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묵/임경묵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왼발이 아기 발처럼 작고 말랑말랑한 춘묵이는
금강(錦江)을 퍼 올려 인근 평야에 물을 대는 양수장 관사에 살았다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할머니 댁에 놀러 갔다가
사귄 친구인데
나와 본관도 같고
돌림자도 같아
혹시 머언 친척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단번에 그와 친해졌다
그는 목발을 짚고도
백미터 달리기를 십팔 초에 끊을 만큼 빨랐다
산허리를 염소처럼 쏘다니며
갓 나온 버섯과 잘 익은 산딸기를 찾아내고
내가 족대를 대고 강가에 서 있으면
그는 먼 데서부터
물풀을 헤치며
우르르 피라미를 몰아오고
발가락으로 강바닥을 더듬거려
말고기처럼 쫄깃하다는 말조개를 잘도 잡아냈다
가끔,
살아가는 일 팍팍하고
삶의 길목에서 잔뜩 풀이 죽어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여름밤 백사장에 나란히 누워
그와 함께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던 일과
굳은살 박인 손바닥과
넓은 어깨로
목발을 단단히 짚고 강둑에 홀로 서서
저문 강을 바라보며
긴 휘파람을 불던 그를
문득 떠올린다.
임경묵 ㅣ
경기 안양 출생. 2008년 《문학사상》 등단. 시집 『체 게바라 치킨 집』이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9년 06월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왼발이 아기 발처럼 작고 말랑말랑한 춘묵이는
금강(錦江)을 퍼 올려 인근 평야에 물을 대는 양수장 관사에 살았다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할머니 댁에 놀러 갔다가
사귄 친구인데
나와 본관도 같고
돌림자도 같아
혹시 머언 친척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단번에 그와 친해졌다
그는 목발을 짚고도
백미터 달리기를 십팔 초에 끊을 만큼 빨랐다
산허리를 염소처럼 쏘다니며
갓 나온 버섯과 잘 익은 산딸기를 찾아내고
내가 족대를 대고 강가에 서 있으면
그는 먼 데서부터
물풀을 헤치며
우르르 피라미를 몰아오고
발가락으로 강바닥을 더듬거려
말고기처럼 쫄깃하다는 말조개를 잘도 잡아냈다
가끔,
살아가는 일 팍팍하고
삶의 길목에서 잔뜩 풀이 죽어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여름밤 백사장에 나란히 누워
그와 함께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던 일과
굳은살 박인 손바닥과
넓은 어깨로
목발을 단단히 짚고 강둑에 홀로 서서
저문 강을 바라보며
긴 휘파람을 불던 그를
문득 떠올린다.
임경묵 ㅣ
경기 안양 출생. 2008년 《문학사상》 등단. 시집 『체 게바라 치킨 집』이 있음.
월간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9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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