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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 술람미 여인의 실제 모습은....

작성자작은아이|작성시간12.10.09|조회수6,651 목록 댓글 4

 

 

  누가 뭐래도 성경에서 최고 미인은 아가서의 ‘술람미 여인’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언어를 동원하여 이 여인의 아름다움을 극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아가서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아침빛같이 뚜렷하고, 달같이 아름답고, 해같이 맑고,

   기치를 벌인 군대같이 엄위한 여자가 누구인가 ”(아 6:10)


  실로 이 이상의 표현이 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아가서를 천천히 읽어보면 저만의 시각과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술람미 여인의 모습이 너무나도 의외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로 위의 표현처럼 아침빛같이 뚜렷하고 달같이 아름다우며 해같이 맑은 모습이었을까요? 오늘은 우리 눈에 비치는 술람미 여인의 실제 모습을 살펴볼까 합니다. 먼저 1장 5절입니다.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했습니다. 그러니까 백옥같이 하얀 얼굴이 아니라 가무잡잡한 얼굴이라는 것입니다. 별로 호감이 가는 얼굴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몸매가 빼어난 모습이었을까요?  계속해서 7장 1-2절을 보겠습니다.


   “…네 넓적다리는 둥글어서 숙련공의 손이 만든 구슬꿰미 같구나.
   배꼽은 섞은 포도주를 가득히 부은 둥근 잔 같고 허리는 백합화로 두른 밀단 같구나.”


  먼저 그녀의 다리 모습을 보겠습니다. 그의 넓적다리는 둥글어서 구슬꿰미 같다고 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알통 무 다리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그녀의 허리는 S라인이 아니라 밀단 같답니다. 차라리 보릿단 같다고 했으면 허리가 살찐 모습이라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밀단이랍니다. 밀단은 아주 가늘고 길쭉한 모습이니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게다가 배꼽은 둥근 잔 같다고 했으니 배꼽이 불룩하게 튀어나왔다는 말입니다.


  이쯤하면 그 모습 상상이 될 것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다리는 알통다리요, 허리는 일자형 개미허리며, 배꼽은 볼록하고 얼굴은 가무잡잡하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머리털은 고불고불”하다(5:11)하였으니 머리털마저 윤기 반질거리는 모습이 아니라 곱슬머리(wavy)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러니 다음 구절이 얼마든지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8장 1절입니다.


  “네가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은 오라비 같았더라면

   내가 밖에서 너를 만날 때에 입을 맞추어도 나를 업신여길 자가 없었을 것이라.”


  무슨 말인고 하니 이렇습니다. 네가 나의 오라비였다면 너와 입을 맞추어도 사람들이 나를 업신여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특별한 상황에서는 남매지간도 껴안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입맞춤을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남남인 너와 내가 입을 맞추니 사람들이 비웃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못 생겨도 너무 못 생긴 주제에 연애한답시고 외간 남자랑 입맞춤한다는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그녀의 친 오빠들마저 오직 하나뿐인(6:9참조) 여동생을 핍박했나봅니다. 1장 6절입니다.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그 오빠들이 어떤 이유로 노하였는지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추측컨대, 여동생더러 ‘네 모습으로 가문 먹칠하지 말고 저 포도원이나 잘 지켜라’ 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동생이 잘난(?) 얼굴 내밀고 밖에 돌아다닌 것 자체가 창피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여자를 아가서의 왕은 말마다 ‘내 사랑하는 자야. 사랑하는 자야.’ 하고 노래를 부릅니다. 행여 왕에게 여자가 없어서 그랬다면 이해가 되겠습니다. 그런데 6장 8절을 보면 이렇습니다.


  “왕비가 육십 명이요 후궁이 팔십 명이요 시녀가 무수하되…”

     
  그러니까 왕에게 여자가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시녀들까지 하면 무수히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왕은 “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로구나(6:9전반)” 하고 술람미 여인을 찬미합니다.


  무슨 까닭일까요? 과연 술람미 여인은 어떤 면모를 가지고 있었기에, 왕은 그 많은 왕후 비빈들을 다 제쳐두고 술람미 여인이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여자라 했을까요? 이제 그 이유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가서 6장 2절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

   동산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며 백합화를 꺾는구나.”


