 (葛僚), 갈료는 천박한 사람이다. 너 갈료의 천박한 자가 어떻게 부처됨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이렇게 했습니다. “너 천박한 자가 어떻게 부처됨을 감당하겠느냐?” 5조 스님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6조 스님은 “사람은 남북이 있지만 불성에 어찌 남북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두 눈, 두 귀가 어리석어 가지고 밖으로 보면, 절대 이런 소리가 안 나옵니다. 눈과 귀가 어리석으면 밖으로 보기 때문에 절대 이런 말이 안 나옵니다.

 6조 스님은 바로 “ 사람에는 남북이 있지만 어찌 불성에 남북이 있습니까?”. 저의 이 천박한 갈료신(身)은 비록 화상과는 다르지만은 불성인들 어찌 차별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5조 스님의 불성, 6조 스님의 불성, 차별 없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부모와 자식의 상봉이 아니겠어요.

왜? 자식이 부모하고 헤어지는 지, 이 자식이 태어나면서 그 자식은 지얼굴, 지눈, 지귀가 있습니다. 지 손발이 달려있고 사람이 태어나면는 제눈,제얼굴이 있고, 제귀가 있고 제손발이 있습니다. 제 눈으로 보고, 제 귀로 듣고, 생각하고 , 제발로 어디든지 걸어갑니다. 그러니까 이기 뭐냐카모 부모하고 헤어지는 원인입니다. 말 안 듣는다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6근 6식, 이게 태어나는 거 거든요

. 그러면 6근6식 경계는 전부 밖으로 달아나기 때문에 부모하고 결별을 합니다. 원수도 됩니다, 그래서 이 자식은 저 밖으로 부모하고 헤어져 가지고 밖으로 달아 난다는 이야기, 부모를 떠나서 밖으로 달아나는 그 자식은 어떻게 되느냐?

그 가난을,가난의 신고(辛苦:매서운고통)를 당합니다. 고통을 당합니다.그러니까 사람은 그 가난의 배고프고 춥고하는 그 신고를, 그 신고가 뭐냐, 그기 부모를 생각하게 되고 고향을 생각하게 되고 철이 든다는 이야기 배고프고, 춥고하는 이 가난은 우리 한 생각 돌아가는겝니다.그러니까 6조스님과 5조스님의 이 만남은 뭐냐 이거거든요. 자식이 부모를 버리고 저 밖으로 가 가지고 온갖 고생을 다 하다가 거지가 되어 가지고 ,거지가 되어 가지고 거지가 밥 생각하는 겁니다. 밥 생각이 나서 부자집을 찾아오는 것이 거지거든요.

그러니까 6조 스님은 바로 응무소주 이생기심 이라는 그 말에 마음이 열렸습니다. 마음이 그게 딱 열리면 이거는 뭐냐하면 약식자심(若識自心)입니다. 자기 자심을 알고 견자본성(見自本性)이라, 자기 심성을 보는 겁니다. 자기 마음임을 알고 자기 성품을 본다는 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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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6조 스님은 바로 저의 이 갈료신은 화상과 비록 다르지만 불성인들 어찌 차별이 있습니까? 5조스님이 깜짝 놀랍니다. 옆에 사람을 둘려 보면서 해칠까 싶어서 6조스님의 입을 막습니다. 그래서 이 종문(宗門)에 6조 스님이 있고 6조 단경이 있는데 육조단경의 그 법문은 제일 처음에 “ 보리자성이 본래 청정하니,단용차심 직요성불이다”(菩提自性本來淸淨 但用此心 直了成佛)

이 자성청정이거든요, 자성청정 이 자성청정 이라는 게 뭐냐 하면 이 청정심은 경계에 물들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경계에 물들 지 안 해요. 왜냐? 이 경계라 하는 것은 뭐냐하면 경계? 아주 단순합니다.

“ 마음이 일어나면 가가가지 법이 일어나고, 마음이 없으면 가지가지 법이 살아진다” 이거거든요.

