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첫 경기였던 체코와의 대결을 역전승으로 끝냄으로써
16년 만에 개막정에서 승리를 얻었습니다. 고산 지역이라는
어려움에도 이를 잘 극복하는 등 철저한 준비가 승리를 이끈
길이었네요. 20년 전의 우리 감독으로 지금은 자국의 속령인
'가장 작은 참가국'을 이끄는 그도 축하를 보냈는데, 그 팀은
'축구판 쿨러닝' 같은 재미있는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편
브라질은 개막전에서부터 자존심을 구길 뻔한 상황이었는데,
아프리카 최강국의 힘이 이 정도였네요!
[월드컵] 16년 만에 개막전 승리한 대한민국…홍명보 뚝심 빛났다
체코 상대로 2-1 역전승 거둬
이기혁 월드컵 데뷔전 맹활약
교체 투입 오현규 역전·결승골
▲ 한국 축구 대표팀 선수와 코칭스태프들이 11일(현지시간) 멕시코 사포판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1차전 체코와의 경기에서 2-1 역전승을 거둔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통쾌한 뒤집기 한판승. 16년 만의 월드컵 개막전 승리를 이끈 것은 홍명보 감독의 뚝심이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12일(한국 시간) 멕시코 자포판 에스타디오 아크론(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체코와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1차전에서 황인범의 동점골과 오현규의 역전골에 힘입어 2-1로 역전승을 거뒀다.
이날 승리로 홍명보호(1승·승점 3·득실 +1)는 득실 차에서 한 점을 앞선 멕시코(1승·승점 3·득실 +2)에 이어 A조 2위에 안착했다.
비록 선두 탈환에는 실패했지만 개막전 승리의 의미는 매우 크다. 이날 승리로 우리나라는 16년 만에 월드컵 개막전 승전고를 울리며 66.7%(3회 중 2회)의 토너먼트 진출 확률을 확보했다.
우리나라는 개막전을 승리했던 2002년 한국·일본 대회와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회에서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또한 이번 대회 본선은 32개 국가에서 48개 국가로 참가 규모가 확대되면서 각 조 1~2위는 물론 조 3위 중 상위 8개 국가까지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만큼 단 한 번의 승리는 조별리그 통과의 보증 수표로도 평가된다.
이런 성과에는 홍명보 감독의 뚝심이 뒷받침됐다. 홍명보 감독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평가전에서 크게 부침을 겪어왔고 김주성과 조유민 등 수비 자원들의 잇따른 부상에도 가변형 스리백의 안정화에 몰두했다.
▲ 11일(현지시간) 멕시코 사포판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1차전 한국과 체코의 경기. 후반 오현규가 역전골을 넣고 있다. 연합뉴스
이 결과 체코를 상대로 이기혁과 김민재, 이한범의 스리백을 가동해 실점을 최소화하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강원FC 소속으로 창단 18년 만에 처음으로 월드컵 무대에 나선 이기혁은 K리거로는 유일하게 선발로 낙점돼 데뷔전임에도 무결점 경기력을 과시했다.
이기혁은 수비뿐만 아니라 공격에서도 진가를 발휘했다. 주특기인 전진 패스로 체코의 공간을 공략했고, 황인범의 동점골 장면에서도 공을 받으러 내려오는 이강인과 호흡을 맞추며 시발점 역할을 했다. 또 이기혁은 58회의 패스를 찔러넣었고, 성공률은 94%에 달했다.
홍명보 감독의 용병술도 빛났다. 홍명보호는 가장 우려했던 상황인 세트피스에서 신장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며 라디슬라프 크레이치에게 선제 실점했다. 하지만 황인범의 동점골 직후 주장이자 에이스인 손흥민을 빼는 강수를 뒀고, 교체 투입된 오현규가 역전골 겸 결승골을 폭발시켰다.
홍명보 감독이 심혈을 기울였던 고지대 적응도 힘을 보탰다. 홍명보호는 지난달 18일부터 해발 1460m의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사전 캠프를 소화한 뒤 해발 1571m의 멕시코 과달라하라에 베이스 캠프를 차렸다. 미국 댈러스에서 경기 전날 이동한 체코가 체력 부담에 허덕였지만 홍명보호는 가벼운 컨디션을 보이며 경기 막판까지 집중력을 유지했다.
홍명보 감독은 이날 경기 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모두 하나 되자고 했는데 잘 이뤄졌다. 정말 축하할 만한 승리이자 감사한 일”이라며 “선수들이 만들어준 승리다. 선수들이 잘했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분명한 플랜을 가지고 있었다. 여러 상황에 대한 준비가 잘 되어 있었다”며 “고지대가 결과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다. 체코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고, 우리는 더 상대를 몰아쳤는데 고지대 훈련의 성과”라고 덧붙였다. 한규빈 기자
#승리 #홍명보 #월드컵 #개막전 #뚝심
고지대 적응, 의무팀 헌신, 손흥민 뺀 결단…삼박자 맞았다
한국, 체코 잡은 비결
고지대 적응 못한 체코에 체력 앞서
고열 겪던 오현규, 정상 컨디션 회복
'캡틴' 손흥민과 교체, 승부수 적중
[과달라하라(멕시코)=이데일리 스타in 허윤수 기자] 16년 만에 거둔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1차전 승리는 철저한 대비와 과감한 선택이 조화를 이룬 결과였다.