  흔히 왕의 총애를 받다보면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리고 왕의 총애를 놓치지 않기 위하여 갖은 계교를 부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술람미 여인은 어느 날 화려한 궁전도 마다하고, 그 극진한 시중도 마다하고 동산으로 내려가 양 떼를 먹입니다. 오늘 날로 말하면 세상 욕심이 전혀 없습니다.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도 하지 않고 많은 것을 가지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푸른 하늘처럼 맑고 청명했으며 달처럼 온화했습니다. 그래서 서두에서 인용한 것처럼 그녀는 “아침빛같이 뚜렷하고, 달같이 아름답고, 해같이 맑고…” 했는지 모릅니다.


  성경에서 양 떼를 먹인다는 말은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아실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힘이 없는 자, 가난한 자, 슬픔을 당한 자, 눈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한 마음을 가질 줄 아는 여자였습니다. 그런즉 외모는 천하 볼품이 없었지만 그 영혼만은 청순했고 고결했으니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술람미 여인을 그토록 칭송할 만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라” 했던 왕의 마음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화려함도, 극진한 시중도, 왕의 총애도 마다하고 어느 날 한적한 동산으로 훌쩍 떠나버린 술람미 여인을, 왕은 6장 13절에서 이렇게 외칩니다.


  “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야
   돌아오고 돌아오라 우리가 너를 보게 하라”


  그리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가졌던 왕과 하나님의 칭송이 자자한 술람미 여인은 아가서 하반부 7장에서 드디어 사랑의 결실을 맺습니다. 흔히 결혼식하면 일류호텔이고 결혼여행하면 해외여행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을 소유한 두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7장 11,12절을 보면 이렇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
   우리가 일찍이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꽃이 피었는지 보자. 거기에서 내가 내 사랑을 네게 주리라”


  하나님의 마음을 소유한 그들은 결코 자기들만의 특별한 시간과 열락을 즐기려 하지 않습니다. 들로 가고, 동네로 가서 유숙하자고 합니다. 사람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을 찾아갑니다. 아무리 내 귀중하고 특별한 시간도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런즉 이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가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일러줍니다. 못 생겨도 좋고 가난해도 좋습니다. 또한 오빠들에게 핍박받은 술람미 여인처럼, 세상 핍박과 세상 멸시 천대를 받아도 좋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 세상 유혹 따라가지 아니하고 동산에서 양 떼를 먹이는 마음 하나이면 됩니다. 하나님은 거창한 업적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사람을 향한 작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소시민들에게, 아가서는 위로와 소망을 갖게 하나 봅니다.


  (그런데도 성도들의 기도와 열정으로 이루어진 교회를, 마치 제 것인 양, 기어이 자기 아들에게 물려주는 모 교회 지도자가 아가서의 왕과 너무 비교됩니다. 한 나라의 왕도 사랑하는 여인을 따라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거늘, 어찌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한다는 자가 자기만의 끝없는 탐욕을 부리려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발 술람미 여인의 마음, 백만분의 일만 가져도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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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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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써니 | 작성시간 12.10.09 ㅋㅋㅋ... 작은아이님이 해설하시는 대로 상상했습니다...

    그러게요.. 교회가 커지면 자신이 '술람미 여인'이 아니라 아가서의 '왕'이라고 생각이 되는가 봅니다..
  • 작성자맑은바람 | 작성시간 12.10.09 성경을 성경대로 설명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기독신앙은 무조건 실생활인데 예배당 안에서 이루어지는 종교행위를 신앙이라 호도하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비전 승리 성공 부유 등의 용어를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기독신앙은 언제나 작아지는 곳에서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깊이 생각토록 다잡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 작성자배달 | 작성시간 12.10.10 "하나님은 거창한 업적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사람을 향한 작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소시민들에게, 아가서는 위로와 소망을 갖게 하나 봅니다"

    "살아 생전에 성전을 하나 지어야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라고 거창하게 생각하고 계시는
    저의 장인어른과 너무 대비되는 말씀입니다
  • 작성자돌갈 | 작성시간 12.10.29 아가서의 주인공을 어떻게 설정할 때 해석이 자연스러워질까요?
    1. 솔로몬(그리스도)과 술람미여자(교회)
    2. 솔로몬(세상영광)과 목동(그리스도) 그리고 술람미여자(교회)
    선택은 자신들의 몫이지만 2번으로 설정하고 아가서를 보면 제 경우 더 자연스런 해석이 나오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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