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동문 소개

[스크랩] 고향 선후배 아우르는 대한한의사협회 의장 이범용

작성자43회 이범용|작성시간08.10.27|조회수233 목록 댓글 10

고향 선후배 아우르는 ‘두레의 실천적인 삶’

이 범 용 (대한한의사협회 의장, 한의학 박사)

 

‘오동나무는 천년을 늙어도 가락을 머금고 있고, 매화는 평생 춥고 배고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桐千年老恒藏曲, 梅一生寒不賣香) 이범용 대한한의사협회 의장(한의학 박사, 유명한의원 원장 TEL02-941-9966)은 3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 내내 진지했다. 소탈한..


고향 선후배 아우르는 ‘두레의 실천적인 삶’

                         이 범용 (대한한의사협회 의장, 한의학 박사)
2008년 10월 27일 (월) 15:20:12 당진뉴스 webmaster@ijdnews.co.kr

   
‘오동나무는 천년을 늙어도 가락을 머금고 있고, 매화는 평생 춥고 배고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桐千年老恒藏曲, 梅一生寒不賣香)


이범용 대한한의사협회 의장(한의학 박사, 유명한의원 원장 TEL02-941-9966)은 3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 내내 진지했다. 소탈한 모습이지만 우렁차고 거침없는 입담으로 시종일관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의장은 정열과 희생으로 뭉쳐진 진하고 감동적인 삶의 이야기를 꾸밈없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서두에 꺼낸 ‘오동나무는 천년을 늙어도…’라는 글귀가 인터뷰 내내 기자의 귓전을 맴돌았다. (서울특별 취재팀)


1.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산 교훈

이의장의 부친을 한국전쟁(6.25) 당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딸을 낳은 후에 군에 입대하는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절박한 나라의 형편으로 7년의 군복무를 하게 되었으며, 이 의장을 논산 훈련소 근무 중에 낳게 되었다.

당연히 제대를 앞두고 부친은 낙후된 농촌,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서 살아가기 위한 방안 마련을 위해 고민을 하게 되었다. 부친은 그저 평범하게 농사를 지어서는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남들과 다르게 살아야 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마침내 부친께서는 스스로 책을 통해 터득한 토마토, 오이, 참외 등 갖가지 채소와 과일 재배 등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방법을 통해 땅을 최대한 활용하여 수익을 최대화하는 방법을 군대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실천하게 되었다. 덕분에 이 의장을 비롯한 4남1녀는 모두 대학을 마치게 되었다며 이 의장은 남다른 아버님의 삶을 언급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 의장은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아버님께서는 학생인 저에게 공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아무리 높은 지위에 오른다든지 많은 돈을 벌지라도 근본을 잊어서는 안된다라고 말씀하셨다. 즉 실천적인 삶을 강조하시며 고등학교 1학년때까지는 평소에는 물론이고 방학때에도 틈틈이 농사일을 거들게 하며 노동의 가치와 농촌의 현실을 깨닫게 하셨다.

실제적으로 제가 부모님을 도와 한 일의 양은 많지 않았지만 아버님과 어머님은 저와 같이 일을 하면서 세상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살아있는 지혜를 주셨던 것이다.’

2. 고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

이 의장은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이정표를 세워주신 분이 여러분 계시는 데, 그 중에 한 분으로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 의장이 고등학교를 서울로 유학와서 중앙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에 다니면서 1학년 때 이 분이 주신 말씀과 격려는 평생 동안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의장은 “당진에서는 어느 정도 공부를 한다고 자부하며 학교를 다녔는데, 막상 서울에 와서 첫 시험에서 전교 420명 중에서 200등을 하게 되었다. 저는 이렇게 공부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자퇴를 결심하고 담임선생님을 찾아갔다.

담임선생님께서는 ‘자퇴도 한 방법이 될 수 있겠다. 하지만 중간고사를 보고 그래도 안되면 자퇴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라고 말씀하시며 저의 생각도 존중하며 제안을 하셨고 저도 수긍하였다. 선생님께서는 며칠 후 저에게 반 아이들의 이름을 칠판 한 쪽에 매일 한자로 쓰는 숙제를 내주셨고, 제 옆을 지날 때는 어깨를 톡톡 두드려 주시며 ‘요즘 잘 지내지?’하며 자신감 없어하는 저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시기 위해 애정을 베풀어 주셨다. 마침내 중간고사 성적이 나왔는데 85등을 하게 되었다.

선생님은 저에게 ‘어때, 이 정도면 할 만 하지?’하고 밝게 웃으셨다. 이후로 저는 ‘하면된다.’라는 자신감이 생기며 동시에 성적도 쑥쑥 올랐다. 1학년을 54등으로 마치고 2학년때는 8등, 3학년때는 전교 3등으로 졸업하게 됐다. 선생님께서는 무심코 어깨를 두드려 주셨겠지만 저에게는 엄청난 힘이 되었다.

저는 지금도 한의사로서 그 때를 회상하며, 제가 환자를 대할 때 따뜻한 말 한마디, 애정 어린 관심이 그들에게는 크나큰 힘이 된다는 생각을 하며 실천하려 노력한다. 담임선생님이 저의 인생을 바꿔 놓은 것처럼 말이다.”

