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에 관하여
이 창 동
제가 선생에게 해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제 기구한 운명에 관한 이야기랍니다. 선생은 소설을 쓰신다니까 지금까지 별의별 인간의 별의별 이야기를 다 들어보셨겠지요.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나 같은 인간처럼 기막힌 팔자도 없을 겁니다.
선생은 혹시 사주관상이니 토정비결이니 하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런 걸 믿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아니 세상에 나기도 전부터 마치 치부책에 적혀 있는 것처럼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제아무리 발버둥을 쳐봤자 인간이란 결국 제 손바닥에 새겨진 운명의 손금을 따라 살다가 죽는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또 예수 믿는 사람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디다. 인간의 일에는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고 말이지요. 헌데 난 그런 소릴 들을 때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더란 말입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도대체 사람의 운명이란 것이 얼마나 불공평한 것이겠습니까.
가령 재벌의 외동아들로 돈방석에 태어나는 팔자 좋은 인간이 있는가 하면, 자기를 낳아준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고 제 이름 석자도 알지 못한 채 길바닥에 버려지는 인간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그 불쌍한 고아는 마치 노름판에서 화투 패를 집어 들 듯이 자신의 운명을 군소리 못 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겁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인간의 타고난 팔자에도 다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말하지요. 하지만, 재벌집의 삼대 독자야 그 말을 좋아라고 믿겠지만 길거리 거렁뱅이로 태어난 놈으로서는 참으로 억울한 노릇이 아니겠습니까. 안 할 말로 내게 대체 무슨 잘못이 있어서 하나님한테 꽉 찍혔느냐는 겁니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고 하면 말씀이죠, 나 자신이 바로 부모 없는 고아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닌 다음에야 내게도 틀림없이 부모가 있었겠지만, 내가 길바닥에 버려진 것은 겨우 너댓 살 무렵의 일이라 내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해서 고아가 되었는지조차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없답니다. 그저 그때가 육이오 무렵이었으니까, 전쟁통에 부모를 잃어버린 게 아닌가 짐작할 뿐이었지요. 이름이 김홍남이란 것만이 겨우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인데, 그나마 그 성이니 이름조차도 정확한 것인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나는 사실 내 나이까지도 정확히 모르고 있으니까요.
내가 자라난 곳은 남해안 어느 항구 도시의 바닷가에 있는 작고 초라한 고아원이었습니다. 그 고아원은 전쟁 떄 군용 막사로 쓰이던 낡은 바라크 건물을 개조한 것이었는데, 창문에 유리창 하나 제대로 끼워진 것이 없는, 아주 형편없는 곳이었습니다. 고아원의 원장 선생은 허구한 날 술이나 마시는, 전쟁 중에 다리 하나를 잃어버렸다는 상이군인이었지요.
원장은 밤중에 술에 취하면 느닷없이 ‘비상, 비상!’ 소리를 지르며 자는 아이들을 깨워서 군대식 훈련을 시키는 버릇이 있었지요. 그러다가 잠에 취한 아이들이 비실비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 짚고 다니던 목발로 무지막지하게 두들겨패는 것입니다. 하지만 매를 맞는 것은 그곳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겐 밥을 먹거나 똥을 싸는 것과 다름없는 기본적인 일과였지요. 아이들이 정말로 못 견뎌 한 것은 맞는 것이 아니라 배고픔이었습니다.
학교에 갈 나이가 된 아이들은 바닷가 긴 방죽을 따라 걸어서 근처에 있는 국민학교에 다녔는데, 때때로 방죽 위에 널어놓은 말린 고기를 훔쳐 씹으며 허기를 달래기도 했죠. 고아원 출신이라는 이유로 다른 아이들로부터 꼭 문둥이 자식들처럼 따돌림과 해코지를 당했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서너 명씩 꼭 붙어서 다니곤 했답니다.
그런데 국민학교 5학년 때였던가, 그해 겨울 난 학교에서 열리는 학예회에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학예회 무대에 올려질 연극의 제목은 아마도 [두꺼비가 된 왕자님] 인가 뭐 그런 것이었을 겁니다. 내가 맡은 배역은 바로 그 불쌍한 왕자의 역이었지요.
연극의 줄거리는 선생도 아시겠지만, 어느 못된 마술사의 저주를 받아 흉물스런 두꺼비로 변하고 만 왕자의 이야기였지요. 왕궁의 뒤뜰에서 징그러운 몰골로 꽥꽥 울어대는 두꺼비가 실은 마술에 걸린 이웃 나라의 왕자라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겁니다. 불쌍한 왕자는 사람들의 발에 밟혀 죽거나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 언제나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어두운 곳으로 숨어 다니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 불쌍한 왕자에게 어느 날 아름답고 착한 공주가 동정의 눈물을 흘리며 입맞춤을 해주는 겁니다. 그리고 공주의 입술이 닿는 순간 마술은 풀리고, 두꺼비는 잃었던 왕자의 모습을 되찾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였어요.
나는 어린 마음에도 연극 속에서의 그 불쌍한 두꺼비가 어쩐지 나 자신의 운명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불쌍한 두꺼비처럼, 부모를 모르는 사생아로 길바닥에 버려진 내 운명 역시 저주의 껍데기를 덮어쓰고 태어난 것이니까요.
공주의 역할을 맡은 여자 아이는, 여러 척의 배를 가진 그 동네에선 제일 돈 많은 선주의 딸이었습니다. 그 당시 배급품으로 나오던 미제 우유가루처럼 얼굴이 뽀오얀 데다 속눈썹이 긴 아이였고, 이름도 성당에서 지어줬다든가 해서 ‘마리아’라고 불렀어요. 한마디로 고아원 출신인 나로서는 말 한마디 붙여보기 어려운, 하늘의 별 같은 상대였지요. 연습을 하면서 공주가 입맞춤을 할 때가 가까워오면, 난 너무나 긴장해서 오금이 저리고 난데없이 오줌이 마려워 찔끔찔끔 쌀 지경이었지요. 하지만 그 애는 연습 떄는 한 번도 진짜로 입맞춤을 하지는 않았고 그저 시늉만 했었어요.
“얘, 학예회 날에는 진짜 뽀뽀를 해야 하는 거야. 알았지?” 연습을 시키던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면, 그 애는 한껏 경멸이 담긴 시선으로 날 힐끔 쳐다보곤 했어요. 그러나 난 자존심이 상한다는 생각 같은 건 눈곱만치도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나는 그때 그 연극을 지도한 선생님이 왜 하필이면 내게 그 왕자님 역을 맡겼는지 알지 못하겠어요. 어쩌면 징그러운 두꺼비가 된 왕자와 불쌍한 고아인 내가 비슷한 신세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평소에 다른 아이들로부터 늘 따돌림을 당하고 놀림이나 받던 불쌍한 고아원 아이가, 비록 연극 속에서이긴 하지만 예쁜 부잣집 여자 아이로부터 입맞춤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정말이지 너무나 과분한 일이었지요. 그것은 단순한 입맞춤이 아니었습니다. 눈을 감고 그 여자 아이의 입술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그 숨막히도록 긴장된 순간, 나는 어쩌면 나 자신이 부모도 모르는 천하고 불쌍한 고아가 아니라 왕자처럼 고귀한 몸으로 다시 태어날지도 모른다는 황홀한 꿈속으로 빠져들곤 했던 것입니다.
드디어 학예회 날이 되었습니다. 교실 두 개의 칸막이를 떼어내서 강당을 만들고, 무대는 아름다운 왕궁의 정원으로 꾸며졌습니다. 그날따라 발목이 푹푹 빠지게 눈이 내려습니다. 어깨에 쌓인 눈을 털며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채웠는데, 목발을 짚은 원장 선생도 보이더군요.
나는 장막이 쳐진 무대 뒤의 어둠속에서 그 모든 것을 숨어 보았습니다. 그것은 한 장의 낡은 군용 모포로 너댓 명이 몸을 붙이고 자야 하는, 또는 한밤중에 배가 고파 잠이 깬 뒤 창문을 무섭게 흔들어대는 밤바다의 파도 소리를 혼자서 들어야만 하는 거 지긋지긋한 현실 세계와는 너무나 다른, 눈부시게 아름다운 세계였습니다. 나는 아마 그때 난생 처음으로 인생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느꼈던 모양입니다.
객석에 불이 꺼지고, 낡은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함께 드디어 연극이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등에 얼룩덜룩 흉측한 껍질을 덮어쓴 두꺼비가 되었고, 공주는 잠자리 날개처럼 새하얀 옷을 입었습니다. 두꺼비 모습을 하기 위해 내가 덮어쓴 것은 미국 구호품인 밀가루 부대였습니다. 영어로 커다랗게 ‘유, 에스, 에이’라고 찍혀져 있는 그 부대자루를 덮어쓴 모습은 정말 볼 만했을 겁니다.
내가 그 껍질을 뒤집어쓰고 무대에 나가자 모두들 우습다고 난리더군요. 특히 같은 고아원에서 함께 학교를 다니는 성만이란 놈이 있었는데, 그 놈의 웃음소리가 제일 크게 들리더군요. 내가 두꺼비처럼 꽥꽥 소리를 지르며 무대를 엉금엉금 기어 다닐 때마다 녀석은 시종 낄낄 거리며, 죽는다고 바닥에 발을 구르기도 했지요. 하지만 나는 참 열심히 연기를 했습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웃어대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내게는 이제 곧 왕자님으로 다시 태어날 황홀한 순간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그 한 순간을 위해 나는 목이 쉬도록 꽥꽥 소리를 지르며 마룻바닥을 기어 다녔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기었던지 나중엔 무르팍이 까져서 피가 나올 지경이었는데도, 아픈 줄도 몰랐어요.
마침내 운명의 시간, 공주가 두꺼비의 얼굴에 입을 맞추는 순간이 왔습니다. 나는 공주의 가슴에 안겨서 공주의 두 눈에서 맑은 눈물이 불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이는 것을 보았고, 가슴의 고동이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리는 것을 들을 수 있었어요. 공주의 입술이 마악 내 눈앞에 다가왔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갑자기 세상이 깜깜해지면서 암흑의 천지가 되고 말더군요.
정전이 된 것이었습니다. 무대 뒤에서도 객석에서도 당연히 일대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그 당시엔 정전이란 무척 흔한 것이었습니다만, 사람들은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지 않더군요. 불은 다시 켜지지 않았고, 물론 연극도 더 이상 계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걸상을 자빠뜨리고 큰 소리로 떠들며 몰려나간 뒤에도, 나는 여전히 무대 위 어둠 속에 혼자 웅크리고 있었답니다. 아무도 불쌍한 아이의 마술을 풀어주지 않은 채 어둠 속에 혼자 남겨두고 떠나가 버렸던 것이었습니다.
그날 밤 나는 쏟아지는 눈발을 맞으며 혼자서 밤길을 걸어 고아원으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멀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길이었습니다. 온몸을 채찍질하듯 휘감는 눈발을 맞으며 방죽을 물어뜯을 것처럼 달려드는 성난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이제 영원히 마술의 사슬이 풀리지 않은 채 흉측한 두꺼비로 남아 있어야만 한다는 절망감에 몸을 떨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내게 있어서 운명이라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언제나 희망의 빛이 어렴풋이 보일 것 같은 순간이면, 그래서 가슴을 조이며 마악 문턱을 넘으려는 순간이면 어김없이 암흑의 장막이 눈앞을 가로막고 마는 것이었지요.
나는 그 이후로 고아원에서나 학교에서 ‘두꺼비’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그 별명을 붙여준 것은 바로 그 성만이란 놈이었지요. 특히 먼발치에서라도 마리아란 그 계집아이만 보이면 녀석은 큰 소리로 내 별명을 부르며 놀리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별명이 견딜 수 없이 싫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난 약골이었고 녀석은 나보다 힘도 세고 덩치도 훨씬 큰 녀석이었기 때문에 체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내 운명에 체념하듯이 말이지요.
