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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뒤란

모순의 이름으로

작성자느둔|작성시간26.06.14|조회수12 목록 댓글 0

내가 늘 걷는 길에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있다
어떤 이는 그것의 낙엽을 망명정부의 지폐라 했지만
은유에 재능이 없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어느 나라 국기인지 모를 문장紋章뿐이다
망명정부든 국기든 하여튼,
어찌보면 창 같고 방패 같은 모순은 익히 상상할 수 있다
이쪽에서 이 창으로 뚫지 못하는 방패는 없다고 외칠 때
저쪽에서 저 방패를 뚫을 수 있는 칼은 없다고 맞서고 있다
그러나 찔러도 뚫을 수 없는 칼이 더러 있고
막아도 막지 못하는 방패가 더러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바 아니므로
그것을 거짓이나 만용이라고 탓할 수 없다
세상을 이기기 위해 찌르지 않을 수 없고
세상에 지지 않기 위해 막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서로를 찌르고 막을 수밖에 없는
위험한 운명,
살아있는 한 그렇다
생의 무대가 끝날 때까지 위험을 피하고 견디며
온몸의 연기를 무사히 마치고 무대를 내려와야 한다
사랑이나 희생이나 숭고한 정신과 아무 상관없는
무고의 행위,
참과 거짓이 아니라
질서와 혼돈의 문제도 아닌
먹고살기 위해 그러했으므로 죄가 되지 않는 다만,
먹고살기 위해
뿌리에서 우듬지까지
망명정부의 깃발 아래 버려지는 지폐처럼
무해한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죽인다
고된 우리의 배역이 끝나는 어느 날
힘껏, 생의 중력을 버린 돌팔매 하나가 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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