醉作[취작]/金浩然齋[김호연재].
취하여 짓다. 醉後乾坤濶[취후건곤활] : 취하고 나니 온 세상이 트이고 開心萬事平[개심만사평] : 마음을 여니 모든 일이 편하네. 悄然臥席上[초연와석상] : 고요하게 자리 위에 누웠노라니 唯樂暫忘情[유락잠망정] : 다만 즐거움에 잠시 정을 잊었네. 悄然[초연] : 근심하는 모양, 조용한 모양, 고요한 모양. 金浩然齋[김호연재 : 1681-1722] : 小大軒[소대헌] 宋堯和[송요와 : 1682-1764]의 부인, 女流詩人[여류시인] 김호연재(1681~1722)는 200여 편의 한시를 남긴 여성 문인이다. 호연재 김씨는 1681년 8월 19일 홍성군 갈산면 오두리에서, 아버지 김성달과 어머니 연안 이씨 사이에서 6남 4녀 중 여덟째로 태어났다. 호연재의 문학적 재능은 안동김씨의 가통을 이어받아 어렸을 때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전해진다. 19세에 동춘당의 증손 소대헌 송요화와 혼인했다 조선 인조 때 우의정을 지낸 김상용의 후손으로 태어나 1699년 송요화와 혼례를 치른 뒤 대전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의 삶은 ‘호연재’라는 호에서도 느껴지듯 호방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술을 마신 뒤 쓴 한시 ‘취작(醉作)’만 봐도 그의 의연하고 당당한 정신세계가 읽힌다. 시의 뜻을 풀어보면 ‘취하고 나니 천지가 넓고/ 마음을 여니 만사가 편안하구나/ 고요히 자리에 누웠으니/ 잠시 인간사 잊음을 즐기노라’다. 성격도 대범했다. 진잠(현 대전 유성구)에 사는 시숙부가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일이다. 병이 옮을까 다들 두려워하는 상황에서 그는 “그 누가 들어가서 상을 치르겠나”며 직접 나섰다. 수의를 지어 장례를 치렀고, 미음을 끓여 남은 가족을 돌봤다.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된 대전 송촌의 ‘소대헌·호연재 고택’이 바로 그가 살았던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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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오후(R.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