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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등단자

강명호/시조 (25년 가을호~26년 여름호)

작성자강명호|작성시간26.06.10|조회수14 목록 댓글 0

선술집 주모    (부산시조 통권58호 25년 하반기)

 

갈라진 탁자틈에 엎어진 저녁노을

금 간 가슴속은 사랑도 사치였다

거친 손 얼굴에 묻은 채 속으로는 울었다

 

창 너머 먼 길 손님 언제 또 오시려나

풋정을 쓸어 담아 바람에 날리면

바래진 소맷자락에 청춘조차 술에 익어

 

불세출 주객들의 의미 없는 추파도

몸 낮춘 기억들에 엉키며 밤을 세고

사발 잔 속의 긴 한숨 먹지 한통 모자란다

 

 

아물지 않는 섬 (부산시조 통권59호 26상반기)

     

바람을 쟁여 놓고 뱃전에 기댄 물결

수평선 넘나드는 갈매가 날갯짓에

거문도 등대 불빛이 실눈 뜨고 깜빡인다

 

고도古島로 이은 정情 동도 서도 마주 앉아

선창가 아낙네의 육자배기 장단 맞춰

성황기 높이 든 어선들 포구마다 만선이다

 

삼치로 세운 기둥 갈치가 상판 되고

큰 붓대 휘어잡은 문장가 인걸들은

새 문물 서방백룡西坊白龍에 태평양의 제물 됐나

 

석양에 물든 역사 아린 상흔 깊이 박혀

쑥밭 된 영국군 터 흔적조차 가뭇한데

까맣게 그을린 섯까래에 이름 석 자 새긴다

 

 

선술집 주모    (문학도시 통권272호 25년 11월호)

 

갈라진 탁자틈에 엎어진 저녁노을

금 간 가슴속은 사랑도 사치였다

거친 손 얼굴에 묻은 채 속으로는 울었다

 

창 너머 먼 길 손님 언제 또 오시려나

풋 정을 쓸어 담아 바람에 날리면

바래진 소맷자락에 청춘조차 술에 익어

 

불세출 주객들의 의미 없는 추파도

몸 낮춘 기억들에 엉키며 밤을 세고

사발 잔 속의 긴 한숨 먹지 한통 모자란다

     

 

새벽을 기댄 안개     (시조미학 통권49호 26년 봄호)

 

모양도 색도 없이 바다에 담겨지고

구름에 오르다가 이슬로 내려온다

깊은 곳 부드러움에 굳센 뜻이 살아서

 

쥘수록 멀어지고 잡으면 빠져 나가

바위 깬 쇠망치가 천천히 길을 낸다

비워서 채워지는 혼 채워져서 비우고

 

잔잔한 고욕속에 눈을 뜨는 생명들

시간에 번져 가다 이내 다시 사라진다

뿌리에 담긴 긴 숨결 심어 놓고 눈 뜬다

 

      

황새알 마을   (부산시단 통권48호 26년 봄호)

 

천 년의 솔가지에 둥지 튼 황새가족

남향의 햇살 따라 날개짓 한층 올라

비바람 찬서리에도 장승처럼 살았다

 

소나무 벤 자리에 어미 잃은 새알들

콘크리트 아성으로 점령한 이방인에

구멍 난 두레박으로 마실 물은 남긴다  

   

 

수국의 노래   (부산시단 통권49호 26년 여름호)

 

색색의 숨결들이 모여서 몸을 섞고

해쓱한 얼굴빛도 어느덧 환해질 때

서로를 모닥거리며 피워내는 험한 생生

 

토해낸 숨결마다 노을빛이 배어들고

합장한 손끝마다 고요함이 머물 때면

그늘진 날의 끝자락이 무르익어 그느른다

 

 

화살나무2    (나래시조 통권155호 25년 겨울호)

 

파란에 독을 품고 돌 틈을 뚫고 나와

바람이 머문 사이 넌지시 내어주니

가시에 박힌 마음도 젊을 때는 연한 결

 

사철을 견딘 가지 붉은 열매 달리면

서리 속 검버섯도 웃는 듯 빛나더라

살면서 웃고 울던 일 저 안에다 옭매고

 

잎 지고 난 들녘에 끝 가지 휘어지면

묻히지 못한 말들 바람에 흩어진다

가늘게 뻗은 흔적도 누군가의 길이다

   

 

노도櫓島에서 만난 김만중   (나래시조 통권156호 26년 봄호)

 

바람에 묶인 섬은 매화가 먼저 핀다

읽다가 덮은 책장 한숨을 밷어 내고

삼베 옷 가랭이 사이로 쓸려가는 상실감

 

천심도 무심하니 충정도 죄가 되어

눈물 먹인 붓끝으로 달빛에 올린 상소

앵강만 물결소리만 문지방을 넘는다

 

꿈결 속 어머니는 오늘도 자식 걱정

한양 땅 소식조차 종이배를 띄웠구나

돌아 갈 그날을 위해 길을 묻는 노을빛

     

 

아버지의 술잔    (나래시조 통권156호 26년 여름호)

 

