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G7 회담을 맞은 유럽 일정에 들어갔네요. 회담에서 약식적인
한미정상회담이 있을지도 주목되는 내용입니다. 세계적인 거물이
한국을 떠난 가운데, '고기 회동' 때의 이야기가 나왔네요.
이 대통령, 브뤼셀 도착 ‘9박10일’ 일정 시작…트럼프와 회동 촉각
G7 정상회의 참석차 유럽순방
G7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유럽을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9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 멜스부르크 군공항에 도착, 공군 1호기에서 내려 인사를 나누고 있다. 브뤼셀/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재명 대통령이 9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 등을 위해 취임 뒤 첫 유럽 순방길에 올랐다. 7개국 정상회의 기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회동이 이뤄질지 관심이 쏠린다.
이 대통령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 도착해 9박10일간의 유럽 순방 일정에 들어갔다. 이 대통령은 성남 서울공항 출국 전 엑스(X·옛 트위터)에 “취임 이후 처음으로 유럽을 방문한다. 글로벌 복합위기 속에서 협력의 지평을 넓히며, 우리 경제와 외교의 기반을 더욱 굳건히 다지기 위한 여정”이라고 썼다.
이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각)에는 바르트 더베버르 벨기에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고, 필립 국왕과 면담한다. 안토니우 코스타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과 정상회담도 예정돼 있다. 11∼13일에는 이탈리아를 국빈 방문한다. 이 대통령이 유럽 국가를 국빈 방문하는 것은 취임 뒤 처음이다. 이 대통령은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 조르자 멜로니 국무총리와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다.
14∼15일에는 바티칸의 성바오로 대성당에서 평화와 연대를 위한 특별 미사에 참석한 뒤, 레오 14세 교황과 면담할 예정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7월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추기경과 만난 자리에서 “남북관계 개선과 긴장 완화, 신뢰 구축을 통해 대화의 문을 열기 위해 노력 중이다. 교황청의 지지와 협력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16∼17일에는 프랑스 에비앙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이 회의에는 트럼프 대통령도 참석할 예정이라 한-미 약식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
구광모 회장 삼겹살 싹둑에 경악?…'삼소 회동' 뜻밖의 화제 장면
젠슨황·최태원·구광모·이해진 '삼소회동' 화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국내 주요 기업 총수들과 함께 한 일명 '삼소 회동'에서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삼겹살을 자르는 모습이 뜻밖의 화제를 모으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이 5일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 삼겹살 음식점 '형님 저요'에서 이른바 '삼소(삼겹살·소주) 회동’을 갖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일 구 회장은 한국을 찾은 황 CEO와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음식점 '형님 저요'에서 삼겹살 회동을 가졌다. 황 CEO의 방한을 맞아 모인 대기업 총수들이 함께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소탈한 모습을 연출했다.
네 명의 CEO가 이끄는 기업들의 시가총액 합은 '1경원'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된다. 이른바 1경원짜리 삼소(삼겹살에 소주) 회동이 진행된 셈이다. 이들의 회식 모습은 방송과 온라인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송출됐다.
지난 5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과 함께한 서울 홍대입구 인근 고깃집에서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삼겹살을 자르는 모습. YTN 방송화면 캡처
참석자 중 가장 어린 구 회장(48세)은 식사 내내 집게와 가위를 들고 삼겹살을 굽고 자르는 등 '막내 역할'을 도맡았다. 최 회장과 이 의장 앞에 냅킨을 깔아주고 물잔을 채워주는 모습도 포착됐다. 이날 참석자 중 최 회장이 66세로 가장 연장자이고, 황 CEO가 63세, 이 의장이 59세다.
지난 5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과 함께한 서울 홍대입구 인근 고깃집에서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삼겹살을 자르는 모습. YTN 방송화면 캡처
이 가운데 구 회장의 독특한 고기 손질 방식이 온라인에서 예상치 못한 관심을 모았다. 영상 속에서 그는 삼겹살의 살코기와 비계를 분리하듯 가위질을 했는데, 일반적으로 살코기와 비계를 함께 먹을 수 있도록 자르는 방식과 다른 모습이었다.
구 회장의 고기 자르는 영상을 올린 게시글에는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다. 누리꾼들은 "삼겹살에 비계를 자르면 너무 큰 리스크다", "이건 오너리스크다", "도의적으로 해명해야 한다"는 식의 농담을 남기기도 했다. 이 외에도 "주가도 반으로 자르고 싶냐", "주방에서 분할상장 시그널이라고 하더라", "LG 악재다"라는 장난 섞인 반응까지 나왔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방한 일정을 마친 뒤 9일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출국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황 CEO는 닷새간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9일 출국했다. 황 CEO는 이날 오전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에서 한국을 떠나기 전 취재진과 만나 "환영이 정말 훌륭했고, 저와 가족 모두 진심으로 환대받는다고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황 CEO는 이번 방한에서 SK하이닉스와의 다년간 파트너십을 비롯해 네이버, SK텔레콤과의 인공지능(AI) 인프라 협력까지 굵직한 성과를 잇달아 발표했다. 그는 이번 방한 성과에 대해 "매우 좋은 미팅을 가졌고 매우 좋은 파트너십도 발표했다"며 "SK하이닉스와 사업 확장 및 협력 다각화를 위한 다년간 파트너십을 체결했고, 네이버·SK텔레콤과도 각각 AI 클라우드 파트너십을 맺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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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0년 화폐속의 인물 카몽스(앙골라) 세상떠남
카몽스(Luis (Vaz) de Camoes)포르투갈의 위대한 국민시인.
