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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맹모(孟母)의 사회

작성자지성용신부|작성시간10.08.28|조회수55 목록 댓글 1

죽은 맹모(孟母)의 사회

나이 마흔에 입산하는 심정으로 훌쩍 미국으로 떠나와 뉴미디어와 사회운동을 공부했다. 지금은 버지니아의 올드도미니언대학에서 시민저널리즘과 디지탈 글쓰기를 가르친다. 디지탈네트워크를 통해서 사람들이 어떻게 새로운 소통의 장을 열고 일상과 정치의 경계를 재편하는지, 그 광속의 변화상을 추적 관찰하는 일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
BY : 이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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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아주 감명 깊게 보았던 “죽은 시인의 사회”란 영화가 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사립 웰튼고등학교에 부임한 키팅선생 (로빈 윌리엄스)은 “죽은 시인의 사회”란 문학 서클을 통해 부모의 과도한 기대 속에 모범생으로 “박제”되어 가는 학생들에게 신선한 자각과 폭풍 같은 활력을 제공하지만, 끝내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학부모와 학교의 반대에 부딪혀 교단을 떠나게 된다는 내용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키팅선생이 학생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떠나려 할 때, 학생 하나가 책상 위로 올라가 외친다. “캡틴, 마이 캡틴!” 권위와 복종의 상징인 책상을 밟고 올라서서 첫 인사를 던졌던 키팅에게, 그 가르침을 잊지 않겠노라는 제자들의 뜨거운 화답이자 존경에 찬 헌사이다. 뒤를 이어 다른 학생들도 하나하나 책상을 딛고 올라서서 목 메인 소리로 외친다. “캡틴, 마이 캡틴!” “캡틴, 마이 캡틴!…”

수십 년이 지나서도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다.

 

영화는 책상을 밟고 일어 선 학생들과 쫓겨나는 키팅선생 사이의 애틋하고도 우애어린 공감에 초점을 맞추지만, 정작 내 가슴을 더욱 후벼 팠던 것은 그 마지막 장면에서조차 고개 수그린 채 이도 저도 못하는 나머지 학생들이었다. 같은 공간에 있되 여전히 눈치만 살피며 차마 책상을 밟고 서지 못하는 또 다른 절반, 그들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며 숨을 죽이고 있다. 키팅선생은 학생들에게 말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너 자신의 걸음을 걸어라. 너는 독특하다는 것을 믿어라. 누구나 몰려가는 줄에 설 필요는 없다. 너만의 걸음으로 너의 길을 가거라. 바보 같은 사람들이 무어라 비웃든간에…” 그 말을 부정하기엔 양심이 찔리고, 따르기에는 용기가 부족한 사람들. 이도 저도 못하고 빨리 그 순간이 지나가기만 기다린 채 고개 숙인 그 교실의 학생들은 어쩌면, 일상에 쫓기며 이런저런 이유로 주어진 삶의 틀을 부수지 못하는

우리네 장삼이사들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위장전입, 구차한 변명과 반론

 

인사청문회를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맛이 쓰다고 말한다. 위장전입, 투기, 탈세, 위장취업…이제는 더 이상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식상한 레파토리지만, 그것이 거의 예외 없이 사회지도층이라는 이들의 오래된 관행이자 삶의 방식이었다는 걸 재삼 확인하는 건 우리를 더욱 비참하게 한다. 청문회에 선 그들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언론인과 기득권 세력은 이야기한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있느냐?” 너희들은 그만한 흠이 없느냐, 죄 없는 놈 있으면 돌 던지라는 반격이다. “사소한 도덕적 흠결보다는 능력이 중요하다”고도 한다. 도대체 이들에게 공직자의 “능력”이란 무엇인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익이 되면 따르고 불편하면 벗어던지는 집념과 끈기? 그렇게 막가파식 성과주의로 일을 밀어붙이는 공직자들 때문에 국토가 유린되고 실업자가 쏟아진다는 걸 그들은 정말 보지 못하는 것일까. 가장 압권은, “자식 가진 부모의 심정으로 이해하라”는 것이다. 맹모삼천이 이들에겐 큰 방패막이이다. 맹자 엄마가 살아있었다면, 당장에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했을 것이다. 맹자엄마는 위장전입이 아니라 실제로 이사를 했다고 우스갯소리로 받아치지만, 이 위장전입에 관한 한 반론의 질은 현저히 떨어진다.

