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슬픈 돼지 신분의 귀를 가졌다 하오
김민율
백 년을 우는 왼쪽 귀를 가졌다 하오 삐⸺ 청력 테스트 저주파 음이 점점 희미해지는 기억이오 나는 백 년 동안 잊혀진 사람 같소 다정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어 당신 이름에 유폐되어 있소 당신의 첫 눈빛 첫 가슴 떨림은 귀머거리의 꿈이었소
우리의 목소리를 돼지우리에 가둬 놓은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오
가청 신호음이 들릴 때마다 속엣말의 고독을 중얼거리오
내게도 사람의 귀가 있소
인간의 청각은 위대한 상실을 앓고 있소 들리오? 백 년 동안의 기다림이 고막을 두드리오 온몸의 주름이 진동하고 있소 내 왼쪽 귀는 부서질 것 같다오 신호음이 명멸하는 지점에 그리움은 깜박이고 있다오 온몸으로 귀가 자라나 일생의 감각을 덮었다오 과거의 사람 목소리만 살과 뼈에 떠돌아 문자를 새긴다오
슬픈 짐승을 꺼낼 수가 없소
사람의 말과 감정과 목소리는 방음 부스에 갇혔소
바깥에서는 우리를 뭐라고 명명하는지 아오?
국회의원 금배지를 단 자들이 꿀꿀거리며
민중을 개 돼지라고 부른다 들었소
‘꿀꿀’이 우리의 언어였소
가난한 연인의 희고 붉은 귀는 고귀한 사람의 귀가 아니오?
그러나 나는 슬픈 돼지 신분의 귀를 가졌다 하오
⸻계간 《시현실》 2018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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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율 / 1978년 강원 강릉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2015년 한국경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출처: 푸른 시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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