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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상식과 교양

[스크랩] 불교의 기초 상식

작성자백온/권영섭|작성시간13.07.10|조회수42 목록 댓글 0

< 기초 상식 >


 

◐불교의 4대 명절 :


① 탄생일(4월초파일)

② 출가재일(2월초파일)
③ 성도재일(12월초파일)

④ 열반재일(2월15일)

◐불교의 4대 성지 :


① '룸비니'동산(무우수나무 아래서 탄생)

② '붇다가야'(깨달음을 이루신 곳)

③ '녹야원'(첫 설법 장소:초전법륜)

④ '쿠시나가라'국(발제하 강변:열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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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판 사판 : 생활속의 불교용어


이판 사판은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의 합성어이다.
이판(理判)은 참선, 경전공부, 포교등 불교의 교리를 연구하는 스님이고,

사판(事判)은 절의 산림(山林)을 맡아하는 스님이다.

여기서 산림이란 절의 재산관리를 뜻한다.

산림은 산림(産林)이라고 쓰기도 한다.

 - "살림을 잘한다"라고 쓰이는 '살림'이 여기서 유래되었다.

 
이판과 사판은 그 어느 한쪽도 없어서는 안되는 상호관계를 갖고 있다.
조선조에 스님이 된다는 것은 마지막의 신분계층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조선이 불교를 억압하고 유교를 국교로 세우면서 스님은 성 안에 드나드는 것조차 금지되었다.

조선조에서 스님이 되어 이판(理判)이 되었건 사판(事判)이 되었건 그것은 마지막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이판, 사판은 끝장이었다.

그런 잘못된 시대 상황에 의해 "이판 사판"은 마지막의 궁지를 말하는 뜻이 되었다.

 

시대상황은 바뀌어 오늘날 한국은 불교의 재 중흥을 맞고 있다.

불자의 수가 2000만에 달하고 있고,

이판 사판은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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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희롱하면 덕을 잃는다(琓人喪德 玩物喪志:완인상덕 완물상지;서경)


완구는 어린이들의 장난감이다.

사람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면 좋지 않다.

결국은 덕을 잃는다.

가난이 찌든 사람 앞에 넉넉하게 사는 사람!

벼슬이 없는 일반 사람 앞에 지휘가 높은 사람!

힘 없는 사람 앞에 권력이 있는 사람!

조용하게 사는 사람 앞에 떠들썩하게 사는 사람!

분수를 지키는 사람 앞에 세도 부리는 사람!

무지한 사람 앞에 유식한 사람!

이들은 콧대를 높이면서 자존심을 가지고 거만을 떨며

사람들을 얕보면서 무시하고 업신여기어 멋대로 희롱하기가 일쑤다.

귀한 생명체를 가진 사람들로서 대우는 고사하고 물건처럼 멋대로 취급하려 한다.

이것이 완인(琓人)이다.

못난 사람이다.

저만 잘난 체를 하고 상대를 멋대로 희롱하려 한다.

물건에 애착심을 갖다보니 물건의 노예가 되고,

돈 모으는데 정신이 없다보니 돈의 노예가 되고,

유흥에 도취하다 보니 유흥의 노예가 되고,

도색에 놀아나다 보니 도색의 노예가 되어 바람잡이가 되고 만다.

사람은 근본 바탕을 잘 지켜야 한다.

모든 일에 있어서 나를 낮추고 남을 추켜 올리면 그 사람 또한 존경 해 올 것이다.

나를 아래로 모든 일에 겸손하면 상대 또한 스스로 겸손하여져 나를 대우할 것이다.

착한 덕을 쌓아 입지(立志)를 서두르면 만사는 잘 풀릴 것이다.

사람은 절대로 남을 비웃거나 희롱을 삼가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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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알아 둡시다


합장은 일심을 뜻하고,

산란한 마음을 한 데 모아 부처님의 마음에 합일시킨다는 의미가 있으며,
예배는 공경의 표시로서 아상과 교만심을 극복하는 수행이기도 하다.
절은「두 팔꿈치와 두 무릎과 이마가 닿게하는 큰절(이를 '오체투지'라 함)」과

선 채로 합장하여 절하는 반배가 있다.


고두례(叩頭禮) : 삼정례의 마지막 절을 할 때는 엎드린 채 고개와 두 손만을 들어 합장하고

                        손 바닥을 바로 짚어 자신의 발원이나 소원을 빈 뒤 다시 절하고 일어난다.

                        예불문의 마지막 구절인 "유원무진 삼보 ~···"에서

                        발원하는 절이라 하여 유원 반배라 하기도 한다.

우슬착지(右膝着地) : 맨땅 위에서 부처님께 예배할 때 올릴 수 있으며,

                         합장한 자세로 반배 후 왼발을 앞으로 내딛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조용히 앉은 자세를 취한다.

