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간으로 지난 금요일의 멕시코전은 조별리그 제 2경기 시즌의 2번째
경기로 안타까운 상황에서의 실점이 아쉬웠는데, 이것이 일부에게는 가장
재미없었던 경기였다는 의식으로 자리잡은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 2번째에서도 벌써 2연패를 하면서 '승자승의 저주'로 다음 경기에서
승리하더라도 이미 토너먼트에 가지 못하게 된 나라들까지 생겨나고
있는데, 막상 본선 자체와 인연이 너무 없으면서도 이전의 대회들에서
우리나라와의 우정과도 같은 인연을 자랑한 바 있던 '형제의 나라'가
가장 안타까웠을 것도 같네요. 무엇보다 자국의 기술력과 힘을 자랑한
나라가 그렇게 출정식까지 치러주었는데 이런 결과를 얻었으니 말입니다.
1970년대를 대표한, '챔피언의 아내'였던 가수의 비보도 이어지네요.
한국-멕시코전 충격 비판! "가장 형편없는 경기", "절박함이 부족하다" 혹평, 사실과 다르다...최고의 경기 순위 16위 "축구는 때때로 그런 법"
19일(한국시각) 멕시코 과달라하라 사포판의 에스타디오 과달라하라에서 열린 2026 북중미월드컵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 대한민국이 0대1로 패했다. 손흥민이 아쉬운 모습으로 그라운드로 나서고 있다. 사포판(멕시코)=허상욱 기자wook@sportschosun.com/2026.06.19/
19일(한국시각) 멕시코 과달라하라 사포판의 에스타디오 과달라하라에서 열린 2026 북중미월드컵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 대한민국이 0대1로 패했다. 손흥민이 동료들과 아쉬운 모습으로 그라운드를 돌고 있다. 사포판(멕시코)=허상욱 기자wook@sportschosun.com/2026.06.19/
[스포츠조선 이현석 기자]많은 비판이 쏟아졌지만, 실제로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가 최악의 경기는 아니었다는 평가다.
홍명보 대한민국 월드컵대표팀 감독은 19일 오전 10시(이하 한국시각) 멕시코 과달라하라 인근 사포판의 에스타디오 과달라하라에서 열린 멕시코와의 2026년 북중미월드컵 조별리그 A조 2차전에서 0대1로 패했다.
대한민국과 멕시코 모두에게 분수령이 되는 경기였다. 1차전 체코전에서 승리한 한국과 남아공을 꺾은 멕시코는 2차전 승리 시, 조 1위와 32강 진출 확정을 동시에 이뤄낼 수 있었다. 두 팀에게 모두 승리가 간절한 경기일 수밖에 없었다.
19일(한국시각) 멕시코 과달라하라 사포판의 에스타디오 과달라하라에서 열린 2026 북중미월드컵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 로모에게 선제골을 허용하고 있다. 사포판(멕시코)=허상욱 기자wook@sportschosun.com/2026.06.19/
양 팀의 신중함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전반 초반 휘몰아치는 듯한 모습이 있었던 멕시코도, 전반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 이후 주도권을 잡은 한국도 무리한 경기 운영을 지양했다. 두 팀은 전반 내내 총 슈팅 5개에 그쳤다. 코너킥은 0개, 상대 박스 근처에서 치열한 경합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경기는 후반 5분 한국의 첫 실점 이후 달라졌다. 한국은 조규성 오현규 엄지성 양현준 황희찬을 투입해 만회를 위한 공격을 나섰다. 반대로 멕시코는 상대 공격을 막기 위해 수비와 중원을 보강했다. 치열하게 맞붙었지만, 조규성의 결정적인 슈팅이 상대 견제에 막히는 등 아쉬움이 컸다. 경기는 한 골의 격차를 그대로 유지한 채 마무리됐다.
경기 내용에 대한 아쉬움이 여러 해외 언론에서 쏟아졌다. 영국의 BBC는 '일부 팬들은 이번 대회에서 지금까지 가장 형편없는 경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했다'고 전했다.
