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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유명인물

박헌영

작성자박유승(박노동)|작성시간10.07.20|조회수289 목록 댓글 0

박헌영과 영해박씨

 박헌영(朴憲永.1900~1955)은 남한과 북한 모두가 배척한 불운의 공산주의자였다. 본관은 영해(寧海)이다. 박헌영은 충남 예산군 신양면에서 영해박씨 박현주와 서산 출신의 이학규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인 박현주는 본처와의 사이에 이미 열 살 난 아들을 두었다. 그런데도 집안에 딸이 없다는 이유로 첩을 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첩은 딸이 아닌 아들 박헌영을 낳았다.

 박헌영은 어머니의 헌신적인 보살핌으로 고향에서 대흥보통학교(1기)를 나와 경성고보(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한때 미국 유학도 꿈꾸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고,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면서 공산주의자의 길을 걷게 됐다.

 현재 그의 고향인 예산군 신양면에는 그의 흔적이 거의 없다. 면사무소에 호적도 없다. 친척들도 남아 있지 않다. 박헌영으로 인해 집안 전체가‘멸문’되었기 때문이다. 영해박씨 문중에서는 1966년 족보를 만들 때 박헌영이란 이름을 아예 지워버렸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이곳 사람들은 박헌영에 대한 언급을 꺼린다.

 박헌영의 생가는 정확하지 않다. 예산군 신양면 죽천2구 혹은 신양면 면소재지라고도 한다. 확실한 것은 죽천2구가 원래 박헌영의 아버지가 살았던 곳이다. 그리고 신양면 소재지는 박헌영의 어머니가 본가에서 나와 주막집을 차렸던 곳이라는 사실이다.

 한편 당초 박헌영의 생가는 신양면 신양리 299번지로 되어 있다. 옛 신양협동조합 옆집 디스다방 간판의 영업하지 않는 단층 건물 집터가 원래 집터로 알려져 있다.

 박헌영 옛집을 관리하던 사람이 20년 넘게 관리하다 특조법으로 자기 명의 등기한 후 다른 사람에게 팔아넘겼다. 그 사람은 현재 광시면에서 한약 관계 일을 한다고 전해진다.

 이후 이 집을 인수한 사람은 옛집을 헐고 단층 양옥을 지어 왼 칸은 호프집, 오른 칸은 디스 다방을 했으나 현재는 문을 닫았다. 주인은 수원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박헌영의 어머니 이학규는 신양면 이 거리 아래 일명 비틀거리(비틀비틀에서 따온 말)에 주막집을 차려 박헌영의 뒷바라지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헌영이 다녔던 예산 대흥보통학교는 예당저수지 옆에 있으며 옆에는 봉수산 자연휴양림이 있다. 봉수산은 백제 부흥운동 거점지인 임존성이다. 흑치상치는 임존성에서 나당연합군에게 연전연승 한다.

 그러나 그는 당나라의 설득에 넘어가 임존성을 함락하는 배신자 백제 장군이 되고 만다. 이로서 백제부흥운동은 끝이 난다. 흑치상치는 당나라에서 출세를 거듭하다가 결국 주살되고 만다.

 그의 비석이 낙양의 북망산에서 최근 발견되었다. 흑치라는 이름은 검은 이빨을 뜻할 수도 있다. 또는 옛 예산지방을 백제시대에 흑치라고 불렀다는 이설이 있다. 박헌영은 이 산 아래에서 태어나고 대흥보통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훗날 조선 공산당의 핵심인물이 된다.

 박헌영은 최측근에게조차도 자신의 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원칙적이고 교조주의적인 성향 때문에 끊임없이 공박당해야 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지내는 딸에게 보낸 편지에 절절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등 인간적인 따뜻한 정도 많은 사람이었다.

 박헌영은 일제하에서는 독립운동, 광복 후에는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다. 그는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다. 그러면서 민중이 주인이 되는 민주공화국을 만들고 싶었던 민주주의자이기도 했다.  

 박헌영은 경성보통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1 운동에 참가하면서 본격적으로 사회운동에 눈을 떴다. 1921년 여운형 등이 주도한 이르쿠츠쿠파 공산당에 입당했다.

 그러나 1922년 징역형을 받고 이후 10여 년 동안 수감과 출소를 반복하면서 고문을 받아 정신질환에 시달리기도 했다. 1924년 출옥 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1925년 김약수·김재봉 등과 함께 조선공산당 창당대회를 열어 공산당을 조직했다. 또한 고려공산청년회를 결성해 책임비서를 맡아 조직 활동을 전개하다가 구속되었다.

 1927년 병보석으로 출감한 후 1928년 소련으로 탈출했다. 1929년 모스크바의 동방노력자공산대학(東方勞力者共産大學)에서 교육을 받은 후 1932년 12월 상하이로 돌아와 공산주의 운동에 전념한다.

