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힌/ 안희연

작성자최분임|작성시간19.11.15|조회수164 목록 댓글 0

업힌

 

   안희연

 

 

 

산책 가기 싫어서 죽은 척하는 강아지를 봤어

 

애벌레처럼 둥글게 몸을 말고

나는 돌이다, 나는 돌이다 중얼거리는 하루

 

이대로 입이 지워져버렸으면, 싶다가도

무당벌레의 무늬는 탐이 나서

공중을 떠도는 먼지들의 저공비행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는 하루

 

생각으로 짓는 죄가 사람을 어디까지 망가뜨릴 수 있을까

이해받고 용서받기 위해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대치란 무엇일까

 

화면 속 강아지는 여전히 죽은 척을 하고 있다

꼬리를 툭 건드려도 미동이 없다

 

미동, 그러니까 미동

불을 켜지 않은 식탁에서 밥을 물에 말아 먹는 일

이 나뭇잎에서 저 나뭇잎으로 옮겨가는 애벌레처럼

그저 하루를 갉아먹는 것이 최선인

 

살아 있음,

나는 최선을 다해 산 척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실패하지 않은 내가 남아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애벌레는 무사히 무당벌레가 될 수 있을까

무당벌레는 자신의 무늬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을까

 

예쁜 것들을 곁에 두면 예뻐질 줄 알고

책장 위에 차곡차곡 모아온 것들

 

나무를 깎아 만든 부엉이, 퀼트로 된 새 인형, 엽서 속 검은 고양이, 한 쌍의 천사 조각상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 순간이 있다

나는 자주 그게 끔찍해 보인다

 

  

              ⸺계간 문학동네100, 2019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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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연 / 1986년 경기 성남 출생. 2012년 창비신인시인상으로 등단. 시집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밤이라고 부르는 것들 속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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