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세아서의 중심주제를 말하시오.
호세아 서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저주를 긴장된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다(밑에서 설명). 이 말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는 말인가? 아니면 미워하신다는 말인가? 그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는 말로 집약 될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는 말은 아무런 공의와 정의없이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공의의 칼을 가지시고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호세아서의 중심주제이다(아모스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러한 중심주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이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고멜과 결혼하여 자녀를 낳으라고 한 사건이다. 호세아가 음란한 고멜과 결혼하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음란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호세아와 고멜사이에 낳은 두 아이의 이름을 이스르엘(이스라엘족속의 나라를 폐할것이다)이라 하고, 로루하마(내가 다시는 이스라엘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사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 것은 음란한 이스라엘에 대한 대한 하나님의 공의와 저주를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 우리가 알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그 사랑이 공의가 없는 무턱댄 사랑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을 너무도 많이 오해하고 있다(하나님께 대한 바른 지식의 부족,피상성). 구원파를 포함한 일부 극단적인 복음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 강조한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죄를 짓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과거,현재,미래의 죄까지 사해주셨기때문에 걱정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공의가 빠진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안식교)과 같은 일부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공의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율법적 의무와 두려움만을 조장한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를 담은 사랑의 모습을 십자가사건을 통해서 가장 잘 알수 있다.만일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공의가 없는 사랑이라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을 필요가 없다.왜 예수님이 십자가에에 죽으셔야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만족시키기 위해서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지신 것은 먼저 하나님의 공의의 입장에서 볼 때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십판하셔야 하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하나님의 공의의 모습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내려져야 할 공의의 십판을 자신에 대신 져주셨다는 것이다. 여기서 완벽한 공의를 담은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았다 할지라도 우리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공의의 하나님앞에 정직하고 순결하게 살아야 한다.
문/1.하니님의 공의와 사랑에 대한 극단적인 견해에 대해서 좀 더 토론해보시오.
문/2.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입장에서 호세아서를 분류해보시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1장 2절
7절
10절,11절
2장 1절
14-23절
3장 1절-5절
4장,5장
6장 1절-3절
7장-10장
11장 1절
8절-11절
12장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심판)
1장2-6절,8,9절
2장2-13절
4,5장전구절
6장4-11절
7-10장 전구절
11장2-7절,12절
12장전구절
A.위의 구절들을 모두 찾아보고 각 단락의 주제를 적어보시오.
B.이상을 통해서 보았을 때 이 호세아서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어떻게 긴장을 이루고 있는가?
C.하나님께서 호세아의 아들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한 이유가 무엇인가? 어떤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가?(왕하8:29-9:37,10:11.15:10)
D.이 시대에 나타난 사랑과 호세아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비교해보시오?(자녀교육문제,가정에서의 문제,학교나 직장에서의 관계)
2.B.C.8세기의 선지자(아모스, 호세아)들의 신학이 무엇인가?
다윗언약 이후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이스라엘백성과 함께 계시며, 이스라엘 나라의 왕위를 영원 무궁하도록 지키실 것이라고 생각했다(삼하7:9B-14/다윗언약내용-이스라엘을 대적의 위협에서 지키심, 다윗을 위하여 집을 세우심,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 하리라). 그런데 솔로몬 이 후 이스라엘은 두 왕국으로 분열되었고, 그 후에도 강대국의 침입을 받게 되었으며, 결국 이스라엘(유다포함)은 멸망하게 된다. 이러한 다윗언약과 이스라엘의 역사적 현실 사이의 괴리를 당시의 사람들(왕과 그들의 편이 되었던 궁중 선지자, 혹은 거짓선지자)은 어떻게 이해했는가? 그것은 비록 이스라엘이 역사적으로는 외적의 침입을 받고 이스라엘왕위에도 큰 위협이 따르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약속하신 것처럼 이스라엘과 함께 계시며(즉 그들의 하나님 노릇해주시고), 결국 종말(선지서에서는 여호와의 날, 혹은 그 날이라고 표현한다)에 가서는 결국 이스라엘나라를 하나님께서 완전히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는 낙관과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암6:1,7:10-17, 참조 미3:11). 이에대해 B.C.8세기의 선지자들은 오히려 정반대의 메세지를 선포했다. 그들은 말하기를 율법의 정신에 떠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신다는 것