 

혹자는 “공직자는 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잣대를 가져야 한다”고 한다. 털어서 먼지 나는 데 예외가 없다는 걸 인정하는 말이다. 또 어떤 이는, 위장전입으로 인해서 실제 거주자의 자녀들이 손해를 보니 용인할 수 없다고도 한다. 강남8학군에 셋집조차도 장만할 여력이 없는 이들은 그럼 입 다물고 있어야 할까. 다른 한편에선, “위장전입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주민등록법에 반하는 엄연한 위법이고 이들이 처벌받지 않은 건, 법의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것 역시 문제의 본질은 아닌 것 같다. 주민등록법 위반으로 처벌을 가한다 해도 가진 자들의 이런 관행은 완전히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위법인 건 알지만, 부모 마음으로 어쩔 수 없이 그랬다”고 달려들면 더더욱 심란해진다.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부모마음”을 붙들고 늘어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락없이 인질이 된다. “자식 가진 죄로” 고개 숙이는 이들에 대한 동정론도 무시할 수 없다. 위장전입의 변이나, 그것을 비판하고 성토하는 반론이나 공히 구차함을 면치 못한다. “나도 할 수만 있으면 좋은 학군에 보내고 싶었지만 능력이 없어 못하고 위법이라 못했다. 근데 늬들만…” 하는 분노와 억울함, 동경과 질시, 선망과 자괴감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위장전입을 부모의 과욕이 빚은 사소한 흠결정도로 치부하는 이들과 정면승부를 벌이려면, “그렇게 자식 교육 시켜서 뭘 가르치려 하느냐, 그런 방식으로 세습되는 부와 학벌과 연고가 우리 아이들 모두를 황폐하게 한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세습된 부와 학벌과 연고를 물려받는 아이에게나, 그렇게 물려받을 아무 것도 없어 소외된 아이들 모두에게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없어서 못주지만 있어도 주지 않겠다고 당당히 선언하는 부모들이 많았다면, 위장전입 문제를 놓고 이렇게 지지부진한 논쟁을 펼치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책상을 밟고 일어서지 못한 절반의 학생들처럼, 내 안에도 “부모욕심”을 가장한 찌질한 속물근성이 남아 있는 한 이 문제는 그리 단칼에 깔끔하고 명쾌하게 정리될 것 같지 않다.    

 

맹모(孟母)는 죽고 삼천(三遷)만 남아

 

많은 이들이 능력만 되면–아니 능력이 안 되면 집을 줄이고 월급의 대부분을 차압해서라도– 자식을 “좋은” 곳에서 가르치겠다고 열망한다. 미국 뉴저지 버겐 카운티나 버지니아 페어팩스 카운티의 학군 좋다고 알려진 곳은, 자식 공부를 위해서 미국행을 택한 한국 학부모들로 늘 바글바글해서 아무리 집값이 침체해도 아파트 월세는 떨어질 줄 모른다. 아예 “자식을 위해서” 미국으로 이주를 하는 가정도 적지 않다. 이들은 입을 모아 한국의 입시지옥에서 아이를 해방시켜 주고 싶었노라고 이야기한다. 과외비 부담이 만만치 않으니 어차피 돈 들어가기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매한가지인데, 그나마 아이가 “기를 펴고 밝게” 살 수 있는 곳으로 오고 싶었다고도 말한다. 그래서 그 아이들은 입시지옥에서 해방되어서 기를 펴고 밝게 자라고 있을까. 그런 아이들도 있지만, 여전히 짓눌리고 기죽은 채 이방인으로서의 좌절감까지 더해 방황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학생이 뭘 하든 폭언하지 않고 체벌하지 않는 교사, 토론과 반론이 자유로운 수업, 촌지 없는 학교, 편리한 도서관과 체육시설… 모든 교육환경이 다 변했어도 변하지 않는 한 가지, 바로 한국 부모들의 “자식 욕심” 때문이다.

