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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알자

오케하자마 전투 - 오다 노부나가 VS 이마가와 요시모토

작성자러시아궁디|작성시간09.04.10|조회수569 목록 댓글 2

1. 이마가와 요시모토


일본 전국시대에서는 전쟁을 통해 가문의 대가 끊어질 위험 이라든가

어린 시절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승려로 해 두었다가 가문에 비상사태 발생 시에

환속하여 가문을 이어나가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마가와 요시모토도 출가 중에 집으로 돌아와 가업을 계승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묘사되는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사치와 향락을 향유한 인물로 표현되고

무장으로서는 정말이지 무능한 무장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각종 게임에서는 초기 데이타가 완전 허접 그 자체로 되어 있습니다. -ㅅ-)a

동해도 제일의 명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 이 부분은 명궁이냐 무사이냐 라는

번역상의 논란도 있습니다.  東海一の弓取り 라고 원문에는 표기되어 있다고 합니다.

- 출저는 소설 大望 ... 원문을 읽어보지 못한 관계로 사실확인은 스미마셍 -ㅅ-)a


2. 요시모토의 상경

 

요시모토는 모든 준비를 끝내고 2만여명 군대를 5개로 분산하여 ... 설마 학익진 -ㅅ-);;;

교토로 진격하면서 오다가의 성들을 하나씩 접수해 갔습니다. 그래봤자 2개 정도 -ㅅ-)a

이 때 성을 하나씩 접수해 간 인물이 마쓰다이라 모도야스 ... 즉 토쿠가와 이에야스입니다.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선봉대보다는 조금 뒤에서 천천히 진군하였습니다.

총 병력이 2만이지만 5개로 분산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본진의 규모가 4~5천 정도가 되고 이러면 2~3천이라도 한 번 해 볼만 합니다.

게다가 오다 노부나가는 오와리의 멍청이로 불리던 시절에 이미 전쟁놀이를 통하여

오와리지역의 전투에 대해서는 모든 시뮬레이션을 끝낸 상태입니다.

요시모토가 보기에는 시골 촌구석인 오와리의 지형을 요시모토 스스로가

조사했을 리도 없었을 것입니다.


3. 오다 노부나가

 

스스로 제육천마왕이라고 칭했으며, 애니메이션, 게임 에서는 마왕 단골 배우입니다.

노부나가의 불교탄압은 재정분리가 그 주요한 이유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노부나가는 불교의 포교활동에 대해서는

문제를 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승려들의 군사행동을 아주 싫어했습니다.

또한 오다노부나가의 거성인 기요스성은 상업이 발달한 지역이었다고 합니다.

풍부한 재력으로 다른 다이묘보다는 빠른 철포부대를 구성할 수도 있었죠.

하지만 철포를 실제 사용한 전투는 훗날 나가시노 전투에서입니다.

오다 노부나가의 장창은 다른 다이묘에 비해 큰 창을 사용하여

근접전에서 보다 강력한 위력을 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오케하자마 전투에서는 이런 장창부대를 이용한 전투였습니다.


4. 에이로쿠3년(1560년) 5월 19일의 기록

 

새벽 ---

마쓰다이라 모도야스가 오다家의 마루네城을 급습하여 순식간에 함락

새벽 ---

오다 노부나가 뜨거운 물을 부은 밥에 계란을 풀어서 한 그릇 뚝딱

그리고 부채를 들고 춤을 추며 노래 한 곡조 뽑음

人間五十年(じんせいごじゅねん)

下天(げてん)のうちを比(くら)ぶれば夢幻(むげん)の如(ごと)くなり。

一度生(ひとたびしょう)を享(う)け、滅(ほろ)せぬもののあるべきか。

인생 50년

저세상에 비하면 꿈과 같은 것

한번 삶을 얻어, 멸하지 않는자 어디 있는가

                                                平家物語 - 敦盛

오전 8시 ---

아쯔다신궁에 오다 노부나가 도착(노부나가 직속 200 + 지원 800)

오전 9시 ---

아쯔다 신궁 출발 추가병력 도착(총 병력 3000)

나카지마 부근에 1000명 배치

정오 무렵 ---

오다 노부나가 2000명을 이끌고 오카하자마로 이동

이마가와군 즐거운 점심시간

이후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 ---

오다군 잠복근무중

이마가와군 일단 비가 그치기를 기다림

오후 2시 비가 그침 ---

오다 노부나가가 급습하여 이마가와 본진 격파


5. 전후 처리

 

마쓰라디아 모도야스는 이마가와家와의 관계단절 거성을 오카자키 성으로 하여 독립.

이름을 마쓰다이라 이에야스로 개명합니다.

이후 노부나가와의 회견을 통해 동맹을 하게 됩니다.

이마가와 우지자네가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뒤를 잇습니다.

이마가와 우지자네는 영토를 보전하지 못하고 토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빼앗기고 맙니다.

또한 토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몸을 맡깁니다. ... 표현이 이상야릇하지만 -ㅅ-);;;;;

오다 노부나가는 동쪽 방어는 이에야스에게 맡겨두고 오직 교토에만 집중합니다.


6. 적은 혼노지에 있다.

 

아케치 미츠히데의 간지 좔좔 흐르는(?) 세리후입니다. -ㅅ-)a

결국 똑같이 기습에 의해 오다 노부나가는 사망하게 됩니다.

오십년을 미처 다하지 못하고 우리 나이로 49세에 죽고 맙니다.


7. 출신성분

 

오다 노부나가와 토요토미 히데요시,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근본적인 출신성분이 다릅니다.

히데요시는 아시다시피 농민 출신입니다. 히데요시의 정이대장군 취임은 조정대신들이

이 출신성분을 이유로 반대를 합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다이라계 출신입니다.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미나모토계 출신입니다.

아무리 전국시대라지만 당시의 관습으로 쇼군은 미나모토계만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이러한 출신성분도 토쿠가와 이에야스만이

쇼군 자리에 오른 이유의 하나가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참고 1. 4번이 상세한 이유는 이 기록에 대한 자료들이 곳곳에 잘 정리 되어 있습니다.

참고 2. 적은 혼노지에 있다. - 불의의 급습을 하거나 당할 때, 관용적으로도 쓰입니다.

참고 3. 마쓰다이라 이에야스는 나중에 토쿠가와 이에야스로 개명합니다.

참고 4. 7번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울산지역 일본학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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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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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우라키코우 | 작성시간 09.04.20 오다 노부나가는 다이라계 출신입니다.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미나모토계 출신입니다. ----------------------------------------------- 노부나가는 모르겠지만, 이에야스는 미나모토 일족이 아니고 다이라일족입니다. 그래서 성이 마쯔'다이라'입니다. 그리고 히데요시도 농민의 자식이라고는 하나, 무사집안 출신으로 알고있습니다. 농사를 지어야 먹고 살 수 있는 하급무사집안이죠 무사계급이 아닌데 성을 가질수는 없었을것이고
  • 답댓글 작성자러시아궁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04.21 와우 대단하세요~~지금은 시간이 없고 조만간 확인 사살 해 보겠습니다~~님의 해박한 지식에 감탄하였습니다~~자주 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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