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첫 열매와 십사만 사천

작성자김바울7|작성시간26.06.09|조회수20 목록 댓글 0

 

어릴 때 비사치기 놀이를 했습니다. 손바닥만 한 납작 돌을 땅에 세워 놓고, 4-5미터 정도의 거리에서 다른 돌을 던져 쓰러뜨리는 놀이입니다. 방법은 그 외에도 깨끔발로  차기, 옆구리에 끼고 가서 맞추어 넘어뜨리기 등 다양합니다. 돌이 잘 안 세워지면 약간 흙이 파지게 해서 세우곤 했습니다. 하지만 한 번도 돌을 완전히 땅에 묻거나, 그렇게 묻은 돌에서 뭔가 자라 나오기를 기대한 적은 당연히 없습니다.

 

그러나 씨앗을 흙에 심어 본 적은 많습니다. 예를 들면, 하얀 감자씨를 땅에 묻으면 하얀 감자꽃이 피고, 보라색 감자씨를 심으면 보라색 감자꽃이 폈습니다. 마당가에 분꽃 씨나 봉숭아 씨도 심어 보았습니다. 일단 이런 것들을 심은 후에는 싹이 나기를 고대하게 됩니다. 위 두 사례를 비춰볼 때, 아래 본문의 첫 열매는 죽은 돌멩이가 아니라 살아 있는 무언가가 우리 안에 심긴 최종 결과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내가 보니 어린양께서 시온산에 서 계시고

그분과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서 있는데, …

그들은 … 어린양께서 어디로 가시든지 그분을 따라가는 사람들이며,

하나님과 어린양께 첫 열매로  드려지도록 사람들 가운데서 사 온 이들입니다(계 14:1, 4).

 

 

사실 위 첫 열매를 알려면 먼저 신약의 사복음서와 서신서를 통해 우리 안에 무엇이 심겼는지를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이 “나는 심었고, …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셨습니다.”라고 말할 때, 우리 안에 심긴 것은 생명이신 (부활하신) 주님 자신이셨습니다(고전 3:6, 요 11:25). 이것은 우리가 거듭났을 때 영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영 안에 들어오셔서 연합되신 사건이기도 합니다(요 3:6, 고전 6:17). 

 

제가 주님 앞에서 위 첫 열매에 대해 묵상할 때 다음 세 가지가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돌멩이가 아니라 씨를 심어야 함여기서의 ‘돌멩이’는 생명이 아닌 모든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나님(혹은 그리스도)에 대한 ‘객관적인 지식’입니다. 여기에는 ‘교리 공부’나 (유월절에) 문설주에 바른 ‘피’도 포함됩니다. 이런 것들이 필요하고 또 유익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생명은 아닙니다. 즉 ‘문설주에 피를 바름’과 함께 “그날 밤에 그 고기를 먹어야” 씨가 우리 안에 심어진 것입니다(출 12:8).

저는 이 점을 다음의 체험을 통해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1) 주님은, 사람들이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알고 “성경을 자세히 연구”하지만, 정작 생명을 얻으려고 “에게 오려고 하지 않는다”라며 성경 연구와 주님 자신을 구분하셨습니다(요 5:39-40).

2) 과거에 구원파 분들과 토론했을 때 ‘죄 사함(칭의) 자체가 거듭남은 아니다’라고 하자 ‘이게 뭐지?’하다가 결국에는 둘의 차이를 인정했습니다.

3) 한 형제님이 교파에 오래 계셨던 한 신실한 자매님에게, “이 비밀은 여러분 안에 계신 그리스도”(골 1:27)라는 말씀을 근거로, “거듭난 사람 안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 자신이 내주하신다”라고 하자, 그 자매님은 왜 지금까지 이처럼 중요한 진리를 분명하게 말해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느냐며 탄식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생명이 성숙해야 함신약의 서신서들은 한 마디로 생명의 씨가 떨어진 이들이 생명이 성숙하도록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말해줍니다. 따라서 우리는 구원받은 후에 전도와 주일 성수와 헌금 등의 밖의 봉사가 아니라 먼저 부지런히 주님을 먹고 마심으로 생명이 성숙하고, 그 생명이 밖으로 표현되는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요 6:57. 히 5:14-6:1, 고전 2:6, 엡 4:13, 빌 3:15).

최대한 오래 살아야 함:.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 모르므로 우리는 육신의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최대한 오래 살면서 우리가 살아 있을 때에 주님이 오시기를 고대해야 합니다.

 

 

이제 아래는 위 본문에 대한 간략한 해석입니다.

 

첫 열매(십사만 사천)사도 바울처럼 죽은 이기는 이들인 사내아이와 달리, 여기의 첫 열매는 영적으로 성숙한 이들이 에녹처럼 죽음을 맛보지 않고 살아서 하나님의 보좌로 휴거된 이들입니다.

 

어린양을 따라가는 사람들성경은 베드로를 포함해서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주님을 따른 여러 사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눅 5:11 등). 그런데 여기서 ‘어린양을 따라간다’는 것은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의 생각과 의지와 감정을 제쳐놓고, 주님 생각과 감정과 의지 우리의 것으로 취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인자이신 주님께서 아버지와 깊은 연합을 이루신 것처럼 우리도 아버지를 포함한 삼일 하나님과 깊은 연합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은 우리에게 주님 자신 외의 모든 것을 십자가로 끝내는 자기 부인을 요구합니다(마 16:24).

 

적지 않은 이들을 이 길이 너무 좁아서 이 시대에 첫 열매가 되는 과정을 포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택하시고 예정하신 모든 이들을 (대환난을 통과시켜서라도) 결국에는 익게 하실 것입니다(계 14: 15).

 

 

 

 

*읽으신 후 댓글을 올려주세요. 여러분의 댓글은 좋은 글을 쓰는데 큰 힘이 됩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