19일(한국시각) 멕시코 과달라하라 사포판의 에스타디오 과달라하라에서 열린 2026 북중미월드컵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 조규성이 헤더슛을 시도하고 있다. 사포판(멕시코)=허상욱 기자wook@sportschosun.com/2026.06.19/
영국의 가디언 또한 '경기는 그다지 아름답지는 않았고, 검은색과 연보라색의 색깔 조합 외에는 특별히 눈에 띄는 점도 없었다'며 '개막전 승리 후 멕시코와 한국 에게 던져진 질문은 자신들의 경기력이 좋았던 것인지, 아니면 상대팀이 부진했던 것인지였는데, 이번 경기는 그 답을 꽤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두 팀 모두 창의적인 플레이가 뛰어난 팀은 아니었다'고 했다. 이어
두 팀의 경기력이 아쉽다는 평가도 있었다. 가디언은 '한국 대표팀은 더 높은 곳까지 진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편 멕시코는 2전 2승을 거두었지만, 아직까지는 기본적인 경기력 외에는 뚜렷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19일(한국시각) 멕시코 과달라하라 사포판의 에스타디오 과달라하라에서 열린 2026 북중미월드컵 대한민국과 멕시코의 경기. 상대와 공을 다투는 설영우의 모습. 사포판(멕시코)=허상욱 기자wook@sportschosun.com/2026.06.19/
다만 글로벌 스포츠 언론 디애슬레틱은 충분히 이런 경기가 있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디애슬레틱은 이번 2026년 북중미월드컵 모든 경기를 1위부터 최하위까지 순위를 매기고 있다. 1위에 가까울 수록 재밌는 경기라는 평가다. 한국과 멕시코전은 14위에 올랐다. 지금까지 치른 32개 경기 중 16위였다. 딱 중간에 위치했다.
디에슬레틱은 '한국은 86분 동안 유효 슈팅을 단 한 번도 기록하지 못했고, 첫 번째 슈팅으로 동점골을 넣을 수도 있었다. 선방으로 팀을 지키던 김승규는 부진하던 멕시코에 결승골을 안겨줬다. 축구는 때때로 그런 법이다'고 했다. 일부 팬들의 평가처럼 최악으로 치부할 경기는 아니었다는 평가였다.
32강전도 있는데 벌써 짐을 쌌다고? 튀르키예, 아이티에 튀니지까지 조별리그 탈락팀 속속 [북중미WC]
아이티 선수들이 20일(한국시간) 미국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 스타디움에서 열린 브라질과 북중미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에서 대패해 32강 진출이 좌절된 뒤 서로를 안아주며 위로하고 있다. 필라델피아|AP뉴시스
[스포츠동아 남장현 기자] 2026북중미월드컵에서 조별리그 2경기 만에 토너먼트 진출이 좌절된 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48개국 체제로 확대된 이번 대회부터 32강전이 진행되고, 이에 따라 일부 조 3위 국가에도 토너먼트 출전권이 주어지지만 실력차를 극복할 수 없었다.
북아프리카 튀니지는 21일(한국시간) 멕시코 누에보레온주 몬테레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회 조별리그 F조 2차전서 일본에 0-4 대패했다. 1차전서 스웨덴에 1-5로 진 튀니지는 2패로 조기 탈락했다.
스웨덴전 책임을 물어 사브리 라무시 감독(55)을 경질하고 에르베 르나르 감독(58)에게 지휘봉을 맡겼으나 짧은 시간의 반전은 불가능했다. 튀니지는 이 대회까지 7차례 월드컵서 한 번도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다.
최종전서 튀니지가 선두 네덜란드를 잡는 이변을 연출해도 2위 일본(이상 1승1무·승점 4), 3위 스코틀랜드(1승1패·승점 3)를 넘어설 수 없다.
