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352장 십자가 군병들아

작성자悟波/金光訓|작성시간15.01.15|조회수211 목록 댓글 2

 

352장 십자가 군병들아

 

 

많은 나라말로 번역되어 사용되고 있는 이 찬송은 매우 스릴이 있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 찬송의 유래에 관하여 작시자 죠지 더필드(Rev. George Duffield. D. D.)박사가 쓴 1883년 5월29일자 편지에 의하면

 

"예수를 위해 일어나시오.(Stand up for Jesus)"(이 찬송의 원문 첫 줄)는 일반 적으로 “필라델피아의 하나님의 거사(Work of God in Philadelphia)”라고 알려 진 1858년의 대 부흥회기간 주간(晝間) 기도회에 참여하였던 목사들과 YMCA 회원 들에게 보네는 더들리 타잉(Dudley A. Tyng)목사의 임종의 메시지다. 내가 매우 사랑하였고, 개인적인 친구요, 내가 만났던 사람 가운데 가장 고상하고, 가장 용 감하며 가장 남성적이었던 사람 중에 하나로 젊은 타잉 목사란 사람을 알고 있었 다. 그가 죽기 전주일 제임스 홀(James' Hall)이라고 알려진 맘모스 대 강당에서 설교하였는데 근래에 보기 드문 가장 성공적인 설교였다. 거기 운집했던 5천명 가운데 최소한 천명으로 믿어지는 많은 사람들이 “주님이 승리하여 얻은 자 (The slain of the Lord)”(결신자라는 뜻)이었다. 그의 성경 본문은 출10:11절이었고 여기에서 인유한 것이 이 찬송의 제3절이다. 다음 수요일 날, 타잉 목사는 잠시 그의 서재를 나와 노새가 옥수수 터는 기계를 돌리고 있는 곳간엘 갔다. 타잉 목사가 노새의 목을 두드려 줄때 비단으로 된 서재에서 입는 가운의 소매가 기계 톱니바퀴에 물려 들어가 아차 하는 순간 팔이 뿌리째 뽑혀 찢어져 나왔다. 그리 고 몇 시간 후 그는 죽고 말았다. ~~~

다음 주일 이 찬송의 작시자는 엡6:14절의 말씀을 본문으로 설교를 하였는데 이 말씀들은 단지 맺는말의 권고로 씌어졌다. 그런데 주일학교 부장이 어린이용으로 쓰기위해 낱장으로 인쇄했고, 길 잃은 사본 한 장이 침례교 신문사로 보내져 이 신문에서 영어로 된 찬송시가 온 세계로 독일어와 라틴어로 번역되어 나갔다. 이 찬송시가 처음 불리우는 것을 작시자가 들은 것이 1864년 이었는데 그의 교파의 울타리 밖에서였다. 제임스 군 사령부의 크리스챤 병사들이 피 비린내 나는 전투 에 임하기전에 애창하던 찬송이었다. 라고 하였다.

 

이 찬송의 골자가 되어온 내용을 삭제하거나 변경하거나 변절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찬송이 쓰인 날로부터 단 한절이나 한자라도 작시자가 변경한 것이 결코 없다고 함이 타당한 말일 것이다. 이제 작시자의 진지한 바람은 십자가 군병들이 좀 더 훌륭한 것으로 대치할 때까지 계속 변경 없이 이 찬송이 사용되기를 바랄뿐이다.

 

라고 하였다.

   더필드 박사의 편지에서도 설명하였거니와 1858년 필라델피아시의 구원의 역사요 영적 혁명이라고 말했던 소위“필라델피아의 하나님의 거사”라고 하는 전사적 (全市的)인 대 부흥집회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신교에서는 범 교파적으로 잃어버린 심령들을 찾기 위해 대대적으로 이 부흥회에 참여했다. 집회는 낮과 저녁으로 하루 두 번 열렸는데 교회당은 물론이요, 공회당, 극장에서까지 집회를 가졌다. 전국에서 목사나 평신도들이 이 거사를 위하여 모여들었다. 이것이 19세기 중반의 대 신앙 부흥운동의 선봉이 되기 때문이었다. 이때 몇 분의 원로목사를 제외하고 29세의 감독파 교회목사 다들리 애트킨스 타잉(Dudley H. Tyng)목사 만큼 박력 있게 이 신앙운동에 적극적인 사람은 없었다.

