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서툰 짝짓기

작성자김순희|작성시간23.11.06|조회수23 목록 댓글 0

 땅꼬가 발정해서 집을 나간지 이틀째 되던 날 밤. 

그 밤도 나는 스토커가 되어 베란다 창에 붙어 서서 땅꼬의 행적을 쫓고 있었다. 

 

어제처럼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어둠이 내린 중정의 놀이터에 가로등이 켜지자 땅꼬가 나타났다. 이번엔 흰 바탕에 검은 동그라미가 박힌 얼룩이를 동행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떠난 놀이터에서 짝을 바꿔 또 한 차례 밀회가 시작되고 있었다. 미끄럼틀 곁에서 급기야 거사를 치루려는지 엉덩이를 들고 앉은 땅꼬 등 위로 얼룩이가 올라 앉았다. 그 순간... "악-"  땅꼬가 날카로운 비명을 내지르고는 뛰어달아나 벤치 아래로 몸을 피해 쪼그려 앉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지?

 

얼룩이는 쪼르르 땅꼬를 쫓아와 벤치 주변을 얼쩡거리며 떠날 줄 모른다. 잠시 후 벤치 위에 올라 역시 식빵 자세로 땅꼬 위에 자리를 잡았다. 벤치를 격해서 아래, 위에 쪼그려 앉아 한참을 머문다. 다리가 저렸는지 땅꼬가 슬그머니 일어나 자리를 옮기자 얼룩이도 덩달아 따라나선다. 이번엔 미끄럼틀 맨 아래 좁은 구석에 쪼그려 앉은 땅꼬 곁을 어슬렁거리다 땅꼬를 마주 보고 자리 잡은 얼룩이. 또 한참 그렇게 둘은 마주보면서 고요히 앉아 시간을 보낸다. 보아하니 땅꼬는 얼룩이가 올라타지 못하는 좁은 공간을 찾아다니는 듯 하다. 

 

어둠이 내리는 놀이터, 어린 아이들이 떠난 자리에 사춘기의 열기에 들뜬 소년, 소녀가 쭈볏쭈볏 나타나 얼굴 붉히며 썸을 타듯이 둘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곁을 지키면서 인적 없는 놀이터를 배회하고 있다.

 

무슨 사정이 있구나. 

 

거사를 치루지도 못하면서 떠나지도 못하면서... 미련이 남아 주춤거리는 서툰 중학생 커플처럼 놀이터에서 밤을 지새우는 삼색이와 얼룩이.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쟤네, 귀엽네!!!

 

그 둘의 수수께끼같은 은밀한 배회를 7층 베란다 창에 붙어서서 떠나지 못하고 지켜보는 나.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지? 놓아주기로 하고선... 본성대로 살게 하기로 하고선... 첫 발정이 온 조그만 삼색이 고양이의 짝짓기를 이토록 슬픈 눈으로 쫓고 있는 나는... 그래,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외로운 것이다. 그리고 밑도 끝도 없지만... 이럴 수 있다는 걸 상상해보지도, 이해하지도 못했지만 ... 여전히 당황스럽고 난감하고 인정하기 두렵고 부끄럽지만, 이런 감정이 손가락질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여전히 내 마음의 동요를 검열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고 환한 아파트의 방과 거실을 등지고 베란다 너머 차가운 어둠을 응시하고 있는 나는 ...사랑에 빠진 것이다. 갈등의 본질은 미뤄두기로 하자. 나는 땅꼬를 간절하게 원하고 있다. 

 

선 잠을 자고 난 다음날, 어쩐지 발정이 종료되고 있다는 느낌적인 느낌으로 다시 사료와 물을 들고 중정으로 나섰다. 

둘은 보이질 않는다. 

 

"땅꼬야~~~, 땅꼬야~~~"

역시 어린이집 화단 곁에 앉아 땅꼬를 부르자 잠시 후, 땅꼬가 나왔다. 얼룩이는 보이지 않았다. 피곤하고 지쳐보이는 땅꼬는 내게 다가와 반갑게 오래오래 머리를 부빈다. 사료를 내려놓았지만 입맛이 없어보인다. 넘치는 열정의 반짝임은 사라졌다. 어쩐지 지쳐보인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땅꼬야, 집에 갈까?" 묻는 나. 

어쩐지 잉태할 것 같지 않은 느낌적 느낌. 

 

땅꼬를 이끌고 공동현관으로 향했다. 잠시 휑한 눈으로 놀이터를 훑어보던 땅꼬는 멀어지는 내 걸음에 당황해서 총총총 달려온다. 자연스럽게 공동현관으로 함께 들어오면서 땅꼬의 첫 발정은 끝이 났다. 하지만 내 선택의 댓가는 이제부터 시작되겠지.   

 

약속할께. 너의 자궁을 앗아가더라도... 너의 자궁에서 비롯될 너의 관계와 그로 인한 자긍심이 있다면... 그럴 앗아버릴 댓가로  나는 너에게 무엇을 주어야 할까? 감히 교환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최선을 다해 볼께. 나랑 살아도 되겠니?   

 

이제 뭘 좀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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