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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포기선을 아시나요..

작성자동밖에|작성시간19.05.16|조회수378 목록 댓글 4

▼ 서단점

 

▼ 영산강제방 고수부지

 

 

▼ 측천양지

 동양에서 흔히 사용하는 측량測量이란 단어는 측천양지測天量地에서 유래했다.

 중국에서는 하늘을 측정할 때는 측測, 땅을 측량할 때는 양量이라고 따로 불렀다.

 그러나 측과 양 둘 다 ‘헤아린다, 수를 세다’는 뜻으로 같다.

 

▼ 나주13 삼각점 (5.7m)

▼ 희미한 무등산 능선

 

 

▼ 측량성과

 

▼ 동단점 

 

▼ 금성산 능선 

▼ 11.5봉 - 나주시 관정동 평죽마을 북동쪽

▼ 청풍11 삼각점

 

 

▼ 서단점 ~ 동단점 거리 : 3400.89002m

 


〈퍼온 글〉

 

Ⅱ. 우리나라 地籍測量의 뿌리, 榮山浦 基線

1910년대 토지조사사업을 하면서 가장 먼저 실시한 측량이 기선측량이었다. 기선측량은 대삼각본점측량에서 사용하게 될 기지변의 길이를 최고의 정밀도로 관측했던 기초측량이며, 각 기선의 양단에는 표석을 매설하였다. 당시 기선측량은 전국 13개소에서 실시하였고, 이 기선를 기초로 각 4~8개의 증대점을 설치한 후, 여기에서 얻은 확대변장을 토대로 전국 2,801점의 대삼각점이 설치되었다. 따라서 기선측량성과에 따라 전체 측량의 정밀도가 결정되었던 만큼, 기선은 곧 현대 지적의 뿌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8.15해방과 6.25동란 등을 거치면서 모든 기선점이 망실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전남 나주시에 소재한 영산포기선의 양쪽 기단점이 완벽하게 복구되었다.

1. 位置 및 現況
영산포기선은 1912년 3월 13일부터 같은 해 5월 11일까지 약 2개월여에 걸쳐 측량하였다. 기선의 양단중 동단점은 전남 나주시 관정동 승학마을에서 북쪽으로 약100여미터 지점에 위치해 있고, 서단점은 광주-완도간 국도 제13호선을 잇는 영산대교에서 동북쪽으로 약60미터 지점의 영산강제방 고수부지에 위치해 있다.

기선의 총길이는 3400.89002미터이다. 당시 거리측정은 3미터폭의 기선로를 미리 개설한 후 25미터 길이의 프랑스제 강권척을 사용하였으며, 작업시 13명의 측량자가 동원되어 거리측정과 동시에 경사․온도․풍속 등을 관측하여 보정하였다.

2. 東端點의 復舊
전남지역 지적인 학술모임인 정지회에서 영산포기선점에 대한 복구계획을 수립하고, 1988년 1차로 동단점에 대한 기록을 조사하였다. 그 결과 나주시 관정동 승학마을앞 평야지대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알고 현지수색에 나섰다. 그러나 이곳은 수년전에 경지정리가 이루어져 기선점의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탐문과 자료조사를 반복한 끝에 오래전에 폐쇄되었던 지적도에서 기선점의 위치를 찾아냈다.

평판측량으로 현지복원측량을 실시한 결과 매몰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위치를 정한 후, 토지소유자의 승낙을 얻어서 지표면을 삽으로 파내려갔다. 반신반의하면서 2시간여에 걸친 흙파기 작업 끝에 지하 1.5미터 깊이에서 부채꼴 형태의 콘크리트 보호석과 함께 반석(盤石)이 나왔다.

