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전의 그날입니다! 조별리그 1차전이 모두 마무리된 가운데, 이제 우리도
2차전으로 홈 팀의 하나인 멕시코를 상대하네요. 상대 승리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이 결과가 앞으로 '토너먼트 꽃길'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이
결전을 지나칠 수 없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중반부까지 아시아가
돌풍이었던 것은 처녀 출전국 2곳과 장기 결장국인 이라크가
후반부에 등장하면서 패배를 기록, 기세가 꺾였네요. 그리고
해트트릭의 자존심을 건 '메호 대전'에서 호날두는 경신은 커녕
한 골도 넣지 못하며 52년 만에 재진출한 콩고민주공화국에게
1:1 무승부에 그쳤고 이것마저 24년 전 우리에게 패한 그때의
수준의 악몽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우즈베키스탄은 월드컵
사상 첫 상대로 콜롬비아에게 패하게 되었지만, 그럼애도
감독은 '졌잘싸;라는 격려를 내보냈네요.
'멕시코전에 달렸다' 韓 32강 상대, 조3위 약체? 캐나다? 아니면 일본·독일·벨기에?
손흥민이 18일(한국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치바스 베르데 바예에서 러닝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
/자료=FIFA
운명의 일전이 다가왔다.
한국 축구 대표팀이 오는 19일 오전 10시(한국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사포판의 에스타디오 아크론에서 홈팀 멕시코와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2차전을 치른다.
한국과 멕시코는 앞서 1차전에서 체코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각각 2-1과 2-0으로 꺾었다. 승점 3점씩을 챙긴 두 나라는 32강 토너먼트 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이번 대회는 12개 조의 1, 2위 24개 팀과 조 3위 12개 팀 중 승점, 골득실, 다득점 순으로 성적이 좋은 8개 팀이 32강에 오른다.
한국-멕시코전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이 경기의 승자가 최종적으로 A조 1위를 차지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2차전도 승리해 승점 6점을 쌓을 경우 남은 경기에서 비기기만 해도 조 1위를 확정할 수 있다. 반면 패한다면 조 1위는 어려워질 뿐 아니라 자칫하면 조 3위로 밀려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 결과. /사진=폭스스포츠 SNS 캡처
이날 멕시코전을 마치면 한국의 32강전 상대팀 윤곽도 드러날 전망이다. 각 팀은 조별리그 순위에 따라 토너먼트 대진이 크게 달라진다.
먼저 A조 1위를 할 경우 C, E, F, H, I조 3위 팀 중 하나와 7월 1일 오전 10시에 32강전을 치른다. 조 3위 팀이므로 상대적으로 약체와 만나게 되는 셈이다.
C조에는 스코틀랜드와 브라질, 모로코, 아이티가 속해 있다. 현재 스코틀랜드가 1승을 챙겼고, 브라질과 모로코는 1-1로 비겼다. 객관적인 전력상 조 3위는 모로코가 유력해 보인다. E조에선 독일과 코트디부아르가 1승씩을 거둔 가운데 퀴라소보다는 에콰도르가 조 3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F조는 '죽음의 조'라 불릴 만큼 순위 예측이 어렵다. 스웨덴이 1승, 일본과 네덜란드는 1무, 튀니지는 1패를 기록 중이다. 만약 한국이 A조 1위에 오르고 일본이 F조 3위로 밀린다면 32강전에서 월드컵 본선 사상 최초 '한일전'이 성사될 수도 있다.
H조에선 우루과이와 사우디아라비아, 스페인, 카보베르데 제도가 1차전을 모두 비겼다. I조는 노르웨이와 프랑스가 첫 승을 신고한 가운데 세네갈과 이라크의 3위 싸움이 예상된다.
멕시코 선수들이 지난 12일(한국시간) 남아공과 개막전에서 선제골을 넣은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한국이 A조 2위를 한다면 B조 2위 팀과 오는 29일 오전 4시 32강 맞대결을 펼친다. B조에는 스위스와 캐나다, 카타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경합 중인데 1차전에선 모두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유럽의 스위스 또는 개최국 이점을 지닌 캐나다가 조 1, 2위를 다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만일 A조 3위로 밀린다면 가까스로 토너먼트에 진출하더라도 첫 판부터 막강한 상대를 피할 수 없다. E조 1위와 만난다면 30일 오전 5시 30분에, G조 1위와 맞붙는다면 7월 2일 오전 5시에 32강전을 치른다.
E조에선 전통의 강호 독일의 조 1위가 유력하다. G조에서는 벨기에와 뉴질랜드, 이란, 이집트가 모두 1차전을 비겼으나 이변이 없는 한 조 1위는 벨기에가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홍명보 대표팀 감독이 18일(한국시간)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
결국 한국은 A조 1위일 경우 32강전에서 비교적 수월한 상대를 만날 수 있으나 2, 3위를 한다면 난적 또는 우승 후보와 대결을 치러야 한다. 어떤 시나리오를 마주하게 될지가 이번 멕시코전에 달려 있는 셈이다.