1974년 서독 대회 이후 52년 만에 월드컵에 오른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에게도 불운이 찾아왔다. 20일 미국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 스타디움서 열린 대회 조별리그 C조 2차전서 브라질(1승1무·승점 4)에 0-3 완패했다. 스코틀랜드전 0-1 패배의 여파가 이어졌다.
아이티가 2위 모로코(1승1무·승점 4)를 3차전서 이기고, 3위 스코틀랜드(1승1패·승점 3)가 브라질에 지면 승점 동률을 이루지만 승자승 규정에 따라 최하위를 벗어날 수 없다.
2002한·일월드컵 3위 이후 24년 만에 본선에 오른 D조 튀르키예는 최악의 골 결정력을 보이며 호주전 0-2 패배에 이어 10명이 뛴 파라과이와 2차전서도 0-1로 덜미를 잡혔다. 2경기 62개 슛을 시도하고도 한 골도 넣지 못했다.
튀르키예는 선두 미국(2승·승점 6)을 잡아도 나란히 1승1패(승점 3)를 기록한 호주, 파라과이에 모두 패해 꼴찌가 확정됐다.
대표팀에 “귀국하지 마라”…온 국민 응원 받고 떠났는데 두 경기 만에 짐 싼 튀르키예
튀르키예 축구대표팀 공식 SNS
24년 만에 월드컵 본선을 밟은 튀르키예가 두 경기 만에 무너졌다. 온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떠난만큼 실망과 후폭풍도 거세지고 있다.
빈첸조 몬텔라 감독이 이끄는 튀르키예는 20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D조 2차전에서 파라과이에 0-1로 졌다.
앞서 1차전 호주전에서 0-2로 패한 데 이어 두 경기 연속 패하면서 남은 미국전 결과와 상관없이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됐다. C조 아이티에 이어 이번 대회 두 번째 탈락국이 됐다.
튀르키예에 이번 대회는 무게가 남달랐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쓴 뒤 오랜 침체기를 겪었고 이후 본선과 인연이 없다가 이번 예선을 통과하며 24년 만에 복귀했다.
2002년 당시 튀르키예는 준결승에서 브라질에 0-1로 진 뒤 3·4위전에서 대한민국을 3-2로 꺾고 최종 3위에 올랐다.
복귀를 이끈 건 ‘황금세대’로 불린 선수들이었다. 아르다 귈러(레알 마드리드), 하칸 찰하노글루(인터밀란), 케난 일디즈(유벤투스) 등이 주축으로 역대급 황금세대라는 평가를 받았다. FIFA 랭킹은 1월 기준 22위로 같은 조 미국(16위) 다음으로 높았다.
기대는 출국길부터 드러났다. 대표팀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밀리타킴라르’는 지난 3일 선수단이 주요 후원사인 전기차 제조사 토그(Togg)의 차량 호송을 받으며 월드컵으로 떠났다고 전했다.
튀르키예 국기 색인 붉은색과 흰색으로 꾸민 차량들이 선수단 버스를 앞세워 이스탄불 공항으로 줄지어 향했다. 공항 앞에는 많은 인파가 몰려 출정하는 선수단을 응원했고 이 장면은 방송으로도 공개됐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튀르키예는 호주전에서 점유율 62%로 경기를 주도하고도 0-2로 졌다. 파라과이전도 마찬가지였다. 경기 시작 직후 마티아스 갈라르사에게 선제골을 내준 뒤 전반 막판 알미론의 ‘입 가리기’ 퇴장으로 수적 우위까지 얻고도 슈팅 31개에 점유율 65%를 기록하며 두들기기만 했을 뿐 골문을 열지 못했다.
옵타에 따르면 두 경기 슈팅 62개 무득점은 1966년 집계 이후 조별리그 무득점 팀 중 최다 슈팅 기록이다. 몬텔라 감독은 선수들을 탓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분노한 팬들은 즉각 사임을 요구했다.