 1933년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국내로 압송, 6년형을 언도받아 복역했다. 1939년 출옥하여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의 한 조직인 '경성콤그룹'의 책임자로 추대되었다. 1940~41년에 걸친 검거 선풍으로 당 재건에 실패하자 전라남도 광주시 백운동에 있는 벽돌공장의 인부로 위장해 은신하던 중 8·15해방을 맞이했다.

 8·15해방 직후 공산당 재건에 주력하여 장안파와 재건파를 통합하여 조선공산당 중앙기구를 구성, 당 책임비서가 되었고, 여운형이 이끄는 '조선건국준비위원회'와 연합하여 '조선인민공화국' 수립에 참여했다.

 이후 미국에서 이승만이 귀국하여 독립촉성중앙협의회를 구성하자 10월 23일 조선공산당을 이끌고 참여했으나 친일세력의 처리문제로 탈퇴했다. 1946년 2월 남한 좌익세력의 결집체인 민주주의 민족전선이 결성되자 여운형·허헌·김원봉·백남운 등과 함께 의장단에 선출되었다.

 1946년 5월 '조선정판사 위조지폐사건'을 계기로 조선공산당 간부들에 대한 체포령이 떨어지자 1946년 9월 남한을 탈출, 입북한다. 1946년 11월 결성된 남조선노동당의 부위원장을 맡아 당을 지도하면서 금강정치학원에서 남파간첩을 양성했다.

 1948년 9월 북한정권이 수립되자 부수상 및 외상에 취임했다. 그러나 1950년 남조선노동당의 핵심인물인 김삼룡과 이주하가 체포되어 활동이 현저히 약화되자 운동의 주도권을 북조선노동당에게 넘겨준다.

 그는 1952년부터 시작된 남로당 숙청작업 때 '미제국주의 고용간첩의 두목' '공화국 전복기도' 등의 혐의로 기소된다. 중국의 마오쩌둥(1893~1976)과 소련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박헌영은 1955년 김일성의 지시를 받은 내무상 방학세의 권총에 의해 평양 외곽에서 살해당한다. 

박헌영은 건국 후에 남로당 지도자로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인물이었다. 당시 김일성은 무명 인물이었다. 그러나 훗날 김일성은 박헌영을 친미주의자라는 올가미를 씌운다.

 박헌영은 2년 동안 온갖 고문을 받았다. 미제 간첩이라는 거짓 자백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박헌영은 1955년 12월 15일 재판관에게 말했다. "1939년부터 미국의 간첩으로 있었다." 그리고 12월 17일 처형된다. 김일성에게 이용당하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된 것이다.

 영해박씨의 시조는 신라 눌지왕 때의 이름난 충신 박제상(朴堤上)이다. 박제상은 박혁거세의 9세손인 갈문왕의 손자다. 따라서 신라박씨에서 분관된 신라 5대 파사왕의 후손이다. 시조의 26세손인 박명천이 고려 때 공신으로 영해군에 봉해져 후손들이 영해를 본관으로 삼았다. 영해는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의 지명이다.

 박제상이 벼슬에 오르던 눌지왕 시절 신라는 약소국가였다. 그래서 왕의 두 아우인 복호와 미사흔이 각각 고구려와 일본에 볼모로 잡혀 있었다. 417년 박제상은 단신으로 고구려 장수왕을 설득하여 복호를 구출한다.

 이어 정치적인 망명객을 가장하여 일본으로 건너가 미사흔을 탈출시키고 자신은 포로가 된다. 일본 왕이 그를 회유하자 "왜의 신하가 되느니 차라리 신라의 개나 돼지가 되겠다"며 충절을 지키다 불에 타 죽는다.

 한편 그의 부인 김씨는 두 딸과 함께 동해를 바라보며 남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된다. 그녀의 넋은 새가 되어 남편의 넋을 고국으로 모시고 왔다고 전해진다. 민요 "강강수월래"는 당시 "김씨가 남편을 기다리며 불렀던 구슬픈 노래"라고 영해박씨 문중은 주장한다. 그녀의 수심가 "간간수월래(看看水越來…보아도 보아도 물만 넘쳐 흐른다…임은 오지 않고)가 오늘날 강강수월래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방아타령으로 유명한 백결(百結)선생은 박제상의 외아들이다. 벼슬을 마다하고 청빈하게 살았던 그는 가난해서 옷을 겹겹이 기워 입었기에 백결선생이라 했다.

 어느 해 섣달그믐께 이웃집에서 떡방아 찧는 소리가 나자 아내가 시름에 잠겼다. 이때 백결은 거문고로 방아 찧는 소리를 내어 아내를 위로한다. 78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2000년 현재 25,189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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