법이 나고 법이 멸하는 이 근원이 마음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평상시에 이 마음이 있는데, 마음이 있는데, 이 마음이 무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안되기 때문에 우리가 생멸생사를 합니다. 우리가 유심(有心)경계로 쫓아서 일어나는 마음만 있고 돌아서는 마음이 없어요. 무심, 마음이 없으면 가지가지 법이 사라지거든요. 이 사라지는 게 안됩니다, 사라지는 게.... 그러니까 반야심경에 오온이 공함을 비춰보고 이 조(照)가 안됩니다. 돌아서는 조가 안 된다는 이야기, 마음이 없으면 가지가지 법이 없어지는데 뭐가 걸리겠어요? 이게 끊어지는 겁니다. 직절!(直截) 돌아서면 바로 끊어진다는 이야기,

그러니까 끊어지는 이거는 아무것도 없는거냐?

우리 본래의 심성, 우리 본래의 이 심성을 자성이고, 이 심성을 청정이라 그럽니다.

자성청정!

 그래서 이 청정이 반야심경에는 어떻게 나오느냐 하면 색즉시공 공즉시색,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이렇게 나오고, 이 자성청정이라카는 이 자성청정은 금강경에서 말 할 것 같으면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응작여시관 이잖아요.

관(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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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법화경 같은데는 법화는(法華), 화중생련(火中生蓮) 이잖아요 불속에서 연꽃이 핀다.

화중생련이거든요 이 자성 청정심은 그러니까 6조 스님이 머무른바 없이 마음을 낸다, 이리카는 것은 자성 청정심입니다.

그래, 자성청정심은 이거는 뭐냐 하면, 지금 바로 이 자리 지금이라는 것은 바로라는 이야기, 앉고자 하면 문득 앉고, 서고자 하면 문득 서고, 배고프면 밥 먹고, 목마르면 물 마시고, 간격이 없이 바로, 이 자리 이 성성(惺惺)한 곳

그래서 이 성성한 거는 다 마음이 있으면 있고, 마음이 없으면 사라지거든요.

사라진다는 이야기, 그러니까 6조 스님은 처음에 5조 스님을 이리 찾아가서 불성 이야기를 했거든요 불성이야기“ 차별없는 불성이야기” 그래서 차별이 없는 그 불성이라는 그 기, 지금 이 자리, 이가운데 털끝 만큼도 이 자리이 가운데 떠나 있지 않다는 이야기, 지금 이 자리에 이기 있다고 이렇게 있는거냐? 유(有)냐? 이렇게 말 했을 때 유(有) 있습니다.

지금이거는 없는 겁니까? 무(無) 없는 겁니다. 그럼 왜? 없다고도 하고, 있다고도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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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자성의 성(性) 은

 때 인연을 만나면 일어납니다. 우리의 성품 우리의 이 자성청정심, 이 성은 때 인연을 만나면 일어납니다. 일어나는기 연기성이거든요.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거든요. 연생연멸(緣生緣滅) 이잖아요. 지금 바로 이 자리가 연생연멸이라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성!

나도 남이 없고 멸해도 멸함이 없는게 연기성이거든요.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거든요. 연생연멸이 잖아요. 지금 바로 이 자리가 연생연멸이라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성, 나도 남이 없고 멸해도 멸함이 없는 불생불멸(不生不滅)입니다. 나도 남이 없고, 멸해도 멸함이 없는기 그기 연기성이거든요.그래서 우리가 화두(話頭)를 들어서, 화두를 깊이 들어가면 이 연기성을 깨닫게 되거든요.

욕지불성(欲知佛性)인덴 단간 시절인연(時節因緣) 관하라.

 시절인연,!

 시절인연이라는 것은 꽃이 이리 피는 거 보고, 닭우는 소리 듣고, 깨닫는거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깨달음이라는 것은 달마스님께서 동토에 오시는 것은 다른 것이 없고 불입문자(不立文字)입니다.

불입문자!