이다. 그런데 이 멸망시키심이 단순히 이스라엘의 더 큰 회복을 위한 멸망이 아니라 완전한 심판을 위한 멸망이라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이 낙관적으로 고대했던 여호와의 날은 이스라엘을 향한 회복의 날이 아니라, 심판의 날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암6:18-20) 그러면 왜 이러한 상반된 견해(신학)가(이) 나왔을까요? 그것은 다윗언약에 대한 당시의 사람들의 오해때문에 나온 것이다. 이스라엘사람들은 다윗에게 한 약속이 혈통적 이스라엘왕국을 위한 것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다윗언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도는 그렇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혈통적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다든지, 또한 민족적 이스라엘의 왕위를 유지시키시는데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중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남은자)과 함께 계시며, 하나님이 친히 세우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왕국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삼하7:12"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다윗언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은 역사적으로는 솔로몬을 가리키나 궁극적으 로는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네 아들을 통해서 네 나라위를 견고케 할 것이라는 것은 다윗의 혈통적인 아들들인 이스라엘의 왕과 그들의 나라가 아니라, 다윗의 진정한 아들인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우게 될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스라엘사람들은 이 다윗의 언약이 자신들의 민족적 보존의 의미로 이해했던 것이다. 그러나 B.C. 8세기의 선지자들은 이러한 다윗언약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고 당시의 이스라엘에 대한 멸망과 심판을 선고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의 멸망과 심판은 다윗언약의 파기가 아니라 진정한 다윗언약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모든 이스라엘이 무조건적으로 하나님의 언약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출애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헤와 긍휼의 정신을 이해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가 진정한 이스라엘(남은자)이(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민족적 이스라엘의 심판과 멸망중에서라도 이러한 진정한 이스라엘(야곱의 집으로 표현,선택된 이스라엘)과는 함께 계시며 지키실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아모스서의 중심주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구절이 암9:8절이다. 암9:8 "보라 주 여호와 내가 범죄한 나라(이스라엘을 포함한 모든 나라)에 주목하여 지면에서 멸하리라, 그러나 야곱의 집(이스라엘중 진정한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 다윗언약의 대상)은 온전히 멸하지는 아니하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명령하여 이스라엘 족속(민족 이스라엘)을 만국 중에 체질하기를 곡식을 체질함(아모스서에 나타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같이 하려니와 그 한 알갱이(선택받은 진정한 이스라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라리라 내 백성중에서 말하기를 화가 우리에게 미치지 아니하며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 모든 죄인(거짓 선지자의 신학을 가졌던 당시의 모든 혈통적 이스라엘)은 칼에 죽으리라"(아모스서의 중심주제를 담은 요절) 그리고 진정한 다윗의 후손(아들)을 통해서 다윗언약
에 나타난 하나님나라를 세우실 것이며 그 나라 위를 영원히 켠고케 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암9:11"그 날에(여호와의 날, 종말의 날, 궁극적으로는 예수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재림의 때롤 포괄하는 때를 가리킨다) 내가 다윗의 무너진 천막(다윗 언약적 표현)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호3:5"그 후에 저희가 돌아와서 그 하나님 여호와 그 왕 다윗(예수그리스도)을 구하고 말 일(아모스서에 나타난 여호와의 날)에는 경외하므로 여호와께로 와 그 은총으로 나아가리라(신약시대의 소망)"
문/1.여호와의 날의 의미를 말하시오.(참조,암5:18,욜1:15,습1:14-18)
문/2.남은자란 무엇을 말하는가?(참조.사10:20,21,22,롬9:27,롬11:5)
문/3.B.C.8세기의 선지자였던 호세아의 메세지와 아모스의 메세지를 서로 비교해보시오.(연
구과제,4참조)
3.B.C.8세기의 선지자들의 산학이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 말씀이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을 키져야지만 우리의 구원이 안전히 보장받는다고 이해해야하는가? 은혜로 구원받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포로기 이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던 것은 결국 그들이 율법을 잘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더 철저히 율법을 지켜려고 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예수님이 오시 전까지의 400년(중간시대, 계시의 공백기)동안 율법의 근본정신에서 벗어난 율법주의를 태동케 했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율법주의가 예수님이 전해 준 복음과 사도가 전해준 복음에 충돌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 아모스서를 대할 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면 결국 구원의 반열에서 제외 될 수 있기(심판받을 수 있기) 때문에 더욱더 힘써 율법을 지켜 나가지만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가 무엇인가?
첫째로,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기 위함이 아니라, 율법은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정신(출애굽정신)을 구체화시켜 나가기 위한 것이다.
율법의 정신은 인간의 행위를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에 동참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의 정신을 유지시키고 기억케하기 위함이다.