   
▲ 지난 9월 28일 송악중학교 동문 골프대회에서 이범용 회장과 동문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3. 가장 소중한 약속

1975년 경희대 한의과대학에 입학하여 ‘사람을 사랑하는 한의사가 되겠다’는 포부로 학부시절부터 의료봉사활동을 실천하며 지금도 고향 당진은 물론이고 전국 곳곳을 누비며 사랑의 의술을 실천하고 있는 이 의장은 1987년 서울 성북구 길음동에 ‘유명한의원’을 개원하여 자랑스런 우리민족의 전통의학인 한의학의 발전과 국민 보건에 이바지하기 위해 지금 이 시간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는 1993년과 1996년 한약분쟁의 중심에 서서, 또한 대한한의사협회의 숙원 사업이었던 회관 건립에 있어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한국한의사협회는 물론 격동의 한국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가 이러한 역사의 현장은 물론이고 고향 당진 혹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당진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활동에도 열정적이게하는 계기가 있었다.
그에게는 ‘크나큰 슬픔을 열정으로 승화시킨,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인간다움을 느끼게하는’전환점이 된 것이 있었다.

다름 아닌 전처와의 영원한 이별을 하면서 그녀가 남긴 ‘아름다운 유언’이다. 이 의장은 이렇게 회고한다. “1992년 늦가을 낙엽이 쓸쓸하게 거리를 뒤덮을 때, 저의 전처는 암과 사투를 벌이며 삶에 자신이 없는 듯 저에게 ‘이제는 어느 정도 기반을 닦았으니 고향의 선후배들이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고 후배들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으면 해요’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아내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편에게 항상 의로운 일을 많이 하라며 손을 잡아 주었던, 속 깊은 아내의 말이기에 그만큼 저에게는 꼭 지켜야만 하는 약속이었습니다. 저는 이웃사람, 특히 고향의 선후배를 아우르는 ‘두레의 실천적 삶’을 살기로 다짐하고 제 인생의 황금기를 고향 당진의 송산초등학교, 송악중학교 동창회의 ‘자리매김’과 ‘우리 전통의 한의학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4. 감동은 불가능을 가능케 한다

이 의장은 “저는 전처의 유언을 실천하는 시발점으로 초등학교 동창회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모색하였다. 저는 각지에 흩어져 있는 송산초등학교의 동기부터 찾아 나섰다. 43회 졸업생들을 모두 찾아내어 동문회에 가입시키고, 1999년 11월에는 모교 1학년때부터 6학년때까지의 15분의 담임 선생님과 192명의 졸업생 중 84명이 참석하여, 졸업 30주년 기념식을 성대하게 거행하였다.

또한 2001년 8월에는 과거의 졸업앨범속의 사진들과 현재의 모습들을 모아 기념 앨범을 제작하여 배포하였는데 친구들의 반응이 너무 좋았다. 친구들은 ‘추억속의 자신의 모습과 현재의 자신의 변한 모습을 보며 세월의 무상함과 동시에 남다른 진한 감동을 받았다.’라며 저에게 고마움을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떨림으로 전했으며, 저 역시 그들의 답례에 뿌듯함을 느꼈다.

 

차츰 친구들은 제가 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열기가 금새 선배, 후배들에게 녹아들었다. 저는 자신감을 가지고 송악중학교 동기들도 마찬가지로 일을 추진하였다. 역시 참여 열기가 높았다.

 

가장 최근의 행사로는 지난 9월 28일 고향에 위치한 ‘파인스톤컨트리클럽’에서 송악중학교 동문 골프대회를 100여명이 넘는 동문들과 함께한 것이다. 골프장을 아예 통째로 빌려 개최했다.”

기자는 이외에도 대한한의사협회와 관련된 감동적인 이야기 등 많은 사례가 있지만, 여기에서는 다루지 못함을 아쉽게 생각한다.


5. 선배들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우자

끝으로 고향의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이 의장은 “저는 대학교와 대학원을 다니면서 학원에서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저는 실력과 인기를 인정받아, 학원 이름을 거명하면 왠만한 사람은 알만한 서울의 유명학원에서 강의도 하고 계속 러브콜을 받았지만, 저는 사양하고 고향의 학원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다.

거기에는 공부도 가르치지만 고향의 후배들에게 삶에 도움이 되는 교훈적인 메시지도 전하고자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가끔씩 그때 가르쳤던 후배가 모임 등에서 인사를 하며, 그 당시를 떠올리며 고마움을 표시할 때는 말할 수 없는 뿌듯함이 마음 가득했다. 저는 특히 고향의 20대, 그리고 중,고등학교에 재학중인 후배들에게 성공한 선배들을 찾아 가서 삶의 지혜를 배우라고 권하고 싶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43회 이범용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10.29 47회 한상현 회장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최운현 | 작성시간 08.10.31 그 동안 선배님의 마음속에 간직하셨던 일들을 하나하나 실천으로 행하심에 늘 고맙고 감사합니다. 제 마음의 심금을 울린 감동적인 글 잘 읽고 마음에 담고 갑니다.
  • 답댓글 작성자43회 이범용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10.31 50회 최운현 회장님~ 늘 도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 작성자37회 성기석 | 작성시간 08.11.05 우리 동문에 이렇게 훌륭한 후배님이 있어서 마음이 뿌듯하고 자랑 스럽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43회 이범용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8.11.06 성기석 37회 선배님 감사 합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