 문자를 세우지 아니한다. 문자를 세우지 아니한다는 것은 이거는 뭐냐하면 우리의 육근육식,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머리로 생각하는, 이것을 부정, 부정하는거죠. 우리 두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듣고 하는거, 육근육식을 완전히 부정하는 거 불입문자라는 것은 세우는 게 없다. 이거거든요. 문자를 세우지 아니한다. 이리카면 눈으로 보는 것, 귀로 듣는 것 바깥 성색경계(聲色境界)를 완전히 일도양단해서, 짤라 버리는 것 ,밖으로 있는 성색경계, 눈에 보이는 거,,들리는 거,,이 거를 완전히 짤라 버리는 것이 불입문자입니다. 불입문자 이 밖으로 있는 육진경계를 짤라 버리니까, 보는것도 막고, 듣는 것도 막고, 생각하는 것도 막으니까, 은산철벽(銀山鐵壁)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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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산철벽!,

 왜? 이 선문에 달마스님께서는 우리한테 이 은산철벽을 드리댑니까? 은산철벽을....

문자를 세우지 아니하는 , 은산철벽을, 은산철벽이 달마스님의 철저한 자비입니다. 사람을 구하는데 있어서 철저한 달마스님의 붉은 마음입니다. 은산철벽이 선종(禪宗)에 은산철벽이 중생을 구제하는데 있어서 달마스님의 가슴에 붉은 살점입니다. 살점, 간절한 마음입니다. 은산철벽? 왜냐? 이 눈이라는 것은 색을 쫓아가고, 귀는 소리를 쫒아가고, 성색 우리는 평상시에 성색을 쫒아가잖아요. 쫒아가는 것이 우리가 밤에 꿈을 꾸면 꿈세계 입니다, 꿈세계,미(迷) 해서 달아나는 거 그러니까

우리 선종에서 이 공안(公案) 이라카는 것은

 은산철벽 밖으로 달아나는 것 육근 육식 달아나는 거 이거 그냥 한 칼에 막는 겁니다. 단칼에 막는 겁니다, 달마스님의 자비, 단칼에...“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

그러니까 문자를 세우지 아니한 이리하는 것은 바깥성색 경계를 다 짤라 버리는 것, 그럼 어떻게 되느냐 이거거든요.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잖아요, 여보시오? 볼수도 없고, 들을수도 없고, 알수도 없는 그 자가 뭐겠어요?

여러분!

지금 다 자기 얼굴 가지고 있지요. 자기 얼굴 봅니까? 얼굴 보입니까?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은 그림자고, 그림자지요. 아무도 여기는 자기 얼굴을 볼 수가 없습니다. 자기 얼굴을, 자기 얼굴을 본다는 것은 그림자 보는 것입니다. 자기 얼굴은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볼 수 없는 것은 우리가 꿈을 꾸면 저 천리 밖에 달아나가 있는 게, 자기 못 보는 거거든요. 우리가 꿈을 꿀 때 천리 밖에 달아나가 있잖아요 자기 봅니까?

우리가 두 눈이 있어서, 두귀가 있어서, 들으면 바깥 성색경계를 따라가니까 자기 얼굴 못 봅니다, 자기 얼굴을 그래서 자기 얼굴은 뭐냐? 이기거든요. 이 자기 이 얼굴은 지금 바로, 지금 바로, 두 눈이 있어 보고, 두 귀가 있어 들리는, 이 바깥 경계가, 이 바깥 경계가 “ 마음이라는 겝니다”.

 일체 유심조(一切 有心造) !

눈에 보이는 모든 산하대지가 마음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이 전부가 마음으로 돼 가 있는 이기 뭐냐 이카모, 육조스님이 약식자심(若識自心) 자기 마음을 알아서, 모든 것이 마음으로 되어 있는 이 마음임을 알아서 성품을 본다.