    타잉 목사는 프로테스탄트 감독파의 주현(主顯)교회 목사였던 부친 스티븐 타잉(Stephen H. Tyng)목사로부터 전통적인 가정교육을 받은 후 펜실베이니아 대학과 버지니아 주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 있는 감독파교회 신학교를 마친 후 부친이 시무하는 교회 조사로 시무하다가 그의 뒤를 이어 그 교회 목사가 되었다.

   타잉목사는 복음적인 열심히 가득한 사람이요 넓은 동정심을 지니고 있던 사람으로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부르시는 자는 누구나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는 노예제도는 비기독교 적이요 비도덕적이라고 역설하다가 당시 노예주 이었던 회중들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았다. 그가 목회를 시작한지 2년 되던 해, 죄에 대한 그의 대담하고 직설적인 통박은 부유하고 문화적인 그의 교구 신도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여 그의 제거를 주장하는 사람들 까지 생겼다. 결국 목사가 양심에 거리끼는 말을 했다고 하여 1856년 11월4일 그 교회에서 쫓겨났다. 하나님의 종은 언제나 하나님 편에 서야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이라면 주저치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선지자인데 죄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 바른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종이 아니다.

   타잉목사는 젊은 층의 많은 호응을 받았으므로 젊은이들의 도움으로 휠버트 거리(Filbert St)에 성약교회(Church of the Covenant)를 설립하여 작은 공회당에서 예배를 드렸고 그의 가족은 몬트고머리(Montgomery)군의 부룩필드(Brookfield)읍으로 저택을 구해 옮겼다. 타잉목사는 새 교회로 옮긴 후에도 계속 노예제도 반대 설교를 했다.

 

그는 새 교회의 많은 일을 감당해 가며 YMCA 의 정오 강의를 담당했는데 청강자는 날로 불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왔다.

 

부흥회 기간 중인 1858년 3월30일 화요일 그는 제인 홀(Janes' Hall)에서 5천명이 넘는 대집회에서 출10:11절의“너희들은 남정이니 ~~ 주님을 섬기라”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였다. 그의 설교는 박력이 있었고 정열적이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다. 그날 타잉목사는 설교를 하면서

 

나는 나의 주인의 심부름꾼에 불과합니다.(그리고는 그의 손을 오른팔 어깨

부근에 대며)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나의 의무를 게을리 한다면 차라리

나의 팔이 짤리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라고 했다. 그가 마지막 축도를 하기 전에 새로 믿기로 결심한 자들을 찾으니 천명 이상이나 되는 많은 무리들이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너무나 이상한 것은 그의 말은 예언이 되고 말았다. 1858년 4월13일 화요일 집으로 돌아와 다음날(수요일) 농장에 있는 집 서재에서 잠시 일을 보다가 곳간에서 일꾼들이 옥수수 터는 작업하는 것을 보러 나갔다. 마침 옆에 있는 노새를 쓰다듬어 주려고 손을 내미는 순간 비단서재 까운의 소매가 돌아가는 기계 톺니 바퀴에 물려 돌아가는 것을 미처 빼지 못해 팔이 기계에 물려 씹혀 돌아가고 말았다. 팔은 뿌리째 뽑혔고 동맥은 끊겨 출혈이 낭자했다. 너무나도 생각지 않았던 순식간의 사고로 의사들과 많은 동료목사들이 그의 병상으로 모여 들었으며 짧은 시간에 말할 수 없는 큰 고통 중에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이 찬송이 큰 고통과 비통한 때에 아픔을 덜해주고 위안과 평화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기적적인 힘을 지녔다고 하는 것을 발견하고 모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타잉목사는 갑자기 일어나 앉으며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찬송을 부르시오! 찬송을, 찬송을 못 부르십니까?”

그리고는 자신도 사력을 다해 찬송을 부르는 것이었다.

“만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그는 무던히 애를 썼으나 워낙 허약해져서 겨우 들릴 정도였다. 그는 또한 말하기를

“이제는 모든 것이 평안합니다. 모든 것이 이제는 참으로 평안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시기를 바랍니다.”

라고 말하면서 의사들에게 “예수를 믿으시오.”하며 전도하는 것이었다.