그런데 그 다음해이던가요, 내 운명을 시험해볼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겨울 햇살이 따스하던 어느 일요일 아침, 우리는 갑자기 손발을 깨끗이 씻고 방안에 집합하고 있으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긴장하고 흥분했습니다. 갑자기 그런 명령이 떨어질 때면 고아원에 손님이 찾아오는 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지시대로 얼굴과 손발을 깨끗이 씻고, 흘러내리는 콧물을 연신 들이마시면서 잔뜩 긴장한 얼굴로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우리들 앞에 나타난 손님은 의외로 허름한 옷차림의 중년 부부였습니다. 우리는 조금 실망했지요. 대개 고아원을 찾아오는 손님들은 좋은 옷을 입고 성경책을 옆구리에 낀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선물을 한 아름 안은 양코배기였거든요. 하지만 초라한 행색으로 남편의 뒤에 붙어 있는 아주머니는 마음씨가 좋게 보였습니다. 아주머니는 우리들 한 사람을 볼 때마다 불쌍해 죽겠다는 듯이 그저 “아이고 시상에, 아이고 시상에”하는 말만 되풀이하더군요. 그런데 갑자기 남자의 발걸음이 내 앞에 멈춰졌습니다.
“니 나이가 몇 살이고?”
“여, 열 살입니더......”
나는 너무나 긴장해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습니다. 남의 집에 양자로 들어간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두려운 일이었지만, 그러나 고아원에서 자라는 아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는 꿈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굶주림과 냉대로 가득 찬 지긋지긋한 고아원 생활을 끝내고 미지의 세계를 향해 떠난다는 뜻이었고, 무엇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새로 생긴다는 뜻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내게도 바로 그 꿈이 실현될지도 모를 순간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들이 아이들을 한 사람씩 둘러보고 난 뒤, 나는 원장실로 불려갔습니다. 알고 보니 그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사내아이를 원하고 있었던 모양이었습니다. 하지만 원장실에서 다시 한 번 꼼꼼하게 나를 뜯어본 그 남자는 내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우째 아 자슥 꼬라지가 사흘에 피죽도 한 그릇 못 얻어 묵은 거 같노? 저래 가지고는 맨 날 병치레나 하고 빌빌거리는 거 아이가?”
그 남자의 마음에 들도록 나는 가능한 한 씩씩하게 보이기 위해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어금니를 힘 주어 다문 채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연기를 했지만, 별로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 같았어요. 그러나 아주머니는 내게 마음이 끌린 눈치였습니다. 그녀는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게 이것저것 묻더군요. 이름은 무엇이고 좋아하는 음식은 뭔가. 공부는 잘하는가.
나는 그때마다 힘을 다해서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가 날 자기 곁으로 와서 앉으라고 하고는 머리를 쓰다듬고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지금도 난 그때 그 아주머니의 손에서 느껴지던 따스한 체온을 기억할 수 있답니다.
“니 우리집에 가서 살고 싶나?”
아주머니가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그 말을 듣자, 그때까지 열심히 하고 있던 연기를 나는 그만 순간적으로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아주머니의 다정한 목소리에서 밤이나 낮이나 내가 늘 그리워하던 얼굴도 모르는 엄마를 느꼈던 것입니다. 대답 대신 나는 그만 입을 실룩거리며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별일이데이. 사나아 자슥이 울기는 와 우노?”
남자는 영 탐탁지 않은 듯이 혀를 찼지만, 오히려 아주머니는 더욱 내게 동정심을 느끼게 된 모양이었습니다.
“마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이 아를 데리고 가입시더. 나는 야가 좋겠구마.”
“저렇게 약해빠진 놈을 델꼬 가서 어따 써 먹겠노?”
“그리도 심성은 착한 아같이 보이누마요.”
그 남자는 썩 내키지는 않은 모양이지만, 마침내 부인의 뜻대로 나를 데리고 가려고 결정을 한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원장과 입양 수속에 따른 사무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나는 허리가 뻐근하도록 꼿꼿이 앉아 있었는데, 숨이 막힐 것 같은 긴장과 불안감으로 가슴은 걷잡을 수 없이 뛰고 말았습니다. 내 마음속에는 어째 모든 것이 너무나 잘 풀려간다는 듯한 생각이 들었었고, 이런 행운이 이토록 쉽게 나한테 찾아올 리가 없다는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을 채우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결국 내 예감은 맞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 운명의 화살은 엉뚱한 곳으로 빗나가버리고 말았던 것이지요. 원장실의 문이 열리더니 성만이란 놈이 들어섰던 것입니다. 성만이는 그때 배가 들어오는 시간이면 부두에 나가 일을 하고 있었지요. 물론 원장이 시킨 일이었어요. 덩치가 이미 웬만한 어른만큼 컸으니까 나가서 밥값을 해 와야 한다는 이유에서였지요.
성만이가 원장실에 들어서자, 그 남자의 눈빛이 갑자기 달라지더니 성만이의 몸을 아래위로 훑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저눔아도 이 고아원에 있는 놈입니꺼?”
그가 원장에게 묻더군요.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아까는 와 쟈를 보여주지 않았능교?”
“일하러 나가고 있지요. 나이가 든 놈들은 차차 지 밥벌이를 하는 법을 가르쳐줘야 하니까요.”
“맞십니다. 내 생각도 똑같구마. 사람이라믄 지 밥벌이는 지가 해야지.”
남자는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이더니, 문간에 서 있는 성만이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하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그 애의 손도 만져보고 팔뚝이나 어깨의 뼈마디도 만져보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그때 무엇을 할 수 있었겠어요? 그저 영문도 모른 채 몸을 내맡기고 있는 성만이 녀석을 원망에 가득 찬 눈으로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요. 마침내 그 남자가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눔아가 좋겠십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거는 바로 이렇게 건강하고 사나아답게 생긴 놈입니다.”
성만이 녀석이 양부모를 따라 고아원을 떠날 때, 원장을 비롯해 고아원 식구들이 모두 문밖까지 따라 나가 작별 인사를 했지만, 나는 컴컴한 바라크 건물의 한구석에 틀어박힌 채 철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소리 없이 울었답니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그 고아원을 도망쳐 나와서 서울행 밤기차에 올라타고 말았지요.
그 후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를 어찌 말로 다 할 수가 있겠습니까. 서울에 올라온 뒤 한 동안은 용산역 앞에서 깡통을 들고 거지짓도 했고, 몇 달 동안은 양아치들의 뒤를 따라다니기도 했습니다. 그 후에도 껌팔이, 구두닦이, 넝마주이, 신문팔이 등등을 저전하면서 때로는 발길에 걷어차이고, 때로는 욕설과 가래침을 얼굴에 덮어쓰면서도 이 거친 세파에 떠밀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그때부터 겪은 고생의 이야기만 해도 흔히 하는 말로 책을 써도 몇 권이나 쓸 수 있을 겁니다만, 지금은 대충 생략하겠습니다.
그럭저럭 나는 나이가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 낯설고 각박한 세상에서 적어도 내 목숨 하나 부지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가 하는 요령도 차츰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허기진 배를 안고 밤거리를 헤매고 있을 때, 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무수한 불빛들 중 어느 것 하나 훈훈한 온기로 나를 받아주는 곳은 없다는 사실에 얼마나 외롭고 서러웠던지요. 그 외로움과 설움을 이겨내는 길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돈을 모으는 일이었습니다.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모를 이름 없는 풀씨처럼 이 땅 위에 내동댕이쳐진 내게는 돈이야말로 세상에 발붙이고 살 수 있다는 자격증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떨어진 옷 하나로 몇 달을 버티고, 하루 세 끼의 끼니를 삼백 원짜리 가락국수나 라면만으로 때우면서도 나는 악착같이 돈을 모았어요. 그리고 모은 돈은 한 푼도 쓰지 않고 은행에 넣었습니다. 김홍남이라는 내 이름 석 자로 된 통장에 한푼 두푼 쏠쏠하게 불어나는 그 액수가 참으로 대견스러웠습니다. 그것은 내가 이 땅에 살아 있고, 또 살아갈 수 있다는 증거이고 약속인 것처럼 느껴졌던 것입니다. 밤에 혼자 누워서 남몰래 속주머니 깊은 곳에 넣어둔 저금통장을 손끝으로 몇 번이고 만져 보노라면, 나는 더없는 위안과 용기를 얻곤 했었습니다.
내 인생에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 것은 내 나이 스물여덟 살 때였습니다. 나는 그때 서울 퇴계로에 있는 어느 여관의 종업원 노릇을 하고 있었는데, 그 여관 이층 구석방에는 나이 지긋하고 점잖게 생긴 신사가 한 사람 장기 투숙을 하고 있었죠. 아침저녁으로 그 양반 방을 드나들며 방청소도 해주고 여러 가지 소소한 심부름도 하다 보니, 어느덧 서로 이야기도 나누게 되고 그 양반이 어떤 사람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나는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어째서 혼자 여관에서 생활하는가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알고 봤더니 그 사람은 미국에서 삼십 년을 살다가 고국에 찾아온 교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말도 약간 어색하고, 담배도 늘 양담배만 피웠습니다.
“아임 쏘리. 양담배를 피워서……”
담배를 꺼내 피울 때마다 그는 내게 싱긋 웃으며 말했습니다.
“미국에서 반평생을 살았지만 아직도 그놈의 미국 음식보다는 된장찌개를 더 좋아하는데, 이 담배만은 양담배에 길들여진 입맛을 영 바꿀 수가 없단 말이야.”
미국에서 온갖 고생을 다 경험한 뒤에 이제 돈도 모을 만큼 모았는데, 왠지 날이 갈수록 사는 맛이 없어지고 미국 생활이 싫어지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족이고 사업이고 다 팽개치고 훌쩍 서울로 찾아왔다고 하면서, 비록 이렇게 여관방 신세를 지고 있지만 그래도 마음은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그리웠는지, 그는 밤이면 자주 나를 자기 방으로 불러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고생을 하면서 살아왔는가 하는 신세타령을 했습니다. 그 옛날, 고아원을 찾아왔던 아줌마에게 어머니를 느꼈듯이 그때 난 그 사람에게서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를 연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 운명이란 놈이 내게 던져준 미끼라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죠. 어느 날 밤늦게 그의 방으로 찾아갔더니, 그 양반이 무엇 때문인가 몹시 걱정을 하면서 안절부절을 못하고 있더군요. 내가 몇 번이고 물어서야 겨우 내게 그 까닭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 동안 서울에서 생활하다보니까 참으로 내 조국 내 땅이 좋다는 생각이 들더구만. 짐승도 죽을 때면 고향을 찾는다고 했는데, 역시 그 말이 틀린 게 아니야. 그래서 이번에 내 결심을 했지. 미국생활을 청산하고 고국에서 아주 정착을 하고 살아야겠다구 말이야.”
그래서 그는 한국에서 사업을 하나 시작하기로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미국에서 팔던 물건을 한국에 들여와 파는 것인데, 없어서 못 파는 물건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 일을 시작할 사무실까지도 구해놓았는데, 미국에서 부친 돈이 서류절차가 늦어져서 찾지를 못하고 있다는 사정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관청에서 하는 일이 왜 이렇게 늦어지는지 모르겠구만. 내일 당장 사무실 잔금을 치러야 하는데, 이거 계약금도 못 찾고 사무실도 놓치게 되었으니 큰일이 아닌가. 한국에서 마음먹고 살아보기로 했는데, 시작부터 이런 어려움이 있을지 누가 알았겠는가?”
그 양반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그 딱한 모습을 보자 나는 몹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혹시 내가 도와줄 게 없겠느냐고 물었지요.
