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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신앙인을 신앙인답게 하는 힘, 성령!

작성자박정순(요셉피나)|작성시간14.06.18|조회수950 목록 댓글 0

  배티의 꽃  - photo by 느티나무신부님

 

 

 

20여 년 동안 개신교에서 장로생활을 하셨던 분이

늘 성경을 열심히 읽고 썼는데 성경을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걸려넘어지는 곳이 있었습니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만나 이야기!

'이 만나가 뭘까?'

그 궁금증은 점점 더해지다가 신약에서 요한복음 6장 51절에서 58절이하

‘내 살과 내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영생을 얻지 못할 것이다~’

신앙적인 의문을 풀지 못하던 어느 날, 친한 친구의 딸이 성당에서 혼배를

한다기에 난생 처음 성당에 가서 주뼛거리다가 미사 때 맨 뒷자리에 앉았대요.

제단에서 미사가 시작되고 얼마 있다가 사제가 하얀 빵을 들어올리며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그 말이 끝나면서 ‘띵~’ 종이 울리니 천주교 신자들은 무릎을 꿇더니 숨도 못 쉬더래요.

조금 후에 다시 금잔을 들어 올리더니 ‘너희는 이것을 받아마셔라~’

‘띵~’

 

‘어, 저게 주님의 몸과 피를 만드는 거네?’

‘이단이라고 믿었던 천주교에서는 예수님의 유언을 지키고 있구나!’

'도대체 천주교에서는 어떤 교리를 가르칠까?'

 궁금한 마음에 가까운 성당에서 교리를 배우기 시작했대요.

교리가 진행될수록 빠져들기 시작했는데 개신교에서

‘어떻게 사람이 사람의 죄를 사해주느냐? 그건 우상이다~’ 했는데

고백소 안에는 예수님이 계셔서 네 죄를 사한다고 사제의 입을 빌려

감각적으로 확실히 알려주는 것이다.

‘개신교가 천주교에 대해 무식하구나!’

 

내가 더 늙기 전에 하나이고,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정통교리가 있는 천주교로 개종하자!

권사인 어머니를 설득해서 온가족이 세례를 받고 천주교신자로 지낸지 2년!

아침에 눈 뜨면서 자기 몸을 축성하는 게 그렇게 행복할 수 없대요.

‘신부님, 저 사실은 2년 동안 상처도 많이 받았어요.

세례 받고 첫 미사 때 십일조 정신으로 개신교에서 하던 대로 봉투에

5만원을 딱 넣었더니 대부님이 손을 저으며 말리더래요.

“천주교는 이렇게 돈 많이 넣는 게 아니야!”

“그럼 얼마해요?”

“2천원만 내.”

그 다음부터는 대부님이랑 미사 안 다녔대요.

 

또 하나, 천주교는 성경을 안 보고 매일미사를 보는 것!

“성경책 가지고 다니는 제가 잘못 배운 겁니까?”

“ 아니요, 말씀을 대하는 태도는 개신교가 형님이에요. 좋은 건 그대로 지켜야지요.“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왜 신부님들 강론은 힘이 없습니까?”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천주교회에 발을 담그고 살면서 형제님이 생각하시기에 왜 사제들의 강론에 힘이 없고,

신자들의 얼굴에 기쁨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신부님, 그건 성령에 대한 체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답입니다.

 

우스갯 소리로 어떤 본당 총회장이 죽어서 지옥에 갔더래요.

창피해서 골목으로만 다니다가 4년 전에 돌아가신 본당신부님을 뵈었대요.

“아이고 신부님, 저야 사업하느라 죄를 지었지만 신부님께서 어떻게 여기를~”

“조용히 해, 2층에 주교님 와 계셔!

다시 말하면 유니폼의 색깔 바뀌었다고 구원되는 것 아니에요.

평신도도 성령의 체험이 없으면 병신도가 되는 겁니다.

 

우리는 세례 받을 때 그리스도의 예언직, 왕직, 사도직의 직분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예언직의 목적은 말씀선포입니다.

‘죽을 때까지 한 사람도 성당으로 못 데리고 왔다~’

분명히 엄한 심판거리임을 명심하십시오!