예를 들어보자. 왜 구약시대때에 왜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포함한 절기들을 지키라 하셨는가?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유월절의 정신을 그 절기들을 통해서 기억케하기 위함이다. 구약의 모든 절기들을 유월절을 중심으로 제정되어있음은 구약의 모든 절기들이 바로 그 유월절의 정신을 기억시키기 위한 조치들인 것이다. 또한 안식일에 왜 일을 하지 말하는 명령을 하시는가? 그것은 우리가 일을 하지 않는 우리의 행위자체를 의지하는 것이 안식일의 정신이 아니라, 우리가 일을 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힘으로 살아 갈 수 있음 나타내기 위해서 안식일에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이스라엘백성들은 안식일을 지킨다 하더라도 이 율법의 근본정신을 망각한체 율법주의로 빠지게 된 것이다. "율법주의"란 율법의 근본정신(유월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함)을 망각한체 율법 그 자체에 메어 인간의 노력으로 지켜나가려고 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는 이 아모스서를 통해 가난한자를 압제하고 그들을 돌아보지 못함을 두고 크게 책망하는 것을 보게 된다. 왜 그들이 가난한자를 압제하지 말고 돌아보아야 하는가? 그것도 다름이 아니라 그들이 애굽땅 종되었던 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이기때문이다(신15:15) 이것을 잊지 않기위해 가난
한 자를 돌봐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율법의 정신은 신약시대에도 마찬가지이다. 신약시대에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라는 말씀은 우리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받고 사랑받은 자인 것을 기억하고 드러내기 위해서 서로 용서하고 사랑해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포로기 전의 이스라엘백성들은 이 율법을 무시했고, 포로기 이후의 이스라엘백성들은 이 율법의 근본정신(출애굽의 기억)을 잊어버리고, 오히려 율법주의에 빠져 인간의 공로로 구원받는다는 사탄의 사상을 낳게 된 것이다.
그래서 호세아서에서는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못해서 심판받게 된다는 것도 강조하지만,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사랑을 거부했기에 심판을 받게 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즉 아모스서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이 율법을 지키지 못함은 호세아식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은헤와 사랑을 잊어버리고 무시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래서 결국 아모스서는 율법을 지키지 못해서 이스라엘이 멸망된다고 보았고, 호세아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저버려서 이스라엘이 멸망된다고 보고 있는데 이것은 같은 의미이다(아모스와 호세아 비교).
문/.구약에 나타난 약자보호법(안식년,희년법)에 대해서 설명하시오(연구과제)
둘째로, 율법의 더 적극적인 의미는 이스라엘을 은혜로 구원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담고 잇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이스랑레백성들이 율법대로 삶으로서 이 세상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제사장나라)이(가) 되어 하나님의 축복을 이방인들에게 드러내기위함이다(출19:5-6)
세번째로, 율법은 이스라엘중 진정한 선택받은 참 이스라엘을 가려내는 시금석이다.
이 말은 이스라엘백성들이 율법을 지켜야지만 선택받은 이스라엘이 된다는 이 아니다. 선택받은 자
는 하나님의 주권적의지에 따라서 율법대로 살게되어 있고 결국 그들은 심판을 받지 않고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에서와 야곱의 팥죽사건) 그러나 이스라엘백성이라 하더라도 선택받지 않은 자는 율법대로 살 수 없고 결국 율법에 의해서 저주를 받아 심판받을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을 결코 기계적으로 적용시켜서는 되지 않는다. 즉 "나는 선택받은 자이기에 말씀대로 살아간다. 그런데 너는 선택받는 자이기에 말씀대로 살 생각을 아예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적용이다. 어느 누구도 미리 선택된 사실을 말할 수 없다. 선택된 자는 말씀을 지킴으로 종말에 판명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모든 이스라엘에 다 선택받은 자도 아니라 할지라도 계속된 회개의 메세지를 전파했던 것이다. 그 회개의 메세지에 응한 자는 선택된 이스라엘로 판명이 되게 된 것이다.
이외에도 율법은 가나안화-세속화-를 막기위한 하나님의 조치들로도 볼수 있다.
그러면 대부분의 이스라엘백성들이 율법의 정신을 잊어버리고, 율법대로 살지 못했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그것은 궁극적으로 보았을 때 혈통적 이스라엘이라 하더라도 모두 선택받은 이스라앨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누가 진정한 선택받은 이스라엘이라는 말인가?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혈통적인 조건때문에 선택받은 백성이라 말 할 수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스라엘 중의 진정한 이스라엘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유월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헤의 정신을 잘 이해하여 하나님의 울법대로 살아가는 자가 진정한 이스라엘이고 선택받은 이스라엘인 것이다. 그리고 혈통적인 이스라엘이라 하더라도 선택받지 아니한 이스라엘은 결국 심판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여기서 선택받지 않은 이스라엘이 결국 심판받을 수 밖에 없음은 단순히 운명론적인 논리가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못했기때문으로 보아야 한다).