(영)Luis Vaz de Camoeos(Camoens). 1524 ∼ 1580. 6. 10.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항로를 발견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우스 루시아다스 Os Lusiadas〉(1572)라는 대서사시를 썼다. 카몽스는 그의 위대한 서사시와 사후 출간된 서정시로 인해 포르투갈 문학과 브라질 문학에 불멸의 영향력을 끼친 대시인이다.
카몽스의 생애에 대한 정보는 별로 많지 않지만 대별하면 17세기 전기작가들이 그에 대해 남겨놓은 자료, 19세기와 그후의 몇 가지 후속 작업에 의해 발굴된 몇 안 되는 문서, 그리고 자신의 작품에서 아주 불분명하게 언급된 자신의 생애 등 대체로 3가지로 나누어진다. 일부 성공한 전기작가들은 그에 대한 많지 않은 정보를 가지고 거의 환상에 가까울 정도로 복잡하고 세밀한 전기를 만들어냈지만 그 대부분이 구체적 문서에 의해 사실여부가 확인된 것은 아니다.
카몽스는 1524년 아니면 1525년에 리스본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시기는 포르투갈의 국력이 한창 동방으로 뻗어나가던 때였다. 연구조사 결과 그의 가문은 몰락한 귀족 집안이었으며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대공(大公)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카몽스가 쿠임브라대학교에서 공부를 했다든지 또는 정규학업을 쌓았다든지 하는 전설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당대의 시인치고 그처럼 고전과 당시 문화와 철학에 대한 소양을 갖춘 사람은 드물었다. 그는 젊은 시절에 포르투갈령 모로코에서 한동안 지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추방을 당해 그곳으로 갔는지 아니면 당시의 젊은 귀족 자제들처럼 군 경력을 시작하여 왕의 호의를 얻으려는 목적이었는지는 불분명하다. 또한 리스본에서 보낸 청년 시절도 그리 착실한 것은 아니었던 듯하다. 1553년 거리에서 벌어진 싸움에 끼어들게 되었는데 그 싸움에서 왕의 근위대 장교가 다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해 체포되었으나 주앙 3세가 그를 사면해주었다. 이같은 사면에 보답하기 위하여 그는 인도로 갔다. 그러나 그뒤 17년 동안 무슨 일을 하면서 그 지역을 방랑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록도 남아 있는 것이 없다. 그러나 그의 작품 속에 이 지방의 사회환경을 잘 묘사한 부분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보면 그가 그곳에 갔던 것은 틀림없는 듯하다. 그가 자주 시 속에서 자신의 불운과 불공평한 처우를 불평한 것을 보면 인도에서 큰 돈을 벌지는 못한 것 같다. 동방에 나가 있을 때 그는 자신의 서사시에서 언급한 것처럼 해상의 전투에도 한두 번 참가했으나 메콩 강의 델타 지역에서 배가 난파하여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동방에서 겪은 여러 가지 어려움은 당시 아프리카에서 일본에 이르기까지의 전지역에 흩어져 있는 수천 명의 포르투갈인들의 그것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그당시 해외에 나가 있던 포르투갈인들의 목숨과 행운은 신의 가호 하나에 달려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르투갈의 동방 개척사를 쓴 디오구 두 코투는 16세기의 역사가는 그가 목격한 여러 전투를 꼼꼼하게 자신의 역사서에 기술했으나 카몽스가 전투에 가담했다는 이야기는 쓰고 있지 않다. 그러나 자신의 친구이며 위대한 시인인 카몽스가 돈 한 푼 없이 모잠비크에서 방황하는 것을 보고 리스본으로 돌아가는 배삯을 물어주었다는 이야기는 적고 있다.
카몽스는 1570년 포르투갈로 돌아왔고 1572년초 〈우스 루시아다스〉를 발간했다. 같은 해 7월에는 인도에서 복무한 사실과 이 서사시를 써냈다는 점이 감안되어 왕으로부터 특별 연금을 받았다. 과부였던 그의 어머니는 그보다 더 오래 살아 이 연금을 그녀의 명의로 변경시켜 계속 혜택을 받았다. 그당시의 연금 수령 사실과 어머니로의 명의 변경에 관련된 서류가 남아 있어 카몽스의 사망연도가 1580년으로 확정되었다. 그는 젊은 시절의 질병과 고생으로 인해 일찍 죽은 것이 아닌가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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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 화폐속의 인물 흄( 호주 : 1 Pound ) 태어남
해밀턴 흄(Hamilton Hume-오른쪽)
1797. 6.10~1873. 4.19 초기 호주의 탐험가.
