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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알자

[스크랩] 일본 전국시대의 세영웅

작성자러시아궁디|작성시간09.04.10|조회수315 목록 댓글 0

 

일본 전국시대 세 영웅

 

오닌의 난 이후로 전국시대로 접어든 난세의 일본을 통일하기 위해

전생애를 바친 대담함과 결단성을 지닌 오다 노부나가

일본통일의 기틀을 잡은 지략의 도요토미 히데요시

일본통일을 굳히고 유지시키는데 힘썼던 인내의 도쿠가와이에야스

이 세사람이 지금의 일본을 있게한 사람이라고 후대는 평합니다.

 

혹자는 오다가 찧고, 하시바가 반죽한 천하 떡을 앉은채로 먹은 도쿠가와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인내와 인간경영, 끝없이 배우려는 자세는 가히 천하를 유지할만하다 할까요...

 

시중에 오다노부나가의 카리스마 경영/ 도요토미히데요시의 전략적 인간/ 도쿠가와이에야스의 인간경영  이란

책이 나와있는데, 제목 그대로 오다노부나가는 자신의 능력으로 카리스마있게 사람들을 이끌었고,

맘에 안드는 일이있으면 히헤이잔에 잇코신도인 승려들을 몰아둔채로 몰살을 시키는등 결단력과 

대담성 무자비성까지 갖춘 인간이며

도요토미히데요시는 뛰어난 지략으로 하급무사 아시가루의 아들로 태어나 바늘장사를 하다

오다의 눈에 띄어 신발을 관리하기 시작하여 신분이 급상승한 사람으로 (칸파쿠까지..),

뛰어난 사람들을 충성하게 이용하는 인간형이며

도쿠가와이에야스는 모진 역경속에서도 기다리고 인내하여 결국 천하를 잘 인계 받는 사람으로, 

무엇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스스로 도쿠가와에게 반하게 하여 충성을 바치고 그 능력을 발휘할수 있게하는 사람이다.

 

 오다 노부나가    

 

어릴때부터 예측불허의 행동으로 바보라는 소리까지 듣지만, 아버지 오다 노부히데의 뒤를 이어,

오와리를 제패하고, 잠자리에서 목을 가져오라는 밀명을 받고 시집온 노히메를 아내로 삼고,

자신의 능력과 통찰력으로 전국통일의 서광을 이뤄냈다.

아시카가를 교토에 입성시켜 막부재건시키고 실권을 잡았으나, 결국 아시카가를 교토에서 추방시켜

무로마치 막부시대를 끝내게 된다.

대담성 무자비성 결단성 뒤의 새로운것에 대한 열린마음으로 최초로 조총부대를 사용하여 전투의 방법을 바꿔놓았고,

자신의 행렬에 흑인을 내세우는등 서양문화에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일설에는 천주교신자였다고도 한다. 이에야스와는 14살(이에야스6살)때 본후 친분가짐. 

바늘장수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발탁해서 자신의 부하로 삼음, 

신하들에게까지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그는 결국 자신의 가신 "아케치 미츠히데"의 모반으로

혼노지에서 할복하여 48세로 사망.

(어릴때부터 목숨의 위협을 받아온터라 그누구도 진정으로 신임하지 않고 오직 자신만을 믿었던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

-적은 혼노사에 있다 (내부의 적)

-인생 50년  / 하천에 비하면 / 덧없는 꿈과 같도다/ 한번 태어나/ 죽지 않을 자 누구인가

(오다노부나가 아츠모리 중)

 

도요토미히데요시  

 

원숭이를 닮았고 약사빨랐던 바늘장수에서 오다노부나가에 의해 발탁되어 두각을 나타내던중

혼노사의변으로 노부나가가 사망하자,아케치 미츠히데를 치고 노부나가의 아들을 등에업음.