약식자심 견자본성(見自本性) 자기 마음을 알아서 자기 성품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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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덮어 놓고 이 선종에서는 눈도 막고, 귀도 막는거냐? 덮어놓고 막는 것은 꿈꾸는 눈을 막는 겁니다. 우리 미한 눈을 막는 것이고, 우리의 미운을, 미운(迷雲)이라는 것은 미한 구름이 가려 있는 것을 걷어 제치는 것이, 불조의 자비입니다. 그래서 미한 구름이 가려 있는 것을 제끼면 아침에 눈을 뜹니다.

눈을 떠서보면 일체가 마음세계, 모든 것이 마음으로 되어 있다. 마음이니까 돌아서면 끊어집니다. 마음임을 요달하면 돌아서면 끊어지거든요. 그래서 생멸이 없는 겁니다. 돌아서면 끊어지는 거 그래서 이 선종에서는 공안을 들어 가지고 견성을 한다는 것은 마루코 투과(모도떼쿠루:일본말로 돌아온다는 뜻) 입니다. 마루코투과, 마루코가 이 뭐냐하면 돌아서는 겁니다. 우리가 돌아서면 공공(空空)이 잖아요. 비고비고, 끊어지잖아요. 그러니까 “자성청정심이라는 겁니다”.

아무리 이렇게 눈앞에 빽빽하게 있어도 없는 겁니다. “ 걸림 없는 자성청정심”.

그래서 6조 스님은 항상 말씀 가운데 자성(自性)이라는 말을 해요. 자성자여, 자성은 자견(自見)이고, 자성자오(自悟), 자성이라는 그러니까 육조 스님은 우리한테 있는 이 번뇌도 자성번뇌요 우리의 번뇌가 이 자성 번뇌라 하거든요.

그 자성번뇌라 이리 하는 것은

 번뇌가 뿌리가 있는 게 아니고 우리 마음이 미해 가지고, 미해 가지고, 뿌리 없이 일어나는 조작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자성번뇌거든요, 그러니까 이 자성번뇌는 자오, 자성자오면은 자성번뇌 사라지는 겁니다. 자성자오, 그래서 6조 스님이 자성번뇌 자성자오 이리카거든요.

지금 바로 이 자리 ,지금 바로 이 자리, 화중생련(火中生蓮)이라,화중생련, 불가운데 연꽃이라, 이라카는 것은 불덩어리라 , 그 자성청정 자성청정이거든요,

자성청정이라는 것은

비유해서 설명하면 땅은 남(生)이 없는데 종자를 그 땅에다가 종자를 던져 놓으면 콩을 던지면 콩이 나오고, 팥을 던지면 팥이 나오거든요, 땅은 종자도 없고, 땅은 남이 없지만, 그 땅에 종자가 들어가면 이 종자는 땅에 의依해서 나거든요, 그래서 그 땅은 종자가, 그 땅을 위에서 남이, 그래서 이 법문(法門)에서는 이 생이 무생이라 합니다. 남이. 왜 생이 무생이냐하면 생이라 카는 이 생은 우리가 육식으로 ,밖으로 보면 형상이 있는데, 그 생은 뭐냐하면 연기성입니다. 연기성, 연기성이기 때문에, 생이 무생입니다, 무생, 그러니까 육조스님은 이 무생을 요달(了達)한 겁니다. 무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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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무생을 요달했습니다. 무생을 그러니까 무생이라카는 이 무생 이게 뭐냐하면 이 생이라는 그 생은 우리가 6식으로 밖으로 보면 형상이 있는데, 그 생은 뭐냐 하면 연기성입니다. 연기성, 연기성이기 때문에 생이 무생입니다. 그러니까 6조 스님은 이 무생을 요달했습니다. 무생을, 깊이 무생을 요달했거든요. 그러니까 이 무생이 뭐냐하면 화중생련입니다.

화중생련, 하중생련은 이건 뭔가하면, 우리가 무슨 토끼뿔이니, 거북털이니 이야기하잖아요.토끼풀,거북털 같은 이야기( >>空이라는 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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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앞에 세존이 도솔천을 여의지 않고 왕궁에 내려오시고 모태에 나지 아니하고 중생을 다 제도해 마쳤다.