지난해 12월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조 추첨 결과가 나왔을 때 화두는 ‘고지대 적응’이었다. 축구 대표팀이 대회 조별리그 1, 2차전 경기 장소로 배정받은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은 해발 약 1570m에 있다. 한국으로 따지면 태백산(약 1567m)에서 축구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고지대에서는 공기가 부족해 체력적으로 더 빨리 지치고 근육 회복도 느려진다. 두통, 메스꺼움, 어지러움, 집중력 저하 증상도 나타난다. 공기 저항도 달라 공의 궤적에 변화가 생기고 패스와 슈팅이 평지보다 더 빠르고 멀리 날아간다.
대표팀은 경기 일정이 확정되자 빠르게 움직였다. 국내외 운동생리학 및 고지대 훈련 전문가, 대한축구협회 의무분과위원회와 수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그 결과 올해 1월 FIFA에 대회 베이스캠프 장소를 과달라하라로 신청했고 입성에 성공했다.
지난 2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유타주 헤리먼에 위치한 자이언스뱅크 트레이닝센터에서 축구 국가대표팀 손흥민 등 선수들이 몸을 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와 함께 고지대 적응을 위해 해발 약 1460m에 있는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사전 캠프를 계획했다. 다양한 후보지를 직접 방문해 실사했고, 스포츠과학 및 환경 적응 관련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했다.
대표팀은 지난달 18일(이하 한국시간)부터 약 보름간 사전 캠프에서 고지대 적응 훈련을 진행했다. 훈련 초반 선수들이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점차 고지대에 적응했다. 대표팀 의무팀은 하루 4차례에 걸쳐 선수 몸 상태를 점검하며 관리했다.
이렇듯 철저한 준비는 12일 열린 체코와 대회 조별리그 1차전 2-1 역전승의 원동력이 됐다. 고지대 적응 훈련 없이 경기 전날 과달라하라에 입성한 체코 선수들은 고지대라는 벽에 부딪혔다. 전반 중반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가 선언되자 허리를 숙인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양 팀의 차이는 체력 부담이 절정에 달하는 후반 중반 이후에 극명히 드러났다. 체코의 발걸음이 느려진 사이 한국은 후반 22분 황인범(페예노르트), 35분 오현규(베식타시)에게 연속골로 역전에 성공했다.
11일(현지시간) 멕시코 사포판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1차전 한국과 체코의 경기에서 오현규가 골을 터뜨린 후 환호하고 있다. 왼쪽은 도움을 준 황인범이 환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왼쪽부터)백정국 의무팀장과 송준섭 수석주치의. 사진=허윤수 기자
경기 후 홍 감독은 “체코가 체력이 떨어진 후반전에 우리가 상대를 더 공격적으로 몰아쳤다”며 “결과적으로 고지대가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고 승리 요인을 분석했다.
1골 1도움으로 체코전 경기 최우수선수로 선정된 황인범도 “상대 선수들이 힘들어하는 게 느낌이 아니라 눈으로 많이 보였다”며 “먼저 고지대에 적응한 게 상당한 이점으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축구 대표팀 수석주치의 송준섭 박사는 “고지대 증상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가 와도 또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공통적인 생리 현상”이라며 “공교롭게도 고지대 적응을 하지 않은 체코와 경기하다 보니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홍 감독과 코치진의 과감한 결단도 체코전 승리의 발판이 됐다. 1-1로 맞선 후반 24분 손흥민(로스앤젤레스FC) 대신 오현규를 교체 투입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손흥민은 비록 결정력에 아쉬움을 드러냈으나 활발한 움직임으로 슈팅 6개를 쏟아냈다.
11일(현지시간) 멕시코 사포판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A조 1차전 한국과 체코의 경기.
한국 오현규가 후반 팀의 두 번째 골을 넣은 뒤 김민재와 포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벤치의 판단은 적중했다. 힘과 속도를 갖춘 오현규가 투입 11분 만에 체코 골망을 가르며 믿음에 보답했다. 여기에 오현규가 경기 당일 설사 증세와 함께 열이 38도까지 올랐으나 의무팀의 적절한 대처로 정상에 가까운 컨디션을 되찾았다.
영국 매체 ‘BBC’의 패널로 활동하는 클린턴 모리슨은 “처음 손흥민을 교체할 때 좋은 판단이 아니라고 생각지만, 결과적으로 옳은 결정이었다”며 “이게 메이저 대회에서 감독이 큰돈을 받는 이유”라고 박수를 보냈다.
[단독] 한국 이끌었던 아드보카트 “한국의 훌륭한 시작, 진심으로 축하해”
이번 월드컵 인구 가장 적은 퀴라소 사령탑
79세로 최고령 감독이기도
딕 아드보카트 퀴라소 감독이 14일 독일과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E조 1차전 경기를 앞두고 기자회견에서 답변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6 북중미 월드컵에 나서는 48국 중 인구(15만명)가 가장 적은 퀴라소 대표팀을 이끄는 딕 아드보카트(79) 감독이 15일(한국 시각) 조별리그 E조 독일과의 첫 경기를 앞두고 “한국을 이끌고 월드컵에 나갈 때는 압박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잃을 게 없는 기분”이라며 “독일은 강력한 우승 후보이지만, 우리는 ‘짜증 나는 팀’이기 때문에 세상을 놀라게 하고 싶다”고 했다.