홍명보 대표팀 감독은 경기를 하루 앞둔 18일 공식 기자회견에서 "체코와 멕시코는 전혀 다른 팀이다. 선수들과도 공유했다"며 "멕시코 선수들은 기량이 좋다. 미드필더진은 창의적이다. 그러나 우리 선수들이 충분히 준비했다고 믿기에 걱정은 없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韓·호주만 이겼다' 급격히 꺾인 아시아 기세, 월드컵 1차전 '2승 4무 3패' 합작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 종료 후 조별리그 순위. 아시아에서는 A조 대한민국과 D조 호주만 승리했고, 나머지 팀들은 4무 3패에 그쳤다. /사진=폭스스포츠 SNS 캡처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초반 주목을 받았던 아시아 팀들의 기세가 6경기 무패 뒤 3연패 흐름으로 끝났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승리를 거둔 아시아 팀은 대한민국과 호주, 단 두 팀뿐이었다.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는 18일(한국시간) 멕시코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과 콜롬비아의 대회 조별리그 K조를 끝으로 12개 조 조별리그 1차전을 모두 마쳤다. 이번 대회는 48개국이 12개 조로 나뉘어 조별리그를 치른다.
대회 중반만 하더라도 아시아 팀들의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이 스타트를 끊었다. 지난 12일 조별리그 A조 1차전에서 체코에 2-1 역전승을 거뒀다. 이어 카타르가 스위스와 1-1로 비기고, 호주는 튀르키예를 2-0으로 완파했다. 일본도 우승후보 네덜란드를 상대로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뿐만 아니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남미 강호 우루과이와 1-1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고, 이란 역시 뉴질랜드에 번번이 리드를 빼앗기면서도 기어코 동점을 만들며 2-2로 비겼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시아 팀들의 성적은 2승 4무. 6개 팀이 연속으로 '무패'를 합작했다.
아시아 팀들의 강세에 전 세계도 주목했다. 특히 한국부터 일본까지는 모두 유럽팀을 상대로 거둔 무패기록이어서 주목도가 더 컸다. 주요 외신들은 물론 FIFA도 공식 채널을 통해 아시아축구연맹(AFC)에 속한 팀들의 무패 기록을 조명했다. 아시아 축구의 저력이 이번 북중미 월드컵을 통해 어디까지 발휘될지 관심이 쏠렸다.
지난 16일까지 한국의 체코전 승리로 2승 4무로 무패행진을 이어가던 아시아팀들의 강세. /사진=DAMZ SNS 캡처
그러나 아시아 팀들의 기세는 17일부터 급격하게 꺾였다. 이라크는 노르웨이에 1-4로 대패했고, 요르단 역시 오스트리아에 1-3으로 졌다. 아시아팀들 가운데 가장 마지막으로 경기에 나선 우즈베키스탄 역시 역상적인 월드컵 첫 골에 만족했을 뿐 콜롬비아에 1-3으로 완패하며 잇따라 세계의 벽을 실감했다. 이로써 아시아 팀들의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 성적은 2승 4무 3패로 마무리됐다. 승리를 거둔 팀은 한국과 호주뿐이었다.
이제 각 팀들은 본격적인 조별리그 순위 경쟁에 돌입한다. 2차전부터는 각 조 상황에 따라 32강 진출을 조기에 확정할 수도 있다. 조별리그 2차전은 카타르가 19일 오전 7시 캐나다와 격돌해 아시아 팀들의 서막을 올린다. 이어 19일 오전 10시, 멕시코 사포판의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과 개최국 멕시코의 A조 2차전 맞대결이 펼쳐진다.
이어 이튿날 호주가 미국과 격돌하고, 21일엔 일본이 튀니지, 22일엔 사우디아라비아와 스페인, 이란과 벨기에가 차례로 맞대결을 펼친다. 또 23일엔 이라크가 프랑스를, 요르단은 알제리와 각각 만나고, 24일 우즈베키스탄이 포르투갈과 상대하는 것으로 아시아 팀들의 조별리그 2차전 여정을 마무리한다. 이번 대회는 각 조 1위와 2위가 32강 토너먼트에 직행한다. 12개 조 3위 중 성적이 좋은 상위 8개 팀도 토너먼트에 오른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2026 북중미월드컵 A조 예선 멕시코전을 하루 앞두고 17일 멕시코 과달라하라 치바스 베르데 바예에서 훈련을 진행했다. 홍명보 감독이 상념에 잠긴 채 선수들의 훈련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
2026 북중미월드컵 A조 예선 대한민국-체코전이 12일(한국 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에스타디오 아크론에서 열렸다. 이강인을 비롯한 태극전사들이 체코에 2-1로 승리한 후 그라운드를 돌며 응원단과 소통하고 있다. /사진=김진경 대기자
[월드컵] '호날두 침묵' 포르투갈, 콩고민주공화국과 1-1 무승부
북중미 월드컵에서 포르투갈이 호날두의 골 침묵 속에 콩고민주공화국과 무승부를 기록했습니다.
포르투갈은 미국 휴스턴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콩고민주공화국과의 조별리그 K조 1차전에서 전반 6분 네베스의 골로 앞서갔지만 전반 추가시간 위사에게 동점골을 내줬고 이후 추가 득점에 실패하며 1대 1로 경기를 마쳤습니다.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선발 출전해 6회 연속 월드컵 무대를 밟은 호날두는 풀타임을 소화했지만 유효슈팅을 기록하진 못했습니다.
