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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더미에서 세계건축상 우뚝…강릉 인월사·담마센터를 가다

작성자이암 전철호|작성시간26.06.13|조회수19 목록 댓글 0

잿더미에서 세계건축상 우뚝…자비와 연대로 재건

강릉 인월사·담마센터를 가다

산불 전소 후 천막서 정진해
‘제53회 WA’ 대상 결실 맺어
전국 불자들 응원이 디딤돌
심사위 “인류의 마음 움직여”

 

“전국 불자들의 응원에 감사드립니다. 기도와 수행으로 꼭 보답하겠습니다.”

이 다짐이 현실이 됐다. 3년 전, 산불로 전소됐던 강릉 인월사·담마센터(주지 재범스님)가 재건 후 제53회 세계건축상 대상(World Architecture Awards)을 수상하며 자비와 연대의 정신을 전 세계에 알렸다. 주지 재범스님은 전국 스님과 불자들의 응원을 디딤돌 삼아 잿더미가 된 자리에서 천막 임시법당을 세워 기도하고 수행하며 건립 불사를 회향했다. 53개국 243명의 심사위원이 참여한 세계건축상은 건축이 인간에게 던지는 질문의 깊이를 평가한다고 한다. 상실과 회복, 공동체의 힘으로 다시 일어선 치유의 이야기는 인류의 마음을 움직이기 충분했다. 지난 5월9일, 새롭게 탄생한 강릉 인월사·담마센터를 찾았다.

산불로 전소된 이후 재건해 제53회 세계건축상 대상 결실을 맺은 강릉 인월사·담마센터 전경. 부처님 눈썹 모양으로 도량을 디자인하고, 외벽은 화엄 사상을 구현했다.

 

“모든 존재는 공생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잘 살기 위해서는 저 네모난 블록을 이해해야 해요. 마음 한자리를 비우면 훨씬 아름다운 세상이 됩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블록만큼만요.”

부처님 눈썹을 닮은 부드러운 곡선, 벽 대신 채워진 오색빛 수천 개의 창. 주지 재범스님은 강릉 인월사·담마센터를 감싸고 있는 ‘인드라 월’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모든 존재가 고유한 빛을 품고 서로를 비추며 살아간다는 부처님 가르침을 건축의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지난 3월17일 영국에서 발표된 세계건축상 대상 소식 이후 인월사에는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곳곳이 포토존인 이곳에서 ‘인증샷’을 찍다가 명상을 체험하고 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날 오후에는 ‘건축 명상 투어’도 진행됐다. 지역주민과 예술가, 관광객들이 스님의 안내에 따라 도량을 명상하듯 천천히 거닐며 감상하고 있었다.

 

윤경식 건축가가 설계한 새로운 인월사는 ‘덜 종교적인, 더 부처 닮은’을 모토로 삼았다. 종교 공간을 넘어 인간과 자연, 사회가 소통하는 열린 공간을 구현하고자 했다. 주지 재범스님은 윤경식 건축가에게 20년간 진행해온 수행 프로그램 자료를 모두 건넸다. 다시는 불에 타지 않도록 건축 소재도 직접 검색하고 공부했다. 불교 철학과 건축학, 인문학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끝에 이같은 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인드라 월’은 모든 존재가 고유한 빛을 품고, 서로를 비추며 살아간다는 부처님 가르침을 건축의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인드라 월’ 앞에 선 주지 재범스님. 재건에 원력을 모아준 전국 스님과 불자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누구든 명상할 수 있는 담마홀.

명상하는 윤경식 건축가와 방문객들.

 

부처님 눈썹 모양 디자인
외벽 오색블록에 ‘화엄’ 담아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묘안이 나왔다. 예산상 목조 건물로 재건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현대식 건축 장점을 살려 새로운 수행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부지가 좁고 길쭉해 한계도 따랐다. 그래서 건물 자체를 부처님 눈썹처럼 부드럽게 굴리도록 방향을 바꿨다. 그 덕에 대웅전과 담마홀(명상실), 공양간은 아늑한 눈썹 속에 자리하게 됐다. 넓은 창에 붙인 한지마저 예술이 됐다. 창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을 완화하기 위해 재범스님이 직접 붙였다. 도량 한가운데는 연못을 만들어 ‘카르마의 거울’이라고 이름 붙였다. 고요한 마음으로 자신과 마주하는 공간이자, 한여름 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물놀이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건물이 세워지기까지의 과정은 하나의 수행이었다. 잿더미가 된 자리에서 스님은 천막 임시법당을 만들어 기도를 이어갔다. 비바람이 들이닥치자 판넬 법당으로 다시 짓고 기도했다. 그 와중 지역민을 위한 봉축 치유 공연도 열었다. 화마로 집을 잃은 이웃에게는 보시금과 쌀을 나눴다.

재범스님은 “열심히 안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전국 각지에서 응원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과 총무원 부실장 스님들, 전국비구니회 스님들도 도량을 찾아 기부금을 전하며 복구를 발원했다. 강릉 교도소 재소자들도 십시일반 영치금을 모았다. 10년간 이어온 교도소법회의 인연이었다.

 

인월사는 화마로 멈췄던 명상 수행, 치유농장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도량 부지에 작약꽃이 심어진 모습.

자립의 기반도 세웠다. 직접 키운 작약꽃으로 개발한 ‘작약식혜’와 강릉 명물인 커피를 활용한 ‘커피식혜’. 

 

지역민 치유 공간으로 개방
​​​​​​​“명상하며 마음 비우고 가길”

공동체의 힘으로 재건된 도량인 만큼, 그 정신을 계속 살려서 회향하는 게 스님의 목표다. 인월사는 화마로 멈췄던 수행 프로그램의 재개를 준비 중이다. ‘건축 명상 투어’에서는 인월사 도량에 빗대어 명상을 지도했다.

건립 불사를 하며 자립의 기반도 세웠다. 농업을 공부하며 도량 부지에 작약꽃을 심고, 이를 활용한 ‘작약식혜’를 개발했다. 강릉 명물인 커피를 활용한 ‘커피식혜’도 선보였다. 나한과 추출물로 단맛을 낸 건강식 먹거리다.

화재 이전부터 구상해놓은 ‘치유농장’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요양원 어르신과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직접 농작물을 키우고, 이를 바탕으로 간단한 사찰음식을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건립 불사 과정에서 휠체어도 불편 없이 오갈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제 시작만이 남았다.

재범스님은 재건에 원력을 모아준 전국 스님과 불자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그 귀한 마음 덕분에 기도와 수행에 매진했고, 이같은 공간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불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화마 이후 아직 집을 되찾지 못한 지역주민도 많다. 재범스님은 “그분들을 위해 더 열심히 정진해야 한다”며 “인월사를 더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치유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건축상 수상작들은 전 세계 70여 개국의 건축, 시사 잡지에 게재된다고 한다. 각 대학교의 교재와 전문기관의 연구자료로도 쓰인다. 강릉 인월사와 전국 불자들이 보여준 자비와 연대의 힘, 그리고 서로를 비추며 살아간다는 부처님 화엄의 가르침은 이제 인월사 도량을 타고 전 세계로 더 널리 퍼져나갈 전망이다.

방문객들이 부처님 화엄의 가르침을 구현한 '인드라 월' 앞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커다란 네모 너머로 대웅전이 보인다.

대웅전에서 방문객들을 환영하는 주지 재범스님. 

인월사·담마센터 로비. 

환하게 피어난 인월사 작약꽃.

인월사가 보여준 자비와 연대의 힘은 이제 전 세계로 더 널리 퍼져나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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