아드보카트는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한국 사령탑을 맡아 국내 팬들에겐 익숙한 감독이다. 당시 한국은 첫 경기 토고를 2대1로 이기고 대회 준우승을 차지한 프랑스를 상대로 1대1로 승점 챙기는 등 분전했지만, 마지막 스위스에게 0대2로 패배하며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아드보카트는 “한국 대표팀을 맡았을 때 정말 즐겁고 재밌게 일했던 기억이 있다”며 “한국이 이번 월드컵 첫 경기를 훌륭하게 시작한 건 잘 알고 있다. 한국 팬들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전한다”고 했다. 경기를 지켜봤냐는 질문에는 “퀴라소에 집중하느라 다른 경기를 다 보지는 못했다”면서도 “저희 팀 경기를 마치면 한국 경기도 챙겨보겠다”고 했다.
아드보카트는 조국 네덜란드를 이끌고 1994년 미국 월드컵에 나서 8강에 오른 경험이 있다. 그는 “제 커리어의 가장 중요한 시점이 바로 1994년 대회였다”며 “원래 요한 크루이프가 월드컵 본선을 이끌기로 했었는데, 제게 기회가 왔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미국 대회를 아름답게 기억한다”고 했다.
감독 경력만 45년이 넘는 베테랑 아드보카트는 이번 대회 최고령 감독이기도 하다. 그는 “독일의 율리안 나겔스만 감독은 제 나이까지 감독을 하진 않을 거라고 하더라”고 웃은 뒤, “저는 돈 때문이 아니라 축구가 좋아서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사령탑을 맡은 퀴라소는 FIFA 랭킹 82위로 대회 최약체 중 하나로 꼽힌다. 아드보카트는 “독일은 모든 포지션에 최고 선수들을 보유한 우승 후보”라면서도 “퀴라소가 이변을 일으켜 세계를 놀라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 선수들은 월드컵의 모든 단계를 즐기고 있고 들러리가 될 생각은 없다” 고 각오를 다졌다.
“영화 ‘쿨러닝’ 같다”... 낡은 버스 타고 월드컵 치르는 ‘인구 15만’ 퀴라소 국대
퀴라소 축구 국가대표팀이 탑승한 스쿨버스(왼쪽)와 버스에서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 인스타그램 캡쳐
북중미 월드컵 본선 무대를 처음 밟는 ‘축구 변방’ 퀴라소가 낡은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자국 축구대표팀 영상으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9일 소셜미디어(SNS)에 공개된 영상에서 퀴라소대표팀은 하늘색 스쿨버스를 타고 미국 플로리다의 훈련장으로 이동한다. 버스는 여기저기 칠이 벗겨졌고, 창문도 없다. 하지만 선수단은 마냥 흥겹다. 뒷좌석에 탄 선수들은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민 채 손으로 박자를 맞춰가며 노래를 흥얼거린다. 사령탑 딕 아드보카트 감독과 나머지 선수들도 표정이 밝다. 버스 상단에는 “SORRY, MI A JEGA(미안, 우리가 접수하러 왔다)”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해당 영상을 접한 네티즌들은 “영화 ‘쿨 러닝’ 속 장면들을 떠올리게 한다”며 뜨겁게 반응했다. 지난 1993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자메이카 봅슬레이대표팀의 실제 스토리를 바탕으로 제작했다. 네티즌들은 “열악한 환경을 딛고 긍정의 마음가짐으로 꿈에 다가선 자메이카 선수들처럼 퀴라소도 유쾌한 도전을 이어가길 바란다”면서 “퀴라소의 순수한 열정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댓글을 남겼다.
창문이 없는 스쿨버스에 탑승해 있는 퀴라소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왼쪽)와 딕 아드보카트 퀴라소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인스타그램 캡쳐
퀴라소는 카리브해의 소국이다. 인구는 약 15만6000명으로 의왕시나 안동시 수준이며 세종시와 엇비슷한 국토 면적(444㎢)은 본선 참가국 중 가장 적다. 빈곤층이 전체의 30%에 이를 정도로 생활 환경도 열악하다. 딱히 즐거울 일 없는 이 작은 나라를 월드컵 열풍이 집어 삼켰다. 지난해 11월 사상 처음 본선행 티켓을 거머쥔 이후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다.
미드필더 타히트 총(셰필드 유나이티드)은 국제축구연맹(FIFA)과의 인터뷰에서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 지은 지 반 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온 나라에 ‘잠 못 이루는 밤’이 이어진다”고 자국 분위기를 전했다. 수비수 리바노 코멘네시아(취리히) 또한 “축구는 언제나 11대11의 대결이다. 경기가 시작되면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말로 전의를 불태웠다. 퀴라소는 E조에서 독일, 에콰도르, 코트디부아르를 상대한다.