‘치욕의 1-1 무’ 포르투갈은 대한민국을 떠올렸다…“2002 월드컵 한국전 패배 이후 최초 굴욕적 기록”
[포포투=박진우]
포르투갈은 2002 한일 월드컵 한국전 패배 악몽이 떠올랐을 것이다.
포르투갈은 18일 오전 2시(한국시간) 미국 휴스턴에 위치한 휴스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K조 1차전에서 콩고민주공화국과 1-1 무승부를 거뒀다.
포르투갈에게 ‘악몽’으로 남은 경기였다. 약체로 분류되던 콩고민주공화국이었지만, 포르투갈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비롯해 브루노 페르난데스, 베르나르두 실바, 페드루 네투 등 초호화 선발 라인업을 내세우며 총력전을 예고했다.
시작만 좋았다. 전반 6분 좌측면에서 네투가 왼발로 올린 크로스를 문전으로 쇄도하던 주앙 네베스가 타점 높은 헤더로 돌려 놓으며 골망을 흔들었다. 포르투갈은 일찍이 1-0 리드를 잡았지만, 이후 짜임새 있는 수비를 보여주던 콩고민주공화국을 상대로 제대로 된 슈팅조차 때리지 못하며 고전했다.
결국 균형을 내주며 전반을 마무리해야 했다. 전반 추가시간 5분 코너킥 상황, 마쉬아퀴가 올린 크로스를 ‘에이스’ 위사가 헤더로 연결하며 골망을 열었다. 포르투갈은 이른 시간 터진 선제골로 리드를 잡았음에도 우위를 살리지 못하는 아쉬운 경기력으로 전반을 1-1로 마무리했다.
후반에는 ‘캡틴’ 호날두의 부진이 가시화됐다. 전반 내내 한 번도 슈팅을 시도하지 못했던 호날두는 후반 들어서며 결정적인 기회를 두 차례 맞이했다. 후반 23분과 후반 26분, 모두 우측면을 허문 프란시스코 콘세이상의 완벽한 컷백 크로스로 인해 찾아온 기회였다. 비슷한 두 장면에서 호날두는 제대로 된 슈팅 임팩트를 가져가지 못하며 절호의 기회를 날렸다.
포르투갈은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결과는 1-1 무승부였다. 포르투갈은 콜롬비아, 우즈베키스탄, 콩고민주공화국으로 구성된 K조에서 가장 유력한 32강 진출 후보로 평가 받았지만, 이날 무승부로 남은 조별리그 2경기에서 최대한 많은 승점을 쌓아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콩고민주공화국전 경기력이 얼마나 좋지 않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 있었다. 이날 포르투갈은 전반 45분간 무려 80%에 달하는 점유율을 기록하면서도, 슈팅을 고작 2개 밖에 시도하지 못했다. 축구 통계 매체 ‘풋몹’은 해당 기록을 조명했다.
매체는 “포르투갈은 전반에 단 두 차례 슈팅만을 기록했다. 이는 월드컵 역사상 포르투갈의 전반전 슈팅 개수 기준, 두 번째로 적은 기록이다. 포르투갈이 월드컵 역사상 전반전에 이보다 적은 슈팅을 기록한 건 2002 한일 월드컵 한국전 당시 단 한 차례 슈팅에 그쳤던 경기가 유일하다”고 짚었다. 당시 박지성의 환상적인 결승골에 무너지며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아픈 기억을 떠올린 포르투갈이다.
콜롬비아에 패하고도 우즈벡 선수들 감싼 칸나바로 감독 “오늘 경기력이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해줬다”
파비오 칸나바로 우즈베키스탄 축구대표팀 감독. 멕시코시티 | AFP연합뉴스
“선수들에게 오늘 경기력이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역사적인 월드컵 데뷔전에서 아쉽게 패한 우즈베키스탄 축구 대표팀의 파비오 칸나바로 감독이 선수들이 보여준 투지와 경기 내용에 만족한다고 했다.
우즈베키스탄은 18일 멕시코의 멕시코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콜롬비아와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K조 1차전에서 1-3으로 패했다.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오른 우즈베키스탄은 이날 남미의 강호 콜롬비아를 상대로 한 때 동점을 만들며 승점 획득에 대한 희망을 가졌으나, 결국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비록 결과는 패배지만, 칸나바로 감독은 선수들의 경기력에 만족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칸나바로 감독은 경기 후 “선수들에게 오늘 경기력이 정말 자랑스럽다는 얘기를 해줬다. 내가 본 경기 내용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멕시코에서 경기했지만 경기장 분위기는 마치 콜롬비아에서 뛰는 것 같았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콜롬비아 팬들 속에서 싸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동점골을 넣은 아보스베크 파이줄라예프와 기뻐하는 파비오 칸나바로 우즈베키스탄 축구대표팀 감독. 멕시코시티 | AP연합뉴스
이날 경기는 월드컵 데뷔전이었던 우즈베키스탄 선수들, 그리고 감독으로 처음으로 월드컵 무대를 밟는 칸나바로 감독에게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칸나바로 감독은 “이곳에서 경기하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평생 기억하게 될 순간”이라며 “우리 선수들은 처음으로 멕시코시티 스타디움에서 뛰었다. 이 경험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같은 작은 팀이 오늘처럼 경기를 잘 했는데 1-3이라는 결과는 너무 가혹하다”고 강조했다.
