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독서 – 히페리온(횔덜린 作)
청춘의 낭만과 우정
여기에 한 권의 책이 있다. 비싼 책은 아니지만 내게는 둘도 없는, 그리운 청춘시절을 함께 한 책이다. 이 책도 벌써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변변치 않은 갱지에 인쇄된 추억 어린 책은 지금도 내게 청춘의 시(詩)에 흐르는 고귀한 혼을 고상하게 들려주는 듯하다. 노란색을 띈 백지의 표지에는 짙은 녹색의 화초 모양이 일면에 배합되어 있고 그 중앙에 오렌지색 잉크로 제목과 작자명, 역자명이 인쇄되어 있다.
히페리온
횔덜린
후키타 준스케 역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 하단에 '청춘의 서7'이라는 다섯 글자가 눈에 띄었다. 눈부시도록 빛나 보였다. 판권을 들쳐보니 정가 60엔, 주식회사 가마쿠라 문고, 1947년 3월 30일 초판 발행이라고 써 있었다. 이때가 내 나이 19세 봄이었다. 가마쿠라문고,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다. 20수년 전에 문을 닫은 출판사다. 지금은 알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겠지만 활자에 굶주려 있던 당시의 문학 청년들에게는 절대로 잊지 못할 출판사다.
전쟁 후 젊은 편집자들에게도 한없는 동경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니혼바시 판자 건물에 세를 얻어 쓰던 가마쿠라문고 편집실에 가면 가와바타 야스나리(인명)나 다카미 준(인명) 등의 작가와 언제든지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패전 직후의 문예 출판를 리드한 출판사의 그 발상을 찾아보면 전쟁 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사토미돈, 고바야시 히데오, 구메 마사오, 오사라기 지로, 나카야마 기슈라는 쟁쟁한 가마쿠라 문사들이 전쟁 중에 생활을 위해 작은 대본 가게를 열었는데 이것이 전쟁 후 가마쿠라문고의 출발이었다고 한다.
독일의 젊은 시인 요한 크리스티앙 프리드리히 횔덜린은 독일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은 별도로 하고, 일본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괴테나 실러 만큼 반응이 좋았던 것 같지 않다.
그러나 미키 기오시의 《독서와 인생》에 따르면 미키 기오시가 독일에 유학하였을 무렵에는 오히려 니체나 키르케고르와 함께 일종의 횔덜린 붐이 일고 있덨다고 한다. 그 빛나는 시업(時業)에 대한 재평가의 파도는 제2차 대전 이후에는 더욱 높아져 일본에도 밀려 들어왔다. 지금은 독일의 가장 뛰어난 서정시인의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10여 년 전에 가와데쇼보신샤에서 《횔덜린 전집》을 출판하였다.
"히페리온이 벨라르민에게
그리운 조국의 땅은 다시 내게 기쁨과 슬픔을 준다.
나는 요즘 매일 아침, 코린트 지협에 오른다. 그러면 꽃에서 꽃으로 날아다니는 꿀벌과 같이 내 혼은 태양 빛에 붉게 타오르고 있는 주변 산들의 산기슭을 씻는 좌우의 바다 사이를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전편이 서간체로 되어 있는 소설 《히페리온》의 첫머리 부분이다. 수신인명인 벨라르민은 그리스 독립전쟁 시대(1770년 전후) 조국을 떠나 독일로 망명한 히페리온이 사귄 친구라는 설정이다.
사랑하는 조국으로 귀환한 히페리온은 청춘의 도시 코린트의 빛나는 지협에 서서 불타오르는 남국의 태양 아래, 꽃에서 꽃으로 날아다니는 꿀벌처럼 가벼운 심정을 친구에게 토로하고 있다.
시인 횔덜린의 유일한 소설 《히페리온》은 그야말로 청춘의 환희와 우수의 비애를 격조 높고 깊이 있게, 장중한 시의 음률에 실어 노래했다.
"인생의 행로를 더듬어가는 젊은 시절에 이미 고귀한 인물과 만난 사람은 다행인가! 그렇다, 그것은 사랑의 기쁨과 기분 좋은 바쁨으로 충만한 잊을 수 없는 황금시대다!"
횔덜린은 18세기 후반인 1770년 3월 20일, 네카 강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연의 슈바벤지방에는 같은 해에 헤겔도 태어났다.
횔덜린과 헤겔은 19세 때 저 유명한 프랑스혁명을 접하게 된다. 다섯 살 어린 철학자 셸링을 포함해, 튀빙겐 학생이었던 헤겔과 횔덜린은 '자유의 나무'를 심고, 그 밑에서 혁명가를 소리 높이 부르며 춤췄다고 한다. 후에 독일 관념론의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세 거인이다.