“고맙지만 그만 두게. 자네가 도와줄 일이 뭐 있겠는가. 돈이 문제지. 이런 일로 고국에서 살려는 내 뜻이 꺾이다니 참 하늘이 야속하네.”
술잔을 기울이며 창피한 줄도 모르고 훌쩍훌쩍 울고 있는 그 양반을 나는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속주머니 깊숙이 지니고 있던 저금통장을 내놓았습니다. 그 사람이 깜짝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이게 뭔가?”
“별로 큰돈은 아닙니다만, 제가 그 동안 푼푼이 모아온 제 전 재산입니다. 선생님께 빌려드릴 테니 이걸로 잔금을 치르시지요.”
그가 잔금을 치르는 데 모자란 돈은 삼백만 원이었고, 마침 내 통장에 예금된 돈도 꼭 맞춘 듯이 그 액수쯤 되는 돈이었습니다. 통장을 들여다본 그 사람은 내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고마우이. 자네가 내 은인이야. 앞으로 나는 자넬 내 아들로 생각하고 살아야겠어.”
그렇게 해서 십 년 동안 단 한 순간도 내 몸을 떠나지 않았던 그 통장이 내 손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다음날 나는 그 양반과 함께 은행에 가서 돈을 찾았고, 그 양반이 사무실을 구해두었다는 명동에 있는 어느 고층 건물로 함께 갔습니다. 그 사람이 잔금을 치르기 위해 사무실로 들어간 뒤 나는 혼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그가 나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기다리다 못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그 사람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어요. 뒷문을 통해 사라졌던 것입니다. 사람들한테 물어보니까, 그 건물 어느 방도 세를 놓은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나는 깨끗이 속고 만 것이었습니다.
내가 그 작자를 너무 믿었던 게 탈이었습니다. 하긴 내가 너무 어리석고, 너무 세상물정을 몰랐던 탓이겠지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 작자는 아주 전문적인 사기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나처럼 그에게 어리숙하게 걸려든 사람이 한 둘이 아니더군요. 물론 재미 교포라는 것도 새빨간 거짓말이었구요. 미국은 구경도 못 해 봤고, 그저 육이오때 미군 통역관으로 따라다니며 주워들은 영어 몇 마디 할 줄 아는 게 고작이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 돈이 어떤 돈인데, 그 돈을 먹고 달아난단 말입니까. 그때부터 나는 미친 듯이 그 작자를 찾으러 다녔지요. 가방에 미제 라이터나 손톱깎이, 병따개, 만년필 등을 넣어서 팔고 다니면서 온 서울 바닥의 여관과 다방을 다 뒤지고 다녔습니다만, 넓은 천지에서 그를 찾아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그로부터 이 년이 지난 어느 날 밤, 어느 술집 앞에서였습니다. 취객들로 붐비는 술집 골목을 지나가는데, 어느 집 앞에선가 사람들이 몰려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야, 이 빌어먹을 자식아. 돈도 없으면서 왜 술은 처먹니? 응, 거기다 비싼 안주까지 시켜가면서. 이 새끼 멀쩡하게 생겨 가지고 순 사기꾼 같은 놈 아냐, 이거?”
한 중년 사내가 술집 잡부의 손에 잡혀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도 사내는 혀 꼬부라지는 소리로 “아임 쏘리, 아임 쏘리”만 연발하고 있더군요. 이상스런 예감으로 그를 자세히 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바로 그 작자였습니다.
나는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가 그의 앞에 섰습니다. 여전히 양복 차림에 넥타이를 매고 있었지만, 한눈에도 몹시 초라해 보이는 행색이었습니다. 그가 초점 없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내 얼굴조차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더군요. 머리끝까지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걸 느꼈습니다. 나는 당장 그의 멱살을 붙들었습니다.
“이 자식, 드디어 만났구나. 내놔 어서 돈 내놔……”
사실 그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술값도 없어서 술집 작부한테 멱살잡이를 당하구 있는 작자에게 무슨 돈이 있겠습니까. 그는 여전히 초점이 없는 흐릿한 눈으로 쳐다보며 같은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아임 쏘리, 아임 쏘리……”
그 혀 꼬부라지는 소리가 나를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침 그때 내가 팔고 다니는 물건 중에 미제 등산용 칼이 있었고, 나는 그것을 꺼내 그를 찔러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나는 그 작자도 죽이고 나도 죽어버릴 생각을 했지요.
내 칼에 찔린 그 작자는 죽지는 않았습니다만, 그 대가로 나는 경찰에 잡히고 말았습니다. 돈은 찾지도 못하고 교도소 신세를 지게 된 것입니다. 난생 처음 손목에 은팔찌라는 걸 차고 보니 정말 한심한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 넓은 하늘 밑에서 머리 둘 곳 하나 없는 고아의 신세로 서울 바닥에 올라와서 그래도 내 딴에는 성실하게 살아보려고 온갖 발버둥이를 다 쳤는데 결국 이 지경이 되다니, 더 이상 세상을 살아갈 의욕을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보기만 해도 섬뜩한 푸른 옷이 내게 입혀졌습니다. 그리고 간수의 손에 떠밀려 감방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내 뒤쪽에서 철커덕 쇠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던데, 그 순간 음습하고 퀴퀴한 냄새가 훅 콧구멍을 쑤셔오더군요. 그리고 어두운 공간에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꼭 굶주린 짐승처럼 번뜩이는 눈초리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그 살벌한 눈초리들 중에서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어라, 일마 이기 누고? 니 두꺼비 아이가?”
나는 정말이지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를 ‘두꺼비’라는 별명으로 부를 사람이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또 누가 있겠습니까? 고개를 들어보았더니, 얼굴이 새까맣고 역시 푸르죽죽한 죄수복을 입은 녀석이 달려들더군요. 아무리 세월이 지났어도, 그리고 아무리 흉측한 죄수복을 입고 있어도 나는 녀석을 한눈에 알아볼 수가 있었습니다. 지난날 고아원에서 내 행운을 가로채간 바로 그 성만이 녀석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둘은 다시 만났습니다. 고아원에서 헤어진 지 십오 년 만이었습니다. 녀석은 화물 트럭 기사로 일하다가 교통사고로 사람을 죽이고 감방 신세를 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 동안의 사정 이야기를 들어본즉, 그 역시 나만큼이나 험한 길을 걸어왔던군요. 그때 운 좋게도 나 대신 남의 집 양자로 들어갔지만, 막상 가보니 양자가 아니라 머슴살이 신세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성만이를 데리고 간 그 남자는 부산 변두리에 있는 어느 철공소 주인이었는데, 허구한 날 짐승처럼 일만 시키더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말이 좋아서 양자라 캤지, 사실은 돈 안 들이고 일 시킬라꼬 데리고 갔던 모양이더라. 일을 시켜도 지대로 밥이라도 주고 시켜야 될 거 아이가? 밥은 굶기면서도 맨날 농땡이 부린다고 두들겨 패기만 하고…… 오죽하면 고아원 시절이 천국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응께 말 다했재.”
“그 아줌마는? 그 아줌마도 널 그렇게 구박했었나?”
나는 내게 처음으로 따스한 체온을 전해주던 그 여자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그 여자는 그래도 인정이 있었재. 내가 그래도 그 집에서 이태나 버틴 것도 다 그 여자 때문이었는데, 그마 무슨 몹쓸 병이 들어 덜컥 세상을 뜨고 말았는기라. 그라고는 나도 그 집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성만이 역시 나처럼 팔자가 사나운 인간이었던 것입니다. 그 집을 나온 뒤, 녀석은 나하고 조금도 다를 바 없이 이 사회의 밑바닥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다가 결국 여기까지 흘러들어온 것이지요.
어쨌든 그렇게 해서 우리는 감방 생활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고아원 동기’가 ‘빵간 동기’가 되어버린 거지요. 감방 고참인 성만이 덕분에 교도소 생활을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내게는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어요. 녀석은 세상 살맛을 잃어버린 나를 달래기도 하고, 용기를 넣어주려고 애를 쓰기도 했습니다.
“야, 우리라꼬 언제까지 이렇게 살으란 법이 있겠나? 언젠가 기회가 오면 우리도 크게 한탕해서 팔자 고칠 날이 있을 끼란 말이다.”
녀석은 끊임없이 그 한탕이라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이 지긋지긋한 밑바닥 생활로부터 날아오를 헛된 꿈을 안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행운이 나를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꿈같은 것은 아예 꾸지도 않았습니다.
난 애당초 행운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내게도 늘 나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요. 실패만 거듭해온 인생이었지만, 그래도 가끔 내게 좋은 일이 찾아오는 때도 있긴 했습니다. 이를테면, 내가 지금의 마누라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이 나 같은 놈에게는 둘도 없는 행운일 것입니다.
마누라는 아무 볼품없는 여자지만 그래도 나 같은 처지에 그만하면 과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옥에 들어가기 직전에 나는 창신동 산 위에 있는 어느 집에 월 이만 원짜리 골방을 얻어놓고 있었는데 그 여자는 바로 내 옆방에 들어 있었습니다. 보아하니 술집 작부인 모양으로 밤에만 나갔기 때문에 나하곤 말은커녕 얼굴 한번 마주치기가 어려웠어요. 어느 날 나는 방 앞에 쪼그리고 앉아 저녁밥을 짓고 있는 여자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냄새가 내 후각을 강렬하게 찔러오는 것이었어요. 십여 년 전 처음 서울에 올라와 용산역 앞에서 며칠을 굶은 채 헤매고 있을 때, 나는 어느 집 담벼락 밑에서 그 냄새를 맡았었지요. 허기진 배를 참을 수 없이 자극하던 그 냄새를 나는 그 이후에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어…… 그게 무슨 냄새지요?”
그녀는 그을음이 피어오르는 낡은 석유곤로를 피우느라 눈물이 질금거리는 얼굴을 들어 나를 보았습니다.
“…… 이거 청국장이에요.”
“청국장이오?”
“청국장 모르세요?”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녀는 내 말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어요. 나는 옛날 내가 겪었던 청국장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이야기를 듣고 난 그 여자는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바보 같은 표정으로 말없이 나를 쳐다보더군요. 그날 나는 그 여자에게 난생 처음 그 음식을 얻어먹었습니다. 그 후로도 그 여자는 가끔씩 청국장을 끓여 내 방문을 두드리곤 했습니다. 그러나 청국장 그릇만 내밀고는 말 한마디 않고 달아나버렸기 때문에 이야기 한번 제대로 못 해보았지요.
그리고 내가 구속이 되면서 청국장은 못 먹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여자도 만날 수 없게 되었구요. 그런데 내가 교도소 생활을 시작하고 한 달쯤 되었을 때, 누군가 면회를 왔다는 것이었어요. 처음에 간수가 그렇게 알려왔을 때 난 그 말을 믿지 않았어요. 나 같은 인간에게 면회 올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면회실에 들어갈 때까지도 난 그게 착오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면회실 안에 들어가 보니, 놀랍게도 바로 그 여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홍남씨한테 줄라고 청국장 해왔는데, 음식은 못 넣는다고 하니 어쩌죠?”
그 여자가 예의 그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바보 같은 표정은 지으며 하는 말이었어요.
