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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옛 선인들의 시

작성자백온/권영섭|작성시간18.12.06|조회수30 목록 댓글 0


옛 선인들의 시

김홍도의그림
(호암미술관 소장)

탄노가 (嘆老歌)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 터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우탁 (1263~1343) 호 역동,
고려 충숙왕때의 학자


하여가 (何如歌)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년까지 누려보세

이방원(1371~1422)
조선 제3대 임금
태종이 아직 임금이 되기전 정몽주가 이성계의
병문안을 왔을때
정적 정몽주의 의향을
떠보며 회유를 하려는
'하여가' 노래다.


단심가(丹心歌)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
가실 줄이 있으랴

포은 정몽주 (1337~1392) 고려 공민왕때
벼슬은 문하시중 이방원의 '하여가' 에 대한 정몽주의 응답의 노래이다.

백설이 자자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

목은 이색 (1328~1396) 고려말의 대유학자로
공민왕때 문하시중
우국충정을 담은 노래로
여기서 세 가지는
'구름: 이성계의 신흥세력
'매화: 우국지사
'석양: 고려 왕조를 의미.


삼은(三隱)?

고려 시대의 선비들은
아호에 '은'(隱) 자를 많이 썼는데 이는 망한 고려에 대한 충절을 끝까지 지키며 숨어서 은거(隱居)한다는 뜻으로

포은(圃隱)정몽주,
목은(牧隱)이색,
야은(冶隱)길재 등
세 사람을 말한다.

회고가(懷古歌)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도랐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련가 하노라

야은 길재 (1353~1419) 고려말 공민왕때의 학자 이방원이 태상박사의 벼슬을 내렸으나 고사하고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다.
이를 '회고가' 라고 한다.


가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
성낸 가마귀 흰 빛을 새오나니
창파에 조히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이 씨 (정몽주의 어머니)
'새오나니: 시기하나니
'조히: 깨끗이
아들에 대한 훈계의 노래다.


가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소냐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 뿐인가 하노라

태종조때의 영의정 이직,
호는 형제,
사람을 겉 모습만으로 비평하지 말것이며
겉모양은 훌륭하여도
마음이 검은 사람도
많다는 경계의 노래다.

강호에 봄이드니
이 몸이 일이하다
나는 그물 깁고
아희는 밭을 가니
뒤뫼에 엄 긴 약초를
언제 캐려 하나니

황희(1363~1452) 호는 방촌, 공민왕~문종 때의 영의정
이 노래는 정계를 은퇴하고 고향으로 낙향하여
전원 생활을하며
평화롭고 아름다운 농촌의
봄풍경을 읊은 노래.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세월이 하 수상하니
올동 말동 하여라

김상헌 (1570~1652) 인조때의 정치가
병자호란때 끝까지 싸울것을 주창한 척화신으로
심양에 인질로 가며 읊은
우국충정의 노래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칠 아이는 여태 이럿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남구만 (1629~1711) 효종때 등제하여 영의정 역임, 낙향하여 전원생활을 하며
농촌의 평화로움을 그린 노래.


꽃은 무슨 일로
피면서 쉬이 지고
풀은 어이하야
푸르는 듯 누르나니
아마도 변치 않을손
바위 뿐인가 하노라.

윤선도(1587~1671)호 고산, 효종의 스승 이기도함. 오우가(五友歌) 중에
일생을 유배지에서
보내다 싶이한 불운한 학자요
정치가였다.
인생무상을 읊었다.

자네 집에 술 익거던
부디 날 부르시소
내 집에 술 익거던
나도 자네 청하옵세
백년 덧 시름 잊을 일을 의논코자 하노라

김육 (1580~1658) 호는 잠곡, 영의정을 역임
술도 술이려니와
우정을 잘 표현.


술을 취케 먹고
둥글게 앉았으니
억만 시름이 가노라 하직한다
아이야 잔 가득 부어라
시름 전송하리라

정태화(1602~1673)호 양파,
영의정을 지냄, 낙향하여 벗들과 더불어 술 마시는 심경을 노래로 표현.

붕우가(朋友歌)

마음이 지척이면
천리라도 지척이요
마음이 천리오면
지척이라도 천리로다
우리는 각재 천리오나 지척인가 하노라

(작자미상)
여기 각재의 '재' 는 있을
'在'자,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처세가(處世歌)

들은 말 즉시 잊고
본 일도 못 본듯이
내 인사 이러하매
남의 시비 모르로다
다만 손이 성하니
잔 잡기만 하노라

송인 (1517~1854) 중종~선조 중종의 부마
일일히 참견하지 말고
듣고도 못 들은체
보고도 못 본체하는
처세술을 노래.

청산도 절로 절로
녹수도 절로 절로
산 절로 물 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이중에 절로 자란몸이
늙기도 절로하여라

김인후(1510~1560)호 하서,
중종~명종 학자


송림에 눈이 오니
가지마다 꽃이로다
한 가지 꺾어내어
님 계신 데 보내고져
님이 보신 후에야
녹아진들 어떠리

정철(1536~1593) 호는 송강,
사랑하는 님에게
흰 눈과 같은 자신의 맑은
마음을 알리려는
연군의 정을 노래.

탄로가(嘆老歌)

뉘라서 날 늙다던고
늙은이도 이러한가
꽃 보면 반갑고
잔 잡으면 웃음난다
추풍에 흩날리는 백발이야
낸들 어이하리요

김정구 (연산군때 사람)
이 노래에서의
꽃은 여자를 의미.


옥에 흙이 묻어
길가에 버렸으니
오는 이 가는 이
흙이라 하는고야
두어라 알 이 있을지니 흙인듯이 있거라

윤두서(1668~?) 호는 공제, 유선도의 증손 겸허한 처세관으로 현인은
아무리 초야에 묻혀 있어도 자연히 알려지게 된다는..

오륜가(五倫歌)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부모옷 아니시면
내 몸이 없으렸다
이 덕을 갚으려니
하늘 끝이 없으리

주세붕(1495~1570)의오륜가
백운동 서당을 창건하며 서원의 창시자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공산 하니
쉬어간들 엇더리

황진이(본명은 진,
기명은 명월) 중종때의
송도 명기,
시 서화 음률에 뛰어남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에 흐르거든
옛 물이 있을소냐
인걸도 물과 같아야
가고 아니 오노매라

황진이(스승의 죽음을 노래함)

-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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