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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위한 변명

작성자느둔|작성시간26.06.09|조회수28 목록 댓글 0

아무 일 없이 적막한 날이다. 그런 날은 대체로 봄의 끝 무렵에 찾아온다. 꽃들이 잔치를 끝내고 시든 꽃대 위로 진초록의 잎을 하나둘씩 고개를 내밀기 시작할 때, 시선은 자연스럽게 꽃에게서 멀어지고 아득한 하늘의 구름에 무심히 닿거나, 끝없이 이어지는 지루한 강물의 흐름에 나른하게 머문다.

눈을 감으면 걱정 없이 잠들 것 같은 시간이지만, ''포장를 걷으면 저무는 하늘''(서정주의 시, '행진곡' 중 일부. 이하 인용문도 같은 시)처럼 어쩐지 어수선하고 허전하고 우울하다. 울 것 같은 깊은 슬픔에 빠졌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이유 없는 기쁨이 찾아오기도 한다.

아무 일 없지만, 아무 일 없는 것 같지 않은, 종잡을 수 없고,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그림자가 나를 순간순간 압도해 오는 이 느낌. 나이 탓인가?

나이는 좋은 핑곗거리이다. 이 나이쯤 되면 나이만큼 좋은 호구책이 없다. 세상이 각박하다고 하지만, 나이를 들이대면 더러는 이해하고 물러서게 마련이다. 적당히 방관하기에 좋고, 나직한 말로 충고를 해도 위엄(?)이 서는 듯하다. 과녁을 향해 활를 당겨야 하는 처지도 아니고, 누가 나의 과녁을 향해 활을 당기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마지막 앉아서 국밥들을 마시고, 빠알간 불을 사르고, 재를 남기''며 ''결국은 조금씩 취해 가지고'' ''돌아가는 사람''의 안쓰러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

나이 들면, 편안하다고 가볍게 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지만, '내가 사라져 가'는 등골 서늘한 일이 목전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어찌 유쾌한 농담으로 웃어넘길 수 있겠는가.

시간과 더불어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소멸할 운명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살아 있는 한 살아야 하는 것 또한 운명이며, 무엇으로든 '나의 살아 있음'을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있는 듯 없는 듯' 사는 것은 '삶의 지혜'가 아니라 '삶의 지옥'을 자처하는 일이다.

살아 있다는 증거는 움직임에 있다. 움직임 없는 생명은 없으며, 움직이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도대체 움직일 것 같지 않은 작은 씨앗조차도 내부에서 에너지를 보존하고 움직일 날을 기다리며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지속한다. 씨앗은 적당한 온도와 수분과 햇빛을 기다리며 뿌리 내릴 기회를 엿보는 일을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그들에게 기다림이란, 움직이지 않는다는 의미로서의 기다림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시작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이고 능동적인 움직임에 해당한다.

이렇듯, 움직이지 않고 사는 생명은 없다. 말씀으로 사는 신을 제외하고는 모든 생명은 움직임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움직임은 가치와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본능적인 행위이다.

생각해 보면, 움직이지 않고 무엇을 이룰 수 있겠는가. 숨 쉬는 것, 밥 먹는 것조차도 그렇다. 화병에 물을 주지 않으면 한 잎의 꽃도 향기도 눈앞에 실현할 수 없다. 거실의 애완견도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 않으면 반갑게 꼬리치지 않는다. 당신의 게으른 아침은 커튼 밖의 햇살을 데려올 수 없다. 출근길에 만나는 이웃에게 당신의 찌푸린 얼굴은, 그들에게 당신을 걱정하게 만들고 언짢게 할 것이다. 당신에게 주어진 일을 제때 하지 않으면, 당신의 일을 대신하는 어떤 이를 힘들게 할 것이며, 그는 당신을 무책임한 사람이거나 게으른 사람으로 못마땅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이를 핑계 삼아 움직이지 않고, 나이의 위력으로 쓸데없는 말만 늘어놓는 나를 당신을 우리를, 세상은 서슴없이 '꼰대'라고 부를 것이다. 삶을 무슨 소용으로 사는 것은 아니지만, '소용 없음'은 이 세상과의 관계에서 멀어지는 지름길임에 틀림없다. '당무유용'이라는 말이 있다. 비어 있어야 비로소 쓸모 있다는 뜻인데, 나이 뒤에 숨어 움직이지 않고 말만 앞세우는 나나 당신의 삶은 이 세상에서 빈그릇 하나만큼의 쓰임새로도 사용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나이 들면 생각이 깊어진다고 한다. 깊어지는 생각이 나쁠 건 없지만, 깊은 생각으로 세상을 사는 것은 열의 둘도 되지 않는다. 생명의 팔할은 몸으로 산다. 몸이 움직이는 대로 생각이 뒤따른다. 움직이지 않는 생각은 우리의 삶과 세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책 속의 활자만큼이나 무력하다. 싱거운 이야기지만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 살아 있는 타인에게 누가 되는 삶은 거룩한 생명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이다.

적막한 하늘의 틈새를 열고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하늘도 가뭄을 걱정하며 비를 뿌리는데, 나도 이제 그만 나른한 몸을 일으켜 움직여야겠다. 바쁜 아내를 위해 빨래도 개키고 설거지도 하자. 사방의 문을 활짝 열고 신록의 기운을 온몸에 담자. ''모가지여 모가지여 모가지여 모가지여''를 외치며 내 안에 잠든 나태하고 기죽은 ''모가지"를 모두 지우고, 새로운 생명의 ''모가지''를 힘껏 세워, 6월의 약동하는 힘찬 "행진곡''을 다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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