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의 습관 외 2편
신윤서
바닥만 보고 걷는 것은 내 오랜 습관이다.
발끝으로 허공을 톡톡 차고 걷다 보면
뒤꿈치까지 따라서 구름을 툭툭 찬다.
그러니까 발이 나를 가운데 두고 자기들끼리
밀고 당기는 동안 나는 앞으로 간다.
뒷발이 발끝으로 미는 동안 발꿈치는 내리막이다.
내 몸에는 그렇게 내리막과 오르막이
사이좋게 살고 있다. 내 몸속에 기거하는 이 오르막과 내리막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오래된 내 구두코가 뭉개지고
바람 소리 들려왔다.
구두 끝은 발톱처럼 둥글 뭉툭하다.
무엇 하나 아프게 발로 차 본 적 없다.
어쩌면 구두 끝이 뭉툭한 게 그래서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동안에도
내 몸은 여전히 오르막과 내리막이다.
오르막길에서도 난 여전히 바닥만 보고 걷는다.
마치 물속을 걷는 것처럼 내 안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서로를 부드럽게 밀어주기도 한다.
때론 걸음을 멈추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내 얼굴을 보고 웃는다.
비로소 내가 온몸으로 걷는다.
집이 기까워질수록 담장 없는 골목 아래의 낮은 집들,
손바닥만 한 마당을 품은 집들의 살림살이에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다 보인다.
멀리 도심의 불빛은 강물처럼 흘러가고,
골목길은 강가의 잔 물살처럼
내 몸에 닿는다. 가로등 불빛은
커다란 물방울처럼 맺혀 집들의 따뜻한
창을 바라본다.
살아가는 일이란 게 생각해 보면
눈물 나게 별거 아니다.
낡은 신발 한 켤레 불빛에 걸어 두는 일이거나
식구들의 신발 사이에 내 신발을
나란히 벗어 두는 일이다.
신발이 나와 등 돌리고 잠드는 동안
내 오르막과 내리막을 잠시 쉬게 하는 일이다.
이상한 멜로디
나무와 나무 사이를 바람이 지나다니고, 이상한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숲. 나는 소리에 이끌려 나온 맨발의 순례자. 숲의 사잇길로, 통나무를 박아 넣은 경사진 층계가 아래로 끝없이 이어지고, 지녁 여섯 시 무렵엔 접근 금지구역이 되는 방공호 근처에서 바람은 낮게 엎드려 깃발처럼 펄럭거렸지. 절벽 아래의 파도는 밤새 허연 거품을 게워 내며 허리를 비틀고, 갯내늠 물씬한 새벽이 올 때까지 바다는 꽉 차오르는 달을 품었다. 하늘을 걸어 내려온 달이, 넘실대는 바닷물에 얼굴을 씻고, 닿을락 말락 물살을 건드려 댈 때, 지나가는 목선이 숲의 야릇한 리듬에 감겨 뒤집어지고, 사람들은 바다 깊은 곳에 빠져 인어가 되었지. 죽은 물고기처럼 뒤집힌 목선이 물 위를 둥둥 떠다녔어. 이상한 멜로디에 이끌려 나온 내가,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거닐며 어둠을 순례할 때, 이 숲의 만월이 끌어당기는 힘으로 파도가 부서지고 바다가 끓어오르고, 연인들은 두 번 다신 보지 않을 기세로 서로에게 독설을 퍼부으며 돌아선다. 후회와 회의가 뼈아프게 밀려올 때, 느리게 하늘을 빠져나온 달은 물살의 내부로 깊이 스며들고, 숲에서는 버려진 사막여우를 빼닯은 흰 개가 자신을 데려가 달라는 듯 동그란 눈을 떼지 않고 언제까지나 나를 빤히 바라보고만 있다. 버뮤다삼각지대에서 사라진 여객기는 파편 하나 남기지 않고 자취를 감추고, 헤어진 연인들은 달의 기운에 이끌려 다시 만나 깊은 입맞춤을 하고 사랑에 빠진다. 이상한 멜로디는 나뭇가지에 방패연처럼 걸렸다가,
만월을 휘감았다가 숲의 밖으로 사라지면, 그게 다 달의 인력 때문이라는 소문이 무성해진다. 맨발의 순례자인 내가 오늘 밤, 내 집에 남아 있는 접시들을 모조리 깨부순 것도 달의 인력 때문이었다. 유리 조각에 스친 손으로 아이는 비닐봉지 속에 깨진 접시의 파편들을 가득 주워 담고, 내게 차가운 물을 한 잔 따라 주었지. 어둠을 향해 소리친 것도, 욕설을 쏟아 낸 것도, 모두 만월 때문이었다. 달이 차오르면, 모든 그리움은 울부짖으며 난폭해지거든. 그래서 난 새벽 내내 숲을 순례하며 맨발에 가학적으로 박히는 가시를 견딘다. 만월 때는 모두 히스테리를 일으키지. 저절로 걸리는 차의 시동처럼 말이야. 언제 어느 곳으로 달려가 처박힐지 모르는 격한 슬픔들이, 나무와 나무 사이를 순례하며 찾아들 수 있도록, 그저 달이 기울기를 기다리는 거야.
침대 위의 고양이
상처는 모딜리아니의 눈빛 속에 있거나 달리의 서랍 속에 있다 라파엘로의 성화 속에, 에곤 실레의 자화상 속에 있다 욕망의 혓바닥이 할퀸 폐허의 도시 한복판에 상처가 있고 상처 속에 들어앉아 깊은 상처가 되어 버린 익숙한 상처와 익숙하지 않은 상처가 있고 상처가 되다 만 자그많고 보드라운 상처가 있다 동굴처럼 깊은 메아리가 울려 나오는 상처를 건드리면 캬옹 소스라치는 이 영악한 통증 한 마리, 두어 마리 나의 상처 속에 사는, 것들
통증은 잘려 나간 고흐의 귓가에, 누드 속에 있거나 길고양이가 파헤쳐 놓은 땅속에, 나를 훑고 간 바람의 손금에 있다 침대 위에서 울고, 서랍 속에서 자고, 성호를 긋거나 고요히 우물 속의 자화상을 들여다본다 부서진 신전의 기둥을 어루만지다가 붉은 입술 속으로 미끄러지듯 숨어들어 신음이 되고, 분노가 되어 이따금 내 입 속의 집주인인 나처럼 나를 비집고 나오는, 통증들은 갈비뼈를 열고 들어간 뒤 자물쇠를 철컥, 걸어 잠근다 자폐의 깊은 늪을 유영하는 세상 모든 상처의 처음은 축제여서 찬란한 한 시절이 화려하게 계절을 건너간다
한 마리 짐승처럼 통증이 나를 침대로 삼아 내 속에 누워 있다. 그러므로 어쩔 수 없이 나는 상처에게 안겨 있고, 나는 길고 까슬한 혓바닥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상처를, 쓰다듬는다
― 신윤서 시집, 『잘 자라는 쓸쓸한 한마디』 (시인의일요일 / 2022)
신윤서
대구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했다. 2012년 토지문학제 평사리문학대상 시부문, 2013년 오장환신인문학상을 수상하였고 2021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