 

왕직의 목적은 자유인이 되는 것, 무소유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성령이 없으면 껍데기지요.

무늬만 천주교신자요, 무늬만 사제입니다.

 

사람에게는 짐승과 다른 특별한 능력이 있는데 신접의 능력입니다.

‘무당이 된 개 이야기’ 들어보았습니까?

악령에게 접하는 것도 신접이요, 성령에게 접하는 신접의 능력입니다.

 

24시간 악마에게 사로잡혀 들고 날뛰는 부마자를 '전인적인 부마자'라고 합니다.

이런 마귀들은 소리만 요란했지, 급이 낮은 부마자입니다.

 

이보다 무서운 것은 존재론적인 부마자들입니다,

그 사람의 상처, 약점, 악습을 치고 들어와서 죽을 때까지 놓지 않고 조종합니다.

분노의 마귀, 용서 못하는 마귀도 있습니다.

물론 강론할 때 자는 잠마귀도 있습니다.

아마 우리들이 여기에 속해 있습니다.

 

제가 진천본당에 있을 때, 날짜도 정확히 기억합니다.

2003년 8월 13일, 조치원에 있는 본당신부님한테 전화가 왔어요.

“주일학교 있는 아이인데 좀 봐 주세요”

장정 넷이서 초등학생 여자아이를 데려왔는데 6개월 동안 잠도 안 자고

밥도 안 먹어서 21킬로, 뼈밖에 안 남았어요.

“네 이름이 뭐냐!”

마귀에게는 반드시 이름이 있는데 처음에는 대답을 안 해요.

구마기도를 시작하자 여자 아이의 입에서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났어요.

 

장정 넷이서 팔다리 하나씩 붙잡고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청년 하나가 힘이 부쳐 그 아이를 놓치는 그 순간 그 아이가 나를 공격했어요.

저항할 시간도 없이 순식간에 멱살과 허리춤이 잡혀서 한순간에 제대 쪽으로 내던져 졌습니다.

‘꽝’ 하고 구석에 틀어박히면서 상상도 못하게 아픈데 그때는 아픈 건 둘째 치고 정말 창피했습니다.

그 아이의 힘이 아니고 마귀의 힘이었지요.

3일을 구마기도해서 부모에게 돌려보냈습니다.

구마사제로 살면서 부마자들에게 칼에 찔리기도 하고

유리알이 눈에 박혀 응급실에 실려 간 적도 있습니다.

 

인간 김웅열이는 마귀와 싸워 이길 수 없지만 사제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리자로서 수 천 명의 부마자들을 구마했습니다.

 

여러분 개개인은 힘이 없지만 여러분 곁에는 수호천사와 성령이 함께 하시기에

어둠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개판으로 살 때는 마귀도 그냥 내버려 둡니다.

안 건드려도 엉망으로 사니까~

그러나 마음먹고 성당 나오려 하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비를 겁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마귀도 알아봅니다.

어느 날 청주에서 서울 가는 버스를 탔는데 내 옆자리에 앉은 50대 정도 된

아줌마의 첫인상이 범상치 않았습니다.

개량한복 비슷한 것을 입고 머리는 쪽을 쪘는데 그 여자가 나를 보면서 움찔 합디다.

신을 받은 사람들은 서로 통하는 게 있나봅니다.

차가 떠난 지 2~30분 지났는데 옆에 있는 자매가 앓는 소리를 하더니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아저씨, 뭐 하시는 분이세요?”

제가 “그런 자매님은 뭐 하시는 분이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 자매는 자기는 무속인라고 했습니다.

그 자매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뒷자리로 가더니 내내 서서 갔습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이 세상 떠날 때까지 네 가지 두려움이 있습니다.

첫 번 째가 세상에 대한 두려움, 두 번 째가 상실에 대한 두려움,

세 번째가 고통에 대한 두려움, 네 번째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인간의 4대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이 됩니다.

첫 번째,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우리 신앙선조들이 신유박해 때 세상 것 다 버리고 짐승밖에 살 수 없는 이곳에서

15개의 교우촌을 일으켰던 그 힘은 오로지 신앙이었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의 두번 째 특징은 하느님께 대한 뜨거운 사랑이 있습니다.