17세 때부터 시드니 밖으로 각 지역을 탐험하였고, 1824년 이래 윌리엄 호벨과 함께 탐사를 하게 되었다. 1828년 달링 강을 발견하였으며, 원주민을 이해하여 이들과의 충돌을 막았다. 이로 인하여 호주의 위대한 탐험가로서의 평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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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화폐속의 인물 베르다게르( 스페인 : 500 Pesetas ) 세상떠남
하신트 베르다게르(Jacint Verdaguer)
1845. 5.17~1902. 6.10 카탈루냐의 시인.
카탈루냐 문학 최고의 시인의 하나이며 후기 낭만주의 문학 부흥의 대표자였다. 1863년 교사로 일을 시작한 이래 1870년 사제가 되었으며, 이후 여러 책들을 출간하게 되었다. 카탈루냐 민족주의의 중심 인물의 하나인 조셉 토라스 이 바헤스 주교는 그를 '카탈루냐 시인의 왕자'라 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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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화폐속의 인물 슬라베이코프 ( 불가리아 : 50 Leva ) 세상떠남
펜초 슬라베이코프(Pencho Slaveykov) 2011년 발행
1866. 4.27~1912. 6.10 불가리아의 시인.
오스만 제국 시대의 국가 부흥 시기에 태어났으나 17세 때였던 1884년 1월 눈이 오는 날 밖에서 잠들었다가 폐렴에 걸린 후 오랫동안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며 치료를 받았지만 그것은 그의 삶에서 불치의 병이 되어 지팡이 없이는 걸을 수 없었고, 쓰고 말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또한 우울한 일들이 문학에서 이러한 정신을 치료하게 하는 길이 되었다. 여러 잡지들과 협력하고 라이프치히에서 철학을 배운 후 1898년 돌아와 1901년 국립 도서관의 보조 기획자가 된 후 1909년부터 1911년까지 기획자가 되었으며 1908년부터 1909년까지는 국립 극장의 기획자도 역임하였다. 여러 유럽 도시로의 출장 후 많은 일을 하게 되었고, 1911년 7월 10일 문화부 장관 스테판 봅체프와의 정치적인 갈등으로 해고되자 불가리아를 떠나 스위스를 여행한 후 11월 이탈리아로 들어가 로마에서 3개월 체류 후 5월 피렌체로 갔다가 그 달 말 코모 호수 부근의 마을 브루나테에 닿았다가 6월 10일 사망하였다. 1921년 유해는 불가리아로 돌아왔으며,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사망으로 취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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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화폐속의 인물 보든(캐나다) 세상떠남
캐나다 1975년 발행
보든(Sir Robert Laird Borden) 1854. 6. 26 ~ 1937. 6. 10
캐나다의 제8대 총리(1911~1920년)겸 보수당 당수(1901~20년)역임
보든은 국제연맹에 캐나다가 별도의 회원국으로 가입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캐나다의 위상을 식민지에서 국가로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1914년 나이트 작위를 받았다. 노바스코샤의 작은 마을 그랑프레에서 태어났고 사립학교의 조교직을 맡아, 1874년에 교사 생활을 마치고 핼리팩스에 있는 한 법률사무소의 수습생이 되었다. 1878년 노바스코샤의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법조계에서 지도적인 지위에 올랐으며, 1889년 법률사무소를 설립하여 후에 연해주(沿海州)들에서 최대 규모의 사무소가 되었다. 1911년 미국과의 호혜무역협정을 수락하기로 한 자유당의 결정을 호재로 이용하여 총선에서 로리어를 꺾고 보수당을 승리로 이끌었다.
영국과 캐나다의 관계에서, 제국의 정책 수립에서 캐나다의 발언권이 확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온 보든의 보수당 정부가 1917년의 선거에서 연방주의 지지세력이 상당한 의석을 차지하는데 성공함으로써 보든은 전쟁 노력에의 완전참여와 캐나다의 국제적 역할을 골자로한 정책들을 계속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보든의 첫 번째 내각은 무능과 매관매직과 전쟁모리에 대한 비난의 화살들이 보든의 행정부에 쏠리면서 보든에 대한 국민의 신임이 떨어졌으나, 징병제도를 실시하기 위해 연립 정부를 구성하여, 내각을 개편하고 유능한 동료들을 모을 수 있었다. 그는 연합국의 러시아 내전 개입 정책을 지지했으며, 거기에 캐나다군이 참가할 수 있기를 갈망했다. 그는 블라디보스톡에 3,000명 규모의 캐나다 원정군을 상륙시키고 그 군대가 장차 무역상의 이권을 얻는 데 기여하기를 바랐지만, 여론의 압력으로 인하여 철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든은 1919년의 위니펙 총파업의 주모자들을 체포하고 형법을 수정하는 형식으로 의회에서 서둘러 통과시킨 법률의 선동에 관한 새로운 정의에 따라 그들을 기소하기로 결정했는데, 그로 인해 노동자들의 적의를 사게 되어, 1920년에 총리직을 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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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화폐속의 인물 가비 (자메이카) 세상떠남
자메이카 50Cents(1969년 발행)
가비(Marcus (Moziah) Garvey)1887. 8. 17 ~ 1940. 6. 10.
