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술시(이야기시) 속의 내재율
신부
서정주(1915~2000년)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잡시 궁금해서 신부방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 일월산 황씨부인의 전설 이야기
13살 어린 새신랑(新郞)이 장가가서 신부(新婦) 집에서 첫날밤을
어린 새신랑(新郞)은 온몸에 소름이 돋고 아래위 이빨은 딱딱 부딪쳤다.
할머니한테 들었던 옛날 얘기가 생각났다.
첫날밤에 나이 든 신부(新婦)의 간부(奸夫)인 중놈이 다락에서 튀어나와 어린 신랑(新郞)을 칼로 찔러 죽여 뒷간에 빠뜨렸다는 얘기!
“시, 시, 신부(新婦)는 빠, 빠, 빨리 부, 부, 불을 켜시오.”
신부(新婦)가 불을 켜자 어린 신랑(新郞)은 사시나무 떨듯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신부(新婦)집은 발칵 뒤집혔다.
꿀물을 타 온다, 우황(牛黃)청심환(淸心丸)을 가지고 온다, 부산을 떠는데 ....
새신랑(新郞)은 자기가 데리고 온 하인(下人) 억쇠를 불렀다.
행랑방(行廊房)에서 신부(新婦) 집 청지기와 함께 자던 억쇠가 불려왔다.
어느덧 동이 트자 새 신랑(新郞)은 억쇠가 고삐 잡은 당나귀를 타고 한걸음에 30리 밖 자기 집으로 가 버렸다.
새신랑(新郞)은 두번 다시 신부(新婦) 집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춘하추동(春夏秋冬)이 스무번이나 바뀌며 세월(歲月)은 속절없이 흘렀다.
그때 그 새신랑(新郞)은 과거시험에 급제(及第)를 해서 벼슬길에 올랐고, 새 장가를 가서 아들딸에 손주까지 두고 옛일은 까마득히 망각(忘却)의 강(江)에 흘러 보내버렸다.
어느 가을날,
친구(親舊)의 초청(招請)을 받아 그 집에서 푸짐한 술상(床)을 받았다.
송이 산적에 잘 익은 청주(淸酒)가 나왔다.
두 사람은 당시(唐詩)를 읊으며 주거니 받거니 술잔이 오갔다.
그날도 휘영청 달이 밝아 창호(窓戶)가 하얗게 달빛에 물들었는데,
그때 ‘서걱서걱’ 20年 前 첫날밤 신방에서 들었던 그 소리,
그리고 창호(窓戶)지에 어른거리는 칼 그림자!
그는 들고 있던 청주(淸酒) 잔을 떨어뜨리며. “저 소리, 저 그림자.” 하고 벌벌 떨었다.
친구(親舊)가 껄껄 웃으며
“이 사람아. 저 소리는 대나무잎 스치는 소리고 저것은 대나무잎 그림자야.”
그는 얼어 붙었다.
세상(世上)에 이럴 수가!
“맞아 바로 저 소리, 저 그림자였어. 그때 신방(新房) 밖에도 대나무가 있었지.”
그는 실성(失性)한 사람처럼 친구(親舊)집을 나와 하인(下人)을 앞세워 밤새도록 나귀를 타고 삼경(三更) 녘에야 20年 전의 처가(妻家)에 다다랐다.
그 때의 새 신부(新婦)는 뒤뜰 별당(別堂)채에서 그때까지 잠 못 들고 희미한 호롱불 아래서 물레를 돌리고 있었다.
그는 문을 열고
“부인!!!”
하고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새 신부는 물레만 돌리며
“세월(歲月)이 많이도 흘렀습니다.”
그는 땅을 치며 회한(悔恨)의 눈물을 쏟았지만 세월(歲月)을 엮어 물레만 돌리는 새 신부(新婦)의 주름살은 펼 수가 없었다.
선비는 물레를 돌리고 있는 부인(婦人)의 손을 잡고 한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時間)이 흘렀을까?
고요한 적막(寂寞)을 깨고 부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서방님 어찌된 영문(令文)인지 연유(緣由)나 말씀을 좀 해 주시지요. 나는 소박(疏薄)맞은 女人으로 죄인 아닌 죄인으로 20年을 영문(令文)도 모르는체 이렇게 살아 왔습니다."
