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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 기형도

작성자김민서|작성시간26.06.10|조회수27 목록 댓글 1

어둑어둑한 여름날 아침 낡은 창문 틈새로 빗방울이 들이친다. 어두운 방 한복판 김은 짐을 싸고 있다.
그의 트렁크가 가장 먼저 접수한 것은 김의 넋이다. 창문 밖에는 엿보는 자 없다. 마침내 전날 김은 직장과 헤어졌다. 잠시동안 김은 무표정하게 침대를 바라본다. 모든것을 알고 있는 침대는 말이 없다. 비로소 나는 풀려나간다,
김은 자신에게 속삭인다, 마침내 세상의 중심이 되었다.

나를 끌고 다녔던 몇 개의 길을 나는 영원히 추방한다.
내 생의 주도권은 이제 마음에서 육체로 넘어갔으니 지금부터 나는 길고도 오랜 여행을 떠날 것이다. 내가 지나치는 거리마다 낯선 기쁨과 전율은 가득 차리니 어떠한 권태도 더 이상 내 혀를 지배하면 안 된다.

모든 의심을 짐을 꾸리면서 김은 거둔다. 어둑어둑한 여름날 아침 창문 밖으로 보이는 젖은 길은 침대처럼 고요하다. 마침내 낭하가 텅텅 울리면서 문이 열린다. 잠시동안 김은 무펴정하게 거리를 바라본다. 김은 천천히 손잡이를 놓는다. 마침내 희망과 걸음이 동시에 떨어진다.

그 순간, 쇠뭉치 같은 트렁크가 김을 쓰러뜨린다. 그곳에서 계집아이 같은 가늘은 울음소리가 터진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빗방울은 은퇴한 노인의 백발 위로 들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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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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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민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0 여수의 사랑 P. 305 - 강계숙 해설 중

    기형도 시 <그날>의 ‘김’을 ‘자흔’으로 바꿔 읽으면 ,
    방문을 열고 나가는 ‘김’의 형상은 세상 밖으로 흩어지기 직전에 놓인 자흔이 된다. 어둑한 여름날 새벽녘 자흔은 아마도. ‘잠시 동안 무표정하게 거리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녀가 걸어간 “젖은 길”은 정선의 “온 방과 세면장”으로 이어져 “안개 같은 정적으로” 그곳을 “부옇게”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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