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후반부)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헌 헌법을 만들 때 ‘권력의 정당성’을 어디에 둘 것인지를 고심한 결과물입니다.
또한 근대 정치 철학에 기반한 미국식 민주주의 모델과 프랑스혁명 이후의 국민주권 사상이 투영된 것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현재 많은 나라에서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분립 형태로 위임된 정부구조를 통해 실현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래 본문의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와 달리, 견제와 균형을 이룬 이러한 훌륭한 제도도 타락한 인간이라는 운영 주체의 한계는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의 국가의 현실입니다.
또 그 천사는 나에게 수정처럼 빛나는 생명수의 강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강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서 흘러나와
그 성의 길 가운데로 흐르고 있었습니다(계 22:1).
통상적으로 ‘보좌’는 권위 혹은 힘을 상징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 주님께서 “모든 왕의 왕이시고 모든 주인의 주님”이시라고 말씀합니다(계 19:16). 따라서 위 하나님과 어린양께서 가지시는 권위는 사람의 눈에 잘 보이지도 않고 체감하기도 어려울 수 있지만 사실상 우주 가운데 현존하는 최상위 권위입니다.
그리고 이 권위는 여러 단계와 형태로 나타나는 위임된 권위들을 통해 해당 구성원들에게 혜택을 주거나 불이익을 주는 힘의 형태로 작용합니다. 즉 주어진 규범을 준수하거나 의무를 이행하면 혜택이 있고, 어기거나 저항하면 불이익이 주어지는 식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 권위는 회사에서 인사 고과 권한이 있는 상사, 혹은 과속 운전자에게 티켓을 발부하는 교통 경찰관을 통해 행사되기도 합니다.
관련하여 사도 바울은 “각 사람은 자기 위에 있는 권위들에게 복종하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에게서 오지 않는 권위가 없으며”라고 말합니다(롬 13:1). 그는 이어서 “사람이 권위를 거스르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을 거역하는 것”이고, 거역하는 사람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2절). 참고로 바울이 이 서신을 쓸 때의 로마제국의 황제가 그 악명 높은 네로였다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위 본문은 사람이 하나님을 거역하도록 충동질하는 숨은 근원인 “세상의 통치자” 사탄이 불못에 던져진 후(요 12:31, 계 20:10)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보좌의 광경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가 처한 환경과는 많이 다른 상태이지만 위 보좌의 통치 원리는 영원토록 동일합니다. 따라서 아래 내용은 위 본문을 현재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을 것인지를 묵상하며 얻은 것을 정리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 성경은 하나님을 “자신을 숨기시는 하나님”으로 묘사합니다(사 45:15).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 보좌를 “하늘은 내 마음을 아실 것” 혹은 “하늘이 천벌을 내리실 것”이라는 식으로 막연하게 인식해 왔습니다.
성경에서도 보좌가 시편, 다니엘서, 이사야서, 히브리서 등에서 간략하게 언급되기도 했습니다(시 103:19, 사 6:1, 단 7:9-10, 히 8:1, 12:2). 그러나 요한계시록 4-5, 22장은 위 보좌에서 비롯된 하나님의 행정이 어떻게 이 땅의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지를 생생하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주로 두 방면에서 진행됩니다. 첫째는 사탄의 반역과 사람의 타락에서 비롯된 후유증을 말끔히 제거하여 우주적인 쓰레기통인 불못에 던져 넣는 것입니다(요일 3:8). 둘째는 사람 안에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을 넣어주어서 사람이 하나님을 온전히 표현하는 존재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최종 완결이 바로 어린양의 신부인 새 예루살렘입니다(계 21:2). 그런데 이런 일을 하시는 주체이신 주 예수님 안에 체현되신 삼위 하나님은 사법, 입법, 행정 권한 모두를 가지셨습니다(사 33:22, “여호와는 우리의 심판자(Judge), 율법 제정자(Lawmaker), 왕(King)이시기에,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리라”).
“생명수의 강”: 이 강은 우리의 생명과 생명 공급이 되시는 삼위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이 강은 주님의 부활 후에 생겨났으며(요 7:39), 한 몸 안으로 침례 받은 모든 사람들이 마시는 “한 영”(one Spirit), 혹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으로 묘사되었습니다(고전 12:1, 고후 13:14).
“그 성의 길 가운데로 흐름”: 우리가 “그 성” 즉 ‘새 예루살렘’이니, 이 생명수의 강은 지금 우리 존재 안으로 흐르고 있습니다(히 12:22, 계 3:12 참조). 다만 지금은 우리가 보좌의 권위를 거스를 때, 즉 “생각을 육체에 두거나”, 자백하지 않은 죄들이 있거나 형제들을 미워하는 것처럼 “어둠 가운데 행하면” 이 신성한 생명의 흐름이 즉시 끊어지는 것을 생활 속에서 자주 체험합니다(롬 8:6, 요일 1:6).
이런 추구와 묵상을 통해 제 안에 깊이 만져지는 것은 우리가 위 보좌의 통치 아래 있으려면 양심에 거리끼는 것들을 즉시 처리해야 하며, 하늘의 문인 거듭난 영의 가치와 기능을 멸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 주님,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의 강이
이 시대에서도 끊임없이 우리 존재 안에서 흐르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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