더 이상 눈물도 말라버린 선비는,
"부인(婦人), 정말 미안하오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가 있겠소."
그 때.. 첫날 밤의 일을 소상(昭詳)히 이야기를 하고 용서(容恕)를 구하였다.
새벽닭이 울고 먼동이 떠 오를 즈음에 이윽고 부인(婦人)은 말문을 열었다.
“낭군님은 이미 새 부인(婦人)과 자식(子息)들이 있으니 이를 어찌하겠습니까? 어서 본가(本家)로 돌아가십시오. 저는 이제 죽어도 여한(餘恨)이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선비는 부인(婦人)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하였다.
"부인(婦人)! 조금만 기다려 주시오. 이제 내가 당신의 기나긴 세월(歲月)을 보상하리다."
선비는 뜬눈으로 밤새고 그길로 하인(下人)을 불러 본가(本家)로 돌아와 아내에게 20年前의 첫날밤 이야기를 소상(昭詳)히 말하였다.
선비의 말을 끝까지 들은 부인(婦人)은 인자(仁慈)한 미소(微笑)를 머금고 말을 이었다.
"서방(書房)님 당장 모시고 오세요. 정실(正室) 부인(婦人)이 20年前에 있었으니 저는 앞으로 첩(妾)으로 살겠습니다. 그러나, 자식(子息)들은 본처(本妻)의 자식(子息)으로 올려 주십시오."
그 말에 하염없는 눈물만 흘리는 선비,
이윽고 말을 이었다.
"부인(婦人) 내가 그리 하리다. 그러나 부인(婦人)의 그 고운 심성(心性)을 죽을때까지 절대(絶對) 잊지 않겠소이다."
선비는 다음날 날이 밝자 하인(下人)들을 불러 꽃장식으로 된 가마와 꽃신과 비단옷을 가득 실어 본처(本妻)를 하루빨리 모셔오도록 명(命)하였다.
며칠 뒤 이윽고 꽃가마와 부인(婦人)이 도착(到着) 하자 선비의 아내가 비단길을 만들어 놓고 정중히 큰절을 올리고 안방으로 모시고는 자식(子息)들을 불러 놓고,
"앞으로 여기 계시는 분이 너의 어머님이시니 큰절을 올려라" 고 하니 자식(子息)들은 그간에 어머님으로 부터 자초지종(自初至終) 얘기를 들은 지라 큰절을 올리며 "어머님 이제부터 저희들이 정성(精誠)것 모시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그 이후 어진 아내의 내조(內助)와 착한 자식(子息)들의 과거급제(科擧及第)로 자손대대(子孫代代)로 행복(幸福)하게 잘 살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 시의 내재율
자유시의 리듬은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시 자체의 호흡이요 언어가 자연적으로 형성하는 음성의 질서이기 때문에 이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기가 매우 곤란하다. 그러나 이같은 내재율을 완전하지는 않지만 논리적으로 규명하려는 시도도 있다.
첫째, 시의 완결된 짜임 그 자체를 하나의 질서로 간주하고 그 질서가 겉모습으로 바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의미나 이미지의 양에 따라 파격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내재된 질서로서 내재율을 형성한다는 관점이다. 시도 하나의 유기체임을 전제할 때, 유기체의 잘 짜여진 구조가 통일성을 가져와 그 속에 내재된 질서가 하나의 리듬을 형성한다고 볼 수 있다. 우주라는 거대한 구조가 그것이 하나의 질서를 유지하고, 그 질서가 리듬을 발생한다는 관점에서도 시의 구조적 리듬은 타당성을 지닌다. 낮과 밤, 봄․여름․가을․겨울의 자연스런 변화는 그 자체가 하나의 리듬을 이룬다. 둘째, 푸는 부분과 죄는 부분이 교차하면서 드러나는 리듬이다. 푸는 부분과 죄는 부분, 그리고 풀면서 죄는 부분 등이 적절히 교차하면서 긴장과 이완의 맛을 주어 내재율을 형성한다는 관점이다. 셋째, 음보율의 마디를 서로 교차시켜서 리듬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는 실제로 부분에 그치는 때도 있고 전체의 반 정도에서 이루어지는 때도 있고, 거의 전편에서 이루어지는 때도 있다고 본다. 넷째, 의미 마디와 이미지 마디를 교차시키는 방법이다.