그는 또다시 자기 부인을 불러 애들은 모두 목사가 되도록 훈련을 시키라고 부탁하였다. 그리고 그는 고요히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부친은 많은 생명을 하나님께로 인도한 아들의 마지막 말을 들으려고 가까이 귀를 대고 있는데,

 

“아버지여! 주를 위하여 일어나시오, 주를 위하여 일어나시고 어디서 나의

형제목회자들을 만나든지 주를 위해 일어나라고 말씀해 주세요.”

 

라고 말을 하고는 숨을 거두었다. 그토록 용감한 젊은 목사는 1858년 4월19일 월요일 13:00~14:00 에 아주 밝은 표정과 기쁨이 충만한 얼굴로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타잉목사의 임종을 지켜보았고 그의 장례식 때 설교를 담당했던 친구목사 죠지 더필드 박사에게는 너무나도 큰 감화를 주었다. 다음날 낮 집회 때 타잉목사의 죽음의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필라델피아의 전 시민은 충격과 놀라움으로 어안이 벙벙했다.

   다음 주일날 더필드 박사의 교회인 템플 장로교회에서 타잉목사의 추도 예배를 드리는데 설교 본문은 엡6:14~17이었다.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으로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서 능히

악한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고 했다. 그는 패기에 찬 설교를 마치고 그의 결론으로 그가 타잉목사의 장례를 마치고 작시한 찬송시를 읽어 주었다. 우리 찬송시와 대조하면서 감상해 보자.

 

(우리 찬송시)

1절   십자가 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

기 들고 앞서나가 담대히 싸우라

주께서 승전하고 영광을 얻도록

그 군대 거느리사 이기게 하시네.

 

(번역 찬송시)

1절   너 십자가의 군병들아

일어나라 예수를 위해 일어나라

주의 왕기 높이 들어라

손실을 입어선 안 되느니라

승리에서

승리로 주의 군대 그가 이끌리니

모든 원수 무찌르기 까지

진실로 그리스도는 주시라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 하는데서 말하기를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딤후2:3~4)

 

고 하였다. 예수의 군병은 그의 명령을 따라 예수를 위해 싸우는 군병을 말하는데 예수의 군병은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사람아어야 한다. 세계 2차 대전 말엽 패망일로에 있던 일본군은 구석으로 쫓긴 쥐처럼 최후의 발악을 했다. 부녀자들은 죽창을 깎아들고 미국 본토에 상륙하면 그들을 찌르겠다고 맹연습을 시키고 있었으며 최후의 발악을 해 보자는 것 이외에는 아무 소득도 없었다. 마귀의 세력도 지금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대적,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는 것이다.(벧전5:8)

 

(번역 찬송시)

2절   일어나라 예수를 위해 일어나라

중대한 군호를 들어라

네가 잠들면 주가 고통당하시나니

수치와 두려움은 사라질 지어다

네 안에나 밖에서

어디서나 네가 악을 만나면

싸움의 하나님께 맡길지니

원수를 패주케 하시리라

 

2절은 우리 찬송가에는 생략된 절이다. 이유는 너무나 지나치게 군사적인 이미지가 부각되어 있기 때문이다. 군사들이 잠들면 아무리 유능한 지휘관이라고 해도 싸움을 치를 수가 없다. 우리는 십자가의 군병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잠들면 마귀는 우리를 생포해 간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은 깨어 있다고 장담할 만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마귀는 우리가 잠들기를 바라고 있으며, 잠들게 하기 위하여 수면제를 던져주고 마음을 황홀케 하는 것들을 던져주면서 마치 개 도둑이 빵에다가 수면제를 넣어 던져주어 먹고 잠들면 업어가려고 하듯 우리를 생포해 가기를 노리고 있다. 그래서 우리주님은 잠들어 포로가 되어 잡혀가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항상 깨어 있으라고 말씀 하신다. 우리가 악을 만나면 싸움에 능하신 하나님께 맡기라 원수를 패주케 하시겠다고 하셨다. 삼상 17장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 골리앗과 싸울 때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삼상17:45~47)

 