---------------------------------------------------------------------------------------여기에 대해서 원오극근스님의 게송을 내가 땡겨 가지고

일일면남 간북두( 一一面南看北斗) 화중생련처처개(火中生蓮處處開)

그러니까 일일은 하나하나 얼굴을 남쪽으로 해서 북두를 본다, 북두는 북쪽에 있는데 어찌해서 얼굴을 남쪽으로 해서 북두를 본다, 그러니까 얼굴을 남쪽으로 해서 북두를 본다,

이리카몬 이거는 처무애(處無碍)입니다, 처무애, 처무애, 공간이 없다는 이야깁니다. 얼굴을 남쪽으로 해서 북두를 본다는 것은 이 공간이, 공간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공간간격이 없는기 이기 뭐냐하면, 아! 부처님이 도솔천을 여의지 않고 왕궁에 왔다 하는거, 이 거 공간간격이 없는 것이거든요. 공간 간격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공안있잖아요 얼굴을 남쪽으로 해서 북두를 본다 했을 때, 처무애, 공간간격이 없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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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화중생련처처개다.

 벌~건 불 가운데서 연꽃, 연꽃을 본다. 연꽃이라 하는 것은 꽃이라는 것은, 시간간격이 있는 겁니다. 꽃이 피는거는 시간간격이 있는 겁니다. 봄에 심어서 가을에 열매가 달리는, 이 시간 간격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불이 벌건 화로에서 연꽃을 본다는 것은 시무애입니다. 시무애(時無碍), 시간간격이 없다, 시간간격이 없다, 즉금(卽今) 바로 영산회상(靈山會上)이고 공간간격이 없다. 자타 간격이 없다는 것은 영산회상에서 석가모니부처님과 나와 자타가 간격이 없다,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믿어집니까”?.

지금이 바로 이 자리가 석가모니 3000년 전에 석가모니 영산회상 시간간격이 없고 이것이 시무애입니다. 또 부처님과 나와의 자타의 간격이 없다는 이것은 처무애거든요. 그러니까 선문(禪門)에서 여하시 부처니꼬? ( 如何是佛 ? )

무엇이 부처입니까?

 너가 이 부처니라 이 말입니다 여시불(汝是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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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우리가 법을 묻자나요? 내가 몰라서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이 답은요, 답은 문처(問處)에 답이 있다, 묻는데 답이 있다는 이야깁니다. 묻는데, 문처답이거든요.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이 답이 종사(宗師)한테 답이 있는게 아니라 이 묻는 가운데 답이 있다는 이야기, 그러니까 이기, 이기, 뭐냐하면 우리의 이 정안(淨眼)은 폭포수에서 물이 쏟아져 내려가는 그 흐름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폭포수를 거슬러 올라가는 겁니다.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거 그래서 그 거슬러 올라가는 거 이기

쌈마(是甚麽)입니다.

이뭐꼬? 이게거든요. 뒤돌아가는 거, 거슬러 올라가는거거든요. 흐름을 쫒아가는 거는 경계를 쫒아가는 거고, 그래서 그 흐름을 거슬러 가는게 시쌈마거든요 이뭐꼬? 이거거든요.

시삼마!

이거 인자 육조스님 법문에 오유일물(吾有一物) 하니, 나한테 한 물건이 있으니,밝기로는 해달 같이 밝고 어둡기로는 칠흙 같이 어둡다.( )

그리고 이 일물이 이름도 없고, 글자도 없다, 이 이름도 없고 글자도 없는 이 일물이 항상 움직여 쓰는 가운데 있다카모, 지금 이 보고, 듣고 움직여 쓰는 가운데 있다는 이야기 인데

 이 자를 거두어 얻지 못한다 이거거든요 ,묘하잖아요, 수부득(收不得)이다 ;거두어 얻지 못한다. 유야(有也)무야(無也) !