                         합장하고 고개숙여 예배한 후 조용히 일어나 두 발을 모으고 반배를 한다.

염주를 목에 걸 때에는 모주가 목 뒤로 오게 걸어야 하고,

벽에 걸 때에도 모주가 위로 오게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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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 간절한 그 마음.


신라 말 때입니다.
중국으로부터 동방대보살로 추앙받던 무염선사가 계셨습니다.

무염선사에게 구정이라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구정은 원래 글을 알지 못했는데 어는 날 무염 선사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즉심(卽心)이 불이니라(卽心是佛)"
즉심, 즉 마음이 부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워낙 무식한 구정이라

'즉심이 불(佛)'이라는 말을 '집신이 불(佛)'이라는 말로 알아듣고 말았습니다.

'우리 스승님은 부처님 같으신 분인데 허튼 말을 했을리 없다.

부처를 물었는데 어째서 짚신이라고 대답을 하셨을꼬?

짚신이 어째서 부처인고?'

그날부터 자기 짚신을 머리에 이고 다니면서 가나오나 앉으나 서나


"이 짚신이 어째서 부처인고?" 하는 생각을 놓을 줄 몰랐습니다.
하루는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한 다음 짚신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짚신아! 어째서 네가 부처냐?

짚신아! 네가 어째서 부처냐?"하다가 그만 삼매(三昧)에 들었습니다.

시간 가는줄도 모르고, 앉았는지 서있는지도 모르고···.

그야말로 '산이 산이 아니요 물이 물이 아닌' 삼매 속에서 사뭇

 "짚신아! 네가 어째서 부처냐?"하며

소리를 지르다가 짚신의 끈이 뚝 끊어지는 순간 활연히 대오(大悟)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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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하라 : 반규(盤珪 : 1622~1693) 선사

 
일본승려인 반규(盤珪 : 1622~1693) 선사는

항상 대중들과 함께 움직이고, 평등하게 생활하신분으로 유명하다.

 

법을 설할 때에도

경전이나 학식있는 사람들의 책에서 몇 구절을 인용하여 유식한 척하는 법이 없었다.

하루는 음식을 만드는 공양주가 연로하신 스님의 건강을 생각하여

대중들이 먹는 음식과 다르게 새 된장으로 맛있게 음식을 만들어 올렸다.

 

반규선사는 대중들이 먹는 음식과 자신의 음식이 다름을 알고 제자들에게

"오늘 음식을 만든 공양주가 누구더냐?"하니,

"예, 얼마전 새로온 공양주입니다."라고하니 스님은 그를 불러오라고 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얼른 달려온 공양주에게 스님은 정색을 하며,

 "나보고 음식을 먹지 말라는 것이냐?" 하시며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문까지 걸어 잠그고 몇날을 나오지 않으셨다.

 

공양주는 영문도 모른채

스님의 화를 샀다는 이유만으로 자신도 같이 굶으며 스님의 방 앞에서 엎드려 빌었다.

이를 보다못한 한 스님이 선사의 방 앞에서 큰소리로 말했다.

"스님 너무하십니다.

공양주가 잘못한 일이 있으면 그만 용서하십시오. 이러다간 공양주가 굶어 죽겠습니다"
그러자 반규선사가 방문을 힘차게 열어 젖혔다.

다른 대중들은 무슨 날벼락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여 잔뜩 움츠린채 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반규선사는 미소를 띠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공양주에게 말씀하셨다.

 

"공양주는 듣거라.

하나를 취하면 다른 하나를 버리게 되나니,

취함으로서 집착이 생기고 분별심이 생기는 것이니라.

그러니 앞으로 나의 공양은 다른 대중들과 다름없이 똑같이 차려오너라.

다른 대중들이 새 된장을 먹으면 나도 그것을 먹을 것이요,

그들이 묵은 된장을 먹으면 나도 그리할 것이다.

네가 장차 스승이 되더라도 이 말은 잊지 말고 그대로 지키도록 하여라"

그후 공양주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누구에게든 한결같은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어 공양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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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타고서 소를 찾는냐 ?


대안스님이 백장선사를 뵙고 물었다
"저는 부처님을 알고 싶습니다. 부처란 누구입니까?"
백장선사가 되물었다.
"소를 타고서 소를 찾는냐?"
대안이 마치 알아들은 양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부처를 안 뒤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소를 탔으면 집으로 가야지!" 기다렸다는 듯이 선사가 대답했다.
이 말에 대안이 비로소 퍼뜩 깨치고 나서 말했다.
"앞으로 어떻게 간직할까요?"
깨달음의 경지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하는 물음이었다.
선사가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목동이 소치는 것도 안 보았는냐?

지팡이를 들고 지켜보면서, 남의 밭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지 않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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