우리는 내가 감옥에서 풀려난 지 보름 만에 결혼했습니다. 결혼이 라고 해봐야 예식장에서 정식으로 식을 올린 것도 아니고, 우리끼리 그저 방을 합한 것뿐이었지요. 비록 월세 오만 원짜리 단칸방이었지만, 그래도 가정이라는 걸 가지면서 나는 다시 살아볼 용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고무친한 고아 출신인 데다 학력도 없고 가진 돈도 없고, 게다가 교도소 들어갔다 나왔다는 딱지까지 붙은 인간이 일자리를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니다가 간신히 자리를 잡은 곳이 아파트 관리사무소였습니다. 정식직원도 아니고 그저 어느 집 변기가 막혔다고 하면 뚫어주러 다니는 임시직이었지만, 나는 그래도 감지덕지하고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나는 세상을 살면서 내가 가진 것 이상의 다른 욕심을 내지 않으리라 마음먹었습니다. 나처럼 운이 없는 놈이 내게 주어진 이 초라하고 작은 몫만이라도 잃어버리지 않고 붙들고 있는 게 어디냐고 스스로 위로를 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 후에도 내게는 크고 작은 실패와 불운이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는 것은 나 같은 놈을 두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괜찮은 일자리가 생길 것 같았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일이 틀어져버리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고, 임신 오 개월 된 아내가 유산을 해버리기도 했고, 하다못해 다 같은 지하 셋방이라도 옆방은 괜찮은데 꼭 우리가 살고 있는 방만은 연탄가스가 새거나 방바닥에 제대로 불이 들어오지 않은 것이지요. 그런 예는 헤아릴 수 없이 들 수가 있을 겁니다. 물건을 사도 하필이면 불량품만 사게 된다든가 심지어 아침저녁으로 출퇴근을 할 때 꼭 내가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면 눈앞에서 차가 떠나버리는 것까지 말입니다.
언젠가 아내는 내게 점쟁이를 한번 찾아가보자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미아리 고개에 사람의 신수를 아주 귀신같이 알아맞히는 장님 도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누구한테 듣고 온 모양이었습니다. 하긴 나처럼 지지리 재수가 없는 인간을 남편으로 두고 있는 여자라면 그런 생각을 할 법도 한 일이지요.
“장님이 사주를 보고 점친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장님이 손금 보고 관상 본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군. 제 앞도 못 보는 사람이 어떻게 손금을 보나?”
“그러니까 귀신 같다는 거죠. 우리 반장집 아주머니가 늘 몸이 아파 골골하고 누웠잖아요? 그 도사한테 가보았더니, 전에 병든 시어머니 구박한 적 있지, 하고 대번에 족집게처럼 집어내더란 거예요.”
그러면서 마누라가 하는 말이, 내가 이렇게 재수가 없고 무슨 일을 해도 잘 안 되는 것은 틀림없이 무슨 곡절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조상의 묘자리를 잘못 썼다든가, 억울하게 죽은 귀신이 구천을 헤매고 있어서 꼭 그 한을 풀어줘야만 한다가, 그러지 않으면 무슨 일을 해도 제대로 풀릴 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화장실 변기의 파이프가 막혔는데 아무리 물을 들어부은들 제대로 재려가겠는가 하는 것이지요.
“그건 다 헛소리고 미신이야. 설사 조상의 묘를 잘뭇 썼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들 내 조상이 누군지도 모르는 판국에 무슨 소용이 있어? 조상은커녕 낳아준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는 판에.”
하지만 나는 결국 마누라 손에 끌려 그 장님을 찾아갔습니다. 버스에서 내려보니, ‘처녀 점쟁이’니 ‘솔잎점’ ‘거북점’이니 ‘운명철학관’이니 하는 간판을 내붙인 점쟁이 집들이 다닥다닥 수도 없이 많더군요. 아무리 세상이 전자 시대다 우주 시대다 해도 이런 집들이 지금도 날로 번창하는 걸 보면, 참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마누라가 들고 있는 쪽지의 약도에 따라 어느 집에 들어가자, 과연 괴상한 복장을 하고 앉은 장님 영감이 도사 행세를 하고 있더군요.
“손 이리 내봐.”
도사는 처음부터 내게 반말이었습니다. 난 두말없이 손을 내밀었지요. 눈 멀쩡히 뜬 인간이 앞 못 보는 장님에게 장래 일을 보여달라고 손을 내맡기고 있는 꼴이라니, 그거 기분이 참 묘하더군요. 어쨌든 그 장님 점쟁이는 한참 내 손바닥을 주물럭거리고 나더니,
“지금까지 고생깨나 했구만. 뭐 하나 되는 일이 없었어.”
하는 겁니다. 나는 가슴이 뜨끔했지요.
“하지만 걱정 없어. 에...... 봉황이 알을 품으니, 천지에 향기로운 냄새가 가득하다.”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아내가 무릎을 당겨 앉았습니다.
“부모를 잘 만나서 큰 부자가 되겠다는 이야기야.”
기가 막히더군요. 하늘 아래에 돌아볼 곳 없는 천애 고아를 보고 부모 덕분에 부자가 된다니요. 나는 당장 그 돌팔이한테 욕이나 해주고 일어서려 했지요. 그러나 마누라는 달랐어요. 마누라는 점쟁이가 하는 말에 갑자기 눈을 빛내며 좀 더 자세히 이야기를 해달라며 복채를 더 얹어놓기까지 하더군요. 여자들이란 아무리 허황된 이야기라도 당장 듣기 좋은 이야기면 귀가 솔깃해지는 법이니까요. 그러자 그 점쟁이는 몸을 좌우로 흔들고 눈을 껌벅이며 흰자위를 희번덕거리더니, 멀잖아 내가 부모로부터 큰 유산을 물려받을 거라는 거였어요. 갈수록 가관이었지요.
“에이, 여보쇼. 엉터리도 유분수지 그따위 소릴 누가 믿겠소? 부모 얼굴도 모르는 고아더러 유산이라니? 지금 누굴 놀리는 거요, 뭐요? 아무리 책임 없이 지껄이는 소리래도 씨가 먹힐 소리를 해야지. 어이, 그만 가자구.”
나는 마침내 그렇게 쏘아주고는 마누라의 팔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마누라는 마지못해 내게 이끌려 그 집을 나오면서도 그 영터리 점쟁이의 말에 한 가닥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 같더군요.
“여보, 누가 알아요? 당신을 낳아준 진짜 부모님이 큰 부자가 되어 나타날지.”
“이것 봐, 그런 바보 같은 소리 좀 하지 말아. 누구 복장 지를 일 있어?”
“아니 왜 화를 내고 그래요? 그럴 수도 있다는 건데, 사람이 꿈도 못 꿔요?”
그런데 그 마누라의 허황된 이야기가 얼마 있지 않아 사실로 나타나고 말았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이야기를 계속하기 전에, 잠깐 숨 좀 돌려야겠군요. 이젠 다 지난 일이라 생각했는데, 그때의 일을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뻐근해져오는군요.
내가 교도소를 나와 결혼을 하고 산 지 삼 년 쯤 지났을 무렵이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이산가족 찾긴가 뭔가 해서 한창 세상이 시끄럽던 해였지요. 사건의 시작은 어느 날 성만이가 내게 전화를 걸어오면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그 친구와는 교도소를 나와서도 가끔씩 만나는 처지였지요.
“어이, 지금 당장 홍남이 니 좀 만나야 되겠다. 아주 중요한 일이 생겼단 말이다. 무슨 일인가는 내 만나서 이야기하꾸마.”
어쩐지 성만이의 목소리는 몹시 흥분해 있는 것 같았어요. 나는 녀석을 그 동안 오래 만나지 못하기도 했고, 또 녀석이 무슨 일로 이렇게 흥분해 있나 궁금하기도 해서 시간에 맞춰 약속한 다방으로 나갔습니다. 다방 안에는 사람들이 한창 ‘이산가족 찾기’인가 뭔가를 방송하고 있는 텔레비전 앞에 몰려 앉아 있었고, 성만이 녀석 혼자만이 다방 한쪽 어두컴컴한 구석 자리에서 열심히 손을 흔들어대고 있었습니다.
“이게 무슨 난리야? 다방이 아니라 꼭 영화관 같구나.”
나는 자리에 앉으면서 그렇게 빈정거렸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다방을 가득 메운 손님들은 마치 극장에라도 온 듯 한쪽 벽에 붙은 대형 텔레비전을 향해 돌아앉아서 눈시울을 벌겋게 붉히고 있었고, 개중에는 손수건을 꺼내들고 본격적으로 눈물을 흘리는 순정파들도 더러 눈에 띄더군요. 기억나시겠지만, 그 무렵 TV에서는 흔해빠진 연속극이니 스포츠 중계니 하는 것들도 모조리 중단하고 밤이고 낮이고 지겹도록 그 눈물의 대행진을 틀어대고 있었지요.
“야, 저런 걸 우째 시시한 영화 같은 데 비교하겠노? 저거는 우리 민족이 아니면 경험하지 못할 비극이고 상처가 아이겠나?”
나는 녀석이 도대체 웬일로 그런 소릴 다 하는가 싶어 새삼스럽게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민족의 비극? 야, 네사 그런 말을 다 할 때가 있냐? 다시 봐야겠구나.”
“무슨 소린고? 나라꼬 모른 척할 수 있나? 나도 한국 사람인데 모름지기 민족의 아픔을 함께 나누어야 되지 않겠나 하는 말인 기라.”
성만이 녀석은 나의 빈정거리는 말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평소의 그답지 않게 진지한 얼굴을 꾸미고 그렇게 대꾸하더니,
“그런데 전에 니 발등에 있던 흉터 아직도 붙어 있나?”
문득 허리를 굽히며 은근한 목소리로 물어 오는 것이었어요. 나는 녀석의 속셈을 점점 더 알 수가 없어졌습니다.
“아니 갑자기 웬 흉터 타령이야?”
“글쎄, 옛날에 니 왼쪽인가 오른쪽 발등에 동전만한 흉터가 안 있었나. 그거 안즉도 그대로 붙어 있나 말다. ”
“그럼 흉터가 뭐 우표딱진 줄 아냐? 뗐다 붙였다 하게?”
“옳지려, 안즉도 그 흉터가 이상 없이 건재하고 있다 이거재.”
남의 발등에 흉터가 있다는 것이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성만이 녀석은 득의의 미소를 짓더니, 갑자기 목소리를 한껏 낮춰 말하는 것이었어요.
“잘만 하면 말이다, 팔자 고치게 생겼다 아이가.”
또 시작이구나. 나는 날라 온 엽차를 마시며 얼굴을 찌푸렸지요. 삼년 전 서대문 교도소에서 다시 만난 이후로 나는 녀석에게 벌써 수도 없이 이런 이야기를 들어왔던 것입니다. 잘만 하면 말이다, 팔자 고치게 생겼는기라......그러나 한 번도 끝까지 잘된 일은 없었고, 물론 팔자 고칠 일도 없었지요. 팔자를 고쳤다면야 내가 이때까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남의 집 화장실 변기나 뚫으러 다니진 않을 것이고, 녀석 또한 남의 자가용이나 모는 신세에 머물러 있진 않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것 좀 봐라.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장면 아이가?”
때마침 통곡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는 텔레비전 화면에 눈길을 던지면서 성만이 말을 잇더군요. 삼십 년 만에 상봉했다는 가족이 서로 부둥켜안고, ‘맞다, 맞다’를 연발하며 눈물바다를 만들어내고 있었어요. 그러나 성만이 녀석은 눈물은커녕 무슨 신바람날 일이 있는지 시종 들뜨고 상기된 얼굴이더군요. 나는 그제야 뭔가 짚이는 것이 있었어요. 아까 민족의 비극에 동참해야 한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평소의 그답지 않은 말이 그러고 보니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니도 알재? 내가 입이 마르도록 이야기한 우리 꼰대 말이야, 그 자린고비 같은 구두쇠.”