고 하였는데 이것이 얼마나 담대한 임전태세인가? 하나님의 군사로서 마귀와 싸우는 자가 두려워 떨며 비겁한 행동을 한다면 누구를 이롭게 하는 것일까? 우리 대열에 끼었으나 비겁자는 마귀의 종임을 알아야 한다. 예전에 대학가의 데모가 한창 잦은 때 데모대를 쉽게 물리칠 수 있는 방법으로 정부의 어떤 특수 기관에서는 몇 사람의 학생들을 매수하여 놓았다가 데모가 시작되면 그 학생들은 반드시 선두와 중간쯤에 서서 열심히 시가행진을 하는 척 하다가 경찰데모 저지부대가 나타나는 순간 먼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도망하면 다른 학생들도 뒤따라 우르르 도망하게 하는 방식을 취하였더니 큰 효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우리 성도들에게도 그런 비겁자는 없는지? 전쟁당시 고지의 포대(砲臺)를 장악하기 위하여 연대가 결사적인 공격을 감행하는데 반쯤 올라가서 한 병사가 옆에 있는 병사에게 물었다.

 

“아니, 자네 얼굴이 어찌 그리 백지장같이 창백한가? 자네가 유령같이 보이네, 자네 혹시 겁에 질려있는게 아닌가?”라고 하자 그는 대답하기를,

“아무 소리도 말게 자네가 만약 내가 두려워 하는가의 반만큼만 두려워한다면 자네는 이미 오래전에 도망쳤을 것일세.”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우리는 안과 밖의 적과 대항하여 싸울 때 겁에 질려 약해지기 쉬운 때가 있으나 주님은 “피곤한자에게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신다.”(사40:29) 그러므로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쫓아가야할 것이라”(빌3:14)

 

(우리 찬송시)

2절   십자가 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

그 나팔소리 듣고 곧나가 싸우라

수 없는 원수 앞에 주 따라 갈 때에

주 예수 힘을 주사 강하게 하시네.

 

(번역 찬송시)

3절   일어나라 예수를 위해 일어나라

부름의 나팔소리 따를 지어다

주의 영광스런 날에

내 접전에 나갈 지어다

너 남정들아 수많은 원수 대항하고

주를 섬길지니

힘엔 힘으로 대항하고

위험이 있는 곳에선 용기를 가지라.

 

전투적인 정신으로 가득찬 찬송이다. 그러나 우리의 원수는 인간이 아니라 악(惡)이다. 인간이 악과 더불어 힘을 규합하여 우리에게 대항해 온다 해도 악은 멸하고 인간은 구원하는 싸움을 치뤄야 한다. 이것이 성전(聖戰)이요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싸움인 것이다. 우리가 싸우는 목적은 죄의 포로가 되어있는 인간을 구출하여 해방시키는데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싸우는 싸움은 세상의 싸움과 다르며 우리의 무기는 세상 싸움에서 사용하는 무기가 아니다. 세상 전쟁에서 사용하는 총이나 대포는 악은 살고 인간을 죽이는 무기요 세상싸움에서 사용하는 폭탄은 의(儀)의 승리가 아니라 비참과 아픔과 죽음과 공포가 횡횡하는 마귀의 수라장을 만들어 주는데 지나지 않으나 복음의 폭탄은 인간을 고스란히 구원하고 악을 초토화 시키는 무기다. 말씀의 검은 인간을 구원하고 인간의 가슴속 깊이 숨어있는 죄와 악을 골라 멸하는 무기요, 치료제이며 희생의 영약인 것이다.

 

(우리 찬송시)

3절   십자가 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

네 힘이 부족하니 주 권능 믿어라

복음의 갑주 입고 늘기도 하면서

너 맡은 자리에서 충성을 다하라

 

(번역 찬송시)

4절   일어나라 예수를 위해 일어나라

주의 힘만으로 일어서라

육신의 무기는 널 패하게 하리니

너의 자신의 것에 의존하지 마라

복음의 전신갑주를 입고

기도로 지키며

할 의무나 위험이 있어 널 부르는 곳에

결코 네가 없는 일이 없게 하라

 

엡6:11~13절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 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 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 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의 말씀이 바탕이 되어있다. 이는 로마 군병들이 입었던 군비(軍備)에 대한 사도 바울의 상상인데, 현대 사람들의 감각에는 잘 호소되지 않는 면이 없지 않다. 현대전은 과학전이요 로마 군병들이 사용하던 갑옷이나 나팔은 오래전에 자취를 감춰 버렸기 때문이다. 다만 투구는 옛날이나 오늘 날에도 같이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싸움은 육적인 실리를 추구하는 싸움이 아니요 영적인 승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내 안의 영과 육이 싸움이요, 밖으로는 우리의 영과 악령과의 싸움이다. 그래서 잠언기자 솔로몬은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언16:32)