정리하면 선택받은 이스라엘은 그들이 선택받은 받은 자이기에 유월절의 정신과 율법의 정신에 부합한 삶을 살아감으로 그들이 선택받은 자로서 판명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유월절의 정신을 망각하여 하나님의 법이 아닌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이스라엘은 결국 선택받지 않은 이스라엘로 판명이 되어 결국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경계를 받아야 한다.로마서의 표현대로라면 이스라엘민족은 참 감람나무였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정신을 잊게 되자 멸망시켰는데 참 감람나무에 접부침을 한 돌 감람나무인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정신을 망각한체 우리 마음대로 살아가면서도 우리가 선택받고 구원받았다고 자만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다.(롬11:20:23) 우리는 아무도 자기의 인간적인 기준을 가지
고 내가 이러한 조건대문에 선택받고 구원받았다고 말할 수 없다. 구원의 확신이란 구원이 오직 여호와께 달려 있음을 확신하는 것이지, 그것을 내게 적용시켰을 때는 신중해야하는 것이다. 우리가 무조건 교회에 나간다고해서 또한 선교단체에 등록했다고 해서 우리가 다 선택받고 구원받은 자로 확신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진정으로 선택받은 자라면 우리가 하나님안에 있음으로 나타나는 열매를 맺힐수 밖에 없다. 만일 우리가 입으로 주여 주여 하면서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인체 하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안에 있는 자로서의 참된 삶의 열매들이 나타나지 않으면 우리는 심판받을 수 밖에 없음을 기억해야한다.
선택과 구원의 비밀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는 것이다. 인간적인 면에서 볼 때 선택받은 자는 미리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열매들로서 나중에 판명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 호세아(아모스)서를 통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삶의 열매들로서 확인해 보는 삶을 살아야한다.
히12:28-29 "그러므로 우리가 변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혹 감사하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찌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4.호세아의 메세지 전달방식
이러한 주제를 1-3장까지는 호세아의 가정을 통해서 보여주시고, 4-12장까지는 구체적인 메시지로 들려주시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우리가 먼저 생각 할 수 있는 것은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 메세지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입술로만 증거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서 먼저 체험되어지고 난 다음에 증거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로 하여금 고멜을 취하고 자식을 낳음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공의를 담은 사랑을 그의 가정생활에서 체험적으로 알게하셨다. 그리고 난 다음 입으로(문자로) 하나님의 뜻을 전하게 하셨다.
율법에 보면 간음한 여인은 돌로 쳐죽이라고 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참 선지자라한다면 호세아는 고멜을 돌로 쳐죽여야만 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그를 아내로 취하라고 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앞에서 영적으로 음란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호세아가 몸소 체험해보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우리는 호세아가 음란한 여인과 사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볼 필요가 있다. 얼마나 부담스럽고 역겹겠는가?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녀를 아내로 맞아 사랑하라고 하신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음란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호세아가 몸소 체험하고 느끼라고 한 것이다.(우리가 원수라도 사랑함으로서 하나님께 대한 원수와 같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다). 또한 고멜사이에서 태어난 두 자녀의 이름을 통해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도 체험적으로 알게하셨다.
문/(묵상과 적용).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얼마나 느끼고 바르게 알고 있는가? 내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잘 느끼지 못한 것이 혹 나의 삶의 문제가 아닌가? 자신이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랑의 이름을 적어보자. 그리고 그를 정말 사랑하는 친구로서 끌어안아보자.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각자가 느끼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해보자. 또한 사랑하는 그 친구의 잘못에 대해서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할지에 대해서 호세아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공의를 통해서 생각해보자.
5.호세아서에서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심판을 받게된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인가?
아모스서에서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유다와 같이 율법을 멸시하였기때문이다.
율법은 출애굽사건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의 정신을 기억하게 하기위해 주신 것이다. 즉 율법에 나타난 출애굽의 정신(어린양의 피로 은혜로 값없이 구원을 받음)을 무시하는 것 때문에 이스라엘은 멸망하게 된 것이다(율법무시-일상성-혼합주의-배도-심판).