마침내 녀석이 입을 열었습니다. 녀석이 몰고 다니는 자가용의 임자는 일흔이 다 된 영감이었습니다. 해방 직후에 이북에서 단신 월남한 소위 삼팔 따라지이며, 그 동안 피가 나도록 돈을 모아 지금은 수십억을 헤아리는 알부자가 되었다는 영감인데, 지금도 커피 한 잔 값에 발발 떠는 구두쇠라는 이야기를 나는 녀석에게 지겹도록 들었지요. 종로 어디엔가 건물을 몇 채 가지고 있으면서 집세를 받아먹고 또 여기저기 든을 빌려 주고 이자를 받아먹는 고리대금업자이기도 한 모양이었습니다. 하지만, 녀석이 영감의 욕을 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자신의 월급을 제때에 올려주지 않는다는 불만 때문이었어요. 월급뿐만 아니라 식사 시간에 차를 대기시켜 놓고 기다리게 할 때에도 식사 값은 꼭 짜장면 한 그릇 값만 주지 백원도 더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야, 말도 마래이. 짜장면 곱빼기도 아이고 꼭 한 그릇 값인 기라. 나 세상에 그렇게 지독한 구두쇠는 소문도 못 들었다꼬.”
성만이 녀석은 늘 그런 식으로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신기한 것은 그런데도 녀석이 그 두두쇠 밑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몇 년째 운전대를 붙들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언제나 일확천금의 요행수만 꿈꾸고 있는 녀석으로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모르는 소리 마라. 이 장성만이도 마 다 생각이 있단 말이다.”
언젠가, 왜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떠나지 않고 그 구두쇠 밑에 붙어 있느냐고 내가 물었을 때, 녀석이 대답한 말이었어요.
“그 영감쟁이는 처자식은커녕 일가붙이 하나도 없는 사람인 기라. 부모형제는 이북에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고, 이남에 내려온 뒤 여자 하나를 만나서 결혼을 했는데 고마 전쟁통에 피난을 가다가 죽었다 안 카나. 다섯 살인가 묵었던 아들 하나 있던 것도 피난길에서 잃어버리고 말았고, 그러이 그 영감이 지금 당장 죽는다 캐도 세상에 찬물 한 그릇 떠놔줄 사람이 없는 형편이란 말이다. 부인이 죽고 난 뒤에 새로 여자 하날 얻어서 데리고 살았던 적도 있었던 모양인데, 그 여자가 영감 성미가 하도 고약해서 보따리 싸들고 나간 뒤로는 마 재혼은 아예 꿈도 꾸지 않은 모양이라. 이만하면 내가 와 그 자린고비 영감 밑에서 갖은 수모를 참으며 붙어 있는지 알겠나? 이 장성만이도 다 속셈이 있다 이건 기라. 잘만 하면 팔자 고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단 말이다. 생각해봐라, 아무리 돈이 많아도 죽을 때 그 돈을 짊어지고 갈 수는 없는 거 아이가?”
그러니까 성만이 녀석은 그 영감이 죽기 전에 혹시나 떡 한 조각이라도 떼어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야말로 감나무 밑에 누워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녀석은 영감에게 조금이라도 잘 보이려 무진 애를 쓰는 모양이었지만, 영감은 녀석의 그러한 속내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는지, 아니면 녀석의 말대로 ‘인정머리라곤 쥐새끼 눈꼽만큼도 없는’ 때문인지 도무지 말 한마디 탐탁하게 하는 적이 없는 모양이었어요. 익지도 않은 풋감이 떨어질 리가 만무하니 아예 싹수가 글렀다고 투덜거리던 녀석이 이제 갑자기 무슨 또 다른 묘수가 떠올랐다고 남의 흉터까지 찾고 있는지 나는 그것이 자못 궁금했어요
“그런데 말이다, 이 영감이 요새 들어와가꼬, 저 놈의 이산가족 찾긴가 뭔가 바람에 밤마다 잠을 못 잔다 아이가?”
녀석이 눈빛을 빛내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매일 밤 소주잔을 앞에 놓고 텔레비를 보며 눈물을 철철 흘리는 기라. 그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것 같던 영감탕구가 말씀이라.”
“그런데 그게 내 발등의 흉터와는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
“글쎄. 들어보라꼬. 그 영감쟁이가 피난길에서 마누라 죽고 하나배끼 없는 아들까지 잃어버렸다고 안 했나. 틀림없이 죽어버렸을 끼다고 단념해왔지만, 요새 넘들이 이산가족 찾기다 뭐다 하고 떠들어쌌으니께네 혹시나 하고 희망이 생기는 모양이라. 만약에 그 아들이 지금 어딘가에서 살아서 나타난다고 해보라고. 하루아침에 팔자 고치게 될 거 아이가? 수십억 재산을 고스란히 물려받게 되는 거니까.”
“그래서? 그런다고 네가 신이 날 게 뭐가 있나. 내 입에 떨어졌으면 싶은 감이 남의 입으로 들어갈 판인데.”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란 말이다. 내 말은, 홍남이 니가 바로 그 영감의 아드님이 된다는 기라, 어떠노?”
녀석이 주위를 둘러보며 더욱 목소리를 낮추고 하는 말이었어요. 나는 어이가 없어서 입을 벌린 채 녀석의 얼굴을 멍청하게 바라보기만 했어요.
“다섯 살 때 잃어버렸다니까 그 영감도 아들을 제대로 기억할 리가 없재. 그런데 어저께 나한테 우연히 하는 이야기로 그 아들 왼쪽 발등에 흉터가 있다는 기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번개같이, 뭐라 카노? 영감이라 카는 기 머리에 탁 떠오르더란 말이다. 옛날에 니 발등에서 보았던 흉터가 생각이 나면서, 이거야말로 하늘이 내려준 기회가 아이고 뭐겠노 싶은 기라.”
녀석은 답답해 죽겠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제 머리를 돌리는 시늉을 했어요.
“이름쯤이야 고아원에서 바뀌었다 카믄 안 되나? 이락친척 하나 없는 신센데 누가 아이라꼬 나설 끼고? 안 그러나?”
“너 지금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야?”
“어떠노, 아파트 관리소에서 궂은일 하는 것보다야 낫겠재? 나중에 혹시 아니라고 밝혀지더라도 밑져야 본전이란 말씀야. 이런 일로 사기죄라꼬 고발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그러니까 내 왼쪽 발등의 흉터를 팔아먹자는 말이지? 내 엉덩이엔 그것보다 더 큰 흉터가 있어. 그것도 팔아먹을까?”
“어허, 와 이래 떠들어쌌노? 목소리 좀 낮추그라. ”
녀석은 누가 들을까 황급히 내 입을 막는 시늉을 했습니다.
“들어보래이. 오죽하면 내가 이런 궁리를 다 냈겠나? 사실은 지금 사정이 바쁘게 됐단 말이다. 우리 영감한테 마누라가 생기게 된 기라.”
“마누라라니? 일흔이 다 되었다는 영감이 이제 와서 새장가라도 들었다는 건가?”
“그게 우찌된 사정인고 하면 말이다. 원래 우리 영감이 심장이 좀 약하거든.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식모 겸 간호원으로 쓰라고 과부 하나를 데려다놨단 말이다. 그런데 그 여자가 밤낮으로 마누라같이 영감 곁에만 붙어 지내더니, 나중엔 영감 대신 건물세니 일수돈이니 하는 것도 받으러 다니고 완전히 진짜 마누라같이 행세하기 시작한 기라. 내 보기에도 아주 보통 여자가 아이라. 암매 영감이 여자한테 상투를 잡히도 단단히 잡혀구나 싶두만. 그런데 이 여자가 영감을 우째 구워삶았는지, 내 며칠 전에야 알았는데, 영감 호적에 자기 이름을 턱 올려놓았는 모양이라. 혼인신고를 해놓았다는 이야기란 말이다. 십 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라더이, 내가 그 동안 공들인 기 말짱 허사가 되게 생겼으이 그래 복장 터질 일이 아이고 뭐꼬?”
“그러니까, 마누라도 새로 만드는 판에 아들 하나 더 만드는 게 어떠냐 이 말이군?”
“농담할 때가 아이다. 니는 내 이야기를 말도 안 되는 수작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지금 저 텔레비전에서 벌어지고 있는 꼴들을 좀 봐라. 어차피 이놈의 땅에 사는 우리네 인생이란 기 말도 안 되게 뒤죽박죽이고 한심한 꼴이 아이고 뭐꼬? 그라고, 그 영감쟁이 멀잖아 죽을 목숨인데 그 재산을 누가 묵을 끼고? 그 여우 겉은 여편네한테 몽땅 돌아가고 말 거 아이가? 그걸 우리도 묵어보자는 기 뭐가 나쁜 일이고?”
나는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습니다. 너무 터무니없는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왠지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말로 표현 못 할, 무슨 울분 같기도 하고 슬픔 같기도 한 응어리가 바윗덩어리처럼 무겁게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어요.
사실 이산가족 찾기의 방송이 나간 뒤, 나도 방송에 나가서 부모를 찾아보아야 하지 않느냐고 마누라가 몇 번이나 이야기하더군요. 하지만 나는 전혀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나는 방송에서 사람들이 헤어졌던 부모형제를 만나는 장면을 보면 더욱 울분이 치미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전쟁의 북새통이라고 하지만 자식을 내버릴 때는 언제고, 또 삼십 년이 넘도록 그냥 있다가 이제 와서 저렇듯 아우성치며 울고불고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제 목숨 건지기도 힘든 전쟁 때문이었다고 해도 자기 부모형제와 자식들을 제 목숨만큼 생각했더라면 이렇게 많은 이산가족이 생겨났을 리가 만무하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래서 헤어졌던 가족을 확인하자마자 금세 울고불고하는 광경을 보노라면 괜히 속이 뒤틀리는 심정이었던 것입니다. 삼십여 년을 헤어져 생판 남처럼 살아오다가 이제 새삼 무슨 육친의 정이 있어서 눈물이 나오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흉터 하나 보고 제 자식이라고 대뜸 부둥켜안고 통곡을 하다니, 아니 그 자리에 흉터 있는 사람이 어디 한둘입니까. 그래서 난 아예 방송을 보지 않으려 했고, 낮이고 밤이고 텔레비전 앞에 붙어 앉아서 눈물을 짜고 있는 마누라와 몇 번 싸움을 하기도 했습니다.
마누라는 그런 나를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는 눈치였습니다. 하긴 나도 나 자신을 잘 알 수가 없었습니다. 내 마음속에 내게는 그런 행운이 결코 오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더욱 거부감을 갖고 있었는지도 모르죠. 내 이름이니 나이도 정확한지 모르는 판국인데, 무슨 근거로 부모형제를 찾는단 말입니까.
다음날 아침 일찍 난 여의도 방송국으로 나갔습니다. 결국 성만이가 시키는 대로 그 해괴한 연극을 하기로 한 것입니다. 지금도 나는 그때 무슨 생각으로 그 연극을 할 마음이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내 마음 한구석에 성만이처럼 일확천금을 노리는 허황된 꿈이 숨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이산가족 찾기니 뭐니 하는 이 모든 소동을 마음속으로 비웃어주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여하튼 난 방송국에 나간다는 이야기를 마누라한테 숨겼고, 아파트 관리소에는 몸이 아파서 출근을 못 하겠다는 식으로 적당히 핑계를 대었습니다. 나중에 그들이 텔레비전에서 내 얼굴을 보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때에는 또 적당히 둘러대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이름을 모르는 부모를 찾습니다. 육이오 때 피난길에서 부모를 잃은 것 같음. 아들 김광일. 나이는 37(?)세. 특징 : 왼쪽 발등에 흉터 자국이 있음.