 

한인 타운에는 방과 후 아이들을 학교에서부터 버스로 싣고 와서 밤늦도록 붙잡아두고 공부시키고 숙제시키는 학원들이 즐비하다. 대치동 무슨 무슨 학원에서 “직수입”한 강사가 있다고 광고하는 전단이 여기저기서 날라든다. 내 미국 친구 중의 하나는, 문학을 전공한 뒤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영화비평을 쓰는 일을 하는데 부업으로 한국 아이의 과외교사를 맡게 되었다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내게 그는 불쑥 “한국 엄마들은 원래 그래?”하고 묻기에 무슨 일이냐 했더니 자기가 가르치는 아이가 꽤 똑똑한데 작문만 시키면 영 맥을 못 춘다는 것이다. “영어가 부족해서 그러겠지” 했더니 그게 아니란다. 아이가 뭐가 자기 생각인지 모르는 것 같단다. 아이가 너무 억눌려 지내는 것 같아서 부모와 상담을 하려고 했더니 그 부모는 영어가 거의 안 통하는 사람들인데, 그저 하는 말이 “아이비리그에 보내 달라”는 것이었다고 했다. 아이를 통역으로 삼아 부모와 의사소통을 해야 했던 그 친구가, 어렵게 에둘러서 “아이비리그 말고도 좋은 학교는 얼마든지 있다”고 설득해 보려 했지만 그 부모는 “우린 자식 교육을 위해서 모든 걸 버리고 왔다. 이 아이는 아이비리그에 가야 한다”는 말만 반복하더란다. 그 말을 영어로 전하는 아이가 안쓰러워 더 이상 길게 얘기할 수 없더라고 친구는 말했다. 그 부모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세탁소 일을 하며 아이와 함께 얘기할 수 있는 시간도 거의 없는데 입만 열면 하는 소리가 “아이비리그타령”뿐이니,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아이는 아이대로 남몰래 혼자 앓고 있는 것 같다고 친구가 말할 때, 나는 할 말이 없어 식어빠진 커피잔만 만지작거렸다.  

입시지옥에서 해방되기 위해서 왔다고 하지만 바뀐 건, 서울대에서 아이비리그로 목표가 상향(?) 조정된 것 뿐이다. 한국의 촌지문화가 지긋지긋하다고 하면서, 몇몇 한국 엄마들은 아이의 담임선생한테 한국행 비행기표를 덜컥 사주는 엄청난 선물공세를 하는 바람에 이후 그 학교에 아이를 보내게 된 다른 한국 엄마들이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는 소리도 들었다. 맹자 엄마가 맹자를 위해서 한 것이 이사만은 분명 아니었을 터, 부박한 내 지식으로 맹자 엄마가 평소에 맹자를 어떻게 가르쳤을지 궁금할 뿐이다. 맹모는 죽고, “삼천(三遷)”신화에 열광하는 부모들만 남아있으니 이래서 어느 세월에 맹자가 나오겠나 싶다. 

     

행복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자식을 두고 장담하지 말라고 하니, 나도 섣불리 내 자식을 어떻게 키우겠노라 공언하기는 겁난다. 아이가 다섯 살 때 일이다. 유치원 교사와 정기적인 학부모면담을 하는데, 그 선생님은 너무나 진지하게 “이 아이가 작년 가을까지는 1에서 10까지 셀 줄 알았는데 지금은 1에서 20까지 세게 되었다”며 “커다란 진보”를 했다고 칭찬을 해댔다. 어이가 없어서 그냥 깔깔 웃고 말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시험을 쳤는데 단어시험에서 아이가 꼴찌를 했다. 미국에서 나기는 했어도 집에서 한국말만 쓰니 영어시험을 못 보는 건 당연한데도 공연히 속이 끓고 조바심이 났다. 어찌 하면 좋을지 물어보는 내게 선생님은 “아이를 억지로 책상 앞에 앉히려 들지 말고, 그냥 놀면서 스스로 익히게” 하란다. 풀밭의 딱정벌레를 보면서 몇 마리인지 같이 세어 보고, 장을 보러 가면 식료품 앞에 쓰인 라벨을 읽게 하고… “그래, 그래야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천상의 계시라도 들은 양 마음 뿌듯하게 집으로 돌아오긴 했으나 그 이후로도 난 늘 갈팡질팡이다. 사실 놀면서 익히게 하는 게 품이 더 든다. 시간도 없고 내 일로도 피곤한데 애 데리고 다니면서까지 가르쳐야 한다니… 더군다나 내 스스로 어린 시절 그렇게 공부를 배워 본 기억이 없으니 그러면 공부를 잘하게 될 거란 확신도 없다. 석 달 방학 내내 천방지축으로 뛰어놀기만 해서 새까매진 아이를 보면, 책상 앞에 붙들어 앉혀 다 까먹어버린 단어라도 써보게 해야 하지 않나, 맹렬한 유혹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결국 내 자신에게 돌아오는 근본적인 질문은, “나는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길 바라는가?”하는 것이다.