칸나바로 감독은 우즈베키스탄이 앞으로 더욱 성장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계속 발전해야 한다. 나는 선수들에게 항상 경기에서 끝까지 살아남으라고 말한다”며 “콜롬비아나 다음 상대인 포르투갈 같은 팀을 상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 “오늘 우리 선수들은 언제 버텨야 하는지, 언제 공을 소유해야 하는지, 언제 좌우로 전황해야 하는지를 잘 이해했다. 특히 후반전 경기력은 매우 좋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다만, “이런 수준에서는 작은 실수 하나에 큰 대가를 치른다”고도 했다.
작전을 지시하는 파비오 칸나바로 우즈베키스탄 축구대표팀 감독. 멕시코시티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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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한국은행 마10000원권(161x76mm,세종대왕,경회루) 발행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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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3년 화폐속의 인물 (프랑스:500franc) 파스칼 출생
1968년 발행/ 파스칼(Pascal, Blaise) /1623. 6. 19 ∼ 1662. 8. 19
프랑스의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종교사상가.
오베르뉴 지방의 클레르몽페랑 출생. 3세 때 어머니와 사별하고 소년시절에 아버지를 따라 파리로 왔다. 학교교육은 받지 않았으나 독학으로 유클리드기하학(幾何學)을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16세에 《원뿔곡선 시론(試論)》을 발표하여 당시의 수학자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사영기하학(射影幾何學)에서 나오는 《파스칼의 정리》는 이 시론에 포함되어 있다. 1604년 아버지와 함께 루앙으로 옮겨, 세무장관이던 아버지가 하는 일의 능률을 높이기 위하여 계산기를 고안, 시작(試作)하였다.
루앙에 있을 때 얀센주의의 신앙혁신운동(信仰革新運動)에 접하여 최초의 회심을 경험하였으며, 같은 시기에 토리첼리의 실험을 행한 이래, 진공(眞空)에 관한 문제, 유체정역학(流體靜力學)에 관한 문제에 흥미를 가졌고, 마침내 《진공에 관한 신실험(新實驗)》을 발표하였다. 1647년 질병의 진단을 받기 위해 파리로 돌아와, 그 무렵 귀국 중에 있던 R.데카르트의 방문으로 서로 만나게 되었다. 이듬해 처남 페리에에게 부탁한 퓌드돔 산정(山頂)의 실험에 의해 대기의 압력을 확인하였다.
1651년 아버지가 죽은 후 여동생 자클린이 포르 루아얄 수도원으로 들어간 것과는 달리, 파스칼은 로아네스공(公), 슈발리에 드 메레 등과 친교를 맺고 사교계에 뛰어들어 인생의 기쁨을 추구하였다. 노름에서 딴 돈을 공정하게 분배해주는 문제에서 확률론을 창안하여, 《수삼각형론(數三角形論)》 및 그 《부대논문(附帶論文)》을 썼다. 파스칼은 이 논문으로 수학적귀납법의 훌륭한 전형(典型)을 구성하였으며, 수의 순열 ·조합 ·확률과 이항식(二項式)에 대한 수삼각형의 응용을 설명하였다. 또 물리실험의 결과를 《유체의 평형》 《대기의 무게》라는 두 논문으로 정리하였다. 초등 물리학에서 나오는 ‘파스칼의 원리’는 《유체의 평형》 속에 포함되어 있다.
1654년 여름부터 사교계에 대한 혐오감이 점점 싹텄고, 11월 23일 깊은 밤, 결정적인 회심의 환희를 체험하고 포르 루아얄 수도원의 객원(客員)이 되었다. 이 점은 수녀인 여동생 자클린에게서 입은 감화가 컸다고 한다. 《죄인의 회심에 대하여》 《초기의 그리스도 신자와 오늘의 그리스도 신자의 비교》 《요약(要約) 예수 그리스도전》 등의 소품은 바로 그 무렵의 저작이다. 또 포르 루아얄 데샹에서는 《드 사시씨(氏)와의 대화》를 남겼다.
당시 프랑스의 가톨릭교회 내에서는 정치적 주도권을 쥐고 있던 예수회와 포르 루아얄에 모인 얀센파 사이에 신학상의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는데, 파스칼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논쟁에 말려들었다. 그는 《시골 친구에게 부치는 편지(프로뱅시알)》라는 제목의 서한체(書翰體)의 글을 익명으로 속속 간행하여 예수회 신학의 기만을 폭로하는 한편, 그 오만불손한 윤리를 공격하였다. 1656년 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18편의 서한문을 발표하였다. 파스칼은 이 서한문에서 구사한 경쾌하고 솔직한 표현에 의해 프랑스어에 새로운 문체(文體)를 도입한 결과가 되었다.
