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6장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미국의 유명한 전도사 써머필드(Summerfield)씨에게 어떤 신학박사 한분이 물었다.
“선생이 태어난 곳이 어디십니까?”
이 말에 써머필드는 대답하기를:
“나는 더블린(Dublin)과 리버푸울(Liverpool)에서 태어났습니다.”라고 하였다.
그 신학박사는 깜짝 놀라며:
“더블린이면 더블린이고, 리버풀이면 리버풀이지 어찌 두 도시에서 태어났단 말입니까?”
라고 했다.
써머필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박사님께서는 아직도 한번밖에 태어나지 않으셨단 말인가요?
나는 더블린에서 태어났고 리버풀에서 거듭 태어났지요.”라고 하였다. 사람이 한번 태어나서 한번 죽는다고 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가는 길이요, 우리 크리스챤들은 두 번 태어나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요 이 찬송의 작시자 이 호운 목사가 이 소망 속에 사는 우리 크리스챤들의 기쁨을 찬송으로 읊은 것이다.
1절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옛것은 지나고 새 사람 이로다.
그 생명 내맘에 강 같이 흐르고
그 사랑 내게서 해 같이 빛난다.
사도 바울의 인생관이요, 종교관은 그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으니 이제는 자신이 산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그리스도께서 산 것이라고 했고, 이제 그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그를 사랑하사 그를 위하여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갈2:20).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니. 이전 것은 다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다고 하였다.(고후5:17). 이것이 우리의 중생 후에 얻을 수 있는 새 생명이다. 병아리가 계란 껍데기를 벗고 광명의 세계로 뛰어 나왔다. 새 세상에 태어난 병아리에게는 옛 껍데기가 귀하게 여겨질리 만무다. 이 병아리에게 주어진 새 생명의 존귀함과 기쁨은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한번 세상에 태어나서 한번 죽어버리면 끝날 우리 인생에게 그리스도는 무한한 사랑을 베푸셨다. 그가 대신 죽으셨으니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으므로 우리는 영원히 살게 된다.
작시자는 새 사람이 된 후 그리스도의 생명이 강같이 흐르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해 같이 빛난다고 했다. 우리 인간에게 한 가지 소원이 꼭 이뤄진다고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원할 것인가? 돈? 참으로 치사스러운 일이다. 권력? 더욱 치사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한 번 더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것 이상 보람된 것이 없을 것이며 허무와 실패, 부끄러움으로 이어지는 우리 [삶]이 한번 새롭고 멋진 삶을 살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귀중한 [삶]이 우리 크리스챤들에게는 값없이 주어졌으니 이 기쁨을 우리는 어찌 감사하며 찬송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우리가 새 사람 즉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죽여야 할 것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인간의 혈기, 육신의 정욕(갈5:24)과, 자행자지하는 방종, 불순종의 마음 등의 가시들을 다 십자가에 못 박고 우리의 육신의 질그릇 안에 그리스도의 새 생명으로 가득 채운다면 우리의 생활은 빛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로서 우리는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죄의 종노릇 하지 않는 길이요(롬6:6). 지상에서도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친구의 기쁨을 맛보는 길이 되는 것이다.
후렴 영생을 누리며 주 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주님은“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15:4)고 말씀 하셨다. 주 안에 거하는 것은 주와 동거함이요, 주와 동거하면 열매를 많이 맺을 것이요,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므로 우리도 사랑하게 되며 주님의 기쁨이 우리에게 충만하게 될 것이니 우리에게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2절 주 안에 감추인 새 생명 얻으니
이전에 좋던 것 이제는 값없다
하늘의 은혜와 평화를 맛보니
찬송과 기도로 주 함께 살리라
작시자는 새 생명의 귀중함을“주 안에 감추인”이란 말로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이 말에는 또한[새 생명]이 아무데나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만 있으며 그것도 그[새 생명]을 받을 자격자 외에는 찾을 수없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귀중한 [새 생명]을 얻으니 인생이 변화를 받게 되고 전에는 좋든 것이 이제는 값없는 것이 되었으며 하늘의 은혜와 평화를 맛보니 늘 찬송과 기도를 드리게 된다는 것이다.
필자가 미국에서 한동안 호텔과 아파트를 관리했던 일이 있다. 직원 가운데 맹겐이라는 노인이 있었는데 부정직한 사람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그는 문자 그대로 수전노(守錢奴)로서 온갖 나쁜 짓을 하면서 많은 돈을 모았다. 이 많은 돈을 은행에 예치하자니, 사회 복지 연금이나 실업수당이 나오질 않을 것이고 그대로 보관하자니 너무 큰 짐이었다. 그는 그 많은 돈을 침대 밑에 깔아놓고는 나가도, 들어가도, 걱정뿐이었다. 어쩌다 밤늦게 부르러 가면 그는 겁이 나서 문도 열어주지를 않는다. 그는 부인도 없이 혼자 사는데 혹시 부인이 자기의 제산을 탐내거나 탕진할 가봐서다. 참으로 기가 막힌 수전노였다. 노인의 생일날 이었다 그는 값비싼 음식을 사 먹지를 않고 평상시와 다름없이 빵과 감자로 끼니를 때우는 것을 본 크리스챤 성도들이 그를 중국음식점으로 데리고 가서 풍성하게 대접해 주면서 그를 위하여 생일을 축하해 주고 간절하게 기도도 해 주면서 마음껏 음식을 들라고 하며 위로도 해 주면서 불쌍한 노인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베풀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맛본 맹겐 노인은 감동되어 평생 이런 사랑을 받아보기를 처음이라고 하면서 마음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고 그의 과거가 얼마나 부끄러운 생활이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는 여생을 그리스도의 사랑 속에서 살고 싶다고 했고 그의 생활에 변화되어가는 것을 보았다. 비록 작은 일이었지만 그는 분명히 하늘의 은혜와 평화의 기쁨을 맛보았고 주안에 감추인 새 생명을 발견했으니 그가 그토록 사랑하던 황금이 얼마나 그를 바보로 만들었다고 하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3절 산천도 초목도 새것이 되었고
죄인도 원수도 친구로 변한다.
새 생명 얻은 자 영생을 누리니
주님을 모신 맘 새 하늘이로다.
그리스도를 모신 생활은 죽어서 천국의 기쁨을 맛보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도 이 땅위에서 천국을 이루게 되며 이 천국의 기쁨을 맛보는 자에게는 죄인도 원수도 다 친구로 변하니 주님을 모신 마음이 천국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4절 주 따라가는 길 험하고 멀어도
찬송을 부르며 뒤 따라 가리라
나주를 모시고 영원히 살리라
날마다 섬기며 주 함께 살리라
작시자의 굳은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주님을 따라가는 길은 평탄하고 안이한 길만이 아니라, 오히려 험하고 괴로운 일이 더 많은 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를 승리하고 찬송을 부르는 것이 그리스도를 섬기며 사는 자의 생활이다. 그는 이 길을 걸으며 영원히 주를 모시고 산다고 했다. 이는 그의 지상에서의 [삶]과 내세의 일을 그대로 예언했음에 틀림없으리라. 병으로 고생하는 어떤 이가 건강한 사람을 보고 그의 건강함을 부러워하며 “건강이 제일입니다. 건당이 생명 이지요 ~~~”라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이 말을 반대로 생각해 보았다.
[생명은 건강한 자가 누릴 특유의 것이라] 고 ~~~ 이와 같이 우리가 얻은 새 생명은 우리의 영(靈)이 건강해야 그의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찬 송 곡 LIVING WITH CHRIST
한국 교회음악의 대두이신 박태준 박사가 1967년에 이 찬송곡으로 작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