대접에 보답하지 못한 선수들은 고개를 숙였다. 탈락이 확정되자 팬들의 분노가 폭발했고 선수들은 국민에게 사과했다. 귈러가 대국민 사과를 했고 선수단은 잔디 위에서 눈물을 쏟았다.
그러나 민심은 냉담했다. 팬들은 “귀국하지 마”, “꼴도 보기 싫어”, “축구나 잘하고 울어라” 등 거센 반응을 쏟아냈다.
이미 호주전 직후부터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완패에 분노한 팬들은 대표팀 공식 인스타그램에 항의·비아냥 댓글을 쏟아냈고 온라인 집계상 게시물에는 3만 개가 넘는 댓글이 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황금세대를 향한 기대가 컸던 만큼 두 경기 만의 무득점 탈락이 남긴 후폭풍도 그만큼 컸다.
‘신장암 투병’ 옥희 별세…홍수환 곁에서 눈감아 [쿠키포토]
가수 옥희(본명 김광숙)의 빈소가 2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2호에 마련됐다.
암 투병 끝에 별세한 가수 옥희(본명 김광숙)의 빈소가 21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향년 73세.
휴전 후 부산에서 상경한 옥희는 배화여중 3학년 때 고모의 소개로 가수 현미를 만난 것을 계기로 미8군쇼 공급 업체 오디션을 보고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가수 옥희(본명 김광숙)의 빈소가 2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2호에 마련된 가운데 배우자 홍수환 씨가 빈소를 지키고 있다.
고인은 1978년 복싱 세계 챔피언 출신 홍수환과 교제하며 딸을 얻었지만, 두 사람은 얼마 가지 않아 결별했다. 이후 두 사람은 1995년 재결합했다.
옥희는 지난해 신장암을 진단받고 투병해왔다. 투병 중이던 올해 3월에도 KBS ‘가요무대‘에 출연해 ’정열의 꽃‘을 열창하는 등 음악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았다.
발인은 24일이다. 장례는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치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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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화폐속의 인물 마시레 ( 보츠와나 ) 세상떠남
퀘트 마시레(Quett Masire)
1926. 7.24~2017. 6.22 보츠와나의 제 2대 대통령.
20대 때 교사로 일하고 1961년 보츠와나 민주당(BDP)의 설립에 기여하여 첫 총서기가 되었다. 1965년 선거의 승리로 베추아날란드의 독립을 이끌면서 부총리가 되었으며, 1966년 9월 30일 독립으로 보츠와나 공화국이 수립되자 세레체 카마 초대 대통령의 부통령이 되었다. 보츠와나의 경제가 크게 성장하게 된 가운데 1980년 7월 13일 카마가 사망하자 헌법에 따라 2대 대통령이 되었으며, 카마의 정책을 이어받아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의 유지에 공헌함으로써 非인종차별적인 사회를 만들었다. 1984, 1989, 1994년의 선거 모두에서 승리를 거두고 1998년 3월 31일 퇴임한 후로도 지역의 발전과 평화에 공헌하였으며, 역대 보츠와나의 최장기 재임 대통령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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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한일협정 정식 조인
1965년 오늘, 일본 수상 관저에서 일본측 대표인 시나 외상과 한국측 대표인 이동원 외무장관이 조인식을 가짐으로써 지난 14년간 줄다리기를 해온 두 나라 사이의 국교 정상화 문제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해방 후 단절되었던 두 나라 사이의 국교를 정상화하기 위한 회담이 미국의 주선으로 1951년 시작되었다. 하지만 의견 대립, 인접해양 주권선언, 구보다 망언 등으로 앙금만 남긴 채 번번이 결렬되었다. 그나마 4·19 혁명과 이승만 정권의 붕괴로 한일 회담 자체가 중단되기도 하였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은 이른바 경제 성장을 통한 '조국근대화'를 외쳤고, 그 일환으로 자본 도입을 위하여 일본측과 적극적인 교섭에 들어갔다. 그리하여 1961년 10월 20일 6차 회담을 재개한 양국은 어느 때보다 분위기가 고조되어 있었다. 그러나 청구권 액수, 평화선 문제, 독도 문제 등으로 다시 교착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민심 불만을 경제 성장으로 달래려고 했던 군사정권은 조바심이 났고 한일 회담의 조기 타결을 위해 이듬해 10월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을 특사로 파견하여 비밀 협상에 들어갔다. 그래서 우선 청구권 문제를 타결한 데 이어, 1964년 4월에는 어업 협정 문제 등도 타결하여 이제 양국 행정부와 국회의 통과 절차만 남겨 두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이러한 양국 정부의 비밀 협상이 공개되자 야당과 학생을 필두로 한 국민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였고, 군사정권은 계엄령을 선포하면서까지 국민의 반발을 무마시키고 뜻을 관철시키려 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나 한시가 급하였던 군사정권은 1965년에 들어와 다시금 회담을 속개하여 한일 국교 정상화를 위한 기본 협약에 조인하고 만 것이다. 조인된 한일 협정은 기본 협약 이외에 어업, 청구권, 재일교포 법적 지위, 문화재 반환의 부속협정 등으로 구성되었다.
