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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법문

불사음, 과보

작성자진성50|작성시간12.12.28|조회수232 목록 댓글 0

 

음욕, 불사음

 

 불교에서는 생사의 고통을 벗어나는 길로 계정혜(戒定慧)의 삼학(三學)을 말하고 있습니다. 계정혜는 쉽게 말해 마음공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 공부의 시작은 계율을 청정히 지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계율을 철저하게 지킴으로써 마음을 다잡을 수 있고, 이와 같이 다잡은 마음을 가지고 주변의 경계에 끄달려 가지 않으면서 마음이 고요하게 되는 선정에 들어가게 되며, 이러한 선정에서 진리를 바로 보는 지혜가 생겨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능엄경)에서 부처님께서는 마음공부에 대해 계정혜의 삼학으로 해야 한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마구니의 방해를 물리치고 생사를 벗어나는 해탈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계정혜의 삼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수능엄경에서는 이 삼학에 대하여 모두 설하고 있으나, 특히 수능엄정을 중심으로 한 선정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수능엄정이 만행을 구족하고 있으며 시방의 여래께서 이 문을 통해 초출(超出) 하셨음을 강조하시고 이 수능엄정을 중심으로 설하셨습니다.

 

 

 이러한 수능엄정의 선정에 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계율을 지키고 마음을 다잡아야 합니다. 수능엄경에서는 계율 가운데 불사음(不邪淫)· 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盜)· 불망어(不妄語)의 네 가지의 중요한 계율에 대하여 자세히 설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음살도망을 경계하는 것은 계율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구래서 이것을 사바라이(四波羅夷)라고도 합니다. 이것은 사극악법 또는 사종근본죄라고도 표현되듯이 가장 근본이 되는 계율이면서 또한 그 죄과가 가장 무거운 것입니다. 율장에서는 이것을 범한 사람은 승단에 함께 머무를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음살도망의 네 가지 계율을 지켜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불사음을 지켜야만 할까요?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난아 내가 말한 마음을 다잡는 계율이란 무엇이겠느냐. 만약 육도의 중생이 그 마음애서 음욕을 일으키지 않으면 곧 생사의 상속에 떨어지지 않느니라. 네가 삼매를 닦아서 윤회의 세계를 벗어나고자 하는데 음욕의 마음을 없애지 않는다면 비록 많은 지혜가 있고 선정이 나타나더라도 윤회의 세계를 벗어날 수 없느니라.”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 등 육도를 윤회하는 중생이 음욕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곧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불사음의 계율을 지켜야 합니다. 음욕의 마음을 없애지 않으면 윤회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비록 지혜와 선정을 많이 닦았다고 하더라도 음욕의 마음을 끊지 못한다면 반드시 마도(魔道)에 떨어져서 상품(上品)은 마왕(魔王)이 되고, 중품(中品)은 마민(魔民)이 되며, 하품(下品)은 마녀(魔女)가 됩니다. 이러한 마의 무리들은 중생들을 애견(愛見)의 미혹에 빠뜨리며 보리의 길을 걷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수능엄정의 선정에 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음욕의 마음을 끊는 계율을 지켜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러한 불사음의 계율이 과거 부처님들의 제1의 청정한 밝은 가르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난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난아! 만약 음욕을 끊지 않고 선정을 닦는다면 마치 모래와 돌을 쪄서 밥을 짓는 것과 같아서 백 천겁이 지나도 뜨거운 모래일 뿐이니라. 왜냐하면 이것은 다만 본래 돌과 모래로 이루어진 것으로 밥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모래에 물을 붓고 아무리 열을 가해도 밥은 되지 않습니다. 모래는 모래일 뿐입니다. 음욕의 마음은 모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정을 닦는 것은 열을 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음욕의 마음을 가지고 아무리 선정을 닦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모래에 열을 가하여 밥을 만들 수 없는 것과 같이 깨달음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어서 부처님은 아난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네가 음욕의 몸을 가지고 부처님의 묘과를 구한다면 비록 묘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모두 음욕의 뿌리를 가진 것이므로 그 뿌리가 음행을 이루어서 삼악도에 윤회하게 되며 결국 벗어나지 못하게 되느니라. 여래의 열반을 어떤 길을 통해 닦아 증득할 수 있겠느냐. 반드시 몸과 마음에서 음욕의 기를 모두 끊어야 하고 그 바탕까지도 또한 끊어 없애야 하느니라. 이와 같이 했을 때 부처님의 보리를 가히 기대할 수 있느니라.”

 

 

 음욕의 몸으로는 깨달음을 이를 수 없습니다. 비록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음욕의 뿌리가 남아 있다면 윤회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수행하는 사람은 마음의 바탕에서부터 음욕을 버려야 합니다. 조금도 그와 같은 마음을 내서는 안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이 몸으로 음행을 하지 않고 마음으로 음욕을 일으키지 말아야하며 게다가 그 뿌리까지도 모두 없애 버려야만 보리를 이룰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어떠한 계율보다도 이 불사음의 계율은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천태종 금강신문

관세음보살의 수행 9-3 법문 중에서 발취. 군포 상락사 주지 광도 스님 2012.12

 

 

 

사음의 과보

음탕하게 남의 부녀들을 침범하면 이 까닭에 다섯 가지 나쁜 과보를 받느니라.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 집안이 화목하지 못하여 부부가 자주 싸우고, 자주 돈과 재물이 흩어지며,

 

둘째 고을의 관리들을 두려워하며, 항상 매 때리는 일에 종사하되 죽는 수가 많고,

 

셋째 스스로가 몸을 속이어 남이 알까 두려워하고,

 

넷째 태산지옥에 들어가나니 무쇠기둥이 불에 달아 대단이 붉은 것을 항상 몸으로 안고 있게 되느니라. 앉아서 남의 부녀들을 침범하였으므로 이런 재앙을 받나니, 이렇게 몇 천 년을 지나서야 형 받기가 끝나느니라.

 

다섯째 지옥에서 나오면 닭·오리·새·기러기로 태어나거나 사람의 혼백으로서 형상 없는 것에 붙어 이름을 얻으리라.

 

지금에 오리와 새와 기러기들이 음란하여 모자를 피하지 않고 또한 절제가 없음을 보지만 개와 말과 강아지는 정조가 있으며 다른 축생들도 모두 믿음과 만족함이 있거늘 닭·오리만이 음란하여 끝이 없음은 모두가 옛 세상 지난 생에서 음탕하게 남의 남녀를 침노한 까닭에 닭이나 오리 같은 몸을 받아 사람에게 먹히느니라. 이러한 괴로움은 말로 다 할 수 없느니라. 이렇듯 분명하니 삼가 남의 부녀를 침노하지 말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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