그러면 호세아서에서는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게된 결정적인 요인을 무엇으로 보고 있는가?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바른 지식이 없음으로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4:1,4:6, 5:1-4)
"내 백성이 지식이 없음으로 망하는 도다 (호4:6절),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6:3)".그러면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께 대한 바른 지식이 없었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그것은 이스라엘백성들이 신앙생활을 하기는 했는데 하나님께 대한 바른 지식없이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겨왔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하나님께 대한 바른 지식없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것을 "종교생활"이라 한다. 종교생활이란 하나님께 대한 바른 지식(믿음의 대상이 누구이며,또한 그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 바른 지식)없이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신을 부르짖는 것이다(벧엘과 길갈에서의 제사-혼합주의). 결국 이렇게 되다보니 하나님을 섬기되 자신을 위한 하나님,자신의 탐욕을 체워주기 위한 하나님으로 밖에 섬길수 없다. 그러나 바른 신앙생활은 하나님께 대한 바른 지식에 근거한 신앙생활이다(믿음의 3요소-지식,인정,의지하고 순종함).그래서 호세아는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고 한 것이다.
문/.(묵상과 나눔) 지금 이시대도 하나님께 대한 바른 지식을 무시하는 시대가 아닌가? 지금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바른 지식을 추구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6.호세아서의 단락별 중심주제와 내용을 말해보시오.
1장1절 서론 호세아에게 여호와의 계시가 임함
1장2-9절 하나님의 공의를 담은 사랑을 호세아가 가정생활로 체험케 하심
1장10-2장1절 장차 이루어질 이스라엘의 회복
2장2-13 어미 이스라엘(선조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쟁변(사랑의 징계-그들이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다 빼앗아 가심)
14-15 이스라엘에 대한 권고(거친들로 나아오라)
16-23 장차 이루어질 예언(의와 공변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장가듬)
1,2장 강해
1.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체험(1:1-1:9)
호세아서의 주제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그냥 사랑이 아니라 공의를 담은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관념적으로 알게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게서는 호세아로 하여금 하여금 간음한 여인을 아내로 맞아 라는 것을 통해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적으로 알게하셨다. 호세아는 음란한 여인과 가정생활(성적관계를 맺음)을 통해서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겠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고멜과 같은 선조 이스라엘(창38장)과 자신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즉 고멜과 같은 이스라엘을 구원의 사랑으로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호세아는 몸소 체험하였을 것이다(요한 일서를 통해서 우리가 서로 사랑해봄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수 있다.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알수 없다).그런데 또 하나님께서는 호세아로 하여금 음란한 아내를 취해서 음란한 자식을 낳으라고 하신다.그리고 그 아이들의 이름을 이스르엘,로루하마,로암미라고 하라고 하신다.이스르엘이란 여로보암2세가 속한 예후왕가를 세운 예후에 의해 아합 왕가가 멸망당한 지명에서 유래했다.이것은 예후왕가역시 아합왕조처럼 멸망당할 것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로루하며는 긍휼히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고 로암미는 내 백성이 아니다는 뜻이다. 호세아로 하여금 자신의 자녀의 이름을 이렇게 지은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한 이스라엘백성들이 결국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주는 것이다.
2.사랑을 배신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2:2-7)
그런데 그 사랑이 순애보적인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이 호세아서는 보여주고 있습니다(집나간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무슨 짓을 해도 좋으니 집에만 와 달라)-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에 대한 오해
그러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사랑하고 있는) 모든 것(하나님외에 마음을 두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빼앗아가심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2:8-13
하나님은 단순히 영적인 구원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이 세상의 것들도 주시는 이시다.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은 세상적인 것들이 바알이 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그래서 그들은 바알에게서 세상적인 것들을 추구했다. 그런데 그는 결코 우리가 그러한 것들에 관심이 있거나 그러한 것들을 추구하게 될때는 그것들을 빼앗아가신다.그러나 우리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만을 구하게 될때 하나님은 필요에 따라서 우리에게 세상적인 것들을 주시는 것이다.
3.회복을 위한 자리
2:14-15
거친들(광야)로 나아오라
광야로 나아오라
우리가 의지하던 모든 것들을 다 던져비려라
하나님없이는 살 수 없는 광야로 나아오라
자기를 비워나가고 죽여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일의 시작이다.
3장은 전체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
1-3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사랑의 요구
4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이 징계
5 장래의 회복에 관한 예언(말일- 다윗왕을 구함)
문/.1-2장을 위와 같은 도식으로 설명해보시오
4장
2장은 어미(조상 이스라엘-1세대 이스라엘-출애굽한 이스라엘)와 쟁변-이들에 대한 사랑과 사랑의 배신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출애굽사건(구원의 사건)에서 찾아 볼 수 있다.