기본 협약에 따라 우리 정부는 무상공여 3억 달러, 정부차관 2억 달러, 민간차관 3억 달러를 받게 됐다. 그러나 이는 일제의 식민지수탈로 본 피해에 대한 '배상금'이 아니라 '독립경축기금'의 명목이었다.
부속협정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어업협정의 경우 당시 일본은 독도폭파라는 극단적 주장까지 내세우며 독도영유권을 강력히 주장하였지만 우리측은 협상타결에 연연해 독도관련조항을 빼는 데에만 급급하여 현재도 독도가 그들 땅이라고 주장하는 빌미를 제공하였다. 청구권협정의 경우도 강제징용·원폭피해자·종군위안부 문제 등은 이미 해결됐다며 어물쩍 넘어가는 구실을 일본정부에 주었다. 문화재반환 협정도 우리측은 불법수단에 의해 일본에 반출된 문화재 가운데 명목과 소재가 확실한 3천여 점을 돌려달라고 했으나 결국 1천여 점만을 돌려받은 채 나머지 귀중한 문화재는 일본에 남게 되었으며, 이밖에 재일교포 법적 지위에 관한 협정에서도 우리 입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지문날인 등 숱한 불평등을 안겨주고 있다.
이처럼 한일협정은 시간에 쫒긴 군사정부가 정권 유지에만 급급하여 조인하다보니 우리의 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여 지금도 우리는 그 여파에 시달리고 있다.
나라는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다. 정권을 잡은 이들은 때로 그 점을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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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독일, 소련에 선전포고
1941년 6월 22일 오전 5시30분 독일 선전장관 괴벨스가 라디오를 통해 히틀러의 대소 선전포고를 발표했다. 이에앞선 오전 3시, 약 300만명의 독일군이 이미 전차 등을 동원, 대진격을 개시했다. 육전사상 최대규모였다. 히틀러는 129년 전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한 그 날을 선택했다. 나폴레옹이 이루지 못한 것을 해내겠다는 히틀러의 야심찬 도전이었다.
초기에는 히틀러의 뜻대로 되는 듯 했다. 독일군은 곳곳에서 소련의 방어선을 돌파하며 새벽 무렵에 이미 전차부대가 소련 영내 80km 지점에까지 도달해 있었다.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한 이유는 소련을 포함한 동부유럽의 광대한 지역이 전쟁을 위한 자원공급지로서 필요했기 때문이다. 수차례의 경고가 있었음에도 스탈린은 히틀러의 침입을 예측하지 못했다.