 

라고 하였다. 이 찬송의 작시자는 주께서 주시는 힘만 사용하여 싸우라고 했으니 하나님의 성전(聖戰)은 승리하도록 하나님께서 힘을 주신다는 뜻이요, 마귀의 힘은 인간의 힘보다 강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이 아니고는 승리할 수없다는 뜻이며 끝으로 성전은 인간의 힘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하늘의 힘으로 승리하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기도 하다. 하바국 선지자는 노래하기를: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합3:18~19) 라고 읊었다.

 

(우리 찬송시)

4절   십자가 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

이 날에 접전하고 곧 개가 부르라

승전한 군사들은 영생을 얻으며

영광의 주와 함께 왕 노릇 하리라 ~~아멘

 

(번역 찬송시)

5절   일어나라 예수를 위해 일어나라

모든 군병은 다 자기의 위치로 갈지어다.

흩어진 대열을 모으고

모든 무리에게 힘차게 외쳐라

그토록 큰 손실을

아직 남은 자 위해 선용하라

죽음 자체가 얻는 것임을

네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증명하라

 

지나치게 군사적인 어휘가 많이 사용되었고 찬송시의 수준이 과히 높지 않다는 이유로 찬송가 편집위원들이 삭제한 절이지만 일부에서는 매우 아쉽게 생각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언급한 것 중 모든 군병들이 각기 맡은 위치에서 자기가 담당해야 하는 일을 하라고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내용이다. 이것은 조직의 힘을 말한다. 더욱이 군대의 조직은 그렇다, 아무리 고급 양복이라고 해도 못에 걸려 실오라기 하나가 끊어졌다고 한다면 그 옷은 이미 하자가 있는 옷이 되어 값이 20~30%가 떨어진다. 또한 아무리 훌륭하게 지은 집이라 해도 기둥 하나가 삐딱하면 그 가옥은 팔리지 않는다. 이것은 중요한 조직의 원리이다. 조직 중에서 군대의 조직은 어느 한 부분 약하다면 20~30%의 약화가 아니라 100%의 손실 즉 실패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것임으로 각 구성 요원들이 제 위치에서 충실히 싸우라는 것이요 죽음자체가 얻는 것이다. 마10:39 16:25, 의 말씀에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의 말씀이 진리임을 입증하고 있다. 인도의 성자 썬다. 싱크가 북방 지역에 전도하러갈 때의 일이다. 높은 지방을 지나갈 때에 너무나 추워서 얼어 죽어가는 사람을 발견하였다. 썬다. 징그는 그를 업고 가자고 하나 같이 가는 제자는 이렇게 추운데 우리도 살까 말까하는 곳에서 어찌 얼어서 다 죽어가는 사람을 업고 가겠느냐고 하면서 다 뿌리치고 갔다. 그러나 썬다, 징그는 우리가 복음을 전하러 가며 길가에 얼어서 다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그대로 지나칠 수 없지 않느냐고 하며 그를 업고 높은 지대를 올라갔다. 너무나 힘겨워 그의 몸은 열이 확확 올라 그의 체온으로 등에 업힌 사람이 완전히 녹아서 살아났다. 한참을 가는데 또 하나가 쓰러져 있는데 자세히 보니 업고가기를 뿌리쳤던 제자는 그 추운 지대를 혼자 걷다가 그만 동사(凍死)하고 만 것이다. 주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기도 한 자는 그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아났을 뿐만 아니라 그가 사는 곳에 가서 복음을 외쳤을 때 얼마나 큰 힘이 났겠는가?

 

(번역 찬송시)

6절   일어나라 예수를 위해 일어나라

싸움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오늘의 전투의 함성은

내일의 승리의 노래라

승리한 자에겐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니

영광의 왕과 영원히 다스리리라

 

딤후4:7~8절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준비하였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 에게니라.

 

의 말씀과 약1:12절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임이니라.