4장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고함-땅의 거민들과 쟁변(하나님께서는 평안하고 부요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시대를 향하여 시비를 거시는 것이다.하나님은 지금의 이 시대와 우리를 향해서도 시비를 거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쟁론하시는 것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있어서 있어야 할 것이 없고, 없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없는 것-진실, 인애, 하나님을 아는 지식(4:1)
있는 것-저주, 사위, 살인, 투절, 간음, 강포(4:2)
이것은 서로 연관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왜 저주(거짓 맹세)와 사위(거짓을 꾸미어 속임, 거짓말)와 살인과 투절(도적질)과 간음과 강포가 있는가? 그 이유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있어야 것들이 없기때문에 결국 없어야 할 것들로 가득차게 된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들로 우리가 체워지지 않으면 없어야 될 것들로 가득찰 수 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면 이스라엘백성에게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이냐? 그것은 먼저 진실(저주와 사위의 반대)이다.그리고 인애(살인과 투절과 간음과 강포의 반대)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지금 우리는 과연 진실과 인애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가득차 있는가? 우리에게 진실함이 있는가? 진실함이란 무슨 말인가? 이것은 뒤에 나오는 사위(거짓으로 꾸미어 속임)과 반대되는 말이다. 이 말은 우리의 모습이 가식되지 않고 하나님과 사람앞에서 솔직히 드러남을 뜻한다.
문/.혹 우리에게 거짓으로 꾸미는 모습이 없는가? 왜 우리가 거짓으로 꾸미는 생활을 하게 되는가?
인애는 사랑을 뜻한다(호세아사랑).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자로서 사랑있는가? 요한일서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께로 난자라고 한다면 사랑이 있을 수 밖에 없음을 말한다(하나님사랑,이웃사랑).
질문/.지금 이시대에 있어서 인애의 대상이 어디에 있는가?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리에게 있는가?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 지금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문제가 그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는 것이다.("내 백성이 지식이 없음으로 망하도다","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망하도다").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은 무엇을 나타내는가? 6절에 보면 율법이라고 되어 있다. 율법이란 하나님이 이스라엘백성들을 왜 구원하셨는가를 담고 있다. 왜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께 대한 바른 지식을 추구하지 않는가? 이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버렸다는 것은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잘못된 지식)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자기를위한 하나님,무조건 사랑의 하나님-지금도 이것이 문제-과연 우리가 성경대로 말씀때로 살려고 하는가 성경공부에 대한 관심이 있는가).
그러면 이스라엘백성이 왜 이렇게 되었나?(인애버리고 진실버리고 하나님께 대한 바른 지식을 추구하지 않았는가)
1)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저희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7).이들의 관심이 번성함에 있다.영광에 있다.세상적인 성공과 승리에 있다."너희가 먹고 배불리게 될때 너희가 나를 잊을까 하노라(신8)"
2)내 백성의 속제재물을 먹고 마음을 죄악에두는 도다. 제사의 형식화 예배의 형식화,예배에 있어서 마음이 없음. 그들은 형식적인 제사를 통하여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을 잘섬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13--제사를 드리되--참나무와 버드나무 (분위기 좋은 곳)--너희딸들이 행음함
14-딸과 며느리들이 행음하여도 벌하지 아니함--이유 남자들도 마찬가지
제사의 목적이 무엇인가?
3)11.음행과 묵은 포도주와 새포도주가 마음을 빼앗느니라
12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하나님외에 무언가 하나님외에 마음빼앗기는 것이 있음(이 말은 하나님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포도주와 새포도주-더 큰 쾌락과 즐거움을 따라간다
이러한 이스라엘(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유다에 대한 경고전에 이스라엘-이스라엘에 대한 경고전에 세상에 대한 경고-지금의 세상에 대한 경고-교회를 향한 경고).징벌의 고난의 경고(나팔5장8절-나중에는 완전히 심판이다.나팔의 재앙뒤에는 대접의 재앙이다)
처음에는 좀의 썩음과 같은 형태로 징계하시나 나중에는 사자와 같이 징계하신다(하나님이 조그만하게 징게하실때 민감하게 회개해야한다).
고난받을때 간절히 구함(죄로인한 징계로 말미암은 고난--기도)
하나님은 때리기도 하지만, 싸매기도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우리를 때리시는 목적으로 결국 치유하심에 있다.그러므로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은 고난들을 피해가지 말자.하나님이 주시는 매라면 맞자.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자).
5장15-내가 돌아가서 저희가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기다리리라 저희가 고난을 받을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여 이르기를
6장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해주실 것이여 우리를 치셨으나 사매 주실 것임이라.여호와께서 이틀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마지막 해결책
3.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아오심은 새벽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이것은 조건이 잇는 약속이다.기계적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해결책
힘써 여호와를 알자(이단은 얼마나 헛된 가르침으로 열심이 있는가?그런데 우리는 과연 이단처럼 하나님께 대한 알려고 노력하는가).