역사상 최강전력의 공격에 소련군은 혼란에 빠졌다. 오후 0시15분경 비로소 몰로토프 소련 외무장관이 라디오로 독일군의 침공사실을 소련 국민에게 알렸다. 소련군은 독일군을 당해내지 못하고 6개월 동안 4백만명 이상이 포로가 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겨울이 다가오면서 상황은 역전되었다. 독일군은 모스크바를 눈앞에 둔 상태에서 전통적으로 동계를 이용하는 소련군 작전에 말려들었다. 독일군은 소련의 주코프 대장이 이끄는 1백개 사단 병력의 대반격에 개전이래 처음으로 큰 패배를 맛보았고, 이때부터 히틀러는 패망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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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소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 사망
소설 `25시`로 유명한 작가이자 루마니아 정교회 총주교인 콘스탄트 비르질 게오르규가 1992년 6월 22일 향년 76세로 파리에서 사망했다. 게오르규는 억압적 체제, 획일주의, 물질만능사상 하에서 상실되어가는 인간 고유의 가치를 탐구해온 전후 문학의 주춧돌 같은 존재로 꼽힌다. `25시` `제2의 찬스` `키랄레사의 학살`등으로 대표되는 그의 문학세계는 소외당하고 천대받는 주인공을 통해 인간의 참모습을 돌아보게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1916년 루마니아의 성직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24세 때인 1940년 루마니아 정부로부터 왕국 시인상을 받으며 필명을 날렸으나 루마니아가 소련에 의해 적화되자 1946년 파리로 망명했다. 1949년 파리에서 출간된 `25시`는 모든 구원이 차단된 절망과 불안의 시간을 상징함으로써 서구문명의 삭막함과 인간상실의 황폐함을 경고하고 있다. 1963년 루마니아 정교회 파리교회 사제가 된 그는 작품 못지 않게 사제로서도 조국의 독재체제에 맞서 투쟁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자 `루마니아여 깨어나라`는 라디오방송 연설로 조국 루마니아 사람들을 깨우치기도 했다. 공산치하에 시달리던 조국의 현실을 보고 철저한 반공주의자가 된 그는 특히 한국의 분단현실을 깊이 이해해준 친한국파이기도 했다. 1974년 첫 방한이래 모두 5차례나 한국을 찾았으며, 한국을 `새 고향`이라고 할 정도로 애정을 가져 `한국찬가`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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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년 로제르 1세(Roger I), 시실리(Sicily : 시칠리아)왕 사망
1377년 리처드 2세(Richard II), 잉글랜드 왕으로 즉위.
1527년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 이탈리아 정치가, 외교관 사망
1535년 성(聖)존 피셔(St John Fisher), 로체스터 주교(bishop of Rochester), 사형됨
1633년 갈릴레오 갈릴레이 지동설 철회
1653년 앙드레 에르큘 드 플뢰리(Andre-Hercule de Fleury), 프랑스 추기경 태어남
1671년 터키(Turkey), 폴란드에 전쟁을 선포함
1699년 장 샤르댕(Jean Chardin), 프랑스 화가 태어남
1767년 독일의 언어학자··교육개혁가 훔볼트 출생
1805년 쥬세페 마치니(Giuseppe Mazzini), 이탈리아 애국자 태어남
1815년 프랑스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 4일전 워털루 전투(the Battle of Waterloo)에서 패배한 이후 프랑스 황제에서 퇴위함. 이는 두 번째 퇴위이며 이후 재기하지 못함.
1826년 중남미 아메리카의 통합 공화국을 추구했던 시몬 볼리바르(Simon Bolivar)의 주도로 파나마에서 범아메리카 회의(The Pan-American Congress) 개최.
1856년 헨리 라이더 해거드(Henry Rider Haggard), 영국 소설가 태어남
1881년 주전을 중지하고 각종 도고 행위를 금지
1891년 북로전신선(한성·원산간) 준공
1894년 서아프리카의 다호메이(Dahomey), 프랑스 식민지로 선포됨
1898년 독일의 소설가 레마르크 출생 - '서부전선 이상없다'(1929)
1904년 원산~인천 간 전화 개통
1910년 콘라드 추제(Konrad Zuse), 독일 컴퓨터 공학자 태어남
1920년 그리스.터키 전쟁
1921년 소련, 한국 독립군 무장해제.