 

모든 부모가 그렇겠지만 우리 부부의 바람은 아이를 “행복한 사람”으로 키우는 것이다. 행복할 줄 아는 것도 체험과 훈련이 필요할 터, 행복해 지는 법을 스스로 느끼고 배우게 하겠다고 매번 다짐하지만, 한편에서는 “일단 경쟁력이 있어야 행복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쉽사리 지워지질 않는다. 공부를 잘하고 좋은 직업을 가지고 돈도 잘 벌고 사회적으로도 출세를 하면… 그럼 행복해 질까, 다시 스스로에게 묻는다. 확실히 그건 아니다. 그렇게 도리질을 치고 나도 돌아서면 또 악마의 속삭임처럼, “이러다 내 아이만 뒤떨어지는 건 아닐까?” 불안해진다. 부모 노릇하기 참 어렵다고 탄식하던 차에, 한국에서 이제 막 사춘기에 들어선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친구가 메일을 보내왔다.

 

“아이한테 설득이나 훈계하려고 하지 말고 제 뜻대로 하도록 믿고 기다려줘 봐. 지금은 힘들겠지만 그래야 너도 나중에 덜 힘들 거야. 먼저 애 키운 엄마의 뼈아픈 충고이니 명심하시압.”

캡틴, 마이 캡틴

 

살면서 이런 저런 일들로 중요한 결심과 결단을 내려 본 적이 있다. 어렵게 들어간 좋은 대학에서 잘릴지도 모르는데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취직을 제대로 해야 어머니 부담을 덜텐데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걸 하면 사람들한테 욕을 바가지로 먹을 텐데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몽땅 정리하고 유학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비교적 담 크게 관성을 깨는 결단을 내려 봤다고 자부하지만, 자식을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는 매일매일 새록새록 갈등에 부딪히고 매순간 그 어느 때보다도 힘겨운 결단에 직면한다.

 

나보다 먼저 아이들을 키우면서 비슷한 마음고생을 겪고, “무엇보다도 자식의 행복이 우선이라서” 그들을 믿고 기다려주기로 했다고 담담히 말하는 친구들은 내게 하늘같은 선배들이다. 그런 결단을 내리기까지 자식의 성장통 만큼이나 부모도 앓았을 것이고 갈등했을 것이다. 우리가 어렸을 적 받아보지 못했던 행복한 배움을 꿈꾸며, 학벌과 재산으로 자식을 뒷받침하고 싶은 탐욕을 다스리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들의 용기와 결단에 진정 어린 존경을 보낸다. 다그치는 부모의 조급증이 자식의 성적을 올리지 못할 수도 있고, 자식이 괜찮은 학벌을 가졌더라도 그것이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고 굳게 믿으면서, 나보다 먼저 책상 위에 올라서서 “캡틴 마이 캡틴”을 외치는 깨어있는 부모들을 다시 생각한다. 조금 미적거리고 꾸물대더라도 언젠가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책상을 밟고 당당하게 올라서지 않을까.

나도 그들 중의 하나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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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이연옥(엔나타) | 작성시간 10.08.29 자식을 어떻게 길러야 제대로 기르는 것인지...모든 부모의 걱정이지만, 정답이 없는 문제지요...더군다나 초등학교 고학년 부터는 머리가 커졌다고 말도 제대로 안듣지요...줏대있게 기르고 싶지만 참 어렵네요...그 욕심으로 잘못된 행동들도 하는 것일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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