그러므로 힘써 여호와를 알자(3-6장의 결론)
7장 회개치 않는 이스라엘(단락별주제)
7장1-7 달궈진 화덕과 같은 이스라엘
죄의 증상들이 드러나기까지 계속해서 죄를 짖는 이스라엘
8-9 뒤집지 않은 전병
혼합주의적인 이스라엘,그러나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9)
10-12 어리석은 비둘기같은 이스라엘
하나님께로 돌아오지도 않고 구하지도 아니하고,오히려 애굽과 같은 강대국을 의지하는 이스라엘
13-16 거짓으로 회개하는 이스라엘
성심으로 부르짖지 않음/곡식과 새 포도주(징계로 인하여 잃어버린 것)을 인하여 모이며,침상에서 부르짖음(이들의 회개가 진정한 회개가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에게서 징계로 인하여 빼앗긴것을 인하여 부르짖고 있다.침상에서 부르짖음-회개의 미약,안일-내가 아직 까지 집에서 기도하고 있는데 이러한 것이 약하지 않는가?
15속이는 활같은 이스라엘
결국 회개를 하는 듯하나 진정으로 하나님자신에게로 돌아오지 않는 이스라엘(광야로 돌아오라)
7장 강해
회개치 않는 이스라엘
회개치 않는 이유
7장1-7절
이스라엘백성들은 그들의 죄가 완전히 드러나기 전에는 죄를 회개치 않는다(마치 달구어진 화덕처럼 반죽을 뭉침으로 발교 되기까지만 불 일으키기를 그칠 뿐이다).선지자는 일이 장차 크게 터질 것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터지기 전에 이미 되어질 일을 보고 호들갑을 떠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것이 선지자적인 관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이것이다. 우리는 죄의 증상(징계)들이 드러나지 않으면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 죄가 증상(징계)로 드러날 때 까지 계속해서 죄를 짖는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진정한 회개란 무엇인가? 죄가 증상으로 드러나기 전에 우리 마음과 생각 속에 있을 때부터 회개해야한다.
8절과 9절-이스라엘은 뒤집지 않은 전병-이스라엘의 혼합주의--그런데 그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함
이스라엘백성들은 그들의 삶가운데 한 쪽만 거룩하다. 주로 종교적인 외양에는 거룩한 거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세상속에서의 삶은 그렇지 않다. 이것이 바로 뒤집지 않은 전병과 같은 그들의 모습이다(흰머리가 썩여있는 모습). 그러면서 그들의 그들의 모습을 알지 못한다.
10절-이 모든 일을 당하여도 돌아오지 아니하는 이스라엘
11-도리어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애굽과 앗스르를 의지-결국 그들은 그들이 의지하는 것들에 의해서 멸망하게 된다.
12.이러한 그들을 징계하리라
13-16절
거짓된 회개
성심으로 부르짖지 않음-여호와를 인하여 부르짖지 않고 오히려 그들에게 있는 재앙들때문에 그들은 괴로워함"저희가 돌아오나 높으신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속이는 활과 같으며 그 방백들은 그의 혀의 거친 말로 인하여 칼에 엎드러지리니 이것이 애굽 땅에서 조롱거리가 되리라"
8장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
1절-나팔을 네 입에 댈지어다(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경고) 대적이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에 덥치리니 이는 무리가 내 언약을 어기고 내 율법을 범함이로다(하나님께 대하여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의 죄악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대적을 허용하시는 것이다 )
8장강해설교
내부의 대적과 내부의 적(요절-저희가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 임이라)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에 대적을 허용하시는가? 우리주위에 대적과 어려움과 위협을 하나님이 허용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는 국가적으로 많은 외부의 대적에 시달리고 있다(경제적인 측면-)또 우리가운데서는 자신의 사람과의 관계에서 여러 가지의 외부적인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생각한다. 하나님 하나님이 왜 내게 그런 어려운 환경을 허용하셨습니까? 왜 내게 그 악한 사람을 내게 허용하셨습니까? 라고 하면서 우리가운데 닥친 외부의 적들에 대해서 경계태세를 갖추기도 한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사이비와 이단들이 교회를 위협하고 있다. 이 사이비와 이단들을 물론 우리는 대적해야한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을 보게되면 이러한 외부에 있는 대적들의 문제가 단순히 외부의 적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내부의 문제 때문인 것을 알수 있다. 우리내부의 문제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외부에 적을 허용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내부,아니 내 안에 있는 대적을 먼저 발견하고 그것을 먼저 이겨내어야 하겠다.
