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신]
시적 비유의 속성
로메다 님,
시에서 가장 중요한 수사 곧 시적 장치가 무엇인가 묻는다면
'비유(比喩)'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얼마나 신선한 비유를 구사할 수 있느냐에 따라
시의 성패가 좌우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비유의 비중은 큽니다.
그렇다면 비유란 어떤 형식의 표현법인가 알아보도록 합시다.
이 강의의 서두에 이미지가 시의 싹이라고 단정하면서
대상 속에서 어떤 신선한 이미지를 찾아내는가가 중요하다고 말한 것 기억하시지요?
시에서의 이미지는, 특히 유추적 이미지일 경우
비유의 형식으로 우리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우선 비유에 관하여 논급한 내 글을 먼저 읽어보도록 합시다.
시적 비유의 속성
시에서의 이미지를 시의 씨앗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떤 대상이 환기시키는 이미지는 대개 추상적이라기보다는
구체적인 사물과 함께 감각적으로 드러난다.
이를 달리 말하면, 시적 이미지는 비유의 형태로 형성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비유는 이미지와 공존하는 시의 중요한 표현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시는 곧 비유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시에서의 비유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흔히 비유를 세계 인식의 한 방법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소위 이미 잘 알려진 기지(旣知)의 것(補助觀念, 媒體, vehicle)으로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는 미지(未知)의 것(元觀念, 主旨, tenor)을 설명하는 방법쯤으로 생각한다.
철학이나 논리학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렇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문학 특히 시의 입장에서 본다면 비유는 사물 인식의 방법이라기보다는
사물을 보다 두드러지게 드러내는 수단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만약 전자가 비유의 본질이라면 적확성(的確性)이 최상의 기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시에서의 비유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뚱뚱한 사람을 그리는 다음의 두 비유를 예로 보도록 하자.
(가) 돼지처럼 뚱뚱한 철수
(나) 하마처럼 뚱뚱한 철수
철수의 뚱뚱함을 (가)에서는 돼지에 (나)에서는 하마에 비유하고 있다.
(가)와 (나) 중 어느 쪽이 능률적인 비유인가는 금방 판별이 된다.
물론 (나)다.
설령 철수의 실제 뚱뚱함을 물리적으로 측정해 볼 경우 돼지에 더 가깝다 할지라도
사실에 근접한 (가)보다는 과장이 담긴 (나)가 보다 효율적이다.
비유는 사실을 사실대로 드러내기 위한 기법이라기보다는
사실을 사실보다 두드러지게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다.
비유는 논리에 근거한 설명이 아니라 정서에 근거한 설득이다.
비유는 시적 표현 장치의 하나인 불림(과장지향성)에 근거하고 있다.
과장성이 없는 비유는 맥빠진 진술에 그치고 만다.
한편 능률적인 비유는 이질적인 대상들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다) 장미처럼 예쁜 국화
(라) 곰처럼 미련한 개
(마) 장미처럼 예쁜 소녀
(바) 곰처럼 미련한 사내
(다)와 (라)는 능률적인 비유가 못 된다.
(다)에서는 같은 식물 사이 (라)에서는 같은 동물 사이에서의 동질성을 따지고 있다.
동질적인 것들 가운데서의 동질성은 두드러지게 드러나지 않는다.
'국화'도 원래 아름다운 식물이고 '개'도 원래 미련한 동물이니까
여기에는 과장성이 능률적으로 작용하지 못한다.
비유보다는 오히려 비교의 기능이 살아난다고 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마)에서는 식물과 인간,
(바)에서는 동물과 인간이라는 이질적인 대상들 사이에서의 동질성을 말하고 있다.
(마)와 (바)에서는 효율적인 비유가 이루어진다.
'소녀'가 아무리 예쁘기로서니 '장미'와 같으며
'사람'이 아무리 미련키로서니 '곰'과 같겠는가.
여기에는 과장이 개입되어 있다. 과장이 곧 비유의 속성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비유는 은폐성을 지향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은폐성은 특히 은유의 구조를 통해 적극적으로 실현된다.
직유는 두 대상 즉 주지와 매체 사이의 동일성이 명시된 구조다.
(나)에서의 '뚱뚱한'이나 (마)에서의 '예쁜' 그리고 (바)에서의 '미련한' 등이
동일성이나 유사성[이를 공유소(共有素)라 부르기로 하자]이다.
이처럼 직유에서는 두 대상을 연결하는 공유소가 명료하게 표출되는데 비해
은유는 공유소가 생략되어 있는 구조다.
(사) 내 마음은 호수다
'주지(主旨)=매체(媒體)'의 구조다. 공유소는 감추어져 있다.
주지와 매체가 폭력적으로 결합된다.
직유는 제시된 공유소에 의해 두 대상을 묶는 수동적 사고가 강요되는 형식이지만
은유는 두 대상 사이에 수많은 공유소를 추출해 내야만 하는 능동적 사고가 요구되는 형식이다.
독자는 (사)에서 다양한 공유소를 추출해 낼 수 있다.
'넓다' '잔잔하다' '깊다' '맑다' '흔들린다' 등의 수많은 공유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직유는 단선적인 비유지만 은유는 입체적인 비유다.
은유는 숨기는 가운데 보다 많은 것을 말하는 역설적인 구조다.
보다 많은 공유소를 내포하고 있는 것일수록 능률적인 은유가 된다.
소위 시의 특성으로 지적되는 애매성(ambiguity)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가 바로 이 은유라고 할 수 있다.
은유는 시적 장치인 불림(과장)과 숨김(은폐)의
두 가지 속성을 아울러 지니고 있는 표현 양식이다.
―졸저 『엄살의 시학』pp.27∼30
로메다 님,
시에서의 비유가 어떠한 특성을 지니고 있는지 짐작이 가지요?
이미지나 비유나 두 사물의 결합양식이란 면에서 동일합니다.
시에서의 능률적인 비유는 과장의 속성을 지닌다는 것과
이질적이 사물들 사이에서 실현된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정진을 빕니다.
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