배티성지의 순례미사는 11시에 봉헌되는데 미리 와서 기도하시는 분들께

‘여기 왜 왔습니까? 하고 물어보면 “신앙 때문에 왔습니다.”

“신앙이 뭡니까?”

수십 년을 성당을 다녔어도 그 대답을 못 합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이렇게 대답하십시오,

“신앙이란 죽기까지 하느님을 첫째 자리에 모시는 겁니다.”

신학적, 철학적인 것, 어려운 것 다 떼어버리고

신앙은 하느님을 내 첫째 자리에 모시는 겁니다.

 

그런데 솔직히 여러분 첫째 자리에 하느님 계십니까?

물론 가끔 있지요.

급할 때, 힘들 때 병들었을 때, 아이 수능 시험 볼 때,

 내놓은 집이 안 나갈 때, 남편 진급 안 될 때.....

그것 해결되면 하느님은 다시 저 밑으로 내려갑니다.

하느님이 계셔야 할 그 자리에 자식이, 내 아픈 몸이, 교만이 올라가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숨이 끊어질 때까지 싸워야 하는 영적파도!

그분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내 눈이 흐리멍덩해서~

세상 것으로 가득 차서 볼 수가 없는 겁니다.

 

세 번째,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하느님을 알리는데 혼신의 힘을 다합니다.

제가 감곡에 있을 때는 이곳 배티성지에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 했지요.

고생고생 해서 빚 갚고, 성모님성지 선포하고, 루르드 성지만큼 크게 키워야지~

혼자서 꿈꾸고 난리가 났는데~

주교님 명령에 한마디도 못하고 이곳으로 쫓겨왔습니다.

 

배티에 왔더니 가장 먼저 최양업신부님에 대한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최신부님의 서한을 읽고, 그분의 사목여정을 묵상하면서

‘2천년 동안 이런 사제가 어디에 또 있을까!’

일 년에 7천리, 포졸들의 눈을 피해 밤에만 한 달에 3일 밖에 못 자면서,

12년 동안 구만리 길을, 양 하나를 더 찾기 위해 걸어야했던...... 최양업신부님!

 

이런 사제는 한국 교회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 신자들에게 알려야 겠다~

그 분께서 시성의 자리에 올라서 전 세계 가톨릭 교회사에 우뚝 서야 합니다.

 

저는 최신부님을 묵상하다 보면 바오로사도와 겹쳐집니다.

최양업 신부님은 동양의 바오로 사도이십니다.

최양업 신부님은 매일같이 성령께 청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삶이었습니다,

 

제가 피정지도를 위해 30년 동안 다닌 거리가 구만리만 되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편하게 차 타고, 비행기 타고 다녔습니다.

최양업신부님은 밤에만 산길로 걸어 다니셨습니다.

어쩌면 최양업신부님이 저를 이쪽으로 불러 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강하게 합니다.

 

네 번째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은 자기 꼴을 찾게 됩니다.

성령은 사제를 사제답게 하는 힘입니다.

성령은 수녀를 수녀답게 하는 힘입니다.

성령은 신자를 신앙인답게 하는 힘입니다.

성령은 봉사자를 봉사자답게 하는 힘입니다.

자기의 꼴을 찾게 하는 것이 바로 성령입니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뿜어 나오는 힘입니다.

기운입니다. 사랑입니다.

하느님을 하느님답게 하는 힘, 성자를 성자답게 하는 힘이 성령입니다.

 

우리 역시 성령을 빼면 허수아비에 불과합니다.

오늘 성령강령대축일을 지내면서 성령을 받은 사람들의 특징인

첫 번째, 두려움 없이

두 번째, 하느님을 첫째 자리에 모시고

세 번째, 혀를 다스리면서

네 번째, 자기 꼴을 찾으면서 삽시다.

 

성령과 함께 사셨던 최양업신부님과 이곳에 사셨던 수많은 선배신앙인들의 삶을

본받도록 합시다. 아멘

 

 

♧느티나무신부님 (2014. 6월 배티은총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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