콘크리트 보호석은 한 덩어리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 4개의 부채꼴 형태로 따로따로 제작하여 중앙에 반석을 넣고 결합시켜 놓은 상태였다. 이는 과학의 원리를 응용, 외부으로부터 압력이 가해졌을 때 콘크리트 보호석에서 각기 4방향으로 충격을 분산시킴으로써 반석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분석되었다.
복구는 논물의 침수를 방지하고 농작물 피해 없이 측량에 직접 활용할 수 있도록 반석주위에 직경 2미터 크기의 원형으로 적벽돌을 쌓은 후 안쪽은 콘크리트로 채워넣었고, 그 중앙에는 표석을 사방 15cm, 길이 150cm 크기로 제작하여 반석의 정중앙과 일치시켜 매설하였다.

3. 西端點의 復舊
서단점 역시 지표상 어디에도 기선점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서단점은 영산강 제방 안쪽에 위치해 있어 그 동안의 잦은 홍수로 인해 유실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지내오다가, ‘90년 여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인근의 지적삼각점을 기준으로 경위의측량으로 복원해 본 결과 제방안쪽의 옥수수밭 한껸이 분명하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여러가지 여건상 복구작업을 착수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어오다가 만4년이 지난 ’94년 6월 5일 정밀측량을 한 후, 다음날 9시간에 걸친 작업 끝에 드디어 징표를 발견하였다.
지하 74cm지점에서 절단된 표주의 하부가 콘크리트 보호석에 고정된 채 모습을 드러냈다. 표주는 사방 18.5cm 크기의 정사각형 석재기둥이었고, 표주보호대는 직경 92cm크기의 원반형으로서 윗면은 중앙이 볼록하고 밑면은 평평했다.

이어서 지하 93cm 지점에서 반석이 발견되었는데, 사방 30cm 두께 9cm의 화강암으로 제작되었고, 중심부에는 십자선이 길이 10cm, 굵기 1cm크기로 음각되어 있었다. 반석 역시 콘크리트 보호석으로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영산포기선 서단점 복구를 마치고 복구시 반석과 반석보호석은 원형대로 보존하였고, 그 위에 국립지리원에서 제작한 표주를 반석의 십자교점과 정확히 일치시켜 매설한 다음, 그 주위를 원형 콘크리트 흄관 5개를 차곡차곡 쌓아올려서 안쪽을 콘크리트로 채워넣고 견고하게 고정시켰다


4. GPS 觀測에 의한 基線長 檢測
동단점과 서단점 사이에는 영산강 제방이 가로막고 있어 두 점간 시통이 불가능하였다. 따라서, 경위의나 광파측거기 등 기존 장비로는 기선장을 측정할 수 없고, GPS관측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다.
1995년 9월 27일부터 9월 29일까지 3일간에 걸쳐 대한지적공사 지적기술교육연구원에서 보유하고 있는 GPS수신기를 이용하여 기선장을 측정하였다.

관측에 사용한 수신기는 Leica장비 4대와 지오시스템의 Trimble 장비 2대등 총 6대를 동원하였다. 기계적 오차를 최소화시키기 위해서 여러장비를 사용하였다.
관측방법은 Static방식으로 3차례 실시하였는데, 1-2차는 Leica장비를, 3차는 Trimble 장비를 사용하였으며, 프로세싱은 장비간 파일 포맷이 달라 공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Rinex포맷으로 변환하여 계산하였다.
계산결과 다음 표에서 보듯이 성과차이가 불과 1cm밖에 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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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킬문 | 작성시간 19.05.16 처음 듣는 내용입니다...^^
  • 작성자캐이 | 작성시간 19.05.16 측량학은 배웠는데...이건 잘 몰겠네요~ㅠ
  • 작성자축석령 | 작성시간 19.05.16 기선에서 계속 삼각측량하여 북한의 온성?쪽 기선에다 붙혔는데 오차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기선이란 삼각점 설치할 때 기본 기점이 되는 것입니다
  • 작성자덩달이 | 작성시간 19.05.17 네~~오늘에야 알았네요.1등삼각점 구경을 가야 되겠네요.지맥을 가다가 살짝 들러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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