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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경봉 스님 일화(3). 니, 차 몇 잔 마셨노?

작성자대연스님|작성시간26.06.16|조회수19 목록 댓글 0

스님의 일화 하나.

구도회(求道會)라는 불교단체에서 스님을 찾아오자, 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구도회에서 왔습니다.”

“구도회가 입구(口)자 구도회인가? 구할 구(求)자 구도회인가?”

입으로, 문자로 떠드는 구도회냐,

참으로 도를 찾는 구도회냐고 묻는 것이다.

말과 문자로 명자상을 찾는 그것은

모두가 유위법으로 허망한 것들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한 것이다.

허공에 뜬 달은 고개만 들면 볼 수가 있다.

마치 계(契) 모임 하듯, 동네 반상회 하듯 할 필요는 없다.

평범한 이 한마디 말로 일침을 가하는

스님의 송곳 같은 지혜의 가르침에 실로 경탄이 나온다.

또 이런 일화가 있다.

다도(茶道)에 일가견을 지녔다고 자부하는 한 사람이 스님을 찾아왔다.

스님이 차를 내놓자,

그는 다도(茶道)에 관하여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았다.

묵묵히 그 사람의 이야기를 다 듣고는 느닷없이 물었다.

“니 차 몇 잔 마셨노?”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차에 대한 얕은 지식으로

차의 도(道)를 논하다니. 일상을 차와 함께 사시는 선승 앞에서

풍월을 읊었으니 가소롭지 않은가?

 

부처님이 언제 차 마시라고 했던가?

불도(佛道)는 분별 망상을 경계한다.

분별 망상이란 식(識)을 말한다.

식(識)은 곧 지식이다. 불교에서는 이를 명자상(名字相) 이라 한다.

명자상은 도(道)를 공부함에 가장 큰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지식은 도(道)가 아니다. 지식은 알면 얻는 것이 있지만,

얻는 것이 있으면 미망에 빠진다.

도(道)는 얻고 잃음에 전혀 관계가 없다.

실체가 없는 명자상에 빠져 이를 도(道)라고 착각하지 말라는

선사의 일침이 진실로 예리하다.

 

불도(佛道)를 깨치기도 어렵지만,

깨달은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 또한 어렵다.

그래서 옛 고승들은 비유를 들기도 하고,

방편으로 동요나 가사(歌詞)를 만들어 전달하기도 했다.

길을 묻는 자에게는 가는 길을 알려줄 수 있지만,

길을 묻지 않은 사람들에게 알려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난감으로 어린아이들을 이끄는

<법화경>에 나오는 화택(火宅) 의 비유처럼

옛 고승들은 이런 방편을 쓰기도 하는 것이다.

 

의상대사와 더불어 신라불교의 양대 산맥으로 일컫는 원효대사,

스님은 한 때 요석공주와 로맨스 이후

소성거사(小姓居士)로 자처하면서

거리에서 박을 치고 무애가(無碍歌)를 부르면서

파격적인 행보를 일삼고 돌아다녔다.

스님 또한 대중을 교화하기 위해 이 방편을 사용했다.

천진무구한 어린아이들에 동요를 지어 전법(傳法) 한 것이다.

 

“중아! 중아! 니 칼 내라 뱀 잡아 회치고

개구리 잡아 탕하고 찔레 꺾어 밥하고

니 한 그릇 내 한 그릇 평등하게 나눠 먹고

알랑달랑 놀아보세, 알랑달랑 놀아보세.”

 

경봉 스님은 이 동요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신다.

「아이들이 그게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고 좋다고 웃고 노는데,

그 동요가 진리의 말이다.

중아, 니 칼 내라는 것은 사람마다 지혜의 칼이 있는데,

수도하는 사람의 칼은 무엇이든지 잘 드는 보검이다.

찔레 꺾어 밥한다는 말은, 진리로 법을 말한다는 말이다.

개구리 잡아 탕(湯) 한다는 것은,

개오리(開悟理) 즉 모두 깨닫는 이치로

탕을 하고, 뱀을 잡아 회 친다는 말은, 뱀을 사사(四蛇)라고 하는데,

우리 몸이 흙, 물, 불, 바람 등 네 가지 기운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이 네 가지가 마치 모진 뱀과 같으니,

이것이 몸 가운데 부족하든지 많든지 하면

몸에 병이 나서 사람을 고생시키니

이것을 조복 받고 다스려서 회를 쳐서,

니 한 그릇 내 한 그릇 아이나 어른이나

평등하게 한 그릇씩 먹고는, 알랑달랑 놀아보자고 한다.

이 알랑달랑 이것이 천진무구(天眞無垢)한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密多心經)인 것이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고, 아이들은 그저 고개를 끄덕거리며 좋아라 한다.」

 

이는 스님이 법상에서 설하신 많은 법문 중 하나다.

스님의 해설을 경문의 말로 간략히 요약 표현한다면

“도를 닦고자 하는 자여, 무명(無明)을 벗어나지 못해

생로병사의 늪을 헤매는 이 몸의 실체가 무엇인지 깨달아

지혜의 검으로 미망(迷妄)의 거물을 찢어버리고

생사를 벗어난 반야의 지혜로 무애(無碍), 자재(自在)한

평등한 자유인의 삶을 누리자”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스님은 찾아오는 속인이나 불자들에도,

법상(法床)에서 법을 설하실 때도

경문의 어려운 말을 쉬운 말로 풀이하여

언제나 중생들의 근기(根機)에 맞도록 설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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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천성산 용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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