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문훈 "창의적 아이디어로 텅 빈 땅에 상상 속 건물 올려"
요즘 청소년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업 중 하나는 건축가다. 하지만 정작 건축가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모른 채 막연히 꿈만 꾸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문훈건축발전소의 문훈(42) 소장은 "건축가는 건물이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질지 머릿속에서 미리 지어보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텅 빈 땅에 자신이 꿈꾸던 상상 속의 건물을 만들어낸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죠. 건축가는 작게는 문 손잡이에서부터 넓게는 도시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에요. 세상을 좁게 또는 넓게 바라보는 줌렌즈를 가진 사람이죠."
◆어릴 적 그리던 그림 속에 자신의 꿈 발견
문 소장은 지질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강원도 영월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건축가가 되겠다는 꿈은 아직 없었지만 유독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서너 살 무렵부터 꼼짝 않고 앉아서 온종일 그림을 그리는 '이상한 꼬마'였다"고 했다. 미술학원에 다닌 적은 없지만, 늘 그림을 통해 상상의 나래를 폈다.
건축가라는 꿈을 갖는 데는 호주 유학생활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 중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호주에서 생활했다. 문 소장은 "좋은 건축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노력 중 하나가 다양한 독서인데 이를 호주 학교에서 배웠다"고 말했다.
"사고의 폭을 넓히려면 풍부한 인문학적 교양이 반드시 필요해요. 저는 어려서는 책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 호주에서 독서의 묘미를 알았죠. 호주 학교에는 교과서가 따로 없었어요. 수업 주제가 정해지면 도서관에 가서 그에 맞는 책을 찾아서 공부하더군요. 공부를 하더라도 제 생각과 관점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배웠죠. 청소년기에 자신의 관점을 찾는 경험은 매우 중요해요."
호주 학교에서도 문 소장의 그림 솜씨는 발군이었다. 선생님이 전시회를 열어줬을 정도다. 그 무렵 그는 자신의 그림 속에서 꿈을 발견했다. "당시 풍경보다 건물을 많이 그렸다. 화가보다 건축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고 추억했다.
고1 2학기가 끝날 때쯤 한국에 돌아왔다. 서울 휘문고로 전학을 오면서 그는 적잖이 고생했다. 첫 시험 성적은 반에서 꼴찌. 하지만 강한 꿈을 가졌기에 흔들림 없이 공부할 수 있었다. 인하대 건축학과에 진학한 이후 생활은 천국이었다. 텅 빈 땅에 새로운 건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늘 '창의적인 일'을 바라왔던 그에게 딱 맞아떨어졌다. "좋아하는 일을 하니 밤을 새워도 즐거웠다. 좋아하는 일을 하니 잘한다고 칭찬받고, 칭찬을 받으니 더욱 잘하게 됐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미국 유학을 결심, MIT 건축대학원 석사 과정을 밟았다. 귀국 후 건축회사에서 발판을 다지고, 2001년 문훈건축발전소를 세웠다. 지난 2005년에는 서울 홍익대 앞 '상상사진관'으로 한국건축가협회상을 받기도 했다.
◆고정관념을 버리는 데서 창의적 아이디어 나온다
건축가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중요한 직업이다. 문 소장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생각과 생각, 사물과 사물 간에 경계를 두지 말라"고 조언했다.
"어떤 사물과 사물이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을 갖지 마세요. 모자가 건물이 될 수도 있고, 벌레가 건물이 될 수도 있어요. '이것은 이것이다'라는 우리 머릿속의 규정을 풀면 그게 바로 아이디어가 돼요. 세상의 모든 위대한 발견은 사실 실수나 사건·사고에서 태어나죠.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이라는 유명한 여행 안내서는 원래 '러블리 플래닛(lovely planet)'이었는데 실수로 인쇄가 잘못돼서 탄생했다고 하잖아요. '그건 너무 유치하고 장난 같지 않으냐'는 편견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생각을 '방목'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그는 "건축가를 꿈꾸는 청소년이라면 기본적인 그림 실력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화가처럼 그림을 잘 그리라는 뜻이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그림 실력을 갖춰야 한다는 말이다. 또 "창의적인 일에는 반드시 다양한 독서, 풍부한 문화적 교양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창의력은 어떤 교육에 좌지우지되지 않아요. 자신에게 달린 것이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스스로 배우고 습득하고자 하는 열정이 중요해요. 건축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경험을 해도 괜찮아요. 산속 절에서 지내다가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도 있어요."
또 건축가에게는 마음의 여유와 뚝심이 필요하다. 소나기처럼 일이 쏟아지다가도 어떤 때는 일이 없어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하는 시기도 찾아온다. 건축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면 안정적이지만, 만약 혼자 독립해 일하기를 원한다면 더욱 조급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문 소장은 "자리를 잡기 전까지는 6개월 넘게 일이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다고 불안해하거나 조급한 마음을 갖지 않고, 시간을 길게 보는 용기와 배짱이 필요한 직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여유가 생기면 여행을 하거나 책을 읽으며 자신에게 재투자하는 시간을 갖는다. 전시회에 참여하거나 직접 책을 쓰는 경우도 있다. "일만 계속하면 아이디어가 소진되기 때문에 재충전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건축은 문·이과를 통합하는 분야다. 다양한 인문학적 교양이 필요하고, 건물 안에 필요한 전기와 설비 분야도 이해해야 한다. 넓게 보면 디자인까지 포함한다. 건축학과에 진학하더라도 관심을 넓게 갖고 다양한 분야를 공부해야 한다.
"물론 건축학과에서 기본을 다지면 좋지만, 반드시 건축학과에 진학할 필요는 없어요. 세계적인 건축가 중에는 다른 분야에서 일하다가 30대 이후에 건축을 시작한 사례도 많아요. 건축가는 대개 40~50대가 되면서 빛을 발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동안 쌓은 지식과 경험이 작품에 녹아들기 때문이에요. 늦게 시작했다고 해서 뒤처지지 않아요. 반대로 건축가가 자동차 디자인을 하는 등 다른 분야로 진출할 수도 있어요. 밖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범위가 넓다는 점 또한 건축의 매력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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