뉴욕 시 할렘에 기반을 둔 미국 최초의 주요 흑인민족운동을 조직한 흑인 지도자.
14세까지 자메이카에서 학교를 다녔으나 그뒤에는 주로 독학했다. 중앙 아메리카를 여행하고 1912~14년 런던에서 살았으며 그뒤 자메이카로 돌아가 그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세계흑인인권개선보호협회와 아프리카 공동체연맹(Universal Negro Improvement and Conservation Association and African Communities League)을 설립했다(1914. 8. 1). 이 단체는 보통 세계흑인지위향상협회(Universal Negro Improvement Association/UNIA)로 부르며, 아프리카에 흑인이 통치하는 국가를 세우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가비는 자메이카에서 추종자를 얻는 데 실패하자 1916년 미국으로 가 뉴욕의 할렘과 북부의 주요 슬럼가 몇 군데에 UNIA 지부를 설치함으로써 '흑인 모세'로 떠올랐다. 협회에 가입한 회원수가 얼마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가비는 1919년에 추종자가 약 200만 명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뉴욕 시 할렘에 있는 협회의 리버티 홀에서 그는 '새로운 흑인'(New Negro)이라는 제목으로 흑인임이 자랑스러운 사실이라는 것을 알리는 연설을 했다. 그가 펴낸 신문 〈니그로 월드 Negro World〉는 흑인 영웅들의 공적과 아프리카 문화의 탁월함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그는 흑인들의 지위가 경제적으로 향상되어야만 존경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으며 백인 자본주의 틀 안에서 독립적인 흑인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음식점?식료품점?세탁소 등을 여러 개 세우고 호텔?인쇄소를 하나씩 세웠으며 흑인공장법인과 블랙스타운수회사를 설립했다(1919).
1920년에 리버티 홀에서 25개국의 대표들이 참가한 국제회의를 이끌었는데 이때가 그의 전성기였다. 이 집회는 가비가 5만 명의 군중을 이끌고 할렘 거리에서 화려한 시가행진을 할 때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그가 사업을 잘못 운영하고 백인 인종차별주의자 단체인 큐 클럭스 클랜(KKK)까지 인정하는 등 인종적 순수성과 인종분리주의를 방침으로 내세우자 노동운동 지도자 A. 필립 랜돌프나 '유색인종의 향상을 위한 전국협회'(National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Colored People/NAACP)의 회장인 W. E. B.뒤 부아 같은 유력한 흑인 지도자의 심한 반발을 받게 되었다. 가비는 1922년 UNIA의 회원들과 함께 블랙스타운수회사의 주식판매와 연관된 우편사기죄로 구속되면서 급속히 영향력을 잃게 되었다. 5년형의 선고를 받고 2년 복역한 뒤 1927년에 캘빈 쿨리지 대통령으로부터 사면받았으나 탐탁치 않은 외국인으로 간주되어 추방당했다. 외국에서는 흑인운동을 다시 일으킬 수 없었고 죽은 뒤에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에드먼드 데이비드 크로넌이 쓴 가비의 전기 〈흑인 모세 Black Moses〉가 1955년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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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화폐속의 인물 운세트(노르웨이) 세상떠남
노르웨이 1999년 발행/노르웨이의 소설가.
운세트(Sigrid Undset) 1882. 5. 20 ~ 1949. 6. 10
그녀의 작품은 전세계에서 널리 읽히며 1928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고고학자였던 아버지 덕분에 그녀의 집안은 전설, 민속, 노르웨이 역사로 가득했다. 여기서 받은 영향과 자신이 겪은 인생 이야기가, 어린시절에 관한 소설 〈11년 Elleve aar〉(1934)에서부터 나치의 점령하에 있던 노르웨이를 탈출하는 이야기로 원래 영어로 출판된 〈미래로 돌아가라 Return to the Future〉(1942)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작품 속에 나타난다. 그녀는 10년 동안 전자회사에서 일하다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초기 소설은 현대의 중하류계층의 낭만 없는 세계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위치를 다루었으며, 〈거울 속의 영상 Splinten av troldspeilet〉(1917)?〈제니 Jenny〉(1911)와 같은 작품이 그것이다. 그후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그녀의 걸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3부작 〈크리스틴 라브란스다테르 Kristin Lavransdatter〉(1920~22)를 썼다. 놀라울 정도로 중세적인 분위기를 띠면서도 여전히 여성의 운명을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은 자부심과 독립심이 강한 크리스틴이 매력적이지만 책임감 없는 남자와 결혼하면서 강하지만 겸손하고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여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 소설과 4권으로 된 역사소설 〈올라브 오이둔쇤 Olav Audunssøn〉(1925~27)에서는 종교문제가 두드러지면서 작가가 이 문제에 큰 관심이 있음을 보여준다. 1924년 로마 가톨릭교로 개종하여 당대의 주제로 돌아온 후기 소설에서는 새로운 종교가 큰 역할을 한다. 나치가 노르웨이를 점령했을 때 탈출하여, 남은 전쟁기간 동안 미국에 머물면서 전쟁으로 지친 고국과 망명정부에 관해 강연하고 글을 쓰면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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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화폐속의 인물 아사드( 시리아 : 1,000 Pounds ) 세상떠남
하페즈 알 아사드(Hafez al-Assad) 1997년 발행
1930.10. 6~2000. 6.10 시리아의 정치가.