반대파인 시바타 카츠이에등을  시즈카다케 전투로 실권을 장악했으며

히데요시 전투의 특징은 적은 수의 한 성에도 몇만이라는 대군이 포위하여 항복을 받아내는 방식으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위해 도쿠가와에게는 어머니까지 인질로 내세우며 천하를 가지려는 야망을 품었죠

부인  키타노만도코로는 히데요시만큼 뛰어난 여장부로서

미천한 신분이었으므로 그를 상쇄하기 위해 모든방법을 동원해 자신을 돋보이게 하였으며

스스로 천하인/태양의 아들이라고 불렀다죠

그 결과 모든사람이 반대했던 조선 침략을 결행했으며

명나라로 갈려는 길목을 그냥 열어줄거라고 생각했던 국제적 힘에대한 판단미스로 임진왜란을 일으켰는데

초반에 코니시유키나가 가토키요마사등이 한양에서 평양까지 침입해가지만 바로 조선수군에 대패하고

명나라의 협공을 받아 실패로 돌아간다.

그래도 그 덕분에 도공들이나 문화유산을 뺏어가서 일본문화엔 큰 도움을 주었죠.

명나라왕까지도 우습게 봤지만, 속국으로 처리하던 명나라왕의 답변에 정유재란까지 일으키지만 국력만 소모시키고

결국 자신이 눕고만다.

그렇게 뛰어나던 지략가가 필부가되어 자신의 아들을 지키기위해 양자 히데츠구와 측근을 몰살시키고

히데요리에대한 가신들의 충성 서약서까지 받는등  약한모습으로 생을 마감. 노망이라는 말도 듣는다.

시대착오적인 국제관으로 임진왜란이란 잘못된 선택을 했지만,

일본을 최고로 아는 국수주의적인 사고방식은 아직도 일본사람들의 군국주의적인 사고방식의 원천이라고도 한다. 

(천주교탄압으로 유명..)

 

도쿠가와이에야스          

 

 **전국시대 최후의 승자**

 6세때 이마가와의 인질 이후 오다가에 넘겨져서 인질생활을 하다 오다 노부나가를 만났으며

다시 이마가와가에서 인질생활, 19세에 이마가와요시모토가 사망하자 자신의 근거지인 미카와로 돌아와서

이마가와로부터 독립 이후,이마가와를 등지고 노부나가와 동맹을 맺었음.

그의 유일한 패전인 타케다신겐과의 미카타가하라 전투에 크게 배웠으며

다행히도 타케다신겐이 그즈음 진중에서 죽으면서 극적으로 부활하여

그이후  천하의 패권을 노부나가가 잡자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노부나가의 딸을 자신의 아들과 결혼시키지만, 

아내와  아들을 죽이라는 노부나가의 명령을 그대로 따랐다죠.

노부나가 사후 히데요시가 집권하자 그의 늙은 여동생을 정실로 맞아 신하의 예까지 갖추었으며

그러나 노부나가시대와 히데요시의 시대를 발판으로 점점 자신의 세력을 넓히고

결국 히데요시가 어머니까지 인질로 보낼만큼의 세력으로 성장. 

미카와를 떠나 동쪽(에도)으로 옮기라는 히데요시의 명령에 그대로 따르고 그를 계기로

오히려 임진왜란에 참여하지 않게되어 자신의 기반을 다지게되고  5대 타이로이자, 명실상부한 2인자로 성장

히데요시의 사후, 히데요시의 가신단들의 대립이 극대화,

이에야스를 중심으로 뭉친 동군과 이시다 미츠나리를 중심으로 나뉜 서군이 세키가하라에서 전투를 벌임. 

거기서 승리한 도쿠가와이에야스는 천하를 제패하고 정이대장군에 취임하며 1대쇼군으로써 에도막부를 염.

막한 체제(막부와 한으로 나뉘어서 다스리는)  ..

이후, 오사카성에 있던 히데요시의 요도부인과 아들 히데요리를 호코사의 대불전 내용을 빌미로

2번에 걸쳐 공격해 자결케 함으로써 실질적인 천하통일.

75세에 사망할때까지 끊임없이 공부하고 많은 책을 만들게하고 사망하는날까지 일본의 평화를 위해 힘쓴후..사망..

 

*임진왜란이후 기유약조를 급히 맺고 최초로 조선통신사를 맞이하고 삼포를 통한 문화교류

*무역에 큰 관심을 가져 무역선을 만들고 필리핀 영국 네덜란드 등과 무역, 

  영국인 윌리엄아담스를 통해 활발히 해외문물을 받아들임

*메이지 유신까지 200년동안 전쟁없이 평화유지시킴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길을 가는 것과 같다. 서두르지 말지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유훈) 

 

 

 

 

 

 

 <출처;blog.daum.net/songmar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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