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은 미국의 신학자이면서 철학자로서 “미국의 내면적 신앙의 사도”로 간주된다. 시적인 언어로 글들을 표현하기를 좋아하는 에머슨은 1803년 5월 25일 매사추세츠의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정은 뉴잉글랜드의 목회자 가정으로서 아버지는 유니테리언 신앙을 고수하는 보스턴 제일교회의 목사였다. 불행하게도 에머슨이 8살 때에 그의 부친이 돌아갔다. 아버지를 여윈 에머슨의 가족들은 매우 빈곤하면서도 고단한 생활고에 시달려야만 했다. 가족을 위해 그의 어머니는 어려운 가계를 꾸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의 어머니는 마치 한국의 장한 어머니들처럼 생활이 어려워도 자녀들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모든 자녀들을 대학에 보냈다. 어린 시절 에머슨은 건강으로 고통을 당했는데, 중병을 두 번이나 앓았다. 그의 누이와 동생은 일찍이 병으로 생을 마감했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1818년 하버드대학에 입학하였다. 그의 학교 성적은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것 같다. 반면에 그의 형제들인 윌리엄, 에드워드 그리고 찰스 에머슨은 공부를 잘하여 학업성적이 뛰어났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졸업을 할 때 59명 중에 겨우 30등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졸업 후에 형이 근무하는 학교에 들어가서 교편을 잡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1829년에 하버드대학을 졸업함과 동시에 즉시 보스턴에 있는 제이교회에서 안수를 받고 부목사로 섬겼다. 이 시기에 그는 엘렌 터커(Ellen Tucker)와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부목사로서의 그의 삶 역시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어떤 이의 평범한 생활은 가끔씩 극적인 환경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있는데, 에머슨이 그 경우였다. 1832년 그의 아내 엘렌 터커가 폐결핵으로 그만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부인을 잃은 슬픔으로 고독 속에서 지내고 있던 그에게 목회자로서의 직업에 대한 회의와 의문을 품게 되었다. 이것이 그가 자신의 교회에서 베푸는 성만찬에 어떠한 성스러운 의미와 뜻을 부여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면서 자신의 모든 목회자의 길을 포기하고 만다. 폴 볼러가 적고 있듯이, 에머슨은 “좋은 목사가 되려고 목사직을 떠났다.”
목회자로서의 길을 포기하는 그 때에 에머슨은 신인동형동설의 신학적 개념인 하나님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기존 신학에 대해 매우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1838년 뉴잉글랜드의 유니테리언 신학의 산실이었던 하버드대학교 신학원에서 그가 행한 “새로운 견해”의 연설에서 이 사실을 증명한다.
나에게 유신론의 설명을 요구하고 내가 표현했던 신의 비인격성이 황량하고 무섭다고 생각하는 우회적인 젊은이들에게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가? 나는 내 의식을 탐구할 때 하나님이 인격을 가진 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진리가 아니라고 말하리라. 오히려 그 반대일 것이다. 나는 하나님을 안 사람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신성모독을 범하는 것이라고 느낀다.
비록 에머슨이 목회자의 길을 포기하긴 했어도 설교자로서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수년 동안 그는 쉬지 않고 설교를 행했다. 1832년 12월에 예술의 도시로 알려진 이탈리아를 방문한다. 다시 그는 이탈리아에서 영국으로 건너가는데, 그곳에서 당시 명성이 있던 코울리지와 워즈워드, 그리고 당시에 무명이었던 토마스 카알라일을 만난다. 특히 카알라일로부터 그는 깊은 감명을 받게 되고 한평생 절친한 우정을 가지게 된다. 1833년에 그는 다시 보스턴으로 돌아온다. 그는 다소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고, 아내의 죽음으로 받은 연금을 받아서 생활을 꾸려나갔다. 그는 목회자의 길을 포기했지만, 설교의 요청이 있을 때마다 교회를 다니면서 설교를 하기도 하였다. 당시 1830년대에는 문화 강연회가 마치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한 시기였는데, 이 시기에 에머슨도 설교단이나 강연장에 나타나 이일을 하게 되었다.
1835년 에머슨은 리디아 잭슨(Lydia Jackson)과 재혼을 하였고, 슬하에 네 자녀를 두었다. 하지만 그는 1842년에 사랑하는아들을 잃었다. 그의 아들을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서 그가 집필한《경험론》이 출간되었다. 당시 다니엘 웹스터(Daniel Webster)라는 저명한 저널리스트는 노예제도를 지지하는 연설을 하여 미국인들을 선동하였다. 이 일에 에머슨은 강연을 할 때 마다 노예제도폐지를 주장하였다. 모든 인간은 직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다른 인간을 지배한다는 것을 옳지 않다는 것이었다. 1882년 4월, 79세의 일기로 에머슨은 폐렴으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평생 자연을 사랑한 목사이면서도 사상가인 에머슨은 그가 그렇게 원하던 자연으로 돌아갔다.