북부의 카르다하에서 태어나 1946년 아랍 바스(부흥) 운동에 학생 운동가로 참여하였고, 이는 1947년 '바스 당'으로 통합 개편되었다. 1952년 홈스 군사 학교에 입학하여 3년 후 공군 조종사로 졸업하였으며, 수에즈 운하 전쟁을 전후하여 이집트에서도 훈련을 받게 되었다. 1959년부터 1961년까지 이집트와의 연합 국가 시대에는 이집트로 망명하여 군 장성들과 바스 당의 부활을 계획하였다. 연합 국가가 붕괴되고 1963년 시리아에서 바스 당이 권력을 잡자 공군의 통수자가 되었고, 1966년 2월 쿠데타에서 민간 정부를 퇴진시키고 국방 장관이 되었다. 하지만 1967년에는 이스라엘과의 6일 전쟁에서 골란 고원을 잃었고, 군의 통수자이자 정치적인 조언자였던 살라 알 자디드와 권력 투쟁을 벌이게 되었다. 1970년 11월 21일 권력을 장악하여 자디드와 정부 인사들을 체포하고 총리가 되었으며 1971년 대통령에 선출되어 3월 12일 취임하였다. 1973년 헌법을 개정하여 여성의 권리를 동등하게 하고 비 이슬람교도도 대통령이 될 수 있게 하였지만 후자는 무슬림 형제단의 압력으로 취소하게 되었다. 소련의 지원으로 군사를 구축하고 아랍 세계에서의 기부와 해외에서의 차관으로 이루어진 공공 업무로 공적인 지지를 얻었지만 반대파들을 체포, 고문 및 처형하는 방식으로 제거하여 1982년 하마에서 무슬림 형제단이 반동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하며 1만~25,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죽였다. 또한 국제 관계에서도 시리아를 아랍 세계의 중심으로 만드는 데 노력하여 1973년 10월 이스라엘과의 욤 키푸르 전쟁을 계기로 이집트와 다시 연대를 만들게 되었지만 이집트가 갑자기 적대 관계의 중지를 선언하여 시리아에게 군사적인 패배를 안기게 되었다. 또한 1976년에는 레바논에서 일어난 내전에 아랍 연맹의 지원을 받은 평화 유지군을 파견하였고, 이란-이라크 전쟁에서는 이란을 지지하는 한편 걸프전에서도 미국과의 반 이라크 동맹에 참여하였다. 1982~1985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하자 다시 통제권을 잡으며 레바논의 기독교인들에게 무슬림들의 동등한 지위에 관한 헌법 수용을 강요시켰으며 레바논과 시리아에 거점을 준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의 저항 세력들을 지원하였다. 1990년대 중반에는 이스라엘과 평화적인 관계의 수립을 모색하였으나 골란 고원의 반환에 대한 계속적인 문제가 난항이 되어 중지되었다, 2000년 6월 10일 레바논의 살림 알 호스 총리와 전화 통화 중에 심장마비로 사망하였고 3일 후에 장례식이 거행되어 고향인 카르다하의 묘에 아들로 1994년 교통 사고로 사망한 장남 바셀과 함께 묻혀 있다. 세속주의, 여권 신장, 민족주의에 있어 지지자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지만, 개인숭배 사상을 만들고 인권을 침해한 점에서 비난을 받기도 한다. 정치적인 책략에 뛰어나 '아랍의 비스마르크'라 불렸으며, 그의 뒤를 이어 차남 바샤르가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바샤르는 이스라엘에 반대하여 헤즈볼라와 하마스를 노골적으로 지원하여 시리아는 테러 지원국이 되었으며, 2011년 이래 반정부 시위에서도 무력 대응을 계속하여 국제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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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스페인의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1852-1926), 전차에 치어 세상 떠남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관광 명소 중 하나인 '카사밀라'는 가우디의 1910년 작품으로 지금도 주민들은 100년된 아파트에 자부심을 갖고 거주하고 있다.
1883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짓고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도 그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가우디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바르셀로나의 모든 사람이 울었다고 할 정도로 그는 바르셀로나의 주거 문화와 풍경을 바꾼, 그 도시 이미지를 만든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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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6.10 만세운동[병인만세사건(丙寅萬歲事件)이라고도 한다.]
