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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론

강신애의 「소」평설 / 홍일표

작성자시냇물|작성시간24.01.18|조회수17 목록 댓글 0

강신애의 「소」평설 / 홍일표
 
 

 
     강신애
 
 
안개 속에서 검은 소를 만났다
구정물과 젖은 풀의 냄새를 풍기며 천천히
어디로 가는 중이었는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나도 가만히 바라보았다
커다란 눈이 성스럽도록 멀었다
이상하게도 소의 등허리에는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 있었다
 
춥지 않니?
눈을 털어주려 손을 올려놓았을 때
갑자기 고개를 돌려서
놀란 나는 뒷걸음질쳤다
소도 놀란 듯했다
 
자동차도 뜸한 길가
안개의 발판마다
젖은 현의 선율이 튀어나왔다
뒤에서 희미한 울음소리를 들은 듯했지만
더듬듯 계속 걸었다
 
돌아오는 길에
안개로 윤곽이 무너진 소를 만났다
흐린 등에는
내 손자국이 찍혀 있었다
무거운 마침표처럼,
소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던 것
누군가를 기다리듯 거기
우두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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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에 다가가는 시
 
 
   휴머니즘과 생태주의가 여전히 한국시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틀에서 벗어나면 단박에 정도를 이탈한 괴물로 인식하는 전통 서정의 광신도들이 있다. 교주의 말은 곧 법이 되어 통용되고 이의 제기 없이 불문율에 충실한 열혈 신도가 된 자들은 일등 공신이 되는 것이다. 북 치고 장구 치고 열려라 참깨 하면 문학상이 떨어지고 시혜의 대상이 되어 온갖 특혜와 특전의 영예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여러 현상 중 일부라 생각하면 속 편히 넘길 수 있겠지만 문학의 현실을 왜곡하고 시의 빈곤을 초래하는 원인이라면 이는 가볍게 지나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이다.
   이렇게 시절이 하 수상할 때 강신애의 ‘소’를 만났다. 한 편의 시에 오래 눈길이 머문다는 것은 시의 울림이 크다는 것이고 내재된 향기가 깊고 그윽하다는 것이다. 차분하게 사물과조응하는 화자의 나지막한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의 심안 또한 깊고 따듯해지는 것이다. 존재의 얼룩과 근원을 탐색하는 그의 시는 무슨 주의에 옭아맬 수 있는 류의 시가 아니다. 전통 서정시도 실험시도 아니지만 그의 자유로운 영혼의 숨결이 고요로이 숨쉬는, 그리하여 신성의 저편을 얼핏 드러내 보이는 시가 강신애의 시다. 화자와 소의 만남, 소에 대한 조용한 응시, ‘춥지 않니?’라고 말을 건네며 등위에 쌓인 눈을 털어주려는 화자, 자동차도 뜸한 길가에서 만난 한 마리의 소는 거룩한 신성의 또 다른 형상인 것, ‘희미한 울음소리’를 들으며 모른 체하고 걷지만 돌아오는 길에 화자는 다시 소를 만나고 자신의 손자국을 발견하게 되는 것, 그 사이 소는 누군가를 기다린 듯,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던 것.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그의 시는 기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달리 표현하면 실상과 어떤 기운이 신비하게 조화를 이루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얼핏 김종삼의 분위기가 감지되기도 하지만 존재의 근원에 드리운 그림자를 차분한 시선으로 읽어내는 시가 ‘소’다. 그 소는 신성의 다른 이름이요 곧 대상을 바라보는 화자의 삶이기도 하다. 어설픈 생태주의자처럼 주장하거나 역설하지 않고 몸을 떠난 향기가 허공을 떠돌다가 다시 육체성을 얻는 오롯한 순간을 경험하게 하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인간과 사물의 경계를 넘나들며 존재의 새로운 지점을 여는 강신애의 시는 간과하기 쉬운 존재의 내밀한 숨결을 섬세한 감성으로 포착하여 형상화하는 특장을 지녔다. 이 점이 그의 시가 앞으로 더욱더 다채롭게 분광하리라는 것을 믿게 하는 이유이다.
 
홍일표
(문화저널 21 편집위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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