역시 성만이 불러준 대로 나는 커다란 글씨로 그렇게 썼습니다. 마침 나이는 내 나이와 비슷했고, 김광일이란 성만이가 가르쳐준 영감의 진짜 아들 이름이었습니다. 내가 텔레비전에 그 글을 들고 나가는 시간에 영감이 방송을 볼 수 있도록 텔레비전 앞에 앉혀둔다는 것이 성만이 녀석이 짜둔 각본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여의도 광장의 그 기나긴 줄 사이에 끼여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차츰 나는 그 수많은 사연들, 그 엄청난 한숨과 눈물을 지켜보면서 가슴속에서 점점 저려오는 두 가지 감정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내가 들고 있는 피킷의 내용이 사기극을 벌이기 위한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이었으면 하는 헛된 소망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럴수록 마음 한 구석에서 자리를 넓혀가는 양심의 가책이었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피킷에 쓰인 김광일이란 이름을 지우고 김홍남이란 나 자신의 이름을 큼직하게 고쳐 쓰고 싶은 충동을 느껴야 했던 것입니다. 하루 종일 서서 기다린 끝에 마침내 내 차례가 왔을 때, 나는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이름을 고쳐 쓰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담당자가 내 차례라고 번호를 불러대더군요. 결국 나는 그 가짜 이름으로 가짜 아버지를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방송이 나간 다음, 이상하게도 진짜 얼굴도 모르는 친아버지의 연락을 기다리는 것처럼 가슴이 뛰고 입 안이 타는 것 같더군요. 영감에게서 연락이 온 것은 방송이 나간 그 다음날이었습니다.
“여보세요, 거기 김광일씨 댁입니꺼?”
“김광일? 자식, 너 성만이구나.”
나는 처음에 성만이 녀석이 장난을 하고 있는 줄 알았지요. 그러나 성만인 시치미를 떼고 계속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것이었어요.
“예, 텔레비 방송에 나왔던 김광일씨 맞다고요? 전화 바꿔드릴 테니께 잠깐 기다려보이소이.”
나는 어떤 사정인지 재빨리 눈치를 챘습니다. 뒤이어 수확기를 통해 흘러나온 것은 조심스러우면서도 카랑카랑한 이북 사투리였습니다.
“나……텔레비 보구 전화한 사람인데……당신 이름이 김광일이라고 하는 게 참말이오?”
“그렇습니다. 제가 바로 김광일입니다.”
의외로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내 입에서 말이 술술 나와서 스스로도 놀랄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믄 내 아들하고 이름이 같기는 한데…… 왼쪽 발등에 흉터가 있는 것도 틀림없소?”
“그럼요, 제가 왜 그런 걸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다른 건 기억나는 게 없구?”
“네, 별로……너무 어릴 때가 되어서……”
잠시 말이 끊어졌습니다. 물어보고 싶은 다른 말이 있는데도 망설이는 것 같은 눈치였어요.
“그럼 우리 한번 만나보오다.”
“어디에서 만나야 합니까? 방송국에서 기다릴까요?”
“아니, 방송국에서 만나는 거는 좋지 않아요. 아직 확인이 되지도 않았는데, 괜시리 카메라를 들이대고 소동으로 벌이면 곤란하니까…… 그럴 것 없이 내 있는 곳으로 좀 찾아와주시겠소? 내가 차를 보낼 테이까.”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오히려 내게도 그게 더 잘된 일일테니까요. 물론 영감의 승용차를 타고 나타난 사람은 성만이 녀석이었는데, 녀석은 벌써부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봐라, 절대로 날 아는 척하면 안 된데이. 이번 일은 니가 얼마나 연기를 잘하는가에 달려 있는 기라. 테레비에서 본 대로 영감을 붙들고 한번 그럴듯하게 우러보라꼬.”
차를 몰고 가면서 성만이 녀석이 열심히 주워섬겼지만, 나는 아무래도 자신이 없었습니다. 어차피 이런 우스꽝스런 사기극은 금방 들통이 나버릴 것이라는 불안감과 함께,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쨌든 갈 데까지 가보자는 묘한 심사에 빠져들고 있었을 뿐이었지요.
“특히 내가 전에 말했던 그 여편네를 조심해야 된데이. 문제는 그 여편네인 기라. 욕심은 군 놀부 마누라 같은데, 눈치는 또 귀신같이 빠르거든. 전에는 오씨 아줌마라고 불렀는데, 요새는 오 여사라고 불러주지 않으면 사람 잡아묵으라칸다. 하여튼 보통 여편네가 아이라.”
성만이가 날 데려간 곳은 종로 뒷골목에 있는 어느 낡고 우중충한 4층 건물이었습니다. 중국 음식점과 다방, 기원 등의 간판들이 지저분하게 걸려 있는 그 건물은 겉보기와는 달리 서울 한복판의 노른자 위 땅이라 상당히 값이 나가는 건물이라고 하더군요. 성만이의 말에 의하면 그 영감에게는 그런 건물이 두어 채는 더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값이야 어찌 되었든 그 건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은 금방 내려앉을 듯이 삐걱거렸고, 대낮인데도 굴속처럼 어두컴컴하더군요. 나는 녀석의 뒤를 따라 그 좁은 계단을 올라가 그 건물의 맨 꼭대기층으로 올라갔습니다. 합판으로 칸막이 쳐진 여러 개의 방 중에서도 창고처럼 허름하게 생긴 구석방이 그 건물의 주인인 영감의 사무실 검 살림집인 모양이었습니다.
“니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야 된데이. 니 이름은 김홍남이가 아이고 김광일이란 말이다. 김광일. 알았재?”
사무실 문 앞에서 성만이 낮은 목소리로 내게 다시 한 번 확인을 했습니다. 녀석의 그 초조한 눈빛과 심각한 태도가 왠지 우습게 느껴져서 나는 그만 피식 실소를 흘리고 말았습니다.
“야, 일마야. 웃을 일이 아이다. 니하고 내하고 인생이 걸린 문제란 말이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해야 된다. 모든 기 니한테 다려있다는 걸 명심하래이.”
녀석이 한 번 더 내게 다짐을 주고는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습니다. 문을 열자, 두어 평 정도의 좁은 사무실이 나타났는데 방은 비어있었습니다. 거리로 향한 조그만 창문엔 하얗게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고, 책상 하나와 철제 캐비닛, 때 묻은 가죽 소파, 그리고 벽에는 작은 흑판이 걸려 있을 뿐 초라하고 좁은 사무실이었습니다. 사무실 한쪽에 또 찌그러진 방문이 달려 있는데, 아마도 그 영감은 그곳에서 거처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성만이 그쪽에 대고, 사장님 다녀왔습니다, 하고 소리치자 방문이 열리면서 키가 자그마하고 안경을 쓴 노인네가 나타났습니다. 첫눈에 보기에 수십억 재산을 가졌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초라하고 꾀죄죄하게 늙은 영감이었습니다. 마침 책상이라도 닦을 심산이었던지 물에 젖은 걸레를 손에 들고 내 얼굴을 쳐다보던 그 첫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군요. 머리칼은 거의 희끗희끗했고, 얼굴빛도 그리 건강해 보이지 않았는데, 생쥐같이 작은 눈만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반짝거리고 있었습니다.
“자네 이름이 김광일이 틀림없나?”
영감은 안경 너머로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작은 눈을 깜박거리며 나를 요리조리 뜯어보았어요. 나는 심호흡을 하며 침착하려 애를 썼습니다.
“네, 다른 건 기억에 없지만 이름만은 기억하고 있습지요.”
“그래? 그럼 어디 양마르 좀 벗어보게나.”
영감은 조끼 주머니에서 안경을 하나 더 꺼내서 두 개나 걸쳐 쓰고는 내 발등에 있는 흉터를 아주 꼼꼼하게 들여다보더군요. 그리고는 고개를 쳐들고 의심에 가득 찬 눈초리로 묻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데는 또 흉터가 없나?”
“그…… 글쎄요, 뭐 별로……”
나는 엉겁결에 그렇게 대다했지요. 하지만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내 엉덩이에 있는 또 다른 흉터를 숨겨야 될지 어떨지 당황했던 것입니다. 일이 어째 심상찮게 돌아간다는 것을 느꼈는지 영감의 등 뒤에 서 있던 성만이 녀석이 안절부절못하며 초조해하는 모습이 시선에 잡히더군요. 녀석은 그러면서 손짓으로 내게 뭔가 열심히 신호를 보냈는데, 아마 영감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쏟는 연극이라도 해보라는 뜻인 것 같았어요. 하지만 그런 것을 하기에는 난 너무나 몸이 굳어져 있었어요. 고아원 시절 이후 나는 한 번도 연극 따위는 해본 일이 없었으니까요.
“이봅세, 강 기사. 자네는 이따가 부를 테니까 밖에 나가 있게.”
영감이 성만이에게 하는 말이었어요.
“분명 광일이라는 이름이 자네가 어릴 때부터 기억하는 이름인가?”
성만이가 불안한 표정으로 방을 나가자, 영감이 허리를 펴며 다시 물었습니다. 안경 너머의 작은 눈은 더욱 의심을 품은 채 깜박거리고 있었어요. 나는 얼른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나를 찌르는 듯이 보고 있는 노인의 시선과 마주치자, 내 마음이 약해지지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 터무니없는 속임수가 성공할 리 만무하다는 생각이 가슴을 파고들었고, 설사 요행히 성공을 한다 하더라도 이런 일로 남을 속인다는 건 용서받지 못할 죄악이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노인한테 이 모든 것을 털어놓고 용서를 비는 것이 낫지 않을까. 아니 이대로 아무 소리하지 않고 달아나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 내가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다시 영감이 말했습니다.
“광일이란 이름은 내 아들놈의 호적에 올라 있던 이름이야. 자네가 진짜 내 아들이라면 그 이름을 기억할 수는 없을 텐데. 그놈아가 어렸을 때 집에서 부르던 이름은 따로 있었지비. 내 월남을 하기 전에 살던 고향이 저 유명한 홍남부두야. 그래서 이름을 따서 불렀지비.”
홍남부두? 그 이름을 따서 불렀다고? 나는 갑자기 머릿속이 휑하게 비워지는 것 같아 영감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삽시간에 온몸의 힘이란 힘은 모조리 빠져나가는 것 같더군요. 텅 빈 머릿속으로 영감의 말소리가 가물가물 드려왔어요.
홍남부두? 그 이름을 따서 불렀다고? 나는 갑자기 머릿속이 휑하게 비워지는 것 같아 영감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삽시간에 온몸의 힘이란 힘은 모조리 빠져 나가는 것 같더군요. 텅 빈 머릿속으로 영감의 말소리가 가물가물 들려왔어요.
“미안하지만 자네 바지를 좀 벗어보게나. 내 아들놈이 두 살 때 화덕 위에 엉덩이를 크게 덴 적이 있었지비. 그러니 자네가 내 아들이라면 발등에만 흉터가 있는 게 앙이라, 필시 엉덩이에도 더 큰 흉터가 있을 텐데……”
나는 그저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을 뿐 꼼짝도 하지 못했습니다. 내 태도가 이상했던지 영감이 고개를 쳐들고 묻더군요.
“무슨 일인가? 어데 아픈가?”
“제 이름이…… 제 이름이 바로 홍남입니다.”
나는 간신히 그렇게 대답했지요. 목소리가 덜덜 떨려서 말을 제대로 뱉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영감은 내 말을 얼른 알아듣지 못하더군요.
“무시기? 이름이 어드렇게 되었다구?”
“제 이름이 홍남이라구요. 제 진짜 이름이 김홍남입니다.”
영감은 잠깐 동안 입을 쩍 벌리고 멍청하게 내 얼굴을 쳐다보고만 있더군요. 흡사 터무니없는 농담이라도 듣고 있는 듯한 표저이었습니다.
“절대로 거짓말이 아닙니다. 이것 보십시오.”
나는 그 자리에서 바지 혁대를 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엉덩이를 영감에게 훌렁 까보였지요. 나는 그때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거든요.