훼를 친 가슴팍에 하늘이 툭툭 친다

빈 바랑 어깨에는 가장을  걸쳐 입고

아버지 파도를 안고 젖은 등을 말리신다

 

식구들 잠든 사이 잔을 비워 내시던

앞세운 발걸음에 함박눈 녹아들어

머금다 밷은 달무리 사발잔에 남는다

 

어둠속 뱃노래는 그물로 출렁이고

이제사 그 높이를 내가 대신 들고 있다

술잔 속 흔들리던 눈빛 식지 않고 살아있다

 

 

항구     (실상문학 통권113호 25년 가을호)

 

바람이 부는 날에 가슴에 불을 켠다

지난 날도 그러하니 흔들려도 끄지 마라

먼 길을 돌아 온 배도 잔잔하게 쉬도록

 

험한 길 헤매다가 저 불빛 보이거든

주저말고 나아가라 바람 곁에 서더래도

누구는 그 빛을 쫒아 재 갈 길을 갈 것이다

 

 

어부의 삶   (실상문학 통권114호 25년 겨울)

 

절망을 덮은 희망 물결 한 겹 가볍다

가난은 짐이 되고 풍랑은 벗이 된다

바다야 나를 삼켜도 꿈은 남겨 두어라

 

뱃일은 죽어서야 끝난다는 업보는

만선이 꿈이기에 뼈속에 새겨놨다

바다야 네가 고요한 날은 속울음만 더 깊다

 

출렁대는 바다에 그물은 던져졌다

파도를 타고 넘는 마누라의 시린 눈

바다야 금 간 어깨쯤은 마파람에 게눈이다

 

 

어떤 안부     (실상문학 통권115호 26년 봄호)

 

볼 연지 곱게 발라 바람에 붙힌 엽서

낡은 책 책장 너머 훓고 간 저 시간들

맴돌다 맴돌다 지핀 불씨 다시 불면 붙을까

 

마지막 버틴 엽서 새봄에는 천덕이다

어려운 문제에는 정답이 따로 없듯

철 따라 피는 꽃들은 그 얼마나 붉더냐

 

 

고당봉의 숫눈   (성파시조문학 26년 제4호)

 

흩어진 바람 따라 골 깊은 시어時語들이 

시간을 잠재우고 고요히 깃들었다

하늘 문 열어 둔 채 그 너머로 빛을 갈고

 

만물이 오가는 길 한 조각 눈 속에서

모든 것 감싸 안 듯 너그러이 서 있다

내 안의 작은 우주도 저 눈처럼 순수할까

 

범어의 치마폭이 숫눈으로 내려앉아

하늘과 땅의 기氣로 합일合一을 이뤘으니

바람에 내려앉은 돌 덮어 씌워 다시 쓴다

 

 

백매화白梅花        (전국문학인꽃축제 제16회 26년 봄)

 

끌어 안고 견딘 마음 시린 넋 두드린다

흰 숨결 갈무리한  살얼음 할퀴어도

어둣빛 종소리 울려 빗장을 열고 있다

 

가지 끝 칼바람은 매운 결기 세우고

여울진 설렘 위에 향기가 너울 탄다

모시 결 자락 속에서 붕인 푸는 하얀 도道

 

 

까치  - 부산진구의 새      (볍씨 통권48호 26년)      

 

먼 산등성이에 유성이 날아와서

앞 마당 가지 끝에 별똥별로 머무니

담 너머 옆집 누나가 웃음 띠고 오네요

 

해묵은 사연들의 단단했던 그날들에

날겟짓 반가움에 숨겨 논 운석들이

잊었던 기쁨과 고마움 새파랗게 치오른다

 

 

석류               (볍씨 통권48호 26년)   

이역만리 거친 바람 모래로 길을 낸다

염천炎天아래 저 꽃들의 터지지 못한 말들

숨죽인 그늘에 앉아 붉은 웃음 듣는다

 

가지마다 울컥이는 생의 기쁨 넘치는데

가슴 속 그리움도 덩달아 옭아매어

햇살을 머금은 눈길에 불꽃 한 점 걸려 있다

 

환희는 저편에서 먼저 불을 붙이고

늦은 불씨 하나쯤은 나를 통해 지나간다

햇살에 몸서리치는 웃음 터진 눈동자

 

 

섬                  (볍씨 통권48호 26년)   

연결은 끊어져도 울리는 알림 소리

침묵의 벼린 칼날 스스로에 문답하고

읽어도 덮어 버리는 외로움만 쌓였다

 

 

유채꽃          (볍씨 통권48호 26년)  

 

수양버들 사이로 덮어 쓴 노랑 물감

세상은 내것이다 새들의 풍악놀이

품고 선 내 안의 우주 아슴아슴 누리리

 

 

향수              (볍씨 통권48호 26년)        

남새밭 귀퉁이에 외발로 달린 홍시

육형제 난장판에 여름도 들썩들썩

아버지 삼베 적삼에 짙게 배인 감물 꽃

 

똑똑똑 떨어지는 고로쇠 수액 방울

허투로 보낸 나날 천년을 매달고서

꼬여진 혈관속으로 팔색조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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