옛날 브라질 아니었다, 92년만에 개막전 질 뻔
14일 북중미 월드컵 C조 브라질-모로코전에서 관중석을 가득 메운 축구 팬들. 우승후보 브라질이 졸전 끝에 1-1로 비겼다. [AFP=연합뉴스]
“걱정스럽다. 더 나은 출발을 기대했다.”
브라질 축구대표팀이 60년 만에 선임한 외국인 사령탑인 카를로 안첼로티(이탈리아) 감독은 본선 첫 경기 직후 이렇게 말했다. 월드컵 역대 최다우승(5회)의 ‘영원한 우승후보’ 브라질(FIFA 랭킹 6위)이 안방이나 다름없는 무대에서 1934년 이후 92년 만에 개막전 패배의 벼랑 끝까지 몰렸다. ‘아프리카의 맹주’ 모로코(7위)를 상대로 졸전을 펼친 끝에 간신히 무승부를 거두며 자존심을 구겼다.
브라질은 14일(한국시간) 미국 뉴욕·뉴저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C조 1차전에서 모로코와 1-1로 비겼다. 초반 분위기는 모로코가 완전히 장악했다. 킥오프 후 단 10분 만에 슈팅 6개를 퍼부으며 기세를 올리더니, 전반 21분 이스마엘 사이바리(에인트호번)의 선제골로 먼저 환호했다. 브라질은 전반 31분 브루누 기마랑이스(뉴캐슬)의 패스를 받은 비니시우스 주니오르(레알 마드리드)의 동점골로 균형을 맞췄다.
영국 스카이스포츠는 “숫자가 모든 것을 말해 준다”며 전반전에만 모로코에 슈팅 12개를 허용하며 전술적으로 압도당한 기록을 지적했다. 미국 디 애슬레틱도 “안첼로티 감독이 후반 20분이 되기도 전에 교체 카드 5장 중 4장을 쓴 것은 경기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인정한 신호”라고 평가했다. 이어 “비니시우스의 개인기 외에는 득점 루트가 없었다”며 “브라질은 중앙 미드필더와 풀백 포지션의 세대 교체 및 육성 시스템이 정체됐음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혹평했다.
브라질은 독일·이탈리아와 함께 월드컵의 전통적인 절대 강자지만 최근 행보는 실망스럽다. 2002 한·일 월드컵 우승을 마지막으로 24년째 트로피를 추가하지 못하고 있다. 두 대회 연속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독일이나 3회 연속 본선 진출에 실패한 이탈리아만큼의 참사는 아니더라도, 브라질의 이름값에는 미치지 못하는 성적이다.
반면에 모로코는 2010년대부터 유소년 시스템을 전면 개편하고, 유럽에서 뛰는 자국 혈통·이중 국적 선수들을 적극 영입해 전력을 다져왔다. 카타르 대회 4강 신화와 2024 파리 올림픽 동메달에 이어, 이번 대회도 ‘황금 세대’를 앞세워 돌풍을 예고했다.
이날 경기의 진정한 스타는 18세 미드필더 아유브 부아디(릴)였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각 연령대 프랑스 대표팀을 거쳐 U-21 주장까지 맡았던 그는 대회 개막 한 달 전 모로코 유니폼을 입는 전격적인 선택을 했다. 첫 경기부터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한편 D조에서는 호주가 극단적인 수비 전술로 튀르키예의 슈팅 30개를 막아낸 뒤 두 번의 역습 기회를 모두 골로 연결해 2-0으로 이겼다. C조 스코틀랜드는 아이티를 1-0으로 꺾고 조 선두로 올라섰다. B조 스위스와 카타르는 1-1로 비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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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3년 화폐속의 인물 그리그( 노르웨이 : 500 Kroner) 태어남
에드바르 그리그(Edvard Grieg)
1843. 6.15~1907. 9. 4 노르웨이의 작곡가, 피아노 연주가.
베르겐 출생으로 당대 극작가 헨리크 입센과 함께 유명한 민족주의 예술인으로 손꼽힌다. 청년기에 독일에 유학하고 1869년 오슬로에 음악협회를 설립하여 1880년까지 지휘하다 이후 다시 베르겐으로 돌아와 작품 활동에 전념하다 사망하였다. 서정시인적인 음악가로 입센의 극에 곡을 붙인 '페르귄트'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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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0년 화폐속의 인물 바이페르트( 세르비아 : 1,000 Dinara ) 태어남
조르제(세르보크로아트어. 독일어로는 게오르그) 바이페르트(Đorđe Vajfert/Georg Weifert) 2006년 발행
1850. 6.15~1937. 1.12 세르비아의 독일계 실업가.