“흉터가 보이시죠? 틀림없이 흉터가 있지요? 이거 가짜 흉터가 아니고 진짜 흉터예요.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어릴 때부터 거기 그 자리에 있었어요. 난 그게 어떻게 해서 생긴 흉터인지 몰랐는데, 이제 보니 불에 덴 자리였던 것 같습니다. 맞아요, 틀림없이 그럴 겁니다. 불에 데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런 흉터가 생겼겠습니까?”
나는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정신없이 지껄이고 있었지요. 아마도 난 그때 지나치게 흥분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하긴 내 잘못만도 아니지요. 그런 경우에 제정신을 차리고 있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정신이 없기는 그 영감님도 마찬가지였어요. 막상 내 엉덩이에 있는 흉터를 확인하자, 영감은 마치 중풍에라도 걸린 것처럼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더군요.
“이, 이봅세, 나는 지금 자네 말이 무슨 소린 줄 통 모르겠네. 그러니까 좀 차근차근 이야기해봅세……”
“제가 바로 김홍남이란 말입니다. 김광일이란 말은 거짓말입니다. 사실 전 광일이란 이름은 알지도 못해요. 어릴 때부터 내 이름은 김홍남이었지요. 고아원에서 지어준 이름도 아니고 내 진짜 이름이었다구요. 내 말 아시겠습니까? 영감님? 아니, 아버님?”
“그러니까 자네는…… 지금 자네가 내 아들 김홍남이라구 주장하고 있는 것인가?”
“주장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이것 보십시오. 제 주민등록증입니다. 여기 분명히 김홍남이라고 박혀 있는게 보이지요?”
노인은 내 주민등록증을 받아들고 뚫어져라 들여다보았습니다. 혹시 가짜 주민등록증이 아닌가 의심스러운 듯 몇 번이고 앞뒤를 뒤집어가며 살펴보기까지 했어요. 이윽고 영감의 얼굴에서 서서히 핏기가 사라지면서 종잇장처럼 창백하게 변하더군요.
“가, 가만……. 자리에 앉아서 조금 쉬어야겠구만. 내 심장이 약해 가지구서리……”
노인은 갑자기 극심한 현기증에 사로잡힌 듯 비틀비틀 의자로 걸어가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뚫어지게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어요. 그것은 이상하게도 초점이 맞지 않는 것 같은 시선이었습니다. 나를 보고 있긴 했지만, 그러나 그 시선은 내 얼굴을 지나 내가 모르는 아득히 먼 어느 곳에 닿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영감이 별안간 정신이 나가버린 것이 아닌가 하고 와락 불안감이 들기도 하더군요.
그런데 한참 만에 보여준 영감의 행동은 참으로 엉뚱한 것이었습니다. 영감은 중풍이라도 걸린 것처럼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서랍을 열더니 시계를 하나 꺼내는 것이었어요. 누리끼리하게 금색깔이 나는, 손떄 묻은 낡은 손목 시계였습니다. 영감은 그 시계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더듬더듬 힘들게 입을 열었어요.
“이 시계가 이래봬도 내게는 특별한 시계지비. 35년 전 고향 떠나 올 때 이 시계 하나만 달랑 들고 나왔지 않았겠습메……”
노인은 마치 넋두리라도 하는 듯한 말투로 느리게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가 왜 느닷없이 시계 이야기를 꺼내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아드링냐 아니냐 하는 순간에 그까짓 시계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나는 어쩌면 영감이 갑자기 얼이 빠져서 자신이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조차 의식을 못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내 우리 집안에서 삼대 독자였지비.그런데도 아바이한테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말았재이캤니. 내 해방되기 전에 서울에 사는 처녀와 서르 요즘 말로 연애라는 거르 했는데, 그만 삼팔선이 딱 막혀버렸으니 오도 가도 못하게 되지 않았겠습메. 집안에서는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라구 성화를 해대구……. 그래 생각다 못해서르 무작정 서울로 내뺄 생각을 했던 거야. 그런데 내게 무슨 돈이 있었겠습메? 하는 수 없이 눈 딱 감고 우리 아바이 시계를 훔쳐 나온 거야. 그때 당시엔 시계가 흔치 않았으이까는 제법 값이 나가는 재산이었구, 또 늘 아바이가 애지중지하던 것이었지. 그때 생각으로는 내 서울로 내려와 돈을 벌게 되면 나중에 집에 가서 아바이한테 이 시계를 돌려드리고 용서를 구할 생각이었는데, 전쟁이 터지구 영영 그런 기회가 사라지고 말았어. 아바이 오마니한테 불효를 씻을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구만 게지비…….”
영감은 새하얗게 핏기가 사라진 얼굴로 가쁜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처음 월남을 해가지구는 이 시계 덕을 톡톡히 보기도 했지비. 한창 어려울 때 두 번이나 잽혀먹었으이깐두두. 하지만 돈을 좀 벌고부터는 이때까지 한 번도 내 손에서 놓지르 않았당이. 언젠가 이 시계를 아바이한테 다시 갖다드리구 용서를 빌어야 했으니까......”
먼지 낀 더러운 창문으로 희미한 저녁 햇살이 비쳐들고 있었습니다. 노인의 가쁜 숨소리만 들릴 뿐 방안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나는 전혀 입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난 그때 내가 겪고 있는 것이 그저 꿈을 꾸는 것처럼 실감이 나지 않았을 뿐이었습니다.
“내가 이날이때까지 이남에서 혼자 살면서 피눈물나게 고생한 이야기를 어찌 말로 다할 수가 있겠습메? 마누라도 죽고 하나 있던 아드마저 잃어버리고 나니 세상 살맛을 잃어버리고 말았지비. 허지마는 어찌하겠습메? 돈이 내 가족이구 부모자식과 같았단 얘기야. 그런데…….나이가 들구 공동묘지에 갈 시간이 다가오니께는 차츰 허망한 생각이 들재이캤나……. 이렇게 피눈물 나게 모아놓은 재산이 다 쓸모가 없다는 생각이 들구 말이야……”
노인의 목소리는 어느새 물기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인의 이야기는 더 이상 계속되지 못했습니다. 그때 문이 열리더니 어떤 여자가 들어섰던 것입니다. 오십이 다 되어 보이는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짙은 화장을 하고 있는 여자였습니다. 나는 성만이가 말한 바로 그 오 여사란 여자가 틀림없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유, 정말 이 짓도 못해먹겠어. 도대체 인간들 얼굴을 봐야 돈을 받아먹든지 말든지 하지……돈을 쓸 때는 곧 죽을 것 같다가도 가져다놓고는 아예 갚을 생각은 하지도 않은다니까.”
아마도 이잣돈이라도 받으러 나갔다 오는 길인 것 같았습니다. 방안에 들어서면서 크 소리로 떠들어대던 여자는 문득 방안 분위기가 이상하다고 느꼈던 모양으로 내게 의심스런 시선을 던졌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예요?”
“아, 아무도 앙이야. 그냥……. 뭐 부탁할 일이 있어 찾아온 모양인데……”
왠지 노인은 몹시 당황하는 것 같은 눈치였습니다. 그리고 내게 서둘러 말했습니다.
“이봅세, 그 일은 아뭏래도 나 혼자서 곰곰히 생각으 좀 해봐야겠네. 그러이까 내일 아침에 다시 와주겠나 알겠지비? 내일 아침…….”
나는 노인이 그 여자에게 우리 사이의 이야기를 숨기려고 한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꼭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나는 속으로 억눌렀습니다. 그 여자의 사나운 눈매가 내 시선에 잡혀왔던 것입니다. 나는 노인에게 깊숙이 머리 숙여 인사를 하고는 문간으로 걸어나왔습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더군요. 내가 문을 열고 나서자 노인은 문밖으로 따라 나와 목소리를 낮춰 말했습니다.
“오늘 있었던 일은 누구한테도 입을 열지 말게. 우리가 다시 만나서 확인으 해보기두 해야 할 거구, 또 잘못 말이 나면 일이 틀어질 수도 있으이까…… 내 말 알겠지비?”
노인의 작은 눈이 불안과 의심, 그리고 말하지 못할 간절한 무엇으로 깜박이는 것을 바라보았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요. 나는 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래서 그 약속을 지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계단 입구에 숨어서 기다리고 있던 성만이 녀석이 내 팔을 붙들며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야, 우째 됐노 말이다. 그냥 돌리보내는 거 보이께네 제대로 안 된 모양이재? 영감이 뭘 물어보더노? 설마 우리가 사기친 거를 눈치채지는 않았겠재?”
녀석이 숨가쁘게 던지는 물음에 나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했습니다. 그리고는 내일 다시 연락하자는 말만 하고, 여름 저녁의 기울어진 햇살이 눈을 찌르더군요. 나는 길게 숨을 내쉬었지요. 마침 삼십 년 동안을 갇혀 있었던 길고긴 어둠 속에서 빠져나온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날 밤 나는 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빨리 잠이 들어야 어서 내일이 올 텐데, 아무리 애를 써도 도무지 잠이 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참 미칠 지경이더군요. 내 곁에는 세상모르게 잠이 든 마누라와 아이의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어요, 나는 당장 마누라를 깨워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싶은 충동이 솟구치는 걸 수없이 억눌러야만 했어요.
어둠 속에서 잠을 청하려고 애를 쓰고 있자니까, 왠지 자꾸만 어린 시절의 학예회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난 그 불길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쫓아버리려 애를 썼죠. 이건 분명 연극이 아니라 현실이니까요. 하지만, 영 안심이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단 말입니까. 더구나 다른 사람 아닌 나한테 말입니다. 나느 그전에 복권에 일등으로 당첨되면 어떤 기분일까 하고 자주 상상에 잠겨보곤 했었죠. 그럴 때마다 난 만약 내게 그런 경우가 오면 미쳐버릴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내게 찾아온 이 사건은 그까짓 복권에 당첨된 것에 비할 수조차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심지어 나는 혹시 내일 아침엔 해가 뜨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했답니다. 오늘밤 갑자기 지구의 종말이 오는 게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고아원 시절부터 지금까지 온갖 고생하던 장면들이 연속적으로 눈앞을 스쳐가더군요. 환상과 현실이 마구 뒤섞이는데, 정말 이러다가 내가 미쳐버리는 것이 아닌가 덜컥 겁이 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마 잠깐 선잠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꿈속에서 나는 이십여 년 전의 고아원 시절로 되돌아가 있었습니다. 학예회를 하고 있었고 나는 여전히 흉측한 껍질을 덮어쓴 두꺼비였어요. 그런데 내게 입맞춤을 해주기로 되어 있는 공주가 가만히 보니 공주가 아니라 바로 그 영감, 아니 내 아버지였습니다. 나느 가슴이 조마조마하고 공포에 질려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내게 입맞춤을 해주기 전에 연극이 끝나게 될까 겁에 질려 있었던 것입니다. 옛날하고 다른 것은 정전이 될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꿈을 깨게 될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는 것이었어요, 나느 꿈속에서도 그게 꿈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내가 왕자가 되기 전에 꿈이 깰까봐 정말 마음이 급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빨리 마술을 풀어달라고 소리를 질렀지요. 그러나 웬일인지 내 목구멍에서는 제대로 소리가 빠져나오지 않는 것이었어요. 그러다가 결국 내가 걱정하는 그대로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마악 내게 힘들게 한 발자국씩 다가오는 순간, 갑자기 꿈의 테이프는 잘려져 나가고 만 것입니다.
나는 소스라쳐 잠에서 꺠어났습니다. 어둠 속을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선뜻 전화를 받을 수가 없었어요. 그 요란한 전화벨 소리와 함께 불길한 예감이 무섭게 나를 난타질하고 있었습니다. 시계를 보았더니 새벽 두시더군요.
“여보세요? 어이, 홍남이가? 나다.”
수화기에서 흘러나온 것은 성만이 녀석의 목소리였어요.
“웬일이야? 이 밤중에.”