이거 있는거냐? 없는거냐? 이거거든요. 항상 움직여 쓰는 가운데 있는데 거두어 얻지 못한다. 이거 있다고 말할 것이야 없다고 말할 것이냐, 그러니까 너희들은 알겠느냐? 모르느냐?

--------------------------------------------------------------------------------------- 시쌈마?

이머꼬 거든요,시삼마하는,시쌈마 속에는 해달 같이 밝고 칠흙 같이 어둡고, 이름도 없고, 글자도 없고, 항상 움직여 쓰는 가운데 있으데 ,거두어 얻지 못하는 이 일물(一物) ,시삼마거든요, 씨쌈마, 그러니까, 우리나라에 불교역사를 다 모르지만 지금 현재 제방에 선방이 있고 참선을 열심히, 참선 공부라는 것은 이 참선이 간단하고 명료한 것입니다. 왜 간단하고 명료하냐 하면 어떤 무엇을 의지 하는 기 거의 없습니다.

바로 자기의 그 간절한 한 생각, 간절한 한 생각은

 도(道)가 무엇입니까?

부처가 무엇입니까?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어떤 것이 도입니까? 자기 심중이잖아요.

자기 한 생각

어떤 것이 도입니까? 자기 한 생각이거든요, 부처를 이리 물었을 때 삼이 서근이다( 마삼근 麻三斤 )

밖으로 뭐가 있는게 아닙니다. 자기 한 생각 그 간절한 생각, 삼서근이다. 그래서 이 삼서근이 은산철벽인데 이게 들어가는 문입니다. 삼서근, 간단명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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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서근, 그래서 삼서근이라는 요기, 성성한기 앉으나 서나,자나 깨나, 삼서근 성성한기, 눈에, 귀에 마음에 삼서근이 앉으나 서나 자나,깨나 그 화두가 이래 성성한기 뭐냐하면, 그 성성한 생각이 우리가 꿈을 꾸 가지고 저 천리밖에 돌아다니는 그 미아(迷我또는迷兒)있잖아요, 미아, 자기 미아, 꿈꾸는 놈, 그 미아가 배가 고파서 집에 돌아오는 겁니다.

우리 道心도심은 배가 고파야 밥심을 합니다. 그래서 이 삼서근이라고 화두를 들면 부모를 버리고, 고향을 버리고, 저 밖으로 돌아다니는, 우리 꿈꾸는 밖으로 돌아 다니는거 있잖아요.

이 미한기(迷我) 돌아옵니다. 왜 돌아오느냐?

이 삼서근이라 하는 삼서근은 우리가 미한 눈을, 미한 눈을 막아주는 겁니다, 귀를 막고, 눈을 막아주는 겁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분별도, 허망한 분별도 막아주거든요. 그러니까 은산철벽이라 카는 은산철벽은 이거는 우리의 미심(迷心) 미한 마음 이것을 단칼로 짤라 주는 기 공안이고 은산철벽입니다, 은산철벽, 그러니까 화두 한 생각이 너무나 간단하고 명료하고, 우리 24시간에, 털끝만큼도 24시간에, 나하고 간격이 없는 기 화두 한 생각,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화두 한 생각, 이 철저한 거, 이 화두에 대한 이 신심(信心),의심(疑心) ,이기 철저하면, 육조스님 말씀에 자기 마음을 알아서 자기 성품을 본다, 자기 마음을 알아서 자기 성품을 본다. 그러면 자기 마음을 안다, 이리카는 것은 미(迷)하면 경계인데 자기 마음을 알면 경계가 아니라,

계 아니라 하는 것은 ?

금강경 4구게에 제상비상(諸相非相) 있잖아요. 모든 상을 상이 아님을 보면 여래를 본다. 그렇잖아요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보면 여래를 본다, 이리 했거든요, 그러니까 자기 마음임을 요달하면, 상이 아니라는 이야기요,그래 약식자심,자기 마음을 본다. 꿈이라카는거 이거는 뭐냐? 성품은 형상이 없어요, 성품은 비록 형상이 없지만 때 인연(因緣)을 만나면 나타난다는 이야기 연기성, 이 성품은 때 인연을 만나면 나타나거든요. 연기성,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 연기성입니다.