1907년 헤이그 밀사사건 이후 일본은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을 등극시켰는데, 순종은 일본의 압력에 밀려 별다른 정치적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즉위 직후인 1907년 7월 일제는 이른바 한일신협약(정미 7조약)을 강제로 성립시켜 국정 전반을 일본인 통감이 간섭할 수 있도록 하였고, 정부 각부의 장관을 일본이 임명하는 이른바 차관 정치를 시작하였다. 이렇게 내정 간섭권을 획득한 일본은 곧 재정 부족을 이유로 한국 군대를 강제 해산시켰으며, 1909년 7월에는 기유각서(기유각서는 1907년 7월 12일 조선과 일본사이에 체결된 조약이다.이 조약은 조선의 사법권과 감옥사무를 일본에 넘겨준 것으로서 조선의 사법부와 재판소는 폐지되고, 그 사무는 조선통감부의 사법청이 맡게 되었다. 이 조약은 조선의 총리대신 이완용과 일본의 통감 소네 아라스케 사이에 맺어졌다.)에 의해 사법권마저 강탈해갔다.
그리고 친일 세력인 이완용, 송병준, 이용구 등으로 구성된 매국 단체인 일진회를 앞세워 조선인이 원함에 따라 조선과 일본이 합병한다는 논리로 1910년 8월 29일 일·한병합조약을 성립시킴으로써 대한제국은 멸망하고 말았다.
일본에 의해 대한제국이 무너지자 순종은 황제에서 왕으로 강등되었고 창덕궁에서 16년 동안 살다가 1926년 4월 25일에 53세를 일기로 한많은 생애를 마쳤다.
1926년 6월 10일, 이 날은 순종의 장례를 치르기로 한 날이었다. 그런데 이를 계기로 3·1만세운동 때처럼 만세 시위를 하려는 치밀한 계획이 학생들에 의해 사전에 준비되어 있었다.
사실 1920년대는 우리 민족에게는 힘든 시간이었다. 국내에서는 실력양성의 일환으로 추진된 민립대학설립운동이나 물산장려운동이 일제의 교묘한 문화정책에 말려 부진한 상태였고, 상해에 마련된 임시정부는 민족주의계와 사회주의계의 대립과 반목으로 힘을 하나로 결집하지 못한 채 표류하였으며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의 무장투쟁도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의 승리를 기점으로 반전되어 일제의 대대적인 토벌에 계속 밀리는 상태였다.
이렇듯 3·1운동 이후 움텄던 독립운동의 열기가 식어가는 상황에서 1920년대 분위기를 이끌었던 것은 학생이었다.
1926년 6월 10일 순종의 인산일(因山日)에 참가한 학생은 대략 24.000여 명. 이들은 돈화문에서 장지인 홍릉까지 도열하고 있다가 순종의 상여가 종로3가 단성사 앞을 지날 무렵인 오전 8시 30분쯤 중앙고보 학생들이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격문을 뿌리자, 이를 기화로 서울 각지에서 만세 시위와 함께 '일본제국주의 타도' '토지는 농민에게' '8시간 노동제 채택' '우리의 교육은 우리들 손에' 등의 구절이 들어 있는 격문을 뿌리기 시작하였다. 그 영향은 곧 전국으로 파급되어 순창·정주(定州)·군산·울산·평양·홍성·공주 등에서도 동맹휴학과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3·1운동 때 호되게 당했던 일제는 이날 전 경찰과 조선군사령부 휘하 일본군 5,000명을 동원해서 경비하고 있었는데 전국적으로 1,000여 명을 체포·투옥하였다.
이처럼 6·10만세운동은 학생들에 의해 독자적으로 계획되고 추진된 운동으로, 3·1운동 이후 침체되어 있던 민족운동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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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ㆍ10 민주화항쟁`
전두환 대통령의 5공 정권 마지막 해인 1987년은 연초부터 심상치 않았다. 2월의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조작사건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5공 정권은 `헌법 개정 논의를 금지한다`는 이른바 ‘4ㆍ13 호헌조치‘로 맞서 학생시위를 잠재우려 했으나 민심은 오히려 정권으로부터 멀어져갔다. 게다가 6월 9일 연세대생 이한열군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고 혼수상태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 군사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노여움이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1987년 6월 10일 오전 10시. 서울 잠실 체육관에서 민정당 전당대회가 열렸다. 그리고 이날 간선제 선거를 통해 5공화국 정권을 승계할 민정당 대통령 후보 노태우 대표가 선출됐다. 같은 시각 대회장 밖. 전국 22개 도시에서 ‘박종철군 고문살인 및 호헌철폐 규탄대회’가 열렸다. 국민들은 민정당이 노태우 대표를 후보로 선출해 간접선거 방식인 이른바 체육관선거로 정권을 연장하려는 데 거세게 저항했다. 서울의 시위대들 중 일부는 최루탄에 쫓기다 명동성당에 집결, 농성에 돌입했다.
6월 10일의 국민대회는 도시 중산층과 샐러리맨들까지 가세, 한국 현대사에 하나의 분수령을 이룬 ‘6월항쟁’을 이끌어냈다. ‘6ㆍ10 민주화항쟁’ 결과 집권당인 민정당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제반 민주화조치 시행을 국민들에게 약속한 8개항의 ‘6ㆍ29 선언`을 발표하게 되었으며 ’4ㆍ13 호헌조치‘ 또한 철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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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한국 최초 프로권투 세계챔피언 김기수씨 별세
한국 최초의 프로권투 세계챔피언 김기수(58)씨가 1997년 6월 10일 지병인 간암으로 별세했다. 김씨는 사망 10개월 전 간암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해왔다.