“내 지금 대학병원 응급실에 와 있데이. 우이 영감쟁이가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켜뿌맀는기라.”
가슴속에서 무엇인가 엄청난 무게로 떨어지는 것 같았고, 한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았습니다. 수화기를 든 내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글세 어제 저녁, 그러이끼네 니가 다녀간 뒤부터 왠지 얼굴이 안 좋고 숨이 가쁜 거겉이 보이더만 새벽녘에 갑자기 발작을 일으켰는기라. 병원에 싣고 왔는데, 의사가 이미 틀렸다고 하네. 사람 목숨은 알 수가 없는 거라 캐도 이렇게 허무할 수가 있나.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까, 우리가 아들이네 어쩌네 하고 쇼를 부린 것이 그 영감한테 너무 심한 충격을 준 게 아닌가 좀 양심이 찔리기도 하구마.”
“어니, 성만이, 너 지금 거짓말하고 있지? 날 놀리려고 거짓말하고 있는 거지? 그렇지?”
“야가 무슨 소리 하노? 내가 한밤중에 니한테 전화해가지고 와 거짓말을 해? 못 믿겠으마 병원으로 와보마 알 거 아이가?”
전화기를 놓으며 나는 마른 짚단처럼 그 자리에 맥없이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여보, 대체 왜 그래요?”
잠이 깬 마누라가 놀라 나를 붙들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무슨 말로 마누라에게 그 모든 것을 설명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나는 미친 사람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노인은 이미 차가운 시신으로 변해서 영안실로 옮겨져 있었어요. 그 영감은, 아니 이제 아버지라 해야겠군요. 아버지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나는 성만이에게 영감이 죽기 전에 남긴 말이 없었는가고 물어보았습니다. 혹시 내가 당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단 한마디라도 했을지도 모른다는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서 말입니다. 그러나 성만이 녀석의 대답은 절망적이었습니다. 영감은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서 병원으로 옮겨졌는데,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숨을 거두었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영안실의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엎드려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한 번 눈물을 터뜨리기 시작하니까 무너진 봇물처럼 끝없이 터져나왔습니다. 삼십 년 만에 단 한 번 만난 아버지에게 무슨 큰 정이 있다고 그렇게 울었겠습니까. 나는 다만 내 팔자가 원통하고 우리 아버지의 인생이 불쌍해서 울었던 것이지요. 생각해보세요. 세상에 이런 기막힌 일도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사람들은 내가 왜 그처럼 서럽게 우는지 이상하게 생각하더군요.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그의 하나밖에 없는 혈육이었는다는 사실은 죽은 사람과 나밖에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었던 것입니다. 내가 그의 아들이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길은 이제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어요. 불은 꺼지고 연극은 갑자기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이십 년 전의 그날 밤과 마찬가지로 나는 아직도 그 저주의 마술이 풀리지 않은 채 어둠 속에 혼자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 징그럽고 흉측한 두꺼비의 껍질을 덮어쓰고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대로 포기하기에는 너무도 억울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내가 바로 그 영감의 아들이노라고 이야기했지요. 발등과 엉덩이의 흉터, 그리고 김홍남이라는 내 이름 석 자가 그 증거라고 열심히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우선 성만이 녀석까지 내 말을 믿지 않는 것이었어요. 사람들은 나를, 그 영감의 재산을 탐내서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꾸며내고 있는 사기꾼으로 취급할 뿐이었어요. 무엇보다 영감의 호적에 올라 있다는 그 오 여산가 뭔가 하는 여자가 길길이 날뛰는 것이었어요. 나를 사기꾼이라고 경찰에 고발하기도 하고, 심지어 깡패를 시켜서 나는 두들겨패기까지 했어요. 그 여자 주변에는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인간들이 수없이 나타났는데, 내가 보기에는 하나같이 깡패들이고 사기꾼 같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무진 노력을 했습니다. 생전에 노인과 조금이라도 가까웠다는 사람은 다 찾아다니고 정부의 높은 양반들에게 수없이 진정서를 띄우고, 신문사니 방송국이니 하는 데마다 편지를 써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내 노력은 번번이 좌절되었습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어느 누구도 내 말을 믿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를 영감의 재산이나 노리는 놈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이었어요.
물론 내가 그렇게까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재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법적으로는 그 많은 재산이 모조리 그 여자한테 돌아가게 되어 있었는데, 나로서는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내가 그 재산을 꼭 차지하겠다는 것보다도 아버지가 평생을 모은 그 재산이 그처럼 허무하게 빼앗겨 버리는 것이 견딜 수 없었기 떄문이었어요. 만약에 그 재산이 무슨 사회단체 같은 데나 기증이 되었다면, 내 마음이 조금은 위안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디서 굴러먹던 여자인지 모를 그 못된 여자한테 몽땅 돌아가다니,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그러나 내가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주장할수록 사람들은 나를 뻔뻔스러운 사기꾼이거나, 정신병자 취급을 하더군요.
“야 일마야, 니 도대체 와 그라노? 인자 지발 그만 좀 하그라이. 니 심정은 내 알 만하지만도, 인자 다 끝난 일 아이가? 사람이 헛된 꿈도 너무 집착하면 진짜같이 여겨지는 수가 있다 카더라. 니 암만캐도 병원에라도 한 번 가봐야겠다.”
원통한 것은 성만이 녀석까지 내 말을 전혀 믿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날 이상한 놈 취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난 내 아내에게마저 정신병자 취급을 받게 되고 말았습니다.
“여보, 이제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우리 가족은 어쩌라고 이러는 거예요? 이젠 남들 눈이 창피해서라도 못 견디겠어요. 아무래도 당신 병이 들어도 단단히 든 것 같아요.”
그쯤 되자 나 스스로도 내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기기도 하더라구요. 그날 그 영감과 단둘이 만났을 때, 우리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들은 모두 현실이 아니라 환상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헛것을 보고 듣고는 그것을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요. 그렇게 생각하자 나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정말 알 수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차츰 진짜 병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세상 모든 일에 자신이 없어지고 의욕도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직장에 나가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나 심지어 밥먹는 일까지도 싫어졌습니다. 나는 결국 아파트 관리소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집안 꼴이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었고, 그저 산다는 것이 지긋지긋하게만 느껴졌을 뿐이었어요. 차츰 나는 말을 잃어갔습니다. 하루 종일 우리에 갇힌 짐승처럼 방안에 틀어박혀서 허공만 바라보고 있게 된 것이지요.
생각다 못한 마누라가 나를 끌고 정신과로 데려가서 진찰을 받게 했습니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내가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하면서 입원을 권유하더군요. 하지만 내게는 입원을 해서 병을 고치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또 그럴 형편도 못 되었습니다. 내가 집안에 들어 앉게 된 뒤부터 가정을 꾸려나가느라 마누라는 파출부니 식당 종업원이니 닥치는 대로 하면서 살림을 꾸려나가는 눈치였지만, 그날그날 살아가기도 힘이 드는 처지였습니다. 아이들 밥벌이를 해야 하는 아내로서는 하루 종일 방안에 틀어박혀 입 한 번 열지 않은 채 짐승처럼 먹고 싸기만 하는 내가 참으로 처치 곤란한 존재였을 겁니다. 하루는 세 살 난 딸아이가 배가 고팠던지 누워 있는 내 머리를 흔들며 울더군요. 나는 나도 모르게 아이를 발로 걷어차버렸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이가 방 한쪽에 처 박혀서 새파랗게 질린 채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이 참을 수 없을 만치 두려워지더군요.
그 일이 있고 나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기도원이란 데에 옮겨지게 외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내 마음의 병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계절이 바뀌고, 바람이 불고 , 꽃이 피어도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일년쯤 지났을 떄였을까요. 어느 날 마누라가 아이를 데리고 왔더군요. 기도원 앞 풀밭에서 아내가 싸온 김밥을 멍청하게 집어먹고 있을 때 였습니다. 문득 아내가 차고 있는 손목시계가 눈에 들어왔는데, 첫눈에 몹시 낯익은 것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누렇고 손때 묻은 그 시계는 바로 아버지가 내게 보여주었던 그 시계가 틀림없었어요. 나는 덥석 그 시계를 잡았습니다.
“이 시계, 이 시계가 웬 거지? 이 시계가 어떻게 당신 손에 들어와 있는 거야?”
“이거 말예요? 당신 친구 성만씨 있잖아요, 그 양반이 주고 간 거예요. 외국으로 나가기 전에.”
성만이는 얼마 전 중동에 사우딘가 하는 데로 취업을 하러 나갔다는 이야기를 나도 들은 기억이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깐요, 그 영감님이 늘 애지중지하던 시계였대요. 그래서 영감님이 죽고 난 뒤에 성만씨가 그 집에서 나올 때 슬쩍 집어들고 나온 것인가봐요. 아마 영감님이 았끼던 거니까 제법 값이 나가는 금시계라도 되는 줄 알았던 모양이죠. 그런데 시계방에 가보았더니, 그저 금맥기를 입힌 고물 시계라고 하더래요. 그 양반 지난번 외국 나가면서 그 영감 물건이니까 당신한테나 주라면서 놓고 갔어요. 기분 나빠서 내버릴까 했지만, 마침 시계도 고장이 나고 해서 차고 있던 거예요. 고물 시계지만 시간은 잘 맞더라구요......”
아내 가 변명이라도 하듯이 말했습니다. 나는 아내의 손목에서 그 시계를 풀어 내 손에 쥐고 들여다보았습니다. 그 상태로 오랫동안 꼼짝도 않고 앉아 있었습니다. 숱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나가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얼굴을 적시며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여보, 당신 왜 그래요?”
아내가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눈물이 몇 달 동안 내가 처음 보여준 감정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자, 이게 바로 그 물건입니다. 이것이 내 아버지가 내게 남긴 유일한 유산인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이 시계가 내 손에 들어오면서 나는 그떄까지 그처럼 내 마음을 끓게 만들었던 마음의 병을 차츰 잊어버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거의 잊어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즘 신문이고 방송이고 금방 통일이 될 것처럼 떠들어대고 있더군요. 정말 통일이라는 것이 이루어질지 나 같은 놈이 어찌 짐작이나 하겠습니까만, 만약 통일이 된다면 나한테도 한 가지 작은 소망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고향 땅인 그 홍남이란 곳을 찾아가서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의 무덤 앞에 이 시계를 풀어놓고 절이라도 하고 싶습니다.아버지를 대신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나는 설사 통일이 된다 하더라도 아버지의 인생이, 그리고 나 같은 인간이 겪은 고통이 보상받을 수 있다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 답니다. 무식한 소린지 모르겠지만, 통일이 된다고 사람살이라는 것이 얼마나 달라질까요? 유식한 사람들은 역사니 뭐니 하고 떠들어대는데, 그 역사라는 것이 아버지의 이 고물 시계에 대해서 도대체 무엇을 알겠습니까.
언젠가 만났던 어떤 대학생은 내게 그런 말을 하더군요. 운명이라는 것도 다 인간이 만드는 것이라고요. 그 대학생의 말에 의하면 옛날엔 운명을 신이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나 같은 힘없는 인간의 운명이 돈이니 권력이니를 쥐고 있는 가진 자들의 정치 놀음이나 또는 미국이니 소련이니 하는 외세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겁니다. 하긴 그것도 영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고아가 된 것도 그놈의 전쟁 때문이었는데, 그 전재은 누가 일으킨 것입니까? 바로 인간이 일으킨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난 아무래도 그것만으로는 뭔가 미흡하고 허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에 운명의 신이란 것이 없다면 아버지가 남긴 이 유일한 유산이 내 손에 들어오게 된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 고물 시계가 내 손에 들어온 것이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이게 하나님의 뜻이라면, 과연 그 뜻이 무엇인가를 나는 곰곰이 생각하고 있답니다.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