어릴 때 아버지 이그나츠와 베오그라드에서 세르비아 왕국 최초의 양조장에서 일하고, 뮌헨에서 수학한 뒤 세르비아로 돌아와 아버지의 양조장을 받아 확장하였다. 그 이익으로 코스톨라츠의 탄광을 매입하고, 보르의 동광 등에 이어 금광까지 매입하였다. 광업을 통하여 세르비아 최고의 갑부가 되고 미래 유고슬라비아의 최고의 실업가로 여겨졌다. 1890년 세르비아 국립은행의 총재가 되어 1902년까지 역임하고, 다시 1912년부터 1918년까지 역임하며 세르비아 디나르의 가치와 신뢰의 유지에서 호평을 받았다. 1918년에는 그의 좋은 근무 경력으로 유고슬라비아 국립은행의 총재가 되어 오스트로-헝가리 제국의 크로네화를 새로운 유고슬라비아 디나르로 개혁하였다. 그러나 과거의 세르비아 디나르가 1:1로 교환된 한편 크로네와는 4:1로 교환되게 함으로써 과거 오스트로-헝가리 제국에 살았던 유고슬라비아 인들에게는 큰 손해를 가져와 큰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베오그라드 대학교에 고대 주화들과 개인 도서관을 기증하였으며 탄생지인 판체보에 어머니를 기린 가톨릭 교회와 가톨릭 묘지를 만들었다. 1937년 1월 12일 오후 5시 20분 베오그라드의 자택에서 사망하였고, 판체보의 성당에서 장례식이 거행되어 15일 판체보 가톨릭 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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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년 화폐속의 인물 에미네스쿠( 루마니아 : 1,000 Lei ) 세상떠남
미하이 에미네스쿠(Mihai Eminescu)
1850. 1.15~1889. 6.15 루마니아의 시인, 소설가.
루마니아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이 있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1866년 처음으로 작가의 자질이 등장하였다. 1869년부터 1872년까지 빈에서 수학하는 동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통치 하의 루마니아인과 소수민족들의 처지에 관한 글을 가명으로 발표하였다. 1872년부터 1874년까지 베를린에서 수학하고 1874년부터 1877년까지 이아시의 중앙 도서관장으로 일하고 1877년 부크레슈티로 이사하여 1883년까지 신문 '팀풀(Timpul)'의 편집자를 역임하였다. 그 동안 많은 대표작들을 썼으나 과로로 건강이 악화하여 1889년 39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였다. 역사가 니콜라에 이오르가는 그를 현대 루마니아 언어의 대부로 평가하였으며, 그의 시들은 자연과 사랑에서 역사와 시평까지 수많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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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화폐속의 인물 비르켈란( 노르웨이 : 200 Kroner ) 세상떠남
크리스티안 비르켈란(Kristian Birkeland)
1867.12.13~1917. 6.15 노르웨이의 과학자.
18세에 첫 과학 논문을 작성하였고, 여러 탐사를 거쳐 고위도 지역의 자기장을 연구하여 오로라의 발생 이론을 확립하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과학적으로 수용되지 않았고, 그 밖에 심한 의심 증세로 고민하며 수면 유도 약물을 자주 사용한 결과, 도쿄 대학교의 동료를 방문하던 중 사망하였는데 수면 유도 약물을 의도적으로 과용하여 자살한 것으로도 여겨지고 있다. 그리고 1908년에 발표한 지자기장의 선에서의 전류의 흐름을 예견하고 이후 오로라의 형성을 확립한 것이 1967년 사실로 확립되면서 결국 이 전류를 '비르켈란 전류'로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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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화폐속의 인물 통발바예 ( 차드 : 5,000 Francs ) 태어남
프랑수아 통발바예(François Tombalbaye) 1974년 발행
1918. 6.15~1975. 4.13 차드의 교육가, 정치가.
사라 족으로 남부 지역에서 태어났으며 1959년부터 국가를 통치한 차드 진보당(PPT)의 당수가 되어 1960년 8월 11일 독립과 함께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독립과 함께 독재 체제를 구성하고 소요 사태에 따라 1963년에는 의회를 해산시키는 한편 국유화를 강력히 진행하였다. 한편 집권 기간 동안 아프리카화를 강력히 추구하는 한편 세금과 법률을 독단적으로 조정함으로써 정세의 불안은 계속되었다. 1971년에는 자유화를 계획하였으나 그 해 8월 리비아의 카다피의 지원을 받은 쿠데타 미수 사건으로 북부 지역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등으로 많은 정치인들이 체포되었고, 이와 함께 아랍권에 접근하게 되었다. 또한 아프리카화의 일원으로 수도 포르라미를 은자메나로 개명하였고, 자신도 이름을 프랑수아에서 응아르타(Ngarta)로 개명하는 한편 기독교를 박해하였다. 당시 아프리카는 극심한 한발을 겪고 있었고, 이에 따라 경제 회복의 명목으로 주민들을 강제적으로 면화 생산량 확대의 '자원 봉사'에 동원시켰으며, 그의 남부에의 지지가 줄어들자 군 인사의 발령을 자의적으로 단행하였다. 결국 몇몇 장교들이 쿠데타를 시도하다 체포된 후인 1975년 4월 13일 병사들이 그를 살해하였고, 이들은 펠릭스 말룸을 새 대통령으로 추대하였다. 한편 그의 초상이 도안된 10,000프랑(1971)과 5,000프랑(1974-위 지폐)은 그의 살해 후 급속히 회수되어 완전 폐지되기에 이르렀으며, 이에 따라 중앙 아프리카 지역에서 가장 희귀한 지폐들의 대열에 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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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화폐속의 인물 루이스( 동카리브 : 100 Dollars ) 세상떠남
아서 루이스 경(Sir Arthur Lewis)
1915. 1.23~1991. 6.15 세인트루시아의 경제학자.
