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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뒤란

너와 나의 사랑에 대하여

작성자느둔|작성시간26.06.08|조회수22 목록 댓글 0

너와 내가 위대한 약속 하나로 우리가 되어
거대한 물줄기가 되어
바다와 같은 사랑으로 나아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만
그러나 키 작은 나는
조용한 카페, 노을 녘의 창가에 앉아 있었을 뿐이다
작은 머그잔을 두 손으로 감싸안고
감미로운 너의 고백에 설레고 있었을 뿐이다
캄캄한 막장 속에서 살았던 적이 없었으므로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된 적은 없으며
거대한 함성이 된 적도 없다
차가운 불판에 이념의 불꽃을 피워 불의를 뒤집은 적도 없었다
우리에게 무엇이 있었다면
나의 보잘것없는 슬픔과
너의 쓸데없는 걱정과
모닥불 옆에 나란했던 신록의 밤,
별을 헤다 잊어버린
그 많은 숫자들의 달콤한 누적이 있었을 뿐
기타의 선율에 흔들리며
어깨와 어깨를 넘나들던
작은 사랑의 속삭임과 덧없는 다툼과
어처구니없는 이별이 있었을 뿐
고통으로 일그러진 너의 얼굴을 닦아 주고
기댈 곳 없는 외로운 나의 어깨를 네가 받쳐 준 적은 있지만
마침내 굳게 맞잡은 손으로
단단한 벽을 강철 같은 연대의 힘으로 무너뜨리고
피 끓은 광장의 깃발이 된 적은 없다
세상에 속아도 세상에 속은
너와 나의 어리석음을 탓한 적은 있지만
우리를 속인 세상에 감히 덤빌 생각은 생각조차 못했다
조상이 물려준 가난한 울타리 안에서
결핍의 갈증에 물을 주며
애증의 실타래를 조금씩 풀어내며
가뭄에 애터지는 삿갓배미를 성실하게 삽질하며
씨앗을 심고
열매가 올 때까지 오래 인내하는 너와 나,
여전히 열변을 토하는 이 땅의 피 묻은 민주주의와
전쟁의 포성과 살육을 텔레비전 리모콘으로
너무 쉽게 지워 버린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이면
보이는 것들,
길바닥에 버려진 담배꽁초와 빵봉지와 깡통 들을
쓰레기봉투에 담는 일에 열중한다
새들의 노래에 귀 기울이는 고양이의 적요한 눈빛을 사랑하고
작은 화분에 꽃을 심고 물을 주는 햇볕 내리는 너의 등을 껴안는다
노점상 팔순 할머니의 아직 팔지 못한
나물을
모두 사 들고 돌아오는 늦저녁의 하늘,
너와 나는 또 그 하늘의 반달을 흐뭇하게 사랑한다
새날의 새벽길을 열기 위해 홀로 걷는
전사의 피맺힌 눈동자를 잊은 지 오래지만,
신새벽에 고단한 몸을 일으켜 벗은 발목으로
자식들의 끼니 걱정을 조금 덜어내고
막걸리 서너 순배에 얼큰해진 단단한 민초의 노래,
아버지의 구릿빛 얼굴 너머 타는 강물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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