의 말씀, 그리고 계2:10절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의 말씀이 바탕이 되어있다. 싸움의 목적은 승리에 있고 승리한 자에게는 면류관이 뒤 따른다. 그러나 싸움에는 승리하였으나 사실은 실패한 자를 보며 전쟁에는 패하였으나 사실은 승리한 자임을 우리는 본다. 즉 전자는 육의전쟁 결과이며 후자는 영의 전쟁결과 일 것이다. 아덴의 경기장에 한 노인이 구경을 나왔다. 좌석에 앉으려고 하자 청년들이 노인을 놀려대며 자리를 양보하질 않는다. 이때 스파르타 청년들이 아덴의 노인을 모셔다가 자기들의 좌석을 드렸다. 경기장에서는 아덴의 선수들과 스파르타의 선수들이 불을 뿜는 시합을 하여 아덴의 선수들이 승리를 했다. 아덴의 청년들은 기쁜 함성을 울렸으나 한쪽에서는 스파르타 청년에게 박수를 보네며 비록 경기에서는 우리가 이겼을지 모르나 진정한 승리는 스파르타 청년들에게 있다고 하였다. 그 아덴의 노인은 말하기를

 

“아덴의 청년들은 선을 알고 스파르타 청년들은 그 선을 행했다”고 하였다.

이 전가(戰歌)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작시자 더필드 박사의 교회 신도 한분이 주일학교에서 사용하기 위해 낱장으로 인쇄하였는데 그중 사본 한 장이작시자도 모르게 침례교 신문사로 보내졌다. 이 찬송은 원문의 1,3,4,6절이 채택되어 우리 찬송가에 실려 부르고 있으나 시적 수준으로 보아 조금도 손색이 없어 정선된 찬송이다.

    이 찬송의 배경인물인 타잉목사의 아들(T. S. Tyng)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목사가 되었고 미국 성공회 선교사가 되어 일본 동경과 대판(大阪)에서 오래도록 전도 사업을 하다가 귀국하였다.

작시자 더필드 박사는 자신의 찬송가를 통해 큰 힘을 얻은 때가 있었음을 피력하기를:

 

엘리노이 주의 교회학교 대회에 참석한 때였다. 그때 나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큰 어려운 문제에 봉착해 있었으므로 심신이 매우 피로해 있었다. 초췌한 모습

으로 무거운 발걸음으로 교회로 갔더니 문을 여는 순간 많은 회중들이 큰 소리로

이 찬송을 부르고 있었지만 작시자인 내가 이곳에 온 것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감동은 나에게 큰 용기를 불러 일으켜 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하늘의 천사가 나타나 나에게 힘을 부어주는 것과도 같았다.

 

라고 하였다.

1864년 더필드 박사가 연합군 사령부를 방문했을 때 병사들이 열심히 찬송을 부르고 있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자기가 6년 전에 쓴 찬송“너 십자가의 군병”이었다

 

이들은 전투에 나가기 전에 힘과 용기를 얻기 위해 열심히 찬송을 불렀던 것이다.

 

 

찬송곡  WEBB

 

작곡자 죠지 제임스 웨브(George James Webb,1803~1887)의 이름을 따서 찬송곡명로 명명한 것이다. 1830년 웨브가 미국으로 이민 올 때 배에서 속가(俗歌) “동이 트고 종달새가 운다.(Tis dawn the lark is singing)”의 곡으로 작곡했는데 이 곡이“예수의 전한 복음(The morning light is breaking)”의 사무엘 스미스(Samuel F. Smith)의 선교 찬송과 결합시켜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1861년 월리엄 뱉첼더 브레드 베리(William Batcheler Bradbury,1816~1868).가 이 찬송과 결합시켜 처음 사용하였다. 이 곡이 1837년 로웰 메이슨(Lowell Mason)과 공저인 (속가곡 수집)에 실려 출판 되었고 1842년 [웨슬리 찬미 작가(The Wesleyan Psalmist)]에는 Goodwin이라는 곡명으로 전술한대로 “예수의 전한 복음”과 결합되어 있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守護天使 | 작성시간 15.01.15 혹시 이 찬송해설 글에서 그리 힘들게 하셨나요?
    고생하셨습니다 이리 하시니라고 얼마나 애쓰셨을까?
    정말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애교~~히힛
  • 답댓글 작성자守護天使 | 작성시간 15.01.15 젓가락자장면 히히 드시면서
    이 밤에
    보너스로 ㅎㅎ
    맥주ㅋ
    치킨ㅋ
    마시고ㅋㅋ
    사랑1도 가지시고 꺄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