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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노 지고로의 유도

작성자송관장|작성시간07.10.03|조회수46 목록 댓글 0
가노 지고로의 유도   
-강도관 유도란?
손기목 기자 (2000/12/26)/추천수:0 

<소년기와 유술에 대한 관심>

유도(柔道)가 유술(柔術)에서 태동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의 유도가 있기까지는 한사람의 무도인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가노 지고로이다.

가노 지고로는 1860년 10월 28일 가노 지로 사꾸마레시가의 3남으로 효고현(縣)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의 이름은 신스께였다. 메이지 3년(1870), 11살이었을 때 고향에서 동경으로 상경하여 가기가라초에서 부친과 함께 살면서 학문과 유교와 서도를 배웠다.

메이지 6년(1873), 14살 때에는 이꾸에이 학당에 들어가 처음으로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학당은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했지만 이전부터 영어를 배웠던 그에게는 그다지 힘든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강한 사람이 우위를 점하는 분위기에서 신체적으로 허약했던 가노는 소외를 경험하게 된다. 이에 불만을 가진 가노는 자신을 강하게 하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어렸을 때 일본에는 유술이라는 것이 있어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이길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을 상기하여 유술을 배우고 싶어 했다.

하지만 실제 유술을 쉽게 배울 수는 없었다. 이미 무사가 지배하던 시대가 지나고 새로운 문물과 학문이 지배하기 시작한 메이지 시대에는 이미 사장되기 시작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텐진신요류와 기도류 그리고 유도>

결국 수소문 끝에 텐진신요류의 유술을 접하게 되었다. 그는 후꾸다 야스께의 문하에서 유술을 배웠는데 이후 메이지 12년(1879) 미국의 전 대통령(18대)인 글랜튼 장군이 왔을 때 시부자와 에이찌라는 사람에게 초대되어 이소 마사토, 후꾸다 야스께와 그밖의 유술명가와 함께 아스까야마에 있던 시부와자 별장에서 유술시범을 보였다.

이후 후꾸다가 죽게 되자 후꾸다의 도장을 이어받고 정식으로 텐진신요류의 이소마타우 에이몬의 제자로 입적하여 3대째의 도장을 상속받고 있던 이소마사토모의 도장에 입문하였다. 그러나 이소마사토모 역시 62세의 나이로 죽자 다시 그는 3번째 스승인 기도류(起倒流)의 이이꾸보고넹의 문하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전에 그가 배운 텐진신요류는 관절기와 굳치기 등이 주된 기술었지만 이 기도류는 텐진신요류보다 메치기 기술을 중요시하였다. 특히 배되뒤치기와 모두걸기, 허리뛰기 등은 텐진신요류와 기술상 많은 차이가 있었다.

가노는 이런 유술에 대한 성심어린 애정 이외에도 학업에도 열중해 메이지 14년(1881)에 동경대 정치과와 경제과를 동시에 공부하여 문학부를 졸업하였다. 이외에도 1년 더 철학을 전공하였다.

무사들에게는 유술, 검술, 권술 등이 생과 직결되는 생사의 도(道)의 한 방편이지만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기는 힘든 일이었다. 누구나 자신의 모든 것인 생명을 걸고 죽음 속에서 삶의 철학을 배울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도장 안에 안주하며 관념적인 철학으로 진정한 무도(武道)를 논한다는 것도 역시 어려운 일이다.

그가 확립한 현대 강도관 유도는 이런 그의 유술에 대한 애정과 학문적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초창기 학당에서 배운 유학과 대학시절 당시 서구교육의 영향을 받은 실리주의를 바탕으로 단순한 기술적 차원이 아닌 일상생활 속에서 체화될 수 있는 삶의 도(道)로써 승화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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