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이 지은 시의 운을 빌러서/ 김충렬

작성자안정훈|작성시간26.06.15|조회수12 목록 댓글 0

次韻題僧卷(차운제승권)

 

김충렬(金忠烈: 1503~1560)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국간(國幹)· 국기(國紀).

1526(중종 20) 생원시에 합격. 1531 29세에 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

이듬해 견명사절(遣明使節)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한성부판관· 경기도사(京畿都事호조·예조·형조를 거쳐 외직으로 나아가 여산군수·보성군수를 지내면서 선정을 베풀었다.

명종 때 제주목사가 되어 1552 (명종 7) 연해의 민가를 약탈하고 있던 왜놈 100여 인을 사로잡아 목을 베었다.

그런데 왜적이 아니라 당나라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조정에 전해지면서 직무를 잘못 처리하였다고 평안도 방산진(方山鎭)에 충군(充軍)되었다.

1555년 제주의 백성들이 선위사(宣慰使)에게 김충렬이 무고하다고 호소하여 사실이 밝혀지며ᇿ서 직첩이 환급되고 서반(西班)에 제수되어 오위장(五衛將)을 겸임하였다이어서 삭녕군수가 되었으나 곧 죽었다.

 

가을이 다가오니 대자리는 서늘하고

簟凉秋氣近 점량추기근

 

뜰에 날이 저무니 나무 그늘이 옮겨가네

庭晩樹陰移 정만수음이

 

평상을 쓸어도 스님의 말씀은 머물러 있고

掃榻留僧話 소탑류승화

 

앞 산에는 때마치 비가 내리네

前山雨到時 전산우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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