이 무렵, 칸트는 연달아 저서를 출판하여 독일 이상주의의 정상에 우뚝 서 있었다. 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던 괴테, 그리고 헤르더, 고향 선배 시인 실러, 예나대학교로 부임해 온 피히테, 이 모두 당시의 세계정신을 한 몸에 체현한 듯한 인물과 젊은 횔덜린은 개인적으로도 면식이 있었다.
게다가 시인 횔덜린은 10대에서 20대에 걸쳐 노이파, 마게나우, 그리고 신클레아 등의 훌륭한 친구를 사귀었다.
시인이 27세 때의 일이다. 동창 헤겔을 위해 직장을 소개해 주었다고 한다. 그해 부활절에 콧타서점에서 《히페리온》제1권이 나왔다.
분명 젊은 시절에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은 청년에게 생애의 재산이 된다. 순수한 정신의 새하얀 종이 위에는 서로 절차탁마하는 '감정'과 '정열'의 화구가 몇겹으로 다양한 색을 더 해 간다.
"사랑은 생기 발랄한 인간에게 충만한 몇 천 년을 낳지만 우정이 또 이처럼 몇 천 년을 다시 태어나게 한다. 민족의 출발점은 동자(童子)의 조화였는데 모든 정신의 조화는 새로운 세계사의 시작이 될 것이다. 무위이화(無爲而化)하는 초목의 행복에서 인간은 문을 열고 나와 성장하여, 점점 성숙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인간은 내면에서도, 외면에서도 발효를 거듭해 지금 인류는 무한히 분해하여 하나의 혼돈과 같은 상태에 있다."
여기에는 시인의 인간관 - 사랑과 우정과 정신의 조화, 나아가서는 자연과 세계와 민족의 전일적(全一的)인 성숙에 이르는 인류 성장의 철학이 솔직하게 표명되고 있다. 철학자 딜타이는 이런 횔덜린의 정신과 시를 칭찬하며 '인류의 이상에 보내는 찬가'라고 하였다고 하는데 지당한 표현이다.
그리고 횔덜린의 관념은 고대 그리스 세계를 여정하며 인류의 역사와 문화의 귀추도 생각했다. 시인은 꿈꾸는 마음의 지주다.
그러나 횔덜린은 헤겔과 함께 철학자이기도 하였다. 어떻게 시대에 대처해야 하는가를 깊고 진지하게 생각한다. 횔덜린의 시는 '시대의 혼'을 중시하여 그 시대의 폭풍이 의미하는 것을 정면으로 받아 용기 늠름하게 노래한다.
"히페리온이 벨라르민에게
인생에는 위대한 때가 있다. 우리는 미래나 고대의 거대한 형세를 우러러 본다. 우리는 그런 때와 장렬한 투쟁을 계속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 투쟁을 관철한다면 그런 때는 자매처럼 되어 영원히 우리를 버리지 않는다."
우리의 사랑하는 히페리온은 정신의 조화와 여성미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디오티마와 만나 열렬한 사랑에 빠진다. 히페리온은 꿈과 현실 속에서 순간의 평화로운 기쁨에 잠긴다.
"그렇다, 인간이 사랑할 때에는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정화하는 하나의 태양이다. 사랑하지 않을 때에는, 인간은 연기만 나는 작은 램프가 켜져 있는 어두침침한 방이다."
히페리온은 자유의 전사이기도 했다. 조국의 독립과, 자유와 공화를 위해, 다시 일어선 알라반다의 요청을 받아들여 용감하게 새로운 전선으로 종군한다.
"사랑은 세계를 낳는다. 우정은 또 세계를 다시 태어나게 한다." - 히페리온은 이렇게 사랑과 우정의 승화와 조화를 꾀하려 하였다.
히페리온은 체스마 전투에 참가했는데 운명의 여신은 이 청년에게 너무나도 끔찍한 시련을 주었다. 히페리온은 부상당해 인사불성이 되고 디오티마는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둔다.
소설 《히페리온》의 결말은 시인이 평소 자랑했던 그리스 비극의 세계를 그대로 18세기 그리스로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이다. 작자 자신도 거친 파도가 휘몰아 치는 독일의 혁신적인 분위기를 가슴 깊이 호흡하며 살았다. 결국 만년에는 그 정신의 혼미함 속에서 비극적인 생애를 마쳤다고 한다.
그로부터 100년 후인 19세기 후반 - 횔덜린과 같은 정신의 궤적을 걸어, 역시 비극적인 운명에 처하 니체 - 이 두 사람의 정신의 혼미함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그 의문에 대해 나름대로 해답을 찾은 것은 잠시 뒤 신앙의 길로 들어선 후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