그의 탄생 시대 세인트루시아 섬을 포함한 동카리브 지역은 영국의 식민지로, 이후 런던 대학교에서 수학하고 1938년부터 이 대학교에서 교육하였다. 1948년부터 1957년까지는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강의하고, 1957년 가나가 독립하자 첫 경제 조언자가 되어 1959년부터 1963년까지의 제 1차 5개년 개발 계획을 추진하였다. 1963년 작위를 받았으며, 프린스턴 대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자신이 과거 식민지였던 제 3세계인임을 잊지 않고 연구의 초점을 개발도상국의 빈곤과 경제 문제에 맞추었고, 그러한 공으로 1979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여 평화상을 제외한 노벨상의 모든 분야에서 최초로 수상한 흑인이 되었다. 1991년 바베이도스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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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한국은행 나 10,000원권 발행 [세종대왕 초상 / 경회루 (171 × 81mm 한국조폐공사) ]
***1993. 5. 12 발행중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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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500억원어치 中인민폐 위조 대만서 사기단 첫 적발
대만 위조지폐단들이 중국 인민폐 위조지폐를 무려 10억위안(1500억원)어치나 대량 제작하다가 적발됐다.
대만경찰은 “타이중(臺中)현 다리(大里)시에서 인민폐 위조단 9명을 구속하고, 정밀인쇄기 등 위조시설 일체와 10억여위안(1500억원)어치 상당의 위조 인민폐 용지 등을 증거로 확보했다”고 발표했다고 대만 언론들이 15일 보도했다. 경찰은 적발 당시 1억위안(150억원) 상당의 인민폐는 이미 인쇄가 절반쯤 진행됐고, 향후 인쇄할 용지 분량은 무려 10억위안이 넘었다고 설명했다.
위조 인민폐는 모두 100위안(1만5000원)짜리로 인민폐 중에서는 최고가 화폐다. 위조단들은 위조지폐 외에 토지대장과 신분증·면허증 등도 위조하는 중이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대만에서 이 같은 대규모 인민폐 위조지폐단이 적발되기는 처음이다. 중국시보는 “만일 위조지폐 모두가 중국 대륙으로 옮겨졌다면 족히 중국 경제를 전복시킬 수 있다”고 보도했다. 연합보 등 일부 대만 언론들은 “이들이 중국으로 위폐를 들여가 돈 세탁한 후 다시 마약 등을 구매해 중국 현지에서 팔거나 대만으로 밀수할 예정이었다”고 관측했다.
홍콩의 경우 올해부터 일반 백화점이나 상점들에서 홍콩달러화 대신 인민폐로도 쇼핑할 수 있는 등 최근 들어 인민폐 가치와 인기가 중화권에서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홍콩=李光會특파원 발행일 : 2003-06-16 A19 [국제] 기자/기고자 : 이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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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김대중전대통령의 방북과 함께 전격적으로 발표된 615공동선언문의 원문
1. 남북 공동 선언 전문/조선일보 : 입력 : 2000.06.15 19:47 40'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숭고한 뜻에 따라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6월 13일부터 6월15일까지 평양에서 역사적인 상봉을 하였으며 정상회담을 가졌다.
남북 정상들은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이번 상봉과 회담이 서로 이해를 증진시키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데 중대한 의의를 갖는다고 평가하고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2.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3.남과 북은 올해 8 ·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나가기로 하였다.
4.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 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나가기로 하였다.
5.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 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빠른 시일 안에 당국간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2000년 6월 15일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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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8년 무굴제국 아우랑제브 , 제위 계승 전쟁 승리
16세기 전반에서 19세기 중엽까지(1526∼1857) 인도 지역을 통치한 이슬람 왕조인 무굴제국은 시조 바부르가 카불을 점령하고,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1526년 인도에 침입, 델리 왕조인 로디조(1451~1526)의 이브라힘왕을 델리 북방의 파니파트전투에서 격파하고 여기에 무굴제국을 창시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3대 왕이 13세에 즉위한 악바르 황제이다. 그는 북인도에 지배력을 확보하게 되자 그 세력을 인도의 다른 지방까지 확대하였다.
1580년대에는 인도 북서부지방의 펀자브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카불까지도 군대를 파견하여 인더스강 하류 신드지방까지 정복하였다. 행정면에서도 악바르 황제는, 이슬람교도나 힌두교도 등 종파를 가리지 않고 능력에 따라 중용하였다. 악바르 황제의 사후 자항기르, 샤 자한, 아우랑제브로 이어져 이 시기는 무굴제국의 전성시대를 이루었다.
특히 제6대 아우랑제브는 데칸의 이슬람 여러 왕조를 정복하여 최대의 판도를 실현하였다.
아우랑제브는 제5대 황제 샤 자한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오랫동안 데칸 총독으로 있으면서 페르시아 출신의 무역상인 밀주믈라를 등용하여 자신의 세력을 키워나갔다. 1658년 부왕의 병(病)을 계기로 형제간에 제위 계승 문제로 전쟁이 발발하고 결국 1658년 6월 15일 최종 아우랑제브가 승리하였다. 이듬해 그는 부왕을 유폐시키고 제위에 올랐다.