김씨는 한국 프로복싱사를 일궈내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였다. 그는 국내 프로복싱 사상 첫 세계챔피언이라는 명예를 얻었고 착실한 인생여정 속에 부를 쌓아 가장 성공한 체육인이라는 인상을 남긴 인물이었다.
그의 삶은 하나의 드라마였다. 태어나기 3일 전에 아버지가 사망해 유복자로 세상의 빛을 보았고 6ㆍ25때 월남, 이 사회의 밑바닥생활을 피할 수 없었다. 고교 2학년 때 동경아시안게임 웰터급서 우승하는 저력을 보인 그가 아마 때 남긴 기록은 87승 1패. 프로 데뷔 후 그는 동양챔피언을 거치며 착실히 전적을 쌓다가 1966년 6월 25일 벤베누티(이탈리아)에게 판정승을 거두며 WBA 주니어미들급 세계챔피언에 등정했다. 마징기(이탈리아)에게 챔피언자리를 내준 후 조용히 링에서 물러난 그는 링에서 얻어맞으며 번 돈을 헛되이 쓰지 않았다.
1960년대 말부터 명동서 챔피언다방을 운영하며 돈을 벌어 빌딩을 소유하는 등 탄탄한 재력을 축적했다. 그는 1996년 말 간암선고를 받기까지 골프 싱글수준을 유지하며 건강한 삶을 영위해왔다. 그러나 병마와의 마지막 승부에선 끝내 무너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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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67년 일본의 59대 천황(887~897) 우다 출생
1580년 루이스 바즈 데 카모엔스(Luis Vaz de Camoens), 포르투갈 시인 세상떠남
1654년 알레산드로 알가르디(Alessandro Algardi), 이탈리아 조각가 세상떠남
1682년 코네티컷 식민지의 뉴헤븐(New Haven) 부근에서, 미대륙에서 처음 공식적으로 기록된 토네이도(tornado) 발생.
1688년 제임스 프랜시스 에드워드 스튜어트(James Francis Edward Stuart), 영국 왕 제임스 2세의 아들(the Old Pretender)
1692년 '세일럼(Salem) 마녀 재판' 중 마녀로 몰린 브리짓 비숍(Bridget Bishop)의 교수형 집행. 메사추세츠 세일럼 마을에서 대대적으로 벌어진 이 마녀 사냥에서 브리짓 비숍을 시작으로 불과 7개월 사이에 남자 7명과 여자 13명이 마녀와 관련된 혐의로 처형되게 됨.
1706년 존 돌런드(John Dollond), 영국 광학자 출생
1819년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프랑스 화가 출생
1836년 앙드레 앙페르(Andre Ampere), 프랑스 물리학자 세상떠남
1840년 헨리 모튼 스탠리(Henry Morton Stanley), 미국 저널리스트, 탐험가 출생
1868년 미국의 제15대 대통령(1857-61 재임) 뷰캐넌 사망
1871년 (조선 고종 8) 신미양요(辛未洋擾)시 미군 강화도 초지진(草芝鎭) 점령.
1894년 동학군, 전주성에서 퇴거.
1898년 친위기병대 창설
1901년 중국의 손문, 일본으로 망명
1902년 시인 정지용 태어남
1903년 세르비아 군대 혁명
1907년 북경-파리간 최초의 장거리 자동차레이스 스타트
1907년 프랑스 류미엘 형제, 칼라사진방식을 발표
1907년 프랑스 일본 조약 조인(중국의 영토보전)
1909년 영국 기선 슬라보니아호 조난중 최초로 SOS발신
1914년 박용만(朴容萬), 하와이에서 대조선국민군단 조직
1914년 총독부, 각급학교에 교련과목 신설
1915년 사울 벨로우(Saul Bellow), 미국 소설가 출생
1915년 영국, 독일식민지 카메룬을 점령
1922년 주디 갈란드(Judy Garland), 미국 영화배우, 가수 출생
1923년 피에르 로티(Pierre Loti), 프랑스 소설가 세상떠남
1925년 일제 한국서 치안유지법 실시
1926년 6.10 만세운동. 조선 마지막 왕 순종의 국장일에 청년학생들이 서울에서 인쇄물 배포하고 독립 만세를 제창함
1926년 건축가 가우디 사망
1932년 장개석, 여산회의에서 제4차 소공전(掃共戰)을 결정
1934년 프레드릭 딜리어스(Frederick Delius), 영국 작곡가 세상떠남
1935년 미국 알코올 중독 방지회(Alcoholics Anonymous : A.A.) 설립.