1921년 코민테른 제3차 세계대회 모스크바서 개최
1937년 미국의 흑인 복서 조 루이스(Joe Louis), 짐 브래드독(Jim Braddock)을 K.O.시키고 헤비라이트급 챔피언이 됨.
1939년 국민당군, 신4군공격 (평강사건)
1940년 독일의 기상학자 쾨펜 사망
1941년 2차 세계 대전 중 독일군이 소련을 침공, 대규모의 바르바롯사 작전(Operation Barbarossa)을 감행.
1943년 미국 디트로이트서 인종폭동
1945년 태평양 전쟁 중 일본 오키나와에서 벌어진 오키나와 전투(Battle of Okinawa) 종결.
1946년 광복군 환국
1946년 처음으로 국사교과서(진단학회 편) 배포
1948년 우리나라 첫올림픽선수단 런던으로 출발
1949년 메릴 스트립(Meryl Streep), 미국 영화배우 태어남
1950년 북한, 전투명령 제1호 하달
1951년 Norway 병원선 부산 도착.
1952년 UN기 수풍발전소 폭파.
1956년 월터 데 라 메어(Walter de la Mare), 영국 작가 사망
1957년 소련 공산당 중앙위 총회 시작, 말렌코프,몰로토프,카가노비치,세피로르 추방
1960년 국회의원선거법 국회통과
1961년 공보부 신설
1966년 한·미 국방장관회의, 한국군 현대화계획 협의
1970년 북한 간첩, 국립묘지 헌충문 폭파.
1973년 남해대교 개통
1978년 한일대륙붕협정 비준서 교환
1980년 소련, 아프간 주둔군 일부 철수.
1981년 이란 호메이니, 바니 사드르 대통령 해임
1981년 한국언론연구원 개원
1984년 영락교회 박조준 목사 부부. 20여만달러 밀반출 기도 혐의로 영장
1985년 스포츠서울 창간
1987년 프레드 애스테어(Fred Astaire), 미국 댄서, 영화배우 사망
1992년 소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 사망
1994년 러시아-나토, 군사 정치적 관계 정립을 위한 '평화동반관계'에 서명
1994년 일본 <94 방위백서>에서 "북한을 최대 위협" 평가.
1995년 김영삼 대통령, "외국쌀 사서라도 북한에 제공하겠다".
1995년 북한 중앙방송, 쌀 구걸 불구, "북한 풍년, 남한 기근" 선전.
1995년 일본 경찰, 하코다테 공항에서 납치된 니폰 에어라인 747기의 승객 365명 구출. 이 납치범은 구속된 옴진리교의 교주 아사하라 쇼코(麻原彰晃)를 석방하라고 요구하며 대치.
1998년 속초 앞바다에서 꽁치잡이 그물에 걸린 북한잠수정을 동일호 선장 김인용(38세)씨가 발견하여 신고
1998년 시인 윤동주, 육필원고 150점 공개
1999년 미국의 대표적 현대작가 JD 샐린저가 27년전 쓴 연애편지 1억9천만원에 경매
2001년 성악가 파바로티-도밍고-카레라스, 국내 첫 합동 공연
2002년 한국, 아시아 첫 '4강 신화' 달성. 승부차기에서 스페인에 5대3 승리
2003년 이승엽 국내 최초로 300 ㆍ301호 연타석 홈런
2004년 900년 전 목판인쇄한 대각국사 의천의 '교장(敎藏)' 첫 공개
2004년 가나무역 김선일씨 이라크 무장단체에 피살
2004년 미국 13세 천재소년시인 스테파넥 요절
2005년 부산 해운대 반송동 성서침례교회에서 고 김선일씨 1주기 추모예배
2005년 세계정교회 수장인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 방한
2017년 보츠와나 제 2대 대통령 퀘트 마시레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