17년 동안 14명의 아이를 낳고, 15번째 아이를 낳다가 1629년 사망한 부인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을 추모하여 아름다운 묘인 타지 마할 때문에 우리에게 친숙한 샤 자한은 결국 아들 때문에 왕위에서 물러나고 유폐당하였다. 아우랑제브는 아버지 샤 자한이 죽자 타지 마할에 합장해 주었다.
그러나 1707년 아우랑제브가 데칸고원의 원정 도중 죽자 제위 계승을 둘러싸고 분쟁이 일어나 무굴의 중앙 권력은 급속히 쇠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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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제3차 개헌(내각책임제) 통과, 제2공화국 출범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각책임제 개헌안에 대한 기명투표가 실시되고 있다.
1960년 6월 15일 국회 본회의에서 내각책임제를 골자로 한 제3차 개헌안이 출석의원 211명 중 찬성 208표, 반대 3표로 국회에서 통과, 같은 날 공포됐다. 우리나라 최초 의원내각제의 화려하고도 힘겨운 시작이었다.
같은 해 3월 15일 이승만의 영구집권을 위해 자행된 3ㆍ15부정선거로 국민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었다. 부정선거를 규탄하며 연일 계속된 시위가가 4ㆍ19혁명으로 걷잡을 수 없게 되자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 제1공화국이 막을 내렸다.
제3차 개헌안에는 헌법상의 명목적인 양원제를 실질적으로 채택하는 내용과 국민의 기본권 강화, 대법원장 및 대법관 선출, 경찰의 중립, 헌법재판소 설치 등을 골자로 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는 명실상부한 민주헌법이자 자유헌법이었다.
국회는 제2공화국 초대 대통령에 윤보선을 선출하고, 장면 국무총리를 인준했다. 제5대 국회는 부정선거 관련자 처벌법안, 반민주행위자 공민권 제한법안 등을 가결시켜 과거 부정척결의 노력을 보였으나, 여당인 민주당의 신ㆍ구파간 집권 분규와 대립, 원내교섭단체의 별도구성, 분당, 각종 데모의 속출로 정국 불안이 계속되다 이듬해 5월 16일 발생한 군사쿠데타로 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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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우리나라 두 번째 사제 최양업 신부 순직
우리나라 천주교의 두번째 한인사제이며 초기 전교활동에 크게 공헌했던 최양업 신부(1821~1861).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에 이어 두 번째로 사제 서품을 받은 최양업(1821∼1861) 신부가 경상도 지역 전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던 중 1861년 6월 15일 과로로 문경에서 순직했다. 시신은 제천의 배론성지에 묻혔다.
충청도 홍주 다락골의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836년 파리외방전교회의 모방 신부에 의해 김대건, 최방제와 함께 신학생으로 선발돼 중국으로 건너갔다. 마카오와 몽골에서 신학을 공부한 최양업이 상해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것은 1849년. 함께 떠났던 김대건보다 4년 뒤였다. 그러나 김대건(1821∼1846)이 짧고 치열하게 활동한 후 순교했기 때문에 최양업은 유일한 한국인 사제였다.
조선으로 돌아온 최양업은 전국 5개도에 흩어져 있던 127여개의 교우촌(공소)을 순회하며 12년 동안 지칠 줄 모르는 전교활동을 폈다. 극심한 핍박을 피해 신자들을 찾아다니던 최 신부는 결국 이날 식중독과 과로로 인한 장티푸스에 걸려 순직했다. 가톨릭에서는 김대건 신부를 `피의 증거자`로 칭하는 대신, 쉼없는 전교활동을 편 최 신부를 `땀의 증거자`로 부른다.
그는 또 한국천주교회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는 19통의 라틴어편지를 비롯해 순교자에 관한 자료수집, 성교요리문답 및 기도서 번역간행, 천주가사 저술 등의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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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8년 왕건, 고려 창건
0935년 (고려 태조 15) 견훤, 고려에 투항
1215년 영국 존 왕, 귀족들의 압력을 받고 대헌장(마그나 카르타) 승인
1330년 흑태자 에드워드(Edward, Black Prince), 잉글랜드 에드워드 3세의 왕자 출생
1381년 와트 타일러(Wat Tyler), 영국 농민반란. '와트 타일러'의 난의 지도자 세상 떠남
1389년 세르비아-오스만 제국간의 코소보 전투
1396년 조선 태조 5년 왜구, 전라도 진도 침구.
1416년 성 프란체스코 데 파올로(St Francesco de Paolo) 출생
1416년 요하네스 아기로폴로스(Joannes Argyropoulos), 그리스 학자 출생
1520년 교황 레오 10세(Pope Leo X),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에게 반성을 촉구하는 엑수르제 교서(the bull Exsurge)를 내림.
1605년 토머스 랜돌프(Thomas Randolph), 영국 시인, 극작가 출생
1658년 무굴제국 황제 아우랑제브(Aurangzeb), 제위 계승 전쟁에서 승리하고 아버지 샤(Shah) 황제 감금.
1672년 네덜란드, 프랑스군에게서 암스테르담을 구하기 위해 수문을 열어 물 방출.