1658년 우연한 동기에서 사이클로이드 문제를 해결하고 적분법(積分法)을 창안해 냈다. 《사이클로이드의 역사》 《삼선형론(三線形論)》 《사분원(四分圓)의 사인론[正弦論]》 《원호론(圓弧論)》 《사이클로이드 일반론》 등 일련의 수학논문 속에 그 이론이 나타나 있다. 그 외에도 《기하학적 정신에 대하여》 《설득술(說得術)에 대하여》 《질병의 선용(善用)을 신에게 비는 기도》 등의 소품을 쓴 것도 그 무렵의 일이다. 《그리스도교의 변증론(辨證論)》을 집필하기 위하여, 단편적(斷片的)인 초고를 쓰기 시작하였으나 병고로 인하여 완성하지 못한 채, 39세로 생애를 마쳤다. 사망 후 그의 근친과 포르 루아얄의 친우들이 그 초고를 정리 ·간행하였는데, 이것이 《팡세 Penses》의 초판본(167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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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4년 화폐속의 인물 아르티가스( 우루과이 ) 태어남
호세 헤르바시오 아르티가스(José Gervasio Artigas)
1764. 6.19~1850. 9.23 우루과이의 독립운동가.
조부모는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서 싸우다 가난으로 인하여 신대륙으로 건너와 1716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정착하였고, 어머니는 부유한 계층 출신으로 몬테비데오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산 베르나디오 학교에서 종교를 배우게 하였으나 어려운 훈련을 이유로 그만두었고, 그 전에 만난 친구 페르난도 오토르게스의 가족 농장에서 12세 때부터 일하게 되며 그곳에서 가우초의 생활을 접하게 되어 큰 인상을 받게 되었다. 1796년 영국과 스페인 간의 전쟁이 발생하자 다음해 군에 입대하여 1806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침공 때 참전하였지만 2차 공격으로 몬테비데오 포위 작전 때 체포되었다가 탈출하였고 가우초들을 모아 침략자들과 싸웠고 영국군은 두 차례의 부에노스아이레스 포위 작전을 실패하고 몬테비데오도 스페인에 반납하게 되어 1809년 지휘관이 되었다. 스페인 본토에서는 반도 전쟁이 일어나고, 계몽 사상이 발전하게 되며 페르난도 7세가 없는 스페인 제국이 격동의 시대를 맞자 1810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5월 혁명을 맞게 되었다. 이 때 스페인이 몬테비데오를 새로운 수도로 하게 되자 1811년 스페인 세력에 대항하는 부대를 조직하여 여러 마을들을 포위하고 몬테비데오를 포위하였다. 1814년에는'자유인 조직'을 만들어 그 보호자가 되었고 다음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단일정부주의자들로부터 몬테비데오를 독립시켰다. 같은 해 스페인으로부터 '동부 주'들의 독립을 선언하여 '연합 조직'을 만들었고, 1816년 마누엘 벨그라노가 만든 기(이후 아르헨티나의 국기가 됨)의 사용을 인가하며 아르헨티나의 연방주의를 상징하는 붉은 대각선 줄을 넣었다. 이 연합의 성장은 연방주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와 공화주의의 포르투갈을 놀라게 하였고, 결국 1816년 8월 포르투갈이(부에노스아이레스와의 무언의 공모로) 아르티가스의 혁명군을 제거하기 위하여 동부 주를 침략하였다. 결국 1817년 1월 20일 카를루스 레코르의 포르투갈군은 그를 체포하고 몬테비데오도 점령하였으나 지방에서는 싸움이 3년 동안 계속되었고 포르투갈로부터의 패배 시기 부에노스아이레스와의 전쟁을 선언하였다. 연방의 조합원인 부하들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중앙집권주의에 대항하였으나 새로운 국가 성립의 계획은 오래 가지 못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필라르 조약을 맺게 되어 아르티가스에 대한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고 결국 그는 포르투갈에게 패하게 되었다. 결국 1820년 9월 그는 파라과이로 도주하였으나 독재자 프란시아는 그를 칸델라리아에 유폐시켰고 그곳에서 오랜 망명 생활을 하다 30년 후인 1850년 세상을 떠났으며 그가 없는 우루과이는 1830년 브라질로부터 독립을 이루었다. 그는 가우초로서 자신의 죽음이 다가오자 말 안장 위에서 죽음을 맞았다고 하며 유해는 1855년 우루과이로 이장된 후 1977년 6월 19일 몬테비데오의 영묘에 이장되었다. 군주제를 반대한 그는 우루과이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으며, 많은 지명과 연구소 등의 이름에 그의 이름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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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0년 화폐속의 인물 뱅크스( 호주 : 5 Dollars ) 세상떠남
조셉 뱅크스(Joseph Banks)
1743. 2.24~1820. 6.19 영국의 박물학자·식물학자.