세상의 중심에 너 홀로 서라
찰스 테일러가 적고 있듯이, 에머슨은 기독교적이거나 유신론적인 것을 포기하고도 영적인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고 가르친다. 신앙의 진정한 힘은 자기 자신을 신뢰하고 긍정하는데 있다. 미국의 중요한 정신적 뿌리 중 하나라고 평가받고 있는 그의 생각은 “세상의 중심에 너 홀로 서라”를 이야기한다. 자신에 대한 믿음, 그것이 가장 신앙적이다. 하나님을 믿는 다면, 그것은 자신을 믿는 것이다. 자신을 믿는 것은 자신의 교만과 오만을 드러내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가 자신의 절대적인 확신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책임을 다해 일하며 자신을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삶의 책임을 위해 자신을 믿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의 배후에는 청교도 신앙이 너무 하나님에 의존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이나 자신감을 상실할 뿐만 아니라 주어진 삶에 대한 해이와 삶의 개척에 대한 무감각에서 헤어나지 못했다는 자의식이 깔려 있다. 신앙이란 우리가 너무나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스스로가 원하는 자신만의 일을 부여하는 하나님의 음성에 경청하는 행위다. 그렇게 ‘나’에게 집중할 때 우리는 좀 더 성장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으며, 인생의 성공이 자신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에머슨은 그의 책,《자기 신뢰》(Self-Reliance)에서 세상을 살며 서서히 깨닫게 되는 진리와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그의 짧고도 간결한 문장은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가 때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진실이지만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혜안으로 가득하다. 그는 시종일관 말한다. “자신을 믿고, 홀라 서라”고. “나의 가치를 결정하는 건 ‘나’뿐, 자신을 믿고, 홀로 서라!” 그러면 하나님은 스스로 도우신다. 하나님은 그의 피조물들이 스스로 자존감과 신뢰를 찾고 증대하는 일을 함께 하신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어느 시가 있다. 삶은 모두에게 단 한 번뿐이기에 매 순간이 새롭고 낯설 수밖에 없다. 앞으로 발을 내디딜수록 확신은 사라지고 누군가의 분명하고 흔들림 없는 말을 찾는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나 자신의 성찰과 행동, 즉 원인과 결과라는 연결고리로 결정지어지고 확고해지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와 의견, 충고로 변화되고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에머슨은 말한다. “‘질투는 무지이고 모방은 파멸’이다. 광활한 우주는 좋은 것들로 가득 차 있지만 자기 몫으로 주어진 땅에서 직접 밭을 가는 수고를 하지 않고는 옥수수 낱알 하나도 얻을 수 없다.” 즉 참된 나로 존재하기 위해, 그리고 나아가 창조하는 인간이 되기 위해 우리는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어린아이와 같이 말이다. 아이가 어른이 되는 것은 자신을 향한 타인의 박수와 칭찬을 의식한 다음부터이다. 자의식을 깨달은 후 사람은 사고의 감옥에 갇히게 된다. 사회와 오랜 관습은 그 틀을 지키기 위해 그 안에 속한 구성원들의 자유와 문화를 포기하게 한다. 그들은 우리의 자유 의지, 자기 신뢰를 흔들고 새로운 발상과 창조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에머슨은 말한다. 자신을 믿고 자신만의 일을 하라고, 지금 당장 행동을 하라고 채찍질한다. 그렇게 앞으로 나아갈 때 어느 누구라도 우리를 흔들 수 있는 자는 없다. 그러므로 나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자신을 신뢰하는 힘이 얼마나 강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며, 그 모든 해답은 내 안에 있다고 말한다. 그는 열성적인 연사의 언동으로 우리를 충동한다.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구하지 말라. 그러면 끝없는 변천 가운데 유일하게 확고한 기둥인 그대는 즉시 그대를 에워싸고 있는 모든 것을 떠받치는 기둥이 될 것이다. 힘이란 타고난 것이고, 선을 그 자신 밖의 다른 곳에서 구하려고 하기 때문에 약해지는 것을 알며, 또한 주저 없이 자기 생각에 자신을 몰두함으로써 지각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즉시 그는 자신의 굳건한 위치에 서서 사지를 마음대로 움직이고 기적을 행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제 발로 딛고 서는 사람이 머리를 땅에 박고 서는 사람보다 더 강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우리는 삶의 현실과 분리하지 않는 것이 신앙이라 배웠다. 에머슨이 그러한 의미에서 신앙을 말한다는 점에서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신앙의 근본이다. 나의 삶을 비관하는 것도 충만하게 하는 것도 모두 나에게 달렸다. 삶의 방치하는 것에는 그 어떤 핑계도 있을 수 없다. 내 안에 확고한 신념과 자기 자신을 믿는 신뢰만 있다면 사회나 관습, 세상의 목소리에 흔들릴지언정 꺾이지 않고 곧게 나아갈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에머슨이 우리의 삶에 건네준 신앙의 지혜로운 선물이자 하나님의 뜻이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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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비트겐슈타인 작성시간 10.05.22 알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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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비트겐슈타인 작성시간 10.05.22 에머슨이 갑자기 1932년 12월 이탈리아로 갔다는것은 타임머신을 타고 갔다는 거군요.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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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소피스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0.05.23 저자가 타임머신을 타다 실수한 것이겠죠^^ 책에서는 수정되어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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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Mr.Nam 작성시간 10.06.05 진정한목사가 되기위해 목사가 되길 포기했다..
감동이 있엇던 책의 내용이었습니다 ^^ -
작성자예수님사랑 작성시간 10.06.12 진정한 하나님의뜻을 알고가신분이라 생각드네요..감동입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