1750년 마그리트 드 로네이(Marguerite De Launay), 프랑스 작가 세상 떠남
1752년 벤저민 프랭클린, 연으로 번개와 전기의 관계증명.
1819년 해왕성을 발견한 영국의 천문학자 애덤스 출생
1836년 아칸소(Arkansas), 미국의 25번째 주가 됨
1843년 노르웨이 민족음악파를 창시한 작곡가 에드바르트 그리그(Edvard Grieg) 출생
1846년 영국과 미국, 오레건 조약(Oregon Treaty)에 조인. 이 조약으로 영국과 미국이 오레건 지역을 두고 벌여온 오랜 분쟁 해결.
1849년 제임스 녹스 포크(James Knox Polk), 미국 11대 대통령 세상 떠남
1861년 우리나라 두 번째 사제 최양업 신부 순직
1864년 미국 남북전쟁 중, 피터즈버그 전투(Battle of Petersburg) 개전.
1869년 미국에서 셀룰로이드(Celluloid) 발명.
1883년 (조선 고종 20) 중국의 천진 공장 초빙, 삼청동 북창에서 병기제조
1888년 독일황제 빌헬름 2세 즉위.
1896년 지진/日 지진에 이은 해일로 사망 2만2000명
1902년 정신분석학자 에릭 에릭슨 출생
1904년 증기유람선 제너럴 슬로컴호, 뉴욕 이스트강에서 화재로 1021명
1907년 제2회 만국평화회의 개막(~10.18, 헤이그 특사사건 발생).
1909년 부통감 화이황조 통감에 임명
1911년 성균관을 폐지하고 경학원을 설치.
1911년 IBM의 전신 CTR사 설립
1914년 유리 안드로포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출생
1915년 멕시코 중앙정부 수립.
1915년 미국의 의학자 T웰러 출생-소아마비 병원바이러스 배양에 성공.
1917년 미국 방첩법 제정
1919년 영국 존 알코크와 아더 브라운, 최초의 대서양무착륙비행성공
1920년 제네바서 제2회 국제노동회의
1922년 온들(Oundle) 학교를 재조직한 영국의 교육학자 샌더슨 사망
1931년 UIR(국제연맹)방송국, 제네바에 라디오네이션 설치.
1934년 히틀러-무솔리니 첫 회담, 오스트리아 처리 논의
1939년 경부선 대전-서울간 복선화
1940년 탤런트 최불암(본명 최영한) 출생
1941년 에블린 언더힐(Evelyn Underhill), 영국 시인, 신비주의자 세상 떠남
1942년 아바나(쿠바) 승전연합대회, 대한민국 임시정부 승인.
1942년 알베르 카뮈, 소설 '이방인' 출판
1944년 태평양전쟁/미군, 사이판 상륙.
1945년 제1회 아시아 민족반공대회 진해에서 개최.
1946년 국군, 통신병과 창설
1946년 군정법령 제86호 공포에 의거 -국방부를 국내경비부(통위부)(The Department of InternalSecurity)로 개칭 그러나 남한의 군사관계자들은 그 명칭을 조선말기의 군제를 따라 국내경비부 대신 통위부(統衛部)라 하였다.
1946년 남조선국방경비대를 조선경비대로, 해방병단을 조선해안경비대로 개칭
1946년 조선경비사관학교 제1기 40명 임관
1947년 조선올림픽위원회 발족, 초대 위원장에 여운형
1948년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창간.
1949년 군인용담배 '화랑'제조
1949년 실업자 등록 실시.
1949년 해군 진해특설기지를 진해통제부로 개칭
1950년 국방부, 제1(부산), 제2(인천) 조병창 설치
1950년 육군 고등 군법회의, 여간첩 김수임에 사형선고.
1951년 콜롬비아 군대 500명, 유엔군으로 내한
1952년 시아누크공, 캄보디아 정권 장악
1954년 아시아 민족반공연맹 창설
1954년 제네바 회담에서 참전 16개국 공동 성명.
1959년 미국 정찰기 동해서 소련기에 피격
1960년 내각책임제 개헌안 국회 통과, 즉일 공포
1960년 일본 전학련 국회 난입
1960년 허정 제6대 국무총리 취임
1962년 한국-파라과이, 국교수립
1977년 스페인 41년 만에 총선거, 민주중도연합이 승리
1977년 월성(月城) 원자력발선소 1호기 착공.
1977년 주한미군 이네스트존 미사일 대대 해체
1983년 국립중앙박물관이전 개축공사. 구 중앙청서 기공
1983년 한국형다목적 경비함진수
1984년 한국-포르투갈 정상회담
1992년 일본, PKO 법안 통과.
1993년 Bosnia 휴전협정 조인.
1994년 미국 전 대통령 지미 카터(Jimmy Carter), 핵 시찰을 거부한 북한 방문.
1996년 버스카드제 실시
1997년 화학무기 금지기구(OPEW)의 국제시찰단에 이인식 육군 소령 임명.
1998년 임진강 통일대교 개통식. (편도(片道) 3차선)
1999년 서해상에서 남북(해군)간 교전발생
2001년 동충하초서 항암물질 분리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