7절 읽을 것
그러면 이스라엘 안에 있는 외부의 적이 있게 한 내부의 적은 무엇인가?
1절-내부 죄-무리가 내 언약을 어기며, 율법을 범함(외부적-대적이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에 덥치리로다)
3절-내부죄-이스라엘이 선을 싫어버렸으니(외부적-대적이 저를 따를 것이라).자기 마음대로 지도자를 세움(신17장에 위배)
4절-왕들을 세웠으나 하나님께로 말미암지 않음
방백들을 세웠으나 나의 모르는 바며
우상숭배의 죄
은금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었나니(파멸이 따름이라)
5,6 사미리아의 송아지(우상)-이것은 이스라엘에서 나고
공장이 만든 것이라
참신이 아니다(이것이 부숴지리라)
7절-저희가 바람(내부의 작은 죄의 씨)을 심고 광풍(외부의 대적)을 거둘 것이라
내부에 해결하지 못한 죄들에 대한 하나님의 허용하신 재앙들
심은 것이 줄기가 없으며
이삭은 열매를 맺히지 못할것이요
설혹 이삭이 맺힌다 하더라도 이방사람이 삼키리라
8-10 이스라엘이 돈을 주고 산 이방을 인하여 쇠하리라
(그들이 의지한 외방을 인하여 쇠하리라.이스라엘백성들은 겉으로는 괞찬은 듯하여 굳이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상 그들은 여호와를 의지하던 대신에 당시의 강대국이었던 애굽이나 앗수르를 의지했다)그런데 결국 이들에 의해서 망한다는 말이다. --김영삼대통령-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다른 것을 의지한다-결국 망함)
11 에브라임-죄를 위하여 제단을 만듬-그런데 오히려 그 제단이 저로 범죄케 함(의식속에 감추어진 죄-).
12 율법을 만가지로 기록했으나 저희가 관계없는 것으로 여김(말씀과 삶과의 분리)
13 내게 드리는 제물로 말할지라도 저희가 고기로 제사를 드리고 먹거니와 여호와는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이제 저희의 죄악을 기억하여 그 죄를 벌하리니 저희가 애굽으로 다시 가리라(바벨론 포로-출애굽의 역순).
14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은자(그들을 출애굽시켜준자,그들을 창조해준자)를
잊어버리고 전각을 세웠으며
유다는 견고한 성읍을 많이 쌓았으나
내가 그 고을에 불을 보내며 그 성들을 삼키게 하리라
본문의 말씀에 따른 이스라엘의 내부의 죄들
1)우리는 하나님말씀을 저버리는 생활을하고 있지 않은가?(1,2,12) 언약과 율법을 어김. 율법을 자기와는 관계없는 것으로 여김-돈,음란문제,정직성(거짓말)-모르기 때문에 문제가 아니다.먼저 자신을 돌아보아야한다.
2)형식적인 예배속에 자신의 죄를 감추고 있지 않은가
3)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다른 것(이스라엘은강대국이었던 앗수르를 의지)을 의지 하지 않는가?
4)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5)우상숭배(맘몬이즘)
위의 말씀에 비추어본 지금 우리안에 있는 내부적인 적이 무엇인가?
이스라엘백성의 내부의 죄와 동일하게 우리자신을 점검해봐야겠다.우리 안에 있는 바람을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커다란 외부적인 광풍이 분다.
1)안일과 교만 타성에 젖은 신앙생활 광야의 이스라엘을 기억하지 않음-이것이 지금 우리내부의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
2)우리는 항상 모든 문제를 내 속에 있는 내부적인 죄에서 찾지 않고,나의 외부적인 겄들(환경에서,가정문제, 이단문제,다른 사람에게서 문제를 찾는다, 교회의 문제는 곧 나의 문제이다)
이단의 문제,사이비의 문제-이것은 곧 우리의 문제
3)아직까지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사랑하는 것이 있음(우리의 이중적인 모습-이스라엘의 모습과 같다.그들은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살아가고 있다.지금 내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그래서 굳이 하나님만을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그러나 사실 이스라엘과 유다가 몰래 강대국을 의지하였듯이 우리가 그렇지 않은가?)
4)우리의가장 큰문제는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아무리 많은 말씀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을 나와는 관게없는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내가 울법을 만가지로 기록하였으나 저희가 관게없는 것으로 여기는 도다).피리를 불어도 웃지 않고 곡하여도 울지않는 세대이다.
5)내속에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모습이 없는가?혹 내가 중심으로 일을 해야지 모든 일이 바른 것이라고 생각하는 착각과 교만은 없는가?
이 내부의 바람을 우리가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는 장차 광풍으로 거두게 된다는 것을 명심할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