1940년 노르웨이 독일에 항복
1940년 이탈리아, 영국,프랑스에 선전포고
1942년 체코의 리디체(Lidice)마을에서 독일군에 의한 대규모 학살이 자행, 마을 파괴. 나치군 장교 리하르트 하이드리히(Richard Heydrich)가 살해된 것에 대한 보복으로 마을 남자들이 몰살되고 여자들은 수용소로 끌려갔으며 마을 전체가 완전히 파괴됨.
1943년 미국에서 볼펜(ball-point pen)이 발명됨
1943년 코민테른 해산
1946년 이탈리아, 공화제 선언
1948년 국회법 국회 통과, 초대국회의장에 이승만 뽑힘
1949년 권농일 제정
1949년 노르웨이의 소설가 운세트 사망 - 1928년 노벨 문학상 수상
1950년 북한, 조만식선생과 간첩 김상용 교환 제의
1952년 거제도 포로수용소 폭동 진압
1957년 캐나다 총선거, 22년 만에 정권교체
1959년 잡지 `야화` 7월호. `하와이근성(根性)시비` 필화로 판금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법. 중앙정보부법 공포
1961년 농어촌 고리채 정리법 공포
1962년 10환을 1원으로…2차 화폐개혁
1967년 스펜서 트레이시(Spencer Tracey), 미국 영화배우 세상떠남
1967년 아랍과 이스라엘 사이의 3차 중동전쟁인 6일전쟁(The Six-Day War)이 종결되고 소련이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단절함.
1967년 서울대 법대생 6.8부정선거 규탄 데모
1969년 교황 바오로6세, 5세기만에 신교 연합체인 세계교회회의에 참석
1973년 북한, 휴전선에서 대남확성기방송 시작
1974년 닉슨, 중동5개국 순방 등정
1975년 남대문시장 화재 8백여점포 전소
1975년 박동명 사건
1976년 Lebanon 전투 재개.
1980년 종신형을 받고 수감 중이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가 옥중에서 쓴 글들이 출판됨
1982년 독일의 영화감독 파스빈더 사망
1982년 이라크, 대 이란전에 일방적 휴전 선언
1983년 중국항로, 한국비행구역 통과 허용 발표
1984년 미국 국방성 ICBM을 대기권 밖에서 파괴하는 실험성공 발표
1984년 미국 육군 요격기, 태평양 상공서 목표 미사일 격추
1984년 비구니 1천2백여명, 영화 비구니 제작 중지 요구
1984년 인도, 시크교 군인 무장 반란
1985년 이스라엘군 3년만에 레바논 철수완료
1987년 민정당 전당대회서 노태우 대표위원을 대통령후보로 선출
1987년 전두환 정부의 권위주의적 통치와 강압적인 통제에 대한 국민의 민주화 운동인 6월 항쟁 발발.
1989년 건설부, 일산 등 전국 22곳 738만평을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고시
1990년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에 당선
1991년 한국-루마니아, 뉴스교환협정 체결
1992년 IAEA 관계자, "북한이 대형 핵재처리 시설 건설", "핵무기 개발 곳곳 의혹" 밝혀.
1992년 아난 판야라춘, 태국 신임 총리에 선임
1993년 權寧海 국방부장관, 漣川 에비군훈련중 발생한(19명 사망) 폭발사고와 관련한 대국민 사과문 발표
1993년 북한, 동해안에서 사정거리 1,000km 미사일발사실험 실시
1994년 강택민(江澤民), "대북(對北)제재(制裁) 반대". 남-북한, 미국 IAEA 회담 제의.
1994년 옛 육군본부 위치에 전쟁기념관 개관
1994년 체코, 평양주재 대사관 폐쇄.
1995년 방미중인 이등휘(李登輝) 대만총통 "대-중 정상회담" 제의. 중국, 즉각 거부.
1996년 기아자동차 2인승 컨버터블 스포츠카 `엘란` 시판
1997년 공안당국,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 탈퇴 안하면 사법처리.
1997년 악명높은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즈(Khmer Rouge) 지도자 손 센(Son Sen)과 그의 가족들이 라이벌이었던 폴 포트(Pol Pot)측에 살해됨.
1997년 한국 최초 프로권투 세계챔피언 김기수씨 별세
1998년 국방부, 국민의 재산권행사 및 편익증진을 위해 전국 10개 지역 327만여坪의 군사시설 보호구역을 해제
1998년 제16회 프랑스월드컵 개막
1999년 북한 경비정 6척, 북방한계선(NLL) 침범
1999년 유고 연방군 코소보서 철군
2000년 하페즈 알 아사드(Hafez al-Assad), 시리아 대통령, 30년동안 통치 세상떠남
2003년 `전설의 섬` 이어도에 해양과학기지 완공
2003년 미국항공우주국(NASA) 화성탐사선 ‘스피릿(Spirit)’ 발사
2003년 한국기독교장로회 창립 50주년, 천안서 ‘새역사 희년대회’ 개최
2004년 식약청, ‘쓰레기 만두’ 제조업체 명단 발표
2004년 흑인 음악의 거장 레이 찰스 사망
2005년 한미 정상회담(한국시간 6월 11일) 워싱턴서 개최
2019년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