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72x29cm, 한지에 먹, 2008 (개인소장)
사의적寫意的 풍경
한국화 또는 동양화는 예로부터 환경친화적인 자세를 지켜왔다. 동양화의 대표적인 화목이었던 산수 속에서 인간은 아주 작게 표현되었다. 자연 속에서 인간은 부분이었던 것, 자연이 주가 되고 인간은 거기 등장하는 작은 존재로 표현되었다. 산수속에 등장하는 인간을 '점경인물'이라 하였는데 산수를 그린 그림이었기에 그러했지만 다른 곳에서도 인간이 자연의 정복자 위치로 세워지진 않았던 것이다. 자연과 인간의 평화로운 교류를 우리 선조들의 삶에서 느낀다.
산수를 집에 옮겨두고 완상하던 전통에서 이어진 산수화는 오늘에 이르면서 많은 변화를 거쳤다. 겸재 이래 우리 산수는 조선의 풍토에 바탕을 둔 계기로 우리 산수가 당위성을 얻었고 주체성을 획득하였다. 산수는 변화를 거듭해 오면서 오늘날에도 풍경을 그림의 소재로 삼는 작가들로 이어진다.
예나 지금이나 자연은 우리 생명체의 고향이고 양식이며 돌아 갈 무덤이다. 그러나 오늘날 풍경을 그리는 화가들은 예전의 산수화가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연을 대하고 표현하는 지점에 이른 것이다. 삶의 모양새와 정서가 바뀐 것이고 산수라고 부를만한 그림에서도 벗어난 것이다.
화가가 삶의 주변을 그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지만 우리는 이제 도회적 삶의 사유체제가 정서를 지배하는 시대에 이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연이라는 고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그 관념적인 따뜻함과 그 말, 또는 이미지가 주는 위안에서 멀리 떠나지는 못한 것 같다.
우리의 전통적인 그림은 사의성을 중시하여 '사의화'라 불렀고 재현도 사의적인 재현이었다. 그런 점에서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 정신이 빛난다. 사의적 특성을 지닌 우리의 산수화, 풍경화가 오늘에 이른 것은 전통의 계승에 창조적 역량이 더해진 당연한 변화로 보인다.
얼마전 개인전을 열었던 작가 이윤호의 그림은 사의적 풍경의 한 양식을 보여준다. 소재와 화의畵意 기법 면에서 독창성을 지닌 작가의 그림은 편하면서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여기저기서 풀들이 자라고 꽃을 피우는 봄날, 아직은 쌀쌀한 바람, 그 기운까지 화면에 옮겨진 느낌이다. 산과 마을, 밭과 집, 나무와 사람이 먹을 통해 봄의 정취에 당당하게 기여한다. 또한 먹과 화선지라는 재료와 이를 다루는 작가의 의도, 기법이 하나의 지향점을 같이 겨냥하고 있다. 먹과 물과 화선지가 주체자의 손길에서 수동과 능동을 번갈아 이루어 가는 그 변화의 중심에서 작가는 화의를 경영하는 중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림은 현실에 발을 딛고 있지만 물감은 현실을 벗어나려 하는 것, 그 상호간 당김과 밀기의 가운데 그림의 생명이 눈을 껌벅이고 있으니 작가는 그림의 생명을 드러나게 하는 경영자인 것이다.
사의적인 풍경은 대상의 주체성을 살려내야 한다고 믿는다. 뜻을 그린다는 것은 풍경과 교감하는 작가의 심안心眼이 풍경속의 사물들과 함께 풍경이 스스로 독자성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이윤호의 수묵풍경은 산수전통을 이으면서 오늘의 감각으로 풍경이 독자적 풍경이게 하는 힘을 조용히 다스리고 있다. 산수풍광이나 우리 사는 주변을 그리는 풍경이 많은 이유는 작가의 관조적 태도를 담아내기에 적절한 소재이기 때문일까?
정신과 표현 2009.0506호 page 258~261
<한국화, 변화하는 풍경들> 중에서
조병완 (시인. 화가)
봄날, 72x29cm, 한지에 먹, 2008 (개인소장)
추읍산, 54x34cm, 한지에 먹, 2008 (갤러리 담 소장)
새벽, 100x35cm, 한지에 먹, 2008
새벽, 70x70cm, 한지에 먹, 2008
아침, 77x35cm, 한지에 먹, 2008
겨울나무, 40x25cm, 한지에 먹, 2008
山頂, 54x30cm, 한지에 먹, 2008
山頂, 140x70cm, 한지에 먹, 2005 (경기도미술관 소장)
아침, 70x33cm, 한지에 먹, 2008
아침, 70x33cm, 한지에 먹, 2008 (駐독일 함부르크 총영사관 소장)
아침, 100x70cm, 한지에 먹, 2008
숲, 46x20cm, 한지에 먹, 2008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