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중은 중답게, 추기경은 추기경답게 | ||||||
[시사비평-한상욱] | ||||||
| ||||||
매년 여름이면 만나는 노동사목 출신 선후배들 수련회가 지리산 깊은 골짜기에서 있었다. 밤새 쏟아지는 계곡 물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산에서 흐르는 물이 저 밑에서 너른 강이 되고 다시 바다로 이어져 하나로 모아지는 자연의 모습은 상식이고 당연한 이치이다. 그런데 산 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세상에는 상식이 사라져 버린 지 오래이다. 그래서 상식에 반대되는 것을 몰상식이라고 한다. 우린 그것에 대해 이미 익숙하게 길들여져 있어 몰상식한 짓에도 분노하는 감정조차 잃어버리고 산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가톨릭교회가 이러한 모습을 보인 것은 아주 오래전 부터였으며 그 본질이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었다. 문제는 오히려 점점 더 나빠지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고통과 잘못에 저항하며 걸어갔던 사제, 평신도들은 언제나 변방이고 비주류이고 왕따였다. 때론 빨갱이가 되기도 했고 철없는 짓을 하는 사람으로 업신여김 당했다. 그런데 예전에는 그런 사제들의 숫자가 많았는데 이제는 사제단 활동하는 사제들이 소수로 변하자 교회권력층의 힘이 더 세게 작용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과 말에 복종하지 않는다고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것만큼 상대에게 치욕적인 것은 없다. 권좌를 누리는 사람들이 행하는 보통의 방식은 자기와 다르면 배척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을 보면서 교회권력과 정치권력의 차이가 별반 없다는 것이 요즘 세상이란 것을 절실히 체험하게 된다. 해방 이후 200여명 남짓 남은 비구와 수천 명의 대처승 사이에서 절을 소유하기 위한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한쪽에서는 수를 채우기 위해 깡패를 고용했고 한쪽에서는 몇 백 명씩 이혼을 해서 스스로 대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다. 양쪽 다 권력을 이용하고 권력은 종교를 이용했다. 성철스님은 그 다툼을 비판했다. 200여명의 비구가 하나하나 잘 살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불교는 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기의 모습을 바라보라고 했고 제발 중답게 살아야 한다고 일갈했다. 성철스님의 뜻을 헤아리면서 보니, 요즘 교회에 대한 내 감정이 자꾸 겹쳐진다. 한상욱 / 인천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 |