1766년 뉴펀들랜드와 래브라도를 탐험하고 1768년 제임스 쿡의 항해에 참여하여 처음 브라질에서 부겐빌레아를 발견하는 업적을 세웠다. 이후 남태평양을 항해하여 타히티, 뉴질랜드와 호주를 거쳤고, 호주 동해안에서 배가 난파되어 수리하던 기간 중 많은 식물들을 발견하는 데 공헌하였다. 1771년 영국으로 돌아오며 명성을 얻게 되었고, 이듬해 제 2차 항해에 가려 하였으나 어려움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또한 18세기 말에도 다시 브라질과 호주에서 식물을 채집하였고, 그가 거쳐 간 여러 지역들에 '뱅크스'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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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화폐속의 인물 -리살 (필리핀) 태어남
리살(Jose Rizal (y Alonso) 1861. 6. 19. ∼ 1896. 12. 30.
필리핀 1Pilipino(1969년 발행) 애국자, 저술가
루손섬 칼람바 출생. 부유한 지주의 집안에서 태어나, 아테네오데마닐라대학·산토토마스대학에서 공부하였다. 1882년 에스파냐 마드리드대학에 유학, 의학을 공부하는 한편, 필리핀 식민지의 개혁을 요구하는 언론활동에 참여하였다. 당시 필리핀은 300여 년에 걸친 에스파냐 식민통치의 폐해가 도처에서 나타나 민중의 저항은 소요로 번져갔다. 1886년 발표한 첫 소설 《나에게 손대지 말라 Noli me tangere》와 《체제전복 El filibusterismo》(1891년)으로 개혁운동의 대변자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필리핀 혁명(1896∼1902년)과 필리핀 민족주의의 사상적인 기반은 그의 문필활동에 힘입은 바 컸다. 1896년 민족주의 비밀결사단체인 카티푸난이 일으킨 폭동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12월 마닐라에서 공개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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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화폐속의 인물 알베르디( 아르헨티나 : 5,000 Pesos ) 세상떠남
후안 바우티스타 알베르디(Juan Bautista Alberdi)
1810. 8.29~1884. 6.19 아르헨티나의 정치 이론가, 외교관.
5월 혁명의 해 투쿠만 주의 주도인 산 미겔 데 투쿠만에서 스페인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그를 낳으며 곧 사망하였다. 가족은 혁명 시작 당시부터 이를 지지하였고, 아버지 살바도르는 중요한 혁명가인 마누엘 벨그라노와도 가까워 아들도 벨그라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일찍부터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갔고 법학을 배워 코르도바를 거쳐 1840년 몬테비데오에서 마치게 되었다. 계몽과 자유 사상으로 로사스의 독재에 반대하여 1838년 우루과이로 망명한 데 이어 유럽과 칠레를 거쳐 1852년 카세로스 전투에서 우르키사가 승리한 후에야 돌아왔다. 그의 사상은 1853년의 헌법 공포에 기여하였고, 새로운 정권 밑에서 유럽에서 외교관 활동을 하였으나 1862년의 정부 재개편으로 중지되었다. 1878년 고국에서 재기를 계획하였으나 미트레의 반대로 프랑스로 추방되었고, 파리 근교에서 사망하여 시신은 아르헨티나로 돌아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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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로젠버그 부부 사형 집행
로젠버그 부부의 아이들을 선두로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탄원하기 위해 데모행진을 하는 사람들. 플랭카드에 "아빠와 엄마를 집으로 돌려보내 주세요"라고 쓰여져 있다.
미국 전역이 매카시 선풍으로 이성을 잃고 있던 1953년 6월 19일, 미국의 전기기사 줄리어스 로젠버그와 그의 부인 에설 로젠버그가 뉴욕주의 싱싱형무소에서 전기의자에 의한 사형에 처해졌다. 1944년부터 1945년 사이에 미국의 원자폭탄 제조비밀을 빼내 소련에 넘겼다는 것이 처형이유였다.
로젠버그는 35세였고 부인은 37세였다. 이들은 1951년 4월 5일 스파이 주모자와 적극적 협력자라는 죄명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었다. 이들 부부는 1950년 여름 간첩활동 혐의로 체포돼 재판을 받아왔다. 공산당원이었던 로젠버그는 재판기간 내내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고, 간첩행위에 대한 물증도 없었지만 마녀사냥의 광기는 이들을 놓아주지 않았다. 당시의 연방수사국장 에드거 후버는 이 사건을 '세기의 범죄'로 규정했고, 이들에게 사형을 선고한 담당 판사 어빙 카우프먼은 "이들이 조국을 배반하고 소련에 원폭 기밀을 넘김으로 인류 역사가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사형선고는 세계의 여론을 들끓게 했다. 수많은 미국 시민을 비롯, 교황과 아인슈타인, 피카소, 사르트르, 러셀 등 세계의 지성들이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에게 항의 서한을 보내며 구명운동을 펼쳤다.
사건의 진실은 이들이 처형된 지 44년이 지난 1997년 '워싱턴 포스트'지에 의해 밝혀졌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1943년부터 1946년까지 로젠버그를 50여차례나 비밀리에 만난 전 KGB 요원 알렉산더 페크리소프의 증언을 통해 로젠버그가 원폭 제조기밀을 소련에 넘기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증언에 따르면 로젠버그는 소련에 고급 산업정보를 제공한 스파이이긴 했지만 원폭 기밀은 제공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로젠버그는 간첩이 아니라는 좌파의 주장도, 원폭기밀을 제공했다는 우파의 주장도 모두 거짓임이 입증된 셈이다.
