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날이 선선해 졌습니다
집안은 춥고
밖은 햇살의 따스함과
찬공기를 실어 나르는 바람의 서늘함이 교차합니다
작은새들의 지저귐이 들렸다 끊어졌다를 반복합니다
부드러운 바람의 손길에 풍경이 잘그락 거립니다
커피를 마시며
눈길은
온통 초록빛 수풀의 바다에 풍덩 빠집니다
동생은 책을 읽고
두여자에게 산골마을은 속세를 떠난 아름답고 평화로운 다른 세상입니다(우리에게는 그렇게 느껴지는)
"나중에"가 아니라
분잡한 도시의 일상을 사는 지금
틈틈히 다른 세상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돌아가는 삶을 반복하고 있습니다ㆍ
육체는 삐걱거리는 곳이 생겨나고
연하게 휘어지지 않게 되었지만
젊은날처럼 강건하지는 않아도 걷고 노래하며 살아 있어서
감사합니다
ㆍ
죽을 고비를 넘기고 다시 삶을 시작하시려나 싶었던
시어머니는 망상이 생기긴 해도 멀쩡히 인지는 있는데
몸을 움직이지를 못하셔서
재활요양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생명을 이어가기 싫다시며
그나마 양도 작았던 식사를 거부하셔서
콧줄을 ㅠ ㅠ
그 뒤로는 내내 잠을 잡니다
하루중 눈을 뜨는 시간이 별로 없고
며눌 볼 때마다
ㅡ 언제 죽는다 카드노
ㅡ 그냥 갖다 묻어라
하십니다
가난하기 짝이 없었던 시절
그래도 산골 합천에서 부농의 첫째딸로 태어 났지만
부모님들이 큰살림을 이 어린 첫째딸에게 강요해서
삼촌들과 이모들은 모두 대학과 고등학교를 보냈는데
어머님만 초등학교 겨우겨우 졸업시키고는 가사노동을 전담하게 했습니다
아침밥을 먹고 나면 동생들이 수저를 내동댕이친 밥상을 내버려두고 책보를 들고 모두 학교를 갈 때
ㅡ그 뒷모습이 참 부럽디라
말씀하실 때는 나도 아팠습니다
부모들 또한 큰 농사를 지어야 했기에 무임금으로 사용이 가능한 큰딸을 희생시킨 것입니다
당신이 착취를 당한지도 모르고
교수며 선생이며 약사며 형제 자매들이 원래 잘나서 잘됬다고 생각하며 평생을 사신 겁니다
큰딸로서의 도리
종가 며느리로서의 도리
도리속에 살면서 낳은 것이 또 좋아하는 아들뿐이라
여성이 마땅히 누려야할 세상을 모르고 사셨습니다
며느리 맞으면 며느리도 당신처럼 며늘도리하고 살 줄 알았는데
순하게 생긴 며늘아기는 그딴거 개나 줘버리지? 하는 뻔뻔하고 경우 바른 태도로 전혀 게의치 않아서
내 시집 가고 몇년은 매년 위경련으로 며칠씩 입원하시곤
하셨습니다
아마도 문화충격을 풀지 못하셔서 속병이 났었을 겁니다
화를 낼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고
ㆍ
ㆍ
그렇게 어머님의 세상은 행복했던 순간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눈뜨면 언제 죽겠노 하며 며느리를 바라봅니다
세상 무심한 며느리는
내아이를 키워주셔서 편안하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게 해준
시어머님의 은혜를 결코 잊지 않습니다
맨날 지들만 맛난거 먹고 시간 보내는 것 같아도
어머님 누워 계신곳에 자주 자주 들러서
자꾸 뻣뻣해지는 다리를 주므로고 온몸을 만져 드립니다
하도 주물러 주던 사람들이 많아서
정작 우리 아버지 다리는 거의 주물러 드린 적이 없었던 나는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서로를 이해하지 않았던 여자의 다리를 주무릅니다
ㅡ주께서 숨을 거두어 가실때 까지는 요안나를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주님
(어머님은 최근에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살아있어서 감사한 날
죽여 달라고 하소연 하시는 어무이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