연기성, !

이 산하대지가 연기성입니다. 그러니까 견성아닙니까? 견성, 연기성이니까 그렇지요, 그래서 이거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고, 쓸 때는 있지마는 쓰기를 다하면 없는거고 돌아서면 끊어진다는 이야기, 그래서 대용직절(大用直截) 카는 말입니다.

대용직절,!

 열반해탈이 뭐냐하면, 돌아서는 것이 되어야 된다는 얘기, 돌아서는 것이, 돌아서면 끊어지는 열반, 방하착(放下着) ,견성을 안하면 방하착이 안되잖아요. 그 때 그 성품을 요달하면, 몽(夢)한경계 그기 붙을 자리가 있겠어요 몽한 경계가, 깨달았는데 이기 붙을 자리가 없다는 이야기, 견성을 하면 몽한 경계가 붙을 자리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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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념오(一念悟)가 즉불이라

한 생각, 한생각 미하몬 중생이고 일념오, 한 생각 깨달으면 부처다. 그래서 우리 나라의 육조스님이 석가모니 부처님이고, 육조스님이 우리 스승이고 지금도 이 가운데 있습니다. 육조단경에 육조스님 법문을 깊이 새기면, 육조스님이 여기 계십니다. 자기 심성을 봐서 견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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햐 ~ 크게 좋고 크게 편하다.

 대호대안(大好大安)이다. 크게 좋고 크게 편하다.

크게 좋고 크게 편한거 이게 뭡니까?

두 눈이 있어서 크게 좋고 크게 편코

두 귀가 있어서 크게 좋고 크게 편은 겁니다.

여러분! 내한테 두 눈이 있고, 두 귀가 있고, 두 팔이 있고 두 발이 있잖아요, 손발이 있고 배고프면 밥먹고, 목 마르면 물 먹고 잠오면 잠자고 앉고자하면 앉고, 가고자하면 가고, 너무 이게 좋은 것이고 너무 편합니다, 다만 밖으로 피해 달아 나지만 않으면, 밖으로 피해 달아나지만 않으면, 크게 좋고, 크게 편안하다. 대호대안, 그래서 크게 좋고 이 편한, 그 자리가 6조그님이 5조스님을 찾아가 가지고 부모자식 상봉하는 겁니다. 부모자식, 그래서 우리가 참선공부 잘하면 부처님 만나는 것이고, 육조스님 만나는 것이고,그래 ,육조스님은 불식자심하면 학법무익(不識自心 學法無益 )이다. 자기 자심을 알지 못하면 아무리 법을 배워도 이익이 없다 이랬습니다.

자기 자심을 알지 못하면, 아무리 법을 배워도 이익이 없다.

그러니까 우리 공부는 이 마음을 빼 놓고 안돼, 마음 밝히는 것이 공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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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일념(話頭一念) !

화두는 철저해야, 만약에 이 화두가 철저하지 못하면요, 우리의 그 미운(迷雲)에 쌓여 가지고 자기를, 저 ~~ 천리 밖에 달아나 가지고 생멸윤회생사(生滅輪廻生死)를 하는 것이 그게 중생이거든요. 그래서 이 중생고를 면할려면, 바로 지금, 은산철벽(銀山鐵壁)인 자기 그 화두 한 생각에 철저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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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대지 구모토각(山河大地 龜毛兎角)

즉금대중 끽반끽다(卽今大衆 喫飯喫茶)

산하대지가 거북털이고 토끼뿔이며

지금 이 대중 밥을 자시고 차를 마십시오.

====================================================================================      산하대지 구모토각 즉금대중 끽반끽다

밥 한 그릇 자시고 차 한잔 마시십시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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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ㅇ아라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7.14 후담도 함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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