※이들의 사형 집행에 큰 원인을 제공한 것 중 하나가 당시 진행 중이었던 한국전쟁이었다고 한다. 이 전쟁이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의 전쟁이었던 바,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한 미국 정부가 이들을 제거하는 것이 스파이 문제의 해결에 큰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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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아웅산수지 [Aung San Suu Kyi, 1945.6.19~]
노벨평화상 노르웨이 조폐국 발행 기념메달 주인공
미얀마의 정치가. 정치가, 출생지 : 미얀마 양곤, 주요수상 : 노벨평화상(1991), 유네스코인권상(2002)
본문
양곤에서 출생했다. 미얀마의 독립운동 지도자인 아웅산의 딸로 15세 때 영국으로 건너가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정치학 등을 공부하였다. 1988년 4월에 귀국하여 국민들의 반독재시위에 참가하였고, 이어 9월에 민족민주연합(NLD)을 결성하여 민주화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군사정변이 일어나면서 내란을 선동하였다는 이유로 가택연금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쟁을 계속하여 1990년 5월 다당제 선거 실시의 성과를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총선거에서 NLD가 친군부세력인 민족통일당(NUP)을 물리치고 압승을 거두었다. 199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으며, 1995년 7월 자택연금 해제 이후 NLD의 사무총장으로 복귀하여 정치활동을 재개하였다. 2010년 민주화 당시 처음에는 관제선거라는 점으로 등원을 거부하였으나 2012년 5월 2일 처음으로 의회에 등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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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한국 최초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 점화
인간의 힘을 동력(動力)으로 이용하던 인류가 18세기 이후 석탄·석유와 같은 지하자원을 채굴하여 동력으로 사용하더니만, 20세기 중반부터는 새로운 동력원으로서 원자력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최초의 원자력 사용은 전쟁 수행을 위한 것이었고, 그것의 개발이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도 전쟁 때문이었다. 특히 미국은 독일이 원자폭탄을 만들어 전쟁에 이용하려고 했기 때문에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독일보다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원자폭탄은 진주만 공습으로 시작된 일본과의 전쟁에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사용됨으로써 가공할 만한 위력을 드러냈다.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 세계 각국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다. 세계대전이라는 불행한 상황 때문에 끔찍한 경험을 하기도 했지만, 많은 과학자들은 평화를 위해 원자력을 사용할 수만 있다면 인류의 삶은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1953년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유엔 연설에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제창하였고, 이에 여러 국가들이 원자력을 발전(發電)에 이용하려는 연구개발에 나섰다. 그 결과 1956년에 영국의 콜더 홀 원자력발전소가 세계최초로 상업 목적의 가동을 시작하였고, 뒤이어 1957년에는 미국의 쉬핑포트 원자력발전소가 가동되는 등 원자력 발전이 활발하게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우리 나라는 1970년대 들어 두 차례에 걸친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에너지 자원 개발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그 일환으로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서두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전적으로 외국 기술에 의존하기는 했지만 출력 60만kw의 고리 원자력 1호기를 완성하였고, 1977년 오늘 시험 가동을 위해 처음으로 원자로의 점화 스위치를 켰다.
시험 가동을 마친 고리 원자력 1호기가 1978년 4월 상업운전에 들어감으로써 우리 나라는 세계 21번째의 원자력 발전소 보유국이 되었고, 그 뒤 매년 10% 이상씩 증가하는 전력수요에 대처하기 위하여 지속적인 원전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듯 원자력 발전은 인류의 발전과 편리함을 위해 필요한 수단이 되었지만, 구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핵 누출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흉기로 돌변할 수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평화롭고 안전한 원자력의 사용은 우리들이 후손들을 위해 고민하고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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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피터팬’ 저자 제임스 배리 사망
영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였던 ‘피터팬’의 저자 제임스 배리가 1937년 6월 19일 사망했다. 1860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배리는 에든버리대학을 졸업한 후 신문기자 생활을 했다. 처음에는 소설을 쓰기도 했으나 곧 연극에 흥미를 갖게 돼 이후 많은 희곡을 남겼다.
이런 그를 단연 최고의 극작가 반열에 세운 것이 ‘피터팬’이다. 1902년 씌어진 ‘작은 백조’라는 소설에 입각해 5막짜리 희곡 ‘피터팬’을 썼는데 이것이 1904년 처음 무대에 상연된 후 100년 동안 대중에게 사랑받는 작품이 된 것이다. 아기들이 하나씩 태어날 때마다 요정이 하나씩 태어난다는 깜찍한 발상, 행복한 생각을 하면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고 피터 팬처럼 세상의 악을 물리칠 수 있다는 믿음은 현실의 고통과 하루하루 싸우며 살아가야 하는 오늘날의 어른들에게도 작지 않은 위안을 준다.