강희근은 이렇게 네 가지 원리를 제시하고서 시의 내재율이라는 것이 결코 더듬을 수 없는 비밀 속에 감추어진 가락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상의 네 가지 원리로 시의 내재율을 규명하려 한 시도는 의미 있는 것이다.
시를 처음 창작해 보는 사람들은 이 네 가지 모형을 기초로 시의 내재율을 구축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듯하다.
그러나 엄격한 의미에서 시의 내재율을 이 네 가지 원리로 해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의 내재율은 사람마다 맥박이나 호흡이 다르듯이 각양 각색이기 때문에, 위에서 논의한 내재율의 단순한 모형이 시의 내재율을 모두 수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강희근이 제시한 모형은 빙산의 일각처럼 내재율에 대한 부분적 설명일 따름이다. 내재율은 문장 속에 스며든 운율이기 때문에 이것을 논리적으로 세세히 밝힐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의 내재율은 시 한 편 한 편마다 독자적인 가락을 갖고 있는 것이다.
시의 내재율을 과학적으로 규명하여 그 원리를 익히기 보다 소리꾼이 득음(得音)하듯이 스스로 내재율을 창출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정도라고 볼 수 있다. 소리꾼은 득음을 하기 위해서 산속에 들어가 오랜 기간 머물며 산(山) 공부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목이 쉬고, 쉰 목에서 피가 터져 나오고 그것이 아물고 또 다시 피가 터져 나오는 혹독한 수련을 거친다. 이런 과정에서는 스스로의 피나는 노력만이 있을 뿐이지 않겠는가. 어느 스승이 대신 목이 쉬고 피 터져 줄 것인가.
시의 개성적인 내재율의 확보도 득음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앞에서 제시한 기본적인 시적 내재율의 방법을 연마한 후에는 그것을 바탕으로 스스로 자신의 호흡과 리듬을 창출해 내어야 할 것이다.
무릇 모든 공부가 그렇듯이 처음에는, 자신이 본 받고 싶은 시를 읽고 또 읽어야 할 것이다. 가령, 김소월 같은 리듬감이 좋은 시를 많이 읽어 보는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외워 보도록 한다. 김소월의 리듬이 나의 리듬으로 육화될 만큼 읽고 또 읽어 보는 것이 좋다.
동국 대학에서 서정주에게 시를 배운 강희근은 처음에 자신의 시에서 서정주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말은 그가 서정주의 시를 좋아해서 서정주를 읽고 또 읽은 결과, 그것이 자신도 모르게 시를 쓸 때 미당의 호흡이 자신의 호흡으로 나타난 때문이다. 강희근은 많은 세월이 지나 자신이 서정주로부터 벗어난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어차피 시의 내재율도 선배 시인에게서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이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궁국적으로는 山 공부로 득음하는 소리꾼처럼 자신만의 목소리를 얻기 위한 피나는 수련을 거쳐 전무후무한 자신만의 개성적인 내재율을 획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선배와의 차별화는 불가피하다.
자신이 존경하는 시인, 자신의 시의 텍스트가 되었던 시인들을 처음에는 자신도 모르게 모방하게 되어 있지만, 종국에는 그것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스스로 개성적 리듬을 창조해야 하는 것이다.
◆ 운율
운율은 우리의 생활 감정과 밀착된 것이며, 생활 속에서 시간적인 지속성이나 질서를 통하여 인식할 수 있는 요소.
운 : 일정한 위치에 일정한 소리를 가져오는 규칙성과 관련
율 : 일정한 소리의 시간적 반복 규칙과 관련 있는 것으로 음의 강약, 장단, 고저의 규칙적인 반복을 포괄
● 내재율
자유시가 지닌 운율을 가리키는 말로 정형시가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는 운율을 가지는데 비하여, 자유시는 이러한 규칙적 운율이 아닌 그 나름의 운율을 가진다. 작가의 개성적 호흡이나 운율의 의식에서 비롯된 운율이 존재하지만, 작품에 따라 다르고 작품에 미묘하게 숨어있기 때문에 내재율이라고 한다.
● 외형율
규칙적인 리듬이 겉으로 뚜렷하게 나타나는 운율. 시조(정형시)가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