그러나 정작 ‘영원히 자라지 않는’ 소년 피터팬은 희망과 즐거움만이 아닌 절망과 슬픔도 상징한다. 피터팬이 영원히 느낄 수 없는 엄마의 품과 가족 간의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작가 자신의 어두운 성장 배경이 반영된 것으로 그는 어린시절 죽은 형과 자신을 비교하는 어머니에게서 온전한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했다고 한다. 즉, 작가 자신이 ‘영원히 자라지 않는 소년’ 피터팬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그는 키가 150cm도 되지 않는 단신이었다고 하니, 그 자신이 피터팬이 되어 영원히 자라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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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4년 프랑스의 루이 11세(Louis XI), 포고문을 내려 말을 타고 주요 도로를 달려서 왕의 업무를 전달하는 제도를 시행.
1566년 제임스 6세(James VI),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왕
1608년 알베리코 젠틸리(Alberico Gentili), 이탈리아 정치 작가
1623년 프랑스의 수학자 겸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 출생
1707년 윌리엄 셜록(William Sherlock), 영국 성직자
1749년 앰브로즈 필립스(Ambrose Philips), 영국 시인
1754년 북아메리카 대륙 듀케슨(Duquesne)항에서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의 군대가 프랑스군대와 충돌하면서 영국-프랑스 전쟁(Anglo-French war) 발발.
1820년 조셉 뱅크스(Joseph Banks), 영국 식물학자
1846년 미국 뉴저지주 엘리지안구장에서 열린 야구경기, 스퀘어에 의한 최초의 야구경기로 공식 인정
1867년 멕시코 황제를 지낸 오스트리아의 대공 막시밀리안 사망
1905년 청나라에서 미국상품 배척운동
1906년 에른스트 체인(Ernst Chain), 독일 출생 영국 세균학자. 페니실린(penicillin)을 발전시켰음
1907년 통신사 UP(United Press) 설립
1912년 미국, 공무원의 8시간 노동제 채택
1917년 영국 하원, 부인참정권 승인
1918년 안중식 등 서화협회 창설
1931년 조만식 양주동 등, 한글연구회 조직
1935년 국제노동회의서 1주 40시간 노동제의 원칙을 근본조약으로 채택
1937년 제임스 매튜 배리(James Matthew Barrie), 스코틀랜드 작가, 피터팬(Peter Pan)의 작가
1937년 ‘피터팬’ 저자 제임스 배리 사망
1940년 일본 프로야구 선수 장훈 출생
1944년 마리아나 해전서 일본군 참패
1945년 미얀마 아웅산 수지 여사 출생
1947년 살만 루시디(Salman Rushdie), 영국 소설가
1950년 2대 국회 개원(의장 신익희, 부의장 장택상 조봉암)
1950년 국군 일선 지휘관에게 특별경계를 지시.
1951년 Columbia 군대 1,500명 UN군으로 내한.
1960년 대한항공 창설.
1960년 아이젠하워 내한
1961년 쿠웨이트, 영국의 보호령(62년간)으로부터 독립
1963년 케네디 미국 대통령, 인종차별철폐에 관한 특별교서를 의회에 제출
1965년 알제리, 군부쿠데타 발생, 벤 벨라(Ben Bella) 대통령이 물러나고 후아리 부메디엔(Houari Boumedienne)이 혁명평의회 의장이 됨.
1969년 3선개헌반대 학생데모 시작
1975년 제1회 세계 여성대회 열려
1976년 중동부 전선에서 무장공비 3명 사살.
1981년 한·미 기동훈련 실시(동지나해)
1981년 대한체육회, LA올림픽 남북한 단일팀 구성을 북한에 제의
1981년 유럽이 공동개발한 우주로켓트 '아리안'호 남미 가이아나에서 발사
1981년 카이로서 기독교도. 이슬람교도 유혈충돌
1990년 한국-이스라엘, 학술교류 협력의정서 체결
1992년 일본, PKO법 공포.
1993년 영국의 소설가 골딩 사망 - 1983년 '파리대왕'으로 노벨문학상 수상
1994년 콜롬비아 대통령선거, 자유당의 삼퍼 피사노 후보 당선
1995년 압록강연습 최초 실시
1996년 4km가량의 거대한 민물 호수가 남극대륙 얼음 밑에서 발견됨. 이 호수는 얼음의 마찰과 지구의 핵에서 오는 열로 인해 얼지 않은 상태를 유지한 것으로 밝혀짐.
1996년 영국, 영국산 쇠고기의 수입금지 조치를 해결하기 위해 67,000마리 이상의 소 도축 결정.
1997년 러-북 기본조약 체결지연, 북의 <동맹의무> 삽입요구로. 러 외무부 밝힘.
1998년 국방부, 한·미 양국의 주요현안이었던 1998년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완전타결
1999년 영국의 에드워드 왕자, 소피 라이스 존스와 결혼
2000년 인사청문회법 국회 통과, 이한동 총리서리부터 적용
2003년 중국 양쯔강서 여객선-화물선 충돌 90명 실종
2004년 ‘이승복 장학회’ 설립 창립총회 개최
2005년 경기도 연천군 최전방 부대 내무반서 총기난사사건 